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의 유쾌한 반란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예술검열 반대 예술행동 및 기자회견 가져

2016-10-18     권미강 기자

정부가 잘못 건드렸다. 잘 노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부의 문화예술인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손발을 묶는 블랙리스트 파문에 대해 제대로 따졌다. 춤, 연극, 음악, 미술, 문학, 사진, 풍물, 만화 등등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이 광화문 세월호광장에 모여 예술로 행동했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백설공주로 풍자했던 작가 이하씨의 정치인 팝아트 작품으로 만든 현수막을 몸에 두르고 예술마저 자신들의 발아래에 두려는 현 정부와 정치권을 조롱했다.

민족춤협회 회원들과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민예총)회원들은 예술검열에 맞선 춤사위와 현 정치권을 풍자하는 소리를 절묘하게 결합한 즉석공연을 펼치고 1인극 넋전춤 연희자인 양혜경씨는 블랙리스트를 나타내는 긴 종이천을 하늘에 날리며 검은 색이 가지는 ‘수기운’ 즉 물의 기운으로 검열의 칼날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담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18일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에서 주최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예술검열 반대 예술행동 및 기자회견’에는 블랙리스트 오른 예술인 100여명이 참석해 각자의 방법으로 예술행동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정부에 항의했다.

임옥상 화가는 블랙리스트를 풍자하기 위해 온 몸을 덮은 검은 옷을 입고 뒤에는 최근 SNS에 태그달기운동으로 번지고 있는 ‘#그런데 최순실은’ 문구를 쓴 채 “나는 블랙리스트다”를 외치며 이순신동상을 배경 삼아 퍼포먼스를 펼쳤다.

▲ 화가 임옥상씨의 퍼포먼스

한국작가회의 소속 40여명의 작가들도 참여했는데, 최동호시인은 “우리가 오늘 서서 말하는 것은 글과 마찬가지다. 오늘 행동은 몸으로 쓰는 글이다. 예술이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는 이런 나라는 없다”며 작가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블랙리스트공화국 박근혜정권은 물러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설가 이시백 작가는 “작가는 대한민국호라고 하는 잠수함의 밑바닥에서 산소가 모자랄 때 미리 알려주는 토끼와 같고, 한 집으로 치자면 연탄가스가 새었을 때 울리는 가스경보기와 같은 존재인데 단잠을 깨운다고 가스경보기의 입을 막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냐”며 답답한 현실을 개탄했다.

아울러 수필가이기도 한 박근혜대통령을 지칭하면서 “문학이 귓가에 달콤한 말만 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의 올바른 책무는 우리 사회에 닥쳐올 위기에 대해 예민한 더듬이로 알려주는 것이다”라며 국민에게는 정당한 문화향유권을 침해하고 작가들에게는 다양성과 자유로운 창작의지를 블랙리스크라고 하는 인위적인 테두리에 가두는 짓은 문화발전을 훼손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한국민예총 장순향 부이사장의 승무

만화가 박재동씨는 “만화계도 이번 블랙리스트에 분노하고 있다”며 많은 만화가들이 “왜 자신은 블랙리스트에 들어있지 않냐”고 항의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며 세월호 단식에도 참여한 만화가들이 많은데 이들은 이번 블랙리스트 파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문화활동의 보장을 받는 사회로 가고 있는 중에 발목을 잡아서 20년 후로 후퇴한 이 정권은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없는 정부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날 검은 흑장삼을 입고 승무를 춘 장순향 민예총 이사는 ”이념과 정치를 좇는 예술가들은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쓴 조선일보 사설을 비난하며 예술가의 예술행동을 통해 예술저항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박명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사퇴와 박근혜대통령 탄핵을 위해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양한 예술행동이 광화문광장 곳곳에서 펼쳐진 후에는 송경동시인의 사회로 기자회견이 진행됐는데, ‘이게 나라입니까“라는 말로 시작한 송시인은 300명 넘는 사람들과 아이들을 수장시키고 조사를 방해하고 공권력으로 살인폭력을 휘두르고 노동법 개악과 사드배치를 통해 동아시아 긴장을 높이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한반도 긴장 시나리오를 쓰는 후안무치한 정권이 이번에는 1만여 명에 대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공작정치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날 노구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참석한 백기완선생은 “블랙리스트는 우리말로 하면 학살예비자명단이다. 이런 것은 히틀러와 일본제국주의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서 했던 거다”라며 박근혜대통령은 선거공약도 위반했으니 물러나야 한다고 성토했다.

▲백기완선생은 이번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학살예비자 명단이라며 정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각계 문화예술인들을 대표한 예술인들의 성토 발언이 있은 후에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라는 선언문을 통해 ‘최순실, 우병우, 차은택 등으로 악취가 나는 추문과 미르재단, K재단 등으로 얼룩진 논란 등 권력형 비리와 추태 행보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발목을 비틀어왔다며 이번 블랙리스트를 과거 군사정권 시절 문화예술계 탄압과 본질이 같은 사건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이번 탄압을 현장에서 몸소 겪은 문화예술인들은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행동을 멈추지 않고 블랙리스트 작성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청문회 시행과 문화예술위원장 사퇴, 블랙리스트 작성, 운용자 처벌을 촉구했다.

음악인 손병휘씨는 과거의 보도연맹사건을 거론하며 이번 블랙리스트가 엄청난 비극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진시황의 분서갱유, 나치 히틀러시대 예술가들, 국책영화, 연극 등 당시 정부와 결탁한 예술은 사라졌지만 저항했던 예술들은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을 주시했다.

사회를 맡은 송시인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이번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검열 유형을 이야기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시국적 사건을 다루는 문화적 표현물, 박근혜정권의 맘에 안 드는 야당 정치인이나 인사들에 대한 지지나 시국선언 했던 예술인, 박정희정권에 풍자를 한 예술인 등을 꼽으며 이는 박근혜정권의 전제군주적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예술행동위원회는 앞으로 ‘SNS 등을 통해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박근혜 정부 퇴진하라'는 한줄선언운동과 칼럼·기획기사 등 규탄 릴레이 기고, 예술검열 반대 2차 만민공동회 결성,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을 시상하는 블랙어워드 마련, 포럼 또는 아카이브 진행’ 등을 통해 예술행동을 지속적으로 펼쳐갈 계획을 밝혔다. 이들의 유쾌한 반란, 그 귀추가 주목된다. 

▲ 사진 강호석기자
▲ 사진 강호석기자
▲ 사진 강호석기자
▲ 사진 강호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