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텐트쳤다 - 이스라엘 텐트농성'11

텐트 시위에 비춰 본 한국과 이스라엘 사회의 평행

2016-11-12     이명주 기자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광장에 ‘광화문 텐트촌’이 들어섰다. 일명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이 지난 5일 텐트를 치고 ‘광화문 캠핑촌’을 만들었다. ‘입주자’가 처음보다 늘어 11일 오후엔 43동의 텐트가 줄지어 있다. 12일 아침부터 13일까지 '박근혜 퇴진 외치는 1박2일 캠프'를 열어 주말에는 입주자 수가 더 늘어날 예정이다.

늦가을과 초겨울을 넘나드는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견디며 예술인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캠핑 중이다. 그리 멀지 않은 북한산 자락에 청와대도 선명하게 보인다. 이곳은 올해 여름 유난했던 찜통더위 속에서도 시민들이 정부의 세월호특조위 강제폐쇄에 반대하며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특조위와 함께 66일 동안 릴레이 동조단식을 이어간 바로 그 자리이기도 하다.

예술인들은 이날 텐트촌에서 ‘블랙리스트 예술인’이란 호칭이 부끄럽지 않게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7일째 농성을 이어갔다. 그림, 서예, 노래, 춤 등 시민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개인이 직접 가져 온 텐트도 이곳에선 각자의 생각을 표출하는 하나의 예술품이 됐다. 텐트 앞에는 ‘아무개의 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거나 하야 촉구 등 시국을 한탄하는 문장이 적혀 있다. “수첩인 줄 알았더니 알림장이었네”라며 박 대통령의 무능과 측근 최순실씨의 국정개입을 빗대는 문구도 눈에 띈다. 분위기는 흥겹다.

앞서 지난 10월12일엔 청와대가 문화·예술계 인사 9,473명의 명단이 담긴 '블랙리스트'를 문화체육관광부에 내려보냈다는 증언과 자료가 공개돼 파장이 일었다.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은 ‘정부 세월호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했거나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인물 등으로 현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밝혀졌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현 정부가 억압했다는 명백한 증거다. 예술인들은 빼앗긴 자유와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 중이다.

현재 텐트촌 입주자는 문화·예술인뿐만 아니라 해고 노동자, 종교 지도자, 활동가 등 직업과 연령대가 다양하지만 모두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국민 주권을 유린하고 불통과 무책임의 아이콘이 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2011년 텔아비브 럭셔리 거리를 뒤덮은 텐트촌(tent city) 

멀쩡한 집 놔두고 거리에서 텐트 시위를 벌인 사례는 외국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2011년 봄 스페인의 '분노하라(Indignados/15-M)' 시위나 같은 해 가을 미국에서 일어난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가 대표적이다. 한국에는 덜 알려졌지만 2011년 여름, 이스라엘 사회에 경종을 울린 텔아비브 텐트 농성을 살펴보자. 

2011년 여름 로스차일드 대로와 주변 거리에 늘어선 텐트들. [이미지 : 유튜브 화면 갈무리]

2011년 한여름 이스라엘 3대 도시 중 하나인 텔아비브에서 대규모의 텐트 농성이 시작됐다.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전에 이스라엘의 시위는 이스라엘의 대(對)팔레스타인 탄압정책을 규탄하는 행동에 집중됐던 경향이 있었다면, 2011년 시위는 온전히 경제·사회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조직화된 노조가 지휘봉을 잡은 것도 아니고, 대부분 중산층에 속한 일반 시민이 중심에 서 사회정의 문제를 호소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로스차일드 대로에 첫번째 텐트를 치며 '텐트 농성'을 시작한 다프니 리프. [이미지 :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스라엘 텐트 농성은 당시 25살 영화학도 다프니 리프(Daphni Leef)가 텔아비브 시내 명품가게가 즐비한 로스차일드 대로에 1인 텐트를 치며 시작됐다. 리프는 치솟는 주거비용에 반대했다. 그는 “비싼 월세 탓에 집을 찾을 수가 없다”는 좌절감을 7월17일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유한 뒤 거리에 텐트를 친 것이다.

주거비용 상승 및 물가상승에 불만이 쌓여가던 시민들, 그리고 이스라엘 사회 깊숙이 뿌리 내린 구조적 불평등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시민들이 리프를 지지하고 나섰다. 2, 3일 뒤엔 텐트가 수백 개로 늘고, 또 수천 개로 늘어나 로스차일드 대로를 비롯한 텔아비브 시내를 메웠다. 시민들은 소파나 테이블을 가지고 나와 대화를 나누는 등 자체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했다. 텐트촌의 분위기는 유쾌했다. 이러한 시민행동은 자칭 중도우파를 지향하는 네타냐후 정부를 적잖게 당황시켰다.

텔아비브 시내 텐트촌 흥겨운 풍경. [이미지 :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팔 분쟁에 시선 뺏긴 사이 '1%'를 위한 사회로 변질됐다

건국 뒤 수십 년간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신자유주의 물결에 편승하며 급격한 민영화와 규제완화가 시행됐다. 텐트 시위가 일어난 당시 이스라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5번째로 소득의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결과(2010년도 조사)가 나올 정도로 빈부격차가 커졌다.

시민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시선이 집중되고 정치적 의견이 분열된 틈을 타 민주적 토론과 절차 없이 정치세력과 결탁한 ‘1%’가 이스라엘 경제 구조를 변질시켰다며 질타했다. 시민들은 주거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양극화 문제, 사회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라는 요구의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의료 서비스 증대, 복지 예산 확대, 법인세·증여세·금융소득세 인상, 재벌개혁, 국방예산 절감 등을 촉구했다.

2011년 이스라엘 텐트 농성과 거리행진은 사회 정의를 촉구하는 시민항쟁이었다. [이미지 : 유튜브 화면 갈무리]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위원회를 신설하고,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집 5만 채를 짓겠다는 등의 시도를 했으나 시민들이 듣기엔 턱없이 부족한 대안이었다. 분노한 시민들은 “우리는 시혜가 아닌 사회정의를 원한다”고 외쳤다.

여름 동안 텐트 시위와 가두행진은 계속됐다. 15만 명의 시 공무원들이 시위에 동조하며 하루 총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티에프를 구성해 월세를 낮출 방안을 찾도록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스라엘 의회가 여전히 부자에게 유리한 주거법안을 통과시켰다'라며 더욱 분노했다. 정부의 문제 해결 의지가 부족해 보이자 그해 9월3일에는 50만 인파가 이스라엘 주요도시 거리로 쏟아져 나와 행진했다. 이는 이스라엘 성인 인구 10%에 육박하는 숫자(이스라엘 전체 인구 약 850만)로 이스라엘 건국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시위로 기록됐다.

텔아비브 텐트 농성과 이스라엘 전역에서 일어난 거리행진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참가자들의 다양성이다. 중산층과 유대교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세속주의 젊은 층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지지를 받았고, 보수·진보, 좌·우 진영을 망라한 시민들이 참여했다. 딱 하나로 수렴되는 이슈는 아니더라도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이들이 ‘99%를 위한 사회’를 새로 쓰고자 하는 목소리가 확대되는 시간이었다. 로스차일드 대로의 텐트들은 한여름 농성을 마치고 그해 10월3일 철수했다.

2011년 이스라엘 텐트 농성의 성과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 이스라엘에서 소득불평등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2016년 OECD 통계 상, 사회 구성원이 불평등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 등의 주관적 가치판단을 반영하는 앳킨슨 지수를 이용해 소득불평등을 측정한 결과 이스라엘은 1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한국은 4위다).

어딘가 닮은 한국과 이스라엘 사회

한국 사회와 이스라엘 사회는 몇 가지 주요 측면에서 비슷한 정치 지형을 갖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듯 (건국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이스라엘 또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영토 삼아 건국이 선포된 해가 1948년이다. 두 나라 모두 미국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빼 놓을 수 없는 닮은 점이다.

또 하나 핵심 유사점으론 한국 정치에 ‘북핵 위협’ 및 ‘종북몰이’ 카드가 있다면 이스라엘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카드가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 남북통일이라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듯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과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지- 즉 팔레스타인 흡수냐, 혹은 두 개의 주권국(두 국가 해결론)으로 공존할 것이냐-는 이슈를 안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회뿐만 아니라 중동과 전 세계가 갑론을박하는 중대하고 민감한 정치·외교 사안이기도 하다.

텐트 시위의 ‘상징’이 된 다프니 리프는 텐트 농성의 가장 큰 의의를 “시민이 주체가 돼 시민의 역량을 일깨운 데 있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그동안 특수한 대내외적 상황- 즉 팔레스타인 및 주변 아랍국과 분쟁으로 인한 국가 안보 위기-을 사회 결집의 주요 동력으로 이용해 왔다. 이런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할 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키워 정부와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는 정책에 반대하고, 실질적 변화를 촉구한 것이야 말로 거대한 성과라는 평가를 다프니 리프는 내린 것이다. 

다시 2016년 11월 한국으로 돌아오면, 지난 5일 20만 시민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 거리를 가득 메워 무책임과 부정부패로 점철된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외치며 촛불의 바다를 만들었다. 11월12일, 더 많은 시민이 모인다. 그 중 일부는 광화문 캠핑촌에 텐트를 치고 '캠핑 농성'에 동참할 예정이다. 분노에 희망을 더해 함께,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