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1700일+

도시빈민의 삶과 투쟁(5) : 행정편의 위해 만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해야

2017-04-20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사진제공: 빈곤사회연대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던 2012년 8월21일, 광화문역 지하 2층에는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는 농성장이 자리 잡았다. 경찰과 24시간의 사투 끝에 비닐 한 장으로 시작된 농성은 어느덧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지난했던 투쟁의 무게만큼 견고한 나무 벽과 농성 집기들이 자리하며 19대 조기 대선을 맞이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부양의무제

2012년 여름 거제에 살던 이씨 할머니가 구청 앞에서 음독자살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였던 할머니는 사위의 소득증가로 부양의무제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됐고 이에 항의하며 “법도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법이 어떻게 사람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새로운 빈곤의 등장과 함께 논의되고 만들어졌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산다면 가난은 나와 먼 이야기라는 사회적 인식이 외환위기를 맞닥뜨리며 무너졌다.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가난에 처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새로이 자리 잡았다. 이러한 변화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기초생활보장제도다. 1999년 제정되어 2000년 시행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개인이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빈곤에 처했을 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한국사회 마지막 안전망이다.

제도 시행으로부터 17년이 지난 현재 한국사회 빈곤문제는 얼마나 해결되었을까? 생활고를 이유로 한 빈곤층의 죽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가난이 죽음보다 두려운 사회라는 말에 어색함이 없다. 빈곤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자신의 소득과 재산이 국가가 정해놓은 빈곤선 이하여야 한다. 둘째는 근로능력판정을 통해 근로능력이 없을 시 일반 수급권, 근로능력이 미약하게라도 있을 시 노동부나 복지부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에 참여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조건부 수급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급신청자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국가에서 정해놓은 일정기준 이하여야 한다.

언뜻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은 빈곤층들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조건들로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빈곤선이 너무 낮은 수준에 고착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제도운영이 제도를 필요로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이 아닌 행정의 편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단연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자의 범위는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로 규정되어 있다. 부양의무자 해당되는 가구의 소득과 재산이 정해놓은 기준을 넘어간다면 소득의 30% 또는 15%를 부양비로 간주하여 수급비를 삭감하거나 수급권을 빼앗아간다. 실제 부양여부와는 상관없이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의 가족들에게 가난의 책임을 떠넘기고 부양을 강요하는 것이다. 과연 한국사회에서 본인 소득의 30%를 안정적으로 부모의 부양에만 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2013년 9월 신부전증을 앓으며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50대 남성은 딸의 취업으로 인한 소득 때문에 수급권을 박탈당했다. 졸지에 매달 100만원의 병원비를 부담해야했던 그는 딸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자살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한 복지사각지대를 방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가족들 삶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본인은 가난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무려 100만 명 넘게 존재한다.

▲ 사진제공: 빈곤사회연대

장애인을 죽음에 방치하는 장애등급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농성장에 가장 큰 변화는 시작할 때 하나도 없었던 영정 13개가 자리했다는 것이다. 장애등급제 때문에, 부양의무제 때문에, 장애인수용시설에서의 폭행과 인권유린 때문에,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삶이 하나 둘 지워졌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하루 뒤인 2014년 4월17일 중복 3급 장애인 송국현이 화마에 휩쓸렸다.

송국현은 수용시설 중심의 장애인복지정책으로 대부분의 장애인과 비슷하게 시설에 격리되어 일평생을 살았다. 자신의 자유와 선택권을 빼앗긴 채 짜맞춰진 생활을 반복해야 했던 시설생활이 싫어 27년 만에 지역사회에 나왔다. 시설에서 나온 뒤 6개월 후 송국현이 염원하던 자립생활의 꿈은 연기가 되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송국현의 장애등급 판정 결과는 ‘타인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으로 활동보조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판정 결과와는 다르게 거실에서 시작된 원인 모를 불이 방으로 번지고 자신의 몸을 덮어버릴 동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송국현은 생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

장애등급제는 1988년 ‘장애인등록제도’가 시행되고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등급의 세밀한 기준을 규정하기 위한 ‘장애등급판정지침’이 1998년 제정되었고 2007년 현행 ‘장애등급심사제도’가 시행되었다. 장애인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은 등급심사를 통해 1~6급 등급을 판정을 받아야만 등급에 맞는 서비스를 보장받을 수 있다.

장애등급제의 변화과정은 장애인복지제도의 양적 확대 및 예산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90년 대 초 ‘장애인 감면·할인제도’ 외에 이렇다 할 장애인복지서비스가 없었지만 2000년 1급, 2급 장애인을 지급대상으로 하는 ‘생계보조수당’(현행 장애수당)이 도입되었고, 2007년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필수 사회서비스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1998년 제작된 ‘장애등급판정지침’과 2007년 ‘장애등급심사제도’의 도입은 당시 도입 예정에 있었던 장애인복지제도를 예산에 맞춰 집행하기 위한 꼼수였다. 

도입된 제도의 서비스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장애등급심사를 재심사받아야 했고 실제 그 과정에서 많은 장애인들이 등급 하락을 경험했다. 장애등급제 존재의 이유가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함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송국현 이전과 현재에도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등급제로 인해 필요한 장애인복지서비스를 보장받지 못해 하루하루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

▲ 사진제공: 빈곤사회연대

1700일+

광화문농성이 시작되고 대부분의 대선후보들이 농성장에 방문했다. 당시 유력 대권후보였던 문재인과 박근혜 모두 장애등급제 폐지를 공약으로 걸었고 부양의무제는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완화를 통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3월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통해 빠르면 2016년까지 현행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판정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재 3차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장애등급제 개편안의 내용은 기존 1~6급의 장애등급 체계를 중·경 단순화하는 등 여전히 의학적인 기준의 등급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1~3급은 중증, 4~6급은 경증으로 구분해 서비스를 제공하던 기존의 행정운영과 다르지 않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GDP 대비 0.61%로 OECD 평균 2.11%의 1/3밖에 되지 않는 장애인복지 예산을 늘리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단순히 의학적 손상 정도에 따른 판정이 아니라 사회·환경적 요인과 함께 검토되며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구조와 인식의 변화를 함께 도모해야 한다. 이런 논의를 통해 장애인 개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농성장에서 5년 동안 외치고 있는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 폐지’의 방향이다. 

2015년 7월 사각지대 해소를 목표로 한 맞춤형개별급여 개정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됐다. 정부는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완화를 통해 12만 명의 신규수급자를 발굴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화로 얼마의 빈곤층이 신규 수급자격을 보장받았는지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교육급여를 제외한 수급자수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이것은 백번 예상됐던 결과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가 아닌 완화를 통한 사각지대 해소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2003년 정부에서 발간한 보고서 결과다.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는 본인은 소득과 재산이 없어 제도의 요건을 충족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가장 취약한 사각지대로 제도 시행 초기부터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런 문제제기 속에서 부양의무자의 범위와 소득기준의 완화 역시 계속해왔지만 그 결과는 100만 명의 사각지대 방치, 즉 ‘효과 없음’ 이다.

▲ 사진제공: 빈곤사회연대

무엇이 진짜 부정인가

“부정수급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이야기할 때 반사적으로 나오는 질문이며 복지확대를 거부하는 정부의 논리다. 하지만 실제 부정수급은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저지른다. 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가 발표했던 100억 원의 부정수급액 중 복지제도 수급자들의 부정수급은 0.7%에 불과했다. 요양병원이나 시설 등 제공 기관에 의한 부정수급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부정수급의 칼날은 언제나 복지수급자를 겨누며 가난한 사람들을 예비 범죄자화 하고 있다. 이는 비단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시각이 아니다.

거리에서 장사하는 노점상들을 도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쫓아내고 생존권을 외치며 투쟁하는 노점상들을 향해 기업형 노점상 운운하고,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3법 쟁취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귀족노조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 행위라고 폄하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생존권을 요구할 때 늘상 마주해야 하는 폭력이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부정수급보다 사각지대가 더 넓다는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이를 방임하는 정부보다 부정한 것이 어디 있는가. 빈곤에 사람을 방치하고 장애가 있다고 가난하다고 죽음에 내몰리는 사회가 부정한 것 아닌가. 이제는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을 죽음으로 방치하는 사회를 멈추기 위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를 폐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