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회고음악회 1

북한, 예술로 읽다(14)

2016-12-14     이철주 편집기획위원
북측이 김정은 시대로 진입한 지 5년이 흘렀습니다. 집권 초기 일각에서 우려도 있었지만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을 중심으로 체제가 안정기에 들러 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최근 통일인문학계 차원에서도 지난 5년간의 문화정책과 문예활동을 분석하면서, 주체미학과 음악정치를 승계한 것이 뚜렷해 보인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칼럼에서는 북한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3회 걸쳐 ‘김정은식 음악정치’의 현황과 ‘수령제’ 승계 과정에서의 문화예술의 활용에 대해서 주요 공연과 작품을 통해 정리하고자 합니다. (작자 주)

 

▲ 피아노2중주 <조선아 너를 빛내리>, 국립교향악단(김일진 지휘), 피아노 협연 황민호, 량영(이미지 출처 유튜브 켑처)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새로운 공연무대가 마련이 됐다. 사후 1주년이 되는 2012년부터 매년 12월17일에 개최되는 공식 추모음악회인 ‘김정일동지 서거 회고음악회’가 그것이다.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후 3년간의 추모 기간을 가진 뒤 1997년 김정일 위원장이 공식 승계를 이은 것에 반해,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은 3년 상을 치르지 않고,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의를 통해 연내 모든 권력 승계를 완료했다. 그래서 ‘회고음악회’는 대를 이은 ‘수령제’의 승계를 상징하는 고도의 정치적 함의가 있는 행사이다.

북측에서 2012년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강성대국 건설의 포문을 여는 해이자, 새로운 지도자가 ‘사회주의 문명강국’의 원년으로 선포한 해이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정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유훈 승계를 시작으로 온 사회를 혁명적이며 역동적인 분위기로 이끌며, 새로운 통치 이념의 제시와 더불어 새로운 문화지향을 구체화시켰다. “회고음악회”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북측은 2012년에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2012년을 강성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라는 제목의 신년 공동사설을 발표, “김일성 조선의 새로운 100년대가 시작되는 장엄한 대진군의 해”로 선언했다. 2012년 4월에 진행된 제4차 당대표자회의에서는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명시하여 이를 당의 최고 강령으로 세우고, ‘김정일 애국주의’를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창작 주제로 설정했다. 즉, 사회주의 문명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의 애국 애민의 의지를 본받아 ‘우리식’의 문예창작을 주문한 것이다.

2012년에 열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서거 1돐 회고음악회”는 최고 권위의 음악단체인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주최로 인민극장에서 개최됐다. 노동신문에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서거 1돐을 맞는 온 나라에 민족의 어버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뜨겁게 굽이쳤다” 라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관현악서곡 <김정일동지께 드리는 노래>를 시작으로 <발걸음> <말하라 선군길아> 등 관현악 연주곡 3곡,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 바이올린 협주 1곡, <매혹과 흠모> 여성독창 1곡, <그이의 한생> <장군님은 태양으로 영생하신다> <인민이 사랑하는 우리 령도자> <불타는 소원> 합창과 관현악 4곡으로 총 10곡의 연목이 선보였다. 곡의 주제는 김정일 위원장 관련 작품이 6곡, 김정은 위원장 관련 작품이 4곡으로 구성이 됐고, 마지막은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충성과 맹세로 끝난다.

2013년은 “김일성-김정일 조선의 새로운 100년대의 진군길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거창한 창조와 변혁의 해”로, 장성택을 숙청한 ‘반당반혁명종파사건’이 있었으며, ‘은하수관현악단’이 물의를 일으켜 해체가 된 해이기도 하다. 이 해부터 “회고음악회”에 부제가 붙어, “어버이장군님 서거 2돐 회고음악회 《장군님은 태양으로 영생하신다》”가 국립교향악단의 연주로 모란봉극장에서 열렸다. 당 고위 간부들과 해외 초청자들이 참석했고, 공연구성은 작년 음악회와 유사하게 진행됐다.

관현악 연주 중심으로 교향조곡 <조선아 너를 빛내리>, 교향시 <그리움은 끝이 없네>, 관현악 <조국 찬가> <발걸음>, 피아노협주곡 <김정일동지께 드리는 노래> 등 5곡이 연주곡으로, 여성독창 <매혹과 흠모>와 <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 <장군님은 태양으로> <김정일장군의 노래> 합창으로 4곡이 성악으로 구성됐다. 김정일 위원장을 주제로 한 작품이 6곡,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을 주제로 한 작품이 3곡으로 전체 9곡이 실연됐다. 공연의 서사적 흐름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그리움과 흠모의 분위기 속에서도 ‘발걸음’으로 승계되는 현재를 상기시키고 있다.

2014년의 신년사에서는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비약의 불 바람을 세차게 일으켜 선군조선의 번영기를 열어나갈 장엄한 투쟁의 해, 위대한 변혁의 해”로 규정하고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과 당 국가체제로의 복귀를 선언하며,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만경대와 백두의 혈통을 잇는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 등 백두정신을 강조하는 구호가 등장해 혁명투쟁정신이 강조됐다.

▲ <매혹과 흠모> 바이올린 선우향희, 모란봉악단 연주 (이미지 출처 유튜브 켑처)

인민극장에서 진행된 2014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서거 3돐 회고음악회”는 《위대한 한 생》이란 타이틀로 만수대예술단(김일진 지휘)이 주관을 했다. 앞서와 달리 엄숙함과 경건함보다는 다채로운 연출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기억과 감동을 공유할 수 있게 구성, 관객들이 데자뷔(deja vu)를 경험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만수대예술단이 종합공연에 익숙한 단체여서 그렇겠지만, 유사한 주제의 곡들로 엮은 북한식 메들리인 노래연곡 <인민사랑의 노래>와 <철령의 메아리>가 선보였고, 전체적으로는 극적 구성으로 짜여졌다. 설화자(MC)로 등장하는 인물과 설화에는 김정일의 현지지도사업과 관계가 된 개인적 사연을 가지고 있는 <설화; 구봉령일가 이야기>의 김성녀와 손녀, 과학기술의 발전을 상징하는 <설화; 나는 생각해>의 공훈과학자 후보원사 박사 류순렬이 출연했다.

<설화; 12월의 눈이여>와 <설화; 인민의 한마음>은 시낭송을 통해 추도와 신념의 맹세를 다짐한다. 마지막에는 합창 <그이없인 못살아>와 <인민은 일편단심>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첼로3중주를 위한 무용과 방창 <매혹과 흠모>, 가야금2중주 <비날론 삼천리>을 제외하면 모두 가사가 있는 노래와 합창으로 구성하여, 스토리텔링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시대를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은 당 창건 70주년을 맞는 해로, “모두 다 백두의 혁명 정신으로 최후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총공격전에 떨쳐나서자”는 구호 아래 유일영도체계 강화를 위해 역시나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을 바탕으로 한 투쟁을 주문하고 있다. 예술부문에 있어서도 ‘대중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 많은 명작’을 창작할 것을 요구한다.

2015년은 다시 국립교향악단의 주도로, 동평양대극장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서거 4돐 회고음악회⟪인민의 그리움⟫”이 열렸다. 노동신문은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잊을수 없는 뜨거운 어버이정을 간직하고 수령의 유훈관철전, 숭고한 도덕의리의 4년 세월을 보낸 우리 군대와 인민의 순결한 충정의 세계가 펼쳐놓은 회고음악회장은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경건한 추억과 다함없는 경모심에 휩싸여있었다”라며 “김정일 동지의 성스러운 한생이 어린 주체의 붉은기를 더 높이 추켜들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따라 백두산대국의 찬란한 전성기를 열어나갈 우리 군대와 인민의 억척불면의 신념을 감명깊게 부어주었다”라고 공연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연주구성은 2012년과 2013년과 같이 교향시 <그리움은 끝이 없네>, 교향조곡 <조선아 너를 빛내리>, 관현악곡 <우리 장군님 제일이야>와 <장군님 생각>, 관현악연곡 <운명도 미래도 맡긴분>, 피아노 협주곡 <김정일동지께 드리는 노래> 구성의 연주곡 6곡과 남성3중창 <아 그리워>와 혼성5중창 <선군의 나의 조국아>, 여성합창 <인민사랑의 노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합창 <장군님은 태양으로 영생하신다> 등 노래곡 4곡이다. 전체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을 계승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선군혁명위업을 드러내고 있다.

▲ 전기기타와 색스폰중주,<통일아리랑>, 은하수관현악단

    (이미지 출처 유튜브 켑처)

회고음악회의 정치적 함의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곡은 <장군님은 태양으로 영생하신다>이다. <장군님은 태양으로 영생하신다>는 2012년 창작된 김정일 위원장의 업적을 찬양한 송가이다. 2012년 2월에 공개된 이 곡은 김정일 위원장 사후 첫 번째로 창작된 기념비적 송가로 대표적인 추모와 애도의 곡으로 알려졌다. 2012년부터 2015년 회고음악회까지 매년 유일하게 반복 공연되고 있으며, 공연의 부제로까지 채택이 되어 그 위상을 짐작케 한다.

이 작품을 영생축원의 기념비적 송가로 평가하는 이유는 “김정일 위원장의 조국과 인민에 대한 위대한 사랑과 업적을 깊은 의미와 함께 세련된 시적언어로 형상하여 진실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일성민족-김정일조선’으로 새로운 100년대가 시작되는 2012년에 선언한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의 실천지침인 ‘김정일 애국주의’가 반영된 대표적 작품인 것이다.

“옷은 누구나 입혀줄 수 있어도 존엄은 누구나 지켜줄 수 없다.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을 순간도 제국주의의 발밑에 신음하게 할 수 없다는 백두령장의 철의 신념과 의지가 낳은 선군의 위력은 우리 장군님의 업적중의 가장 큰 업적, 유산중의 가장 큰 혁명유산이 된다”라고 말하고 있는 이 곡에서는, 경제적 문제보다 자존심을 우선 순위에 둠으로서 그간의 통치 이념을 고수해나갈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일 애국주의’의 창작열풍 아래 창작된 이곡의 선율은 결의로 넘쳐나는 4/4박자의 행진곡풍에 기초하여, “천만군민의 절절한 지향의 감정과 김정일 위원장의 위인적 풍모를 장중한 음악적 정서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것은 한없는 경모와 칭송으로 그리움의 정서,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융합하여 선군태양을 우러러 모시는 기념비적 송가로서의 양상적 특색을 성공적으로 살려내고 있다”라고 평해진다. 선율의 조성도 내림 바장조를 사용해서 낮은 조성이 가진 부드럽고 풍만한 색채와 깊이를 연출하고 있으며 고상하고 엄숙한 정서가 특징적이다. 그리고 세대와 세대를 거쳐 선군태양으로 영생하는 김정일 위원장과 번영하는 조국의 미래를 앞당기는 김정은 위원장의 수령영도체계의 계승을 강조하며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할 것을 노래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 주석의 사망 이후 주체사상의 하위 담론으로 군대를 앞세우는 선군사상을 내세웠다.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은 대북제제와 불안한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대체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주창하고, 이의 실천적 담론으로 ‘숭고한 애국주의’이자 ‘사회주의적 애국주의의 최고정화’로 정의된 ‘김정일 애국주의’를 설파하고 있다. 숭고한 조국관, 인민관, 후대관으로 구성된 ‘김정일 애국주의’가 투영된 새시대 문화정책의 모범이 바로 ‘회고음악회’인 것이다.

기억은 역사의 형이상학이 남기고 간 존재론적 공허를 미학적 풍요로 채우며, 과거의 체험은 거창한 의미 대신 풍요한 형식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렇듯 김정일 위원장을 애도하고 추모하기 위해 시작된 ‘회고음악회’는 북한사회 내 기억을 재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형성된 집단기억에서 “김정은식 음악정치”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 <매혹과 흠모> 바이올린 선우향희, 모란봉악단 연주

https://www.youtube.com/watch?v=kYSp3A124AA

 

* 전기기타와 색스폰중주,<통일아리랑>, 은하수관현악단

https://www.youtube.com/watch?v=wVqMiyjTS5g

 

* 피아노2중주 <조선아 너를 빛내리>,

국립교향악단(김일진 지휘), 피아노 협연 황민호, 량영

https://www.youtube.com/watch?v=tv2DD5G3g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