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조윤선 구속하고 문체부 리셋하길

김종선의 문화정책 돌아보기 13 - 김기춘x조윤선과 블랙리스트

2017-01-20     김종선 문화정책기획자

김기춘의 조윤선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 글이 독자를 만날 때 즈음이면 구속되었을 거라 믿고 싶다. 이재용의 불구속이 결정되고, 또 다시 특검의 영장청구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특검은 큰 상처를 받게 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탄핵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도 모른다. 특히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문화체육관광부는 개혁의 가능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문화정책의 표류가 장기화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문화는 그만큼 국민들의 삶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김기춘-조윤선 구속이 문화체육관광부를 '리셋'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화정책에서 몇 가지 원칙을 과거 정부의 사례와 함께 논해보고자 한다.

지난 11일 블랙리스트로 탄압받은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버스'를 타고 세종시를 찾아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이는 창조경제라고 문화정책을 껍데기만 흉내 낸 영국의 문화정책의 모토다. 김대중 정부의 문화정책에서 채택하여 실제 한국 문화정책의 목표가 된 구호다. 그러나 실제 이는 일부만 이뤄졌을 뿐이다. 노무현 정부 중반기부터 강화된 관료 위주의 문화행정이 다시 자리 잡고, 결과적으로 문화정책은 지금의 파행을 맞았다.

그럼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영국문화정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술위원회 제도를 통한 문화행정의 민간 참여이다. 복권사업 등으로 만들어진 재정을 안정적으로 3개 주의 예술위원회에 배당하고 이를 예술가와 국민이 함께 세부 위원회를 만들어 사용하는 구조다. 문화부는 일반적인 관리 업무 중심이어서 실질적으로 정부의 지원은 안정적이되 간섭은 할 수 없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이 김대중 정부에서 실제로 이뤄졌고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인수위원회와 초대 이창동 장관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설계를 진행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이창동 장관을 이은 정동채 장관으로부터 참여정부는 관료 시스템으로 행정의 회귀로가 시작됐다.

김대중 정부의 문화정책의 최고의 사례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영화정책이다. 영화정책은 스크린쿼터 유지나, 영화 관련 재정의 확충, 영화산업을 벤처산업으로 지정 투자 유치를 확대한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다른 것이었다.

일제 때부터 이어 온 국가의 예술 간섭의 극단적 수단인 ‘영화 검열의 폐지’와 민간이 직접 행정력을 갖는 국내 유일의 완전한 민간 행정위원회인 ‘영화진흥위원회 설립’이었다. 검열의 폐지는 가장 상징적인 정부 간섭의 배제다. 이를 김대중 정부는 해냈던 것이다. 이를 의원입법으로 실현시킨 최희준의원은 한국 문화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국회의원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때만하더라도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독자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아예 위원회 개최를 무시하며 위원장과 사무국장 독단으로 기능 자체를 정지시켰다. 영화진흥위원회를 만드는 입법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목적한 중요한 설립 이유는, 정권의 반대편인사가 3명이상 참여하는 구조의 실현이었다. 견제와 감시를 시스템적으로 유지하여 위원회의 건강성이 유지되길 희망했다.

블랙리스트 사태를 두고 보면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의는 영화진흥위원회처럼 장르별 독립성을 가진 예술위원회 구조를 계획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통합 문화예술위원회로 용두사미 꼴이 된 것이 참여정부 때다. 각 장르별로 정부가 입맛에 따라 대표를 뽑아 구성한 것이다. 결국 문화예술위원회는 블랙리스트가 관철되는 구조를 가진 것이다.

이에 비해 영화의 경우는 지금 역시 블랙리스트가 관철되지 않았고, 간접적으로 기업을 통해 투자를 막았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CJ그룹을 압박한 것이 그 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문화정책의 모토가 살아나는 새 정부를 만나고 싶다.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설계할 때 충분히 만들어졌다. 이제 용두사미 꼴이 아닌 실천이 되는 문화국가를 만나고 싶다.

지난 12월31일 광화문광장에 블랙텐트를 세운 뒤 다양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는 단지 돈으로만 계산되지 않는다

문화를 돈으로 생각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사라져야 한다. 사실 문화를 산업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OECD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독 한국만이 그러고 있다. 영화의 예를 들면, 산업적인 구조를 가진 나라는 미국, 한국, 인도뿐이다. 영화로 유명한 프랑스, 이태리, 일본도 산업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인도는 종교적 이유로 영화산업이 자리 잡고 있어 사실상 예외다. 게다가 미국 역시 국방부를 비롯해 국가 지원이 내부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존재하고,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다. 한국영화는 김대중 정부 시절의 질적 성장의 토대 마련과 영화 예술가들과 국민들의 사랑으로 인해 세계 유일의 영화산업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결국 국가의 지원 프로그램의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중반기부터 만들어지는 신자유주의 국가 경제정책은 문화가 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의 카네기홀의 자체 수익이 운영비의 10%대에 지나지 않는데 우리 예술의 전당은 70%를 넘게 수익을 내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지원과 사회 환원이 카네기홀을 지탱하고 있다. 이윤보다 공익이 앞서는 문화사업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문화가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책의 경우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지혜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책이 구매되어야 한다. 책이 널리 읽히기 위해서도 책은 구매되어야 한다. 그 구매의 주체가 바로 정부이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책을 사서 공공도서관을 통해 공급하는 나라, 이런 나라가 문화선진국들이다. 일본이 그렇고 대부분의 선진국가가 그렇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당시 200억에 미치지 못한 공공도서관의 도서구입비 확충을 2,000억으로 공약했고,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했다. 새로운 정부는 책을 널리 공급하는 정부가 되길 희망한다.

문화는 1년에 끝나지 않는다

한국의 예산 구조는 1년 단위로 결과를 내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장기적인 계획이 실시되더라도 1년 단위 단기성과는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심의하는 권한을 예산 담당부처인 경제부처에서 한다. 문화도 국방도 경제부처의 펜 끝에 달려 있다. 국방이 전쟁을 해보기 전에 예산의 효과를 알 수 없고, 교육은 당연히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 느끼면서 문화는 돈으로 인식돼 단기성과를 내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이는 청년예술가들이 지원 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한다. 성과가 있어야만 지원하는 예술지원 프로그램이 결국 성장하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데 인색하게 만든다.

문화도 교육처럼 지속적인 투자의 대상이다. 1년 단위 단기성과 특히 돈 중심의 성과를 내야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헌법 개정이 논의 되고 있다. 헌법에 국민들의 문화권이 명시되길 희망한다. 국가의 역할 중 하나가 국민의 문화권 보장이 되길 바란다.

블랙리스트 vs. 문화국가

국가가 예술가와 창작을 제한하는 재정적 검열인 블랙리스트 사태는 문화국가로서, 문화융성으로 포장된 정부의 추악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나게 했다. 지금 예술가들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김기춘과 조윤선은 박근혜의 지시를 받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실행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의 처벌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김대중 정부에서 최초의 문화진흥정책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노무현 정부 중반까지 밖에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민주정부를 표방하고도 실현은 못 해낸 것이다. 이는 문화정책이 얼마나 치열하게 다뤄져야하는지를 증명한다. 문화정책은 관료행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정책 실현의 새로운 구조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를 예술가와 국민의 손에 맡기는 시민정부를 기대한다. 

광화문광장 블랙텐트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박근혜정부가 퇴진할 때까지 계속된다.

 

 

김종선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위원 보좌관(1996~2004)/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문화정책담당 행정관(2003) / 문화관광부 문화행정 혁신위원회 간사(이창동장관 정책보좌역) / 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