[데스크칼럼] “코리아 퍼스트!” 대선후보는 없는가?

낡은 한미동맹 프레임이 작동하는 19대 대선

2017-04-26     김장호 기자
▲ 26일 소성리 사드배치를 위해 이동중인 차량과 성주 골프장 입구를 차단한 경찰병력.

결국 소성리에 사드가 배치되었다. 한국 경찰 1만 여명이 미군을 경호한 가운데 성주·김천 소성리 주민들과 지원 나온 시민들은 구타를 당하고, 군사작전으로 사드는 롯데CC에 옮겨졌다. 우리 땅에서 대통령 선거가 정점에 달하고 있는 시점에서 발생한 일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유력후보가 대선 후 배치 논의를 공약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다. 자기 나라 외교안보 정책을 놓고 국민적 선택이 진행되는 상황도 아랑곳 하지 않고 미국은 사드배치를 강행했다. 이게 나라인가?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은 일제와 같은 식민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것이 19대 대선에서 나타난 첫 번째 기형적인 정치현상이다.

또 하나 기이한 현상이 있다. 국정농단의 주범인 박근혜, 최순실이 구속된 상태이고, 세계가 놀란 1600만명의 촛불혁명 이후에 진행되는 대선임에도 불구하고 탄핵반대, 친박핵심 정당의 홍준표 후보가 탄핵에 찬성하고 합리적 보수를 주창하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보다 지지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각종 여론조사 추이는 이대로 가면 선거구도가 1강2중2약 구도로 재편될 것이고, 투표일 직전의 주된 관심사는 누가 2위를 차지할 것인가가 될지도 모른다. 정치상식으로 보면, 구 새누리당 세력은 당이 해체되고, 후보를 아예 낼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현실은 아예 후보를 못 내거나 꼴찌를 달려야할 후보가 이제는 2위를 넘보는 형국이 되고 있다. 적폐의 귀한이다. 

마법이 아니고서는 발생할 수 없는 이 기형적 정치현실의 본질에는 한미동맹이라는 강력한 프레임이 작동한다. 이것이 비밀이고, 마법이며, 어둠의 포스이다. 일부 대선주자들이 소성리 사드 도둑배치에 대해서 유감을 표명하는 수준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굴절된 한미동맹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재편 방향에 대한 대통령다운 외교철학이 나와야 한다.

25일 바른정당 의총은 김무성 선대본부장을 중심으로 후보가 결사반대함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3자 원샷 단일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25일 JTBC 토론회에서 재차 확인되었듯이 유승민, 안철수, 홍준표 후보 어느 누구도 3자 원샷 단일화에 동의하지 않으니 성사가능성은 높지 않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일부 언론은 3자 원샷 단일화가 성사되면 박빙승부가 펼쳐질 것이라는 식의 전망을 흘리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3자 반문연대는 적폐연대, 정권연장음모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전혀 만날 수 없는 세 후보지만, 명분과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못할 것도 없다는 식의 공론화가 가능한 정치구도가 이번 대선에서 나타나는 3번째 기이한 현상이다. 

그런데 따져보면 신비할 것도 없다. 한미동맹이라는 틀에서 보면 얼마든지 가능한 현상이다. 촛불항쟁은 친미보수정치체제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박근혜 정권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잘못 하다가는 우익친미 보수정치집단이 궤멸할 수도 있는 위험에 빠졌다. 

이런 위기는 현대사에서 몇 번 있었다. 해방공간이 그렇고, 4.19가 그렇고, 6월 항쟁, 6.15-10.4 남북화해협력시기가 그렇다. 해방직후 친일파 상당수가 빨갱이 잡아야 한다면서 애국자로 변신했고 미국의 비호 아래 이승만 친미독재정권에서 부역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했다. 4.19혁명과 80년 광주항쟁을 군화발로 짓밟고 친미군사독재정권이 등장했다. 6월 항쟁 이후에는 더 이상 친미군사독재는 불가능했다. 그만큼 국민이 성장한 것이다. 때문에 3당 합당을 통한 친미보수연합정권을 세웠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등장하고 6.15-104선언을 통해 남북화해협력시대가 열리면서 보수의 입지가 구조적으로 약화될 위험성이 발생했다.

친미보수세력의 입장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 10년은 이런 위험을 겨우 만회한 시기였다. 보수의 언어로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그러나 약화될 대로 약화된 친미보수정치세력이 박근혜같은 후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있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또 다시 다가온 우익친미보수정치세력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은 보다 확장된 연성친미보수연합밖에 없다. 그것은 대선 전 개헌을 매개로 한 연성친미보수대연합이었다. 그러나 촛불 때문에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3자 원샷 단일화는 다 죽어가는 불씨라도 살려 연성친미보수연합정권을 창출해보자는 마지막 시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극우친미정치세력은 안철수를 자신의 대변자로 세울 생각이 전혀 없다. 

유승민 후보를 상징으로 하는 합리적 보수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위협적인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급전직하로 붕괴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거 역시 굴절된 한미동맹 프레임에서 찾아야 한다.

유승민 후보는 ‘따뜻한 보수’, ‘중부담 중복지’라는 나름 합리적 보수성향의 공약을 내걸고는 있으나 지지율은 전혀 상승하지 못하고 사퇴압력에 직면해 있다. 유승민 후보가 안보문제에서 극우프레임을 극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보는 극우, 민생경제는 합리적인 보수라는 구도는 분단한국사회에서 존재할 수 없다. 유승민 후보는 이것이 양립 또는 결합 가능하다고 판단한 듯 하나 명백한 착오이다. 유승민 후보가 강력한 대북주적론, 사드배치론, 전술핵 배치론으로 무장하고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공략하였으나, 결국 홍준표 후보를 도와준 꼴이 되고 말았다. 본인은 안철수 후보와 서로 '당론과 후보 입장이 다른 것 아니냐'며르다는 리더십 논쟁을 벌이고 있다. 딜레마 구조가 유승민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뜻이다.

이 역시 대북 적대적 한미동맹체제하에서는 경제민생 개혁세력의 성장이나 협치, 합리적 개혁추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력한 대북 적대적 한미동맹체제는 극우친미보수정치세력의 숙주이지 합리적 보수정치세력이 성장하는 토양이 될 수 없다. 때문에 합리적 보수는 경제민생뿐만 아니라 한미동맹, 남북관계에서도 합리적 보수로서 새로운 입장을 내놔야 한다. 

안철수 후보는 후보단일화 없는 자강론에 기초한 국민적 단일화를 주창했다. 그리고 한미동맹 문제에서 극우적 수준의 급변침을 진행했다. 복잡한 정치지형에서 나름 고도한 정치전략이지만, 이미 실패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홍준표 후보가 홍준표, 조원진, 남재준 등 보수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고, 유승민 후보와의 단일화를 열어놓고 있는 것은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3강 구도를 먼저 만들고 2위에 올라 양강구도를 한 번 형성해보자는 고도의 정치공학이다. 안철수 후보의 중도통합전략은 극우보수정치집단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분단대결구조, 대북적대적 한미동맹체제의 전환없이도 중도정치세력이 집권세력으로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설정에 근거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안철수 후보가 한미동맹을 추종하는 연성친미보수대연합의 중심에 서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가 꼭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차라리 분명히 밝히면 국민의 선택이 한결 쉬울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중도의 딜레마는 한미동맹구조에 대한 역사의식의 부재로부터 나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어두운 시절에도 “용미론”(미국을 활용하자)을 주창한 바가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효순이 미선이 촛불에 나가, “한국 국민이 반미 좀 하면 안됩니까?”, “미국 대통령과 밥만 먹지는 않겠다”고 호기라도 부렸다. 구체적으로는 전작권 환수를 추진했다. 이재명 후보는 예비후보 시절 “자주적 균형외교”를 외쳤다.

국민들은 중국과 미국의 갈등구조, 미일간 발생하는 “코리아 패싱” 등의 현상을 보고 자존심이 상해 있다. 구한말 열강들의 나눠먹기 희생물이 되었던 시기와 지금은 매우 유사하니 자주적 입장이 중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이미 대중화된 지 오래이다.

촛불항쟁에서 가장 긴급히 해결해야 할 적폐 중의 하나가 사드배치 철회였다. 그나마 유력 후보 중 문재인 후보는 중미 동시행동을 끌어내서 한국 외교의 주도권을 찾고, 대북협상과 남북관계 회복을 도모하겠다며 일부 진전된 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현재 중미공조, 미일공조, 한미공조 대북압박 국면이니 한미동맹을 맹목적으로 추종해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잘못 판단한 것 같다. 협상국면에서는 협상을 하고, 제재국면에서는 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수처럼 딱 부러진 제재안도 없다. 거기까지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협상국면을 어떻게 창출할지에 대한 방략도 없다. 협상국면이 열리고 나서 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지도자의 길이 아니다. 결국 한미동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 밖에는 다른 전략이 없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오락가락하면서 원래 지지자들은 이탈하고, 결과적으로 홍준표 후보만 도와주고 있는 형국이다. 

안철수 후보의 '중도전략의 딜레마'는 친미보수정치체제가 만들어낸 낡은 지역분할구도에 편승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측면도 크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한미동맹체제의 하위 프레임 안에 있다.

호남과 대구경북 표심의 충돌이라는 선거공학적 분석을 통해 안철수 후보가 대처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미 안철수 후보는 정치입문 초창기와 달리 새로운 정치집단이 아니라 낡은 정치집단을 대변한다. 노무현, 문재인 등 정치세력은 비록 호남 유권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으나 낡은 지역주의와 오랫동안 투쟁해온 정치세력이다. 그러나 국민의당 핵심세력은 지역분할구도라는 낡은 정치지형을 복원하는 방법으로 지난 총선에서 지지율을 높여왔다. 촛불항쟁 이후 안철수 후보의 지지기반은 새로운 세력, 새로운 민심이 아니라 구질서를 복원하기를 원하는 세력들이 주력이다. 패권주의 반대, 협치, 연정, 4차 산업혁명 등 일부 새로운 지향을 반영한 지지자들도 분명히 있다. 이것이 문재인 후보가 갖지 못한 확장력의 한계 측면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는 무너져 내리는 지역대결정치와 친미보수정치체제의 구도에 익숙한 민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민심과 지역정치의 유지와 복원에 익숙한 민심 사이의 충돌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한미동맹만이 살길이라도 대놓고 주장하는 우익보수정치인들도 어두운 그림자를 피해갈 수는 없다. 홍준표 후보가 유승민, 안철수 후보의 딜레마와 문재인 후보의 보수확장전략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보수와 진보의 체제 대결구도를 형성하는데 일정하게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본질에서는 낡은 한미동맹체제에 편승한 적폐의 귀환에 불과하다.

이미 조선일보는 한반도 북미갈등의 역사에서 고강도의 대결국면 이후에 협상국면이 열렸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유턴을 걱정한 바 있다. 대북 선제공격, 북한 붕괴론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한국 우익보수의 정치적 민낯을 그대로 보게 된다. 미국이 북을 공격하는 것을 막고 북미간 평화와 협상으로 가야한다는 것은 시대의 대세이자, 일치하는 민심의 요구이다. 이미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다시 전쟁이 나면 핵전쟁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힘을 빌어 북을 치자는 외교안보통일전략을 가진 집단이 이 땅 친미우익보수정치의 실체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철저하게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전략에 입각해서 한미동맹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대선후보들은 왜 “코리아 퍼스트(Korea First)!”라고 외치지 못하는가? 대선후보들이 촛불민심을 대변하고, 새로운 한국정치를 해보겠다고 한다면, 이제 굴절된 한미동맹에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오직 맹목적 한미동맹만이 답이라는 수준의 비전으로는 다가오는 북미간 핵대결과 중미간의 경쟁, 일본군국주의 부활을 막고 한반도 전쟁 방지와 평화와 통일을 열어갈 수 없다. 더 이상 검은머리 미국인이 한국 정치를 이끌어가서는 안 된다. 미국보다 더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표를 얻고 요직을 차지하는 국정이 진행돼서는 안 된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말했다.  “나라를 팔아먹는 보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