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 수출해도 국내 남는 건 533원뿐

[기획연재]기로에 선 제조업(2) 수출 만능 신화의 붕괴

2016-05-15     김성혁 소장
한국경제가 저성장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일본보다 더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해법은 무엇일까? 일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한국 제조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찾아보려 김성혁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의 ‘기로에 선 제조업’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 사진출처 : 현대중공업 홈페이지

한국은 무역의존도(GDP 대비 ‘수출+수입’ 비중)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0%를 넘어섰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이 30% 수준임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높다. 최근 무역의존도가 [표1]과 같이 세계무역 침체로 인해 88%로 떨어지자, 정부는 산업 재편과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경제가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함을 보여준다.

세계경제 대침체국면에서 한국의 수출증가율은 2015년 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16개월째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고, 한국 경제의 신화였던 '무역 1조 달러' 기록마저 2015년 무역총액이 9640억 달러에 그치면서 5년 만에 무산되었다.

[표1] 무역의존도 변화 추이(%)

▲ 출처 : 한국은행(각 년도)

한국 수출 부진의 원인은, 세계 경제위기가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전이되어, 한국 수출의 67%를 차지하는 신흥국들의 경제위기 때문이다. 러시아, 남미, 중동 국가들은 유가 등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한국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은 성장 둔화와 중간재 자립화 정책으로, 한국의 제품을 과거와 같이 수입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수출이 예전처럼 회복된다고 해도, 그 과실이 국민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째, 금융위기 이후 ‘교역조건’이 나빠지면서 실질 무역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표2]를 보면 교역조건 변화를 반영한 실질 무역손익은 1953~2007년까지 55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였으나 2008년 이후 6년간 적자를 기록하였다. 이는 기술과 품질보다 과도한 환율 상승과 단가 인하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한국식 수출구조가 2008년 임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교역조건이란 100원어치 물건을 수출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수입할 수 있는 구매력)으로 ‘교역조건이 나빠졌다’는 말은 들여올 수 있는 이득이 적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원화가치가 상승하거나 유가가 높은 경우, 단가를 많이 떨어뜨렸을 경우 교역조건이 나빠진다.

[표2] 실질무역손익 추이(단위 10억원)

▲ 출처 : 한국은행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금융위기 전까지는 실질국민총소득(GNI)이 실질국내총생산(GDP)보다 많았다. 1990년대 실질GNI는 평균 672조원으로 실질GDP 592조원보다 컸다. 2000~2007년에도 실질GNI는 평균 1008조원으로 977조원의 실질GDP를 앞섰다. 하지만 2008~2013년에 실질GNI는 1265조원으로 실질GDP 1278조원보다 적었다.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실질무역이익’은 1990년대 82.8조원에서 2008~2013년 18.3조원 손실로 바뀌었다. GDP대비 실질무역손실은 1.4%수준에 달한다.(2015년 이후 유가 급락과 환율 상승으로 교역조건이 다시 회복되고 있는데 이는 예외적인 상황이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교역조건이 나빠지면서 수출 제조업체들이 가져가는 실질적인 몫이 줄어들었고 이는 수익력 하락으로 이어졌다. 또 손실을 본만큼 임금을 줄여 노동소득분배율도 낮아졌다. 이에 따라 수출의 산업연관효과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수출의 취업유발계수는 1990년 10억 원당 65.4명에서 2012년에는 7.7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계수도 1990년 0.696에서 2012년에는 0.514로 크게 낮아졌다. 순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도 1980~2000년대는 1.0%p 수준을 유지했지만 2010~2014년은 0.6%p로 반토막이 되었다.

둘째, 글로벌 가치사슬 확대로 국내 부가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지난 20년에 걸친 글로벌 가치사슬의 확대는 수출과 국내 부가가치 간의 괴리를 유발시켰고 이는 수출의 성장 기여도를 감소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한해 100원어치 수출을 했다면, 국내로 들어오는 소득은 1995년 75원이었으나, 2011년에는 59원으로 줄어들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국 수출의 부가가치 유출률은 44.7%로 미국, 중국, 독일, 일본 4개국 평균인 23.1%의 곱절에 가까운 21.6%p나 높았다. 이는 1,000달러짜리 제품을 수출하면 447달러가 해외로 유출되고 나머지 533달러가 국내에 남겨진다는 얘기다. 주요 수출품의 핵심가치를 결정하는 소재부품과 자본재의 상당부분을 일본 등 해외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성장시대 생존전략은 수출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는, 국내 핵심기술에 기반한 고부가가치 수출, 그리고 내수 확장으로 외부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자립적 경제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다.

▲ 김성혁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