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된 편지 같은 청춘

[예술로 계단 오르기]첫 번째 계단 - 시인 조연희, 詩의 사생활 17

2017-01-10     조연희작가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어쩌면 수술에서 암술에 이르는 길인지도 모른다. 수술에서 암술로 옮겨가기 위해 ‘어떤 꽃은 꽃가루를 바람에 태워 날리거나(풍매화) 곤충을 통해 옮기거나(충매화) 물을 따라 흘려보내기도(수매화)하며, 심지어 사막에서는 벌새(조류)나 박쥐(포유류)가 배달’(어떤 꽃은~배달: <권오길 교수가 들려주는 생물의 섹스 이야기> 중에서 인용) 하기도 한다.

지척의 거리인데 왜 그토록 당도하기 힘든 것일까. 아마 당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곁에 있는 ‘당신’이 사실은 가장 당도하기 어려운 길이며 어쩌면 평생을 돌아가야 하는 험난한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을….

분류학자로 유명한 스웨덴의 린네(Carl Von Linnaeus)는 개화의 모습을 “여덟, 아홉, 열 명의 남성이 한 여성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꼴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라고 탄식하고 있다. 꽃이 활짝 핀 모습을 ‘가운데 한 여인(암술)이 드러누워 있고 둘레에 여러 남자(수술)가 둘러 있는 모습’1)으로 외설스럽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꽃들이 여기저기 생식기를 드러낸 봄날. 바람은 구름과 합방하고 시냇물은 자갈과 합방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합궁의 향내가 꽃내음으로 교정 가득 퍼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어쩌면 암술에서 수술에 이르는 길을, 아니 수술에서 암술에 이르는 가장 먼 여행을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잉여인간

우리 과에 유독 문예반 출신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건 학기가 시작되고도 한참 후였다. 그들은 나름 수상 경력도 화려했다. 이런저런 외부 백일장에서 만난 적이 있거나, 문예반 선후배 사이로 이미 안면이 익어서 그런지 그들만의 선민의식이 있는 듯했다. 나는 그야말로 애송이였다. 백일장에 한 번 나간 적도 없었고 당연히 상을 탄 적도 없었다. 그 유명하다는 ‘학원’ 잡지도 몰랐으니까. 아니 우리 학교에 문예반이라는 게 있기는 했던 걸까. 오로지 입시 위주로 돌아가던 시계바늘.

전기대에서 떨어진 후 나는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했다. 당시 문예창작학과는 3군데밖에 없었다. 전기대는 중앙대, 후기대는 추계예대, 그리고 전문대로 서울예술전문대가 있었다. 나는 학과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에 원서를 냈다. 그런데 실기시험이 문제였다. 모두 주관식이었는데 다소 황당한 서술 문제가 있었다. ‘한 산악인이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분을 묘사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우리 동네 뒷산이라도 떠올려보려 애썼다. 오솔길을 거쳐 산 정상에 오를수록 기압 때문에 키가 작아진 나무들. 바위 그리고 설경이 가득한, 아득한 고지를 떠올려 보았다. 나는 꾹꾹 힘을 주어 적었다. 사내는 바지 지퍼를 내리고 크고 작은 산맥을 향해 오줌을 내갈겼다고. 이 좆같은 세상. 그 추운 에베레스트 산에서도 오줌발은 뜨거웠노라고…. 어쩌면 당시 내 억압을 표출한 것인지도 몰랐다.

다행히 합격이 되긴 했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졸업정원제’ 때문이었다. 52명을 뽑긴 했지만 최종 졸업은 40명만이 할 수 있는 이상한 제도였다. 입구는 넓고 출구는 좁다고나 할까. 어쩐지 난 내가 탈락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들이야 말로 캠퍼스의 주인 같았고 난 하얀 쌀밥에 어쩌다 잘못 끼어든 보리알 같았다.

그들의 눈부신 문장들은 그대로 시가 되었고 소설이 되었다. “삶이여! 발달도 아니고 발전도 아니고 이것은 분노다!” 라는 시인 이상의 절규가,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김수영의 시가 그들 입에서는 너무도 착착 감기며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나는 실어증에 걸린 듯 한마디도 못하고 어느 대화에도 끼어들지 못한 채 잉여인간처럼 캠퍼스와 문학의 변방을 떠돌았다.

곰팡이꽃

공강일 때면 나는 종종 휴게실에 앉아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거나 쇼파에 등을 기댄 채 조각잠을 자기도 했다. 그날도 나는 구석에 앉아 잠시 졸음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한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소설이 산이라면 시는 그 산 속에 숨어 있는 보석 같아…. 소설이 산 전체를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그 안의 보석까지 보여주는 것이라면, 시는 보석만을 꺼내 보여주면서 산 전체를 얘기하는 거지.”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주의를 끄는 힘이 있었다.

“어제 곰팡이에 대한 시를 쓰다 문득 죽은 사체에서 주로 번식하는 곰팡이가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차가운 시신 앞에서 비로소 고백을 하는… 죽은 사체와 연애를 하는 네크로필리아 같기도 하고… 죽은 후에야 제 차지가 되는 사랑. 그렇게 극단적인 짝사랑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슬픈 무성생식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아, 곰팡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은. 유난히 키가 큰 그는 어디에서든 눈에 잘 띄었다. 그가 농구를 할 때도, 드리블을 할 때도, 교정 한 쪽에서 술을 마실 때도 난 허망한 시선으로 그를 쫓았다. 그를 중심으로 자전하는 지구처럼 늘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는 점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부옇게 밝아오는 새벽안개를 바라볼 때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서… 너무 보잘 것 없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남루한 내 모습이 초라해서, 신열로 입술이 바짝 마른 내 청춘이 너무 건조해서….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비스듬하게 비춰오는 햇살 속에서 벽을 타고 오르는 곰팡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벽 한쪽을 기어오르고 있는 곰팡이는 때론 덩굴식물처럼 때론 꽃대궁처럼 줄기를 휘감으며 활짝 피어 있었다. 이제껏 본 곰팡이와는 사뭇 달랐다. 어느 유기체보다 아름다웠으며 어느 꽃보다 슬펐다. 세상은 온통 절벽인데, 저 혼자 사랑하고, 저 혼자 애기 낳고…. 죽은 줄도 모르고 저 혼자 꽃 피고…. 바보 같이… 제가 꽃인 줄만 알고…. 바보 같이….

꽃이라고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어서
꽃 피지 마라.
별도 없는 이 밤, 제발 꽃 피지 마라.
동절기, 기어이 꽃 피었네.
그렇게 눈물로 피는 꽃도 있어
가장 외로운 지점에서 어떤 개화는 시작된다.

한 번도 꽃 핀 적 없는 나는
한 번도 열매 맺은 적 없는 너는

슬픔이 포자가 되어
오늘도 무성생식을 꿈꾼다.
나 혼자 발효하고
너 혼자 착생하고

이 세상 가장 먼 길은
암술에서 수술에 이르는 길이어서
바람벽 가득 검은 곰팡이꽃
나는 당신이 꽃 핀 줄도 모르고
당신은 내가 열매 맺은 줄도 모르고.

                                   -졸시 ‘곰팡이꽃’ 전문

 

반송된 편지

나는 기어이 ‘그’에게 편지를 쓰고 말았다. 그녀로 시작되는 3인칭 편지였다. 그도 가끔씩 양 볼이 뻐근해지면서 입 안에 피 냄새가 고이는지…. 글을 쓸 때 늑골이 아픈지…. 그리고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그녀의 불안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에게 전해 줄 게 있노라고…. 몇 날 몇 시에 모 카페에서 만나자고….

며칠 후 휴게실에서 마주친 그는 허겁지겁 편지 한 통을 내게 쥐어주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그로 시작되는 답장이었다. 그는 되지도 않는 시를 주무르다 만년필만 바꿔버렸다고. 그러다 그녀의 편지를 받았다고…. 톱니바퀴가 엇갈리고 있군. 그는 그날 나갈 수 없노라고…. 조금은 긴 답장이었다.

나는 그가 왜 나올 수 없는지 물어보지도 않은 채 답장을 태웠다. 며칠 밤을 고심하며 쓴 편지는 순식간에 화르륵 타올랐다. 나는 한 줌도 안 되는 까만 재를 일부러 까만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그에게 부고장처럼 반송했다. 하지만 그날 밤 잠을 통 이룰 수 없었다. 이건 아냐. 너무 유치해. 나는 밤새 뒤척이다 어스름 새벽빛이 밝아오자마자 우체통을 향해 달렸다. 그 부끄러운 새벽에도 공기는 청량하고 꽃은 향기로웠다. 순간 먼동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우체통 옆에 한 통의 반송된 편지처럼 쭈그리고 앉았다. 하늘이 점차 밝아지며 숨이 잦아들자 그제야 집배원이 도착했고 나는 열린 우체통을 헤집어 그 까만 편지봉투를 꺼냈다. 하얀 봉투 더미 속에서 까만 봉투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침 햇빛이 붉은 우체통 위에 비스듬히 내리고 있었다. 마치 노인의 강마른 다리에서 떨어져 내린 마른 비듬처럼 불투명하고도 메마른 햇빛이었다.

그게 사랑일까. 사랑이었을까. 오랫동안 반닫이 밑의 먼지처럼 뭉쳐 있다 세상에 나온 그 감정을 사랑이라 불러도 좋을까.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내게 청춘이란 수취인 불명의 편지나 오작동이 심한 비상벨 같은 것이었다. 난 그렇게 연애편지도 아니고 구애편지도 아닌 모호한 편지를 딱지 맞으며 북아현동 우울한 골짜기에서 아주 먼 여행을 시작했다.

 

 

조연희 시인은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산맥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영상기획 및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빅시스템즈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