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의 ‘대화신청’을 대중이 ‘수락’하다

신간 화제

2017-03-13     허수영 기자

요즘 서점가의 화제 중 하나는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저술한 <다시 시작하는 대화>이다. 이 전 대표의 신간은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에서 ‘이 주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등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이 강제해산 당한 이후 이 전 대표는 대외활동을 자제해왔다. 그는 지난달 17일 <김어준의 파파이스> 팟캐스트 방송에서 그 동안 대중 앞에 나서지 않은 이유를 “면목이 없어서”라고 밝혔다. 방송에선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던 이 전 대표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대중들에게 대화를 신청했다. 책 제목부터가 ‘다시 시작하는 대화’이고 이 전 대표 스스로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국민 여러분과 대화가 하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낡은 진보, 편협한 진보라는 오해가 아직도 심심치 않은 상황에서 새롭게 대화를 신청한 것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어떤 대화를 하고 싶었던 걸까?

‘헌법 안의 진보’를 넘어설 대안은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좀 길다. ‘새로운 시대, 동행을 위하여 - 정치적 현실주의를 넘어 근본을 지향하는 진보적 상상력’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 저서 <진보를 복기하다>에서도 “진보진영이라면 헌법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범위 자체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헌법 안 진보’, ‘건전하고 합리적인 진보’로 표현되는 현실 순응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번 책에서도 “정치적 현실주의는 진보정치의 영토를 넓히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결과는 수구세력의 자기장 확대로 나타났다(125쪽)”고 경계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정권에 맞선 강력하고 일관된 정치적 반대자가 되는 것조차, ‘건전한 진보정치’의 길에서 보면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민중들은 아예 현실성을 좇아 기성의 보수 야당들에 의지하게 된다(127쪽)”고 우려했다.

그는 현실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진보의 지평을 넓히는 수단이 바로 ‘저항권’이라고 강조한다. “헌법도 바꿀 수 있다. 헌법은 저항권 행사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저항권 자체를 부인하는 것만 아니라면 주권자들은 저항권 행사를 통해 헌법도 바꿀 수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법률이 문구에도 헌법의 틀에도 갇힐 필요가 없다. 새로운 세상을 원한다면 법률과 헌법을 뛰어넘어 상상할 수 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저항권을 우리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42쪽).”

▲ <김어준의 파파이스> 133회에 출연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자신의 신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출처: 한겨례TV 유튜브 화면 캡쳐)

평범한 사람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이 진보정치의 역할

이 전 대표가 강조한 진보정치의 존재가치는 “사람으로서 자존감 회복”이다. “하나의 정책이 각자에게 가져다 줄 경제적 이익의 크기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경제적 이익을 누리며 회복되는 사람으로서 자존감”이라며 “진보정치는 새로운 복지정책을 내놓으면서 돈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만 말했을 뿐, 각자에게 얼마나 큰 자존감의 회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인지 설명하지 못했다(119쪽)”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진보정치가 국민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소홀했던 점은 없었을까. 대한민국 모든 권력의 원천인 ‘주권자’로 보기보다 진보정당에 한 표를 행사해줄 ‘유권자’로 본 것은 아니었을까”라며 “진보정치의 중요 직책을 맡아온 사람들은 많은 국민들에게 이해와 존중의 모습을 보이고 대화하는 것에 게을렀다. 경직된 진보정당, 편협한 진보정치인이라는 인상이 굳어진 데에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데 바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진보의 새로운 대안, 청년과 비정규직

이 전 대표는 진보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주역으로 청년과 비정규직을 꼽았다. “촛불혁명을 경험한 청년들은 이제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현실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이들과 새로운 대지를 개척할 사람들은 진보정치의 주력이었던 기성세대가 아니라 청년들이다(147쪽).”

“기성세대가 오래 묵은 갈등과 불화에 갇혀 진보정치의 연대도 통합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면, 청년들이 선배들의 한계를 넘어 자신들에게 필요한 연대와 통합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몇 십 년 묵은 운동권의 낡은 유물 속에 청년들이 갇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148쪽).”

“1980년대 이후 오랫동안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에 몸담은 사람들은 대부분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성과가 비정규직과 알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퍼져나가리라 생각해 왔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알바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어내는 새로운 길이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 노동운동의 막혀버린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235쪽).”

통합진보당은 해산됐지만 노동자와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염원하는 진보정치의 꿈은 꺾이지 않았다. ‘편협한 진보’와 ‘타협적 진보’라는 양극단의 오명과 함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대중과 소통하려는 진보 정치인들의 꿈도 꺾이지 않았다. 이 전 대표의 ‘대화신청’에 점점 더 많은 대중들이 ‘수락’ 단추를 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