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블랙리스트'는 검열의 부활

예술가의 사회참여는 고유의 책무, 정부가 헌법 어긴 것

2016-10-14     김종선

20대 국회 교문위 국감에서 제기된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문화예술계가 뜨겁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에 의해 폭로된 9천473명의 문화예술계 명단은 정부에 반하는 예술계에 대해 정치적 검열을 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확인시켜줬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가 없다고 일축했지만 명단에 오른 예술인들이 그간 창작지원기금이나 사업 등에서 배제되어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이에 ‘문화예술계’ 마저 재갈을 물리려는 정부의 예술검열에 대해 문화예술인 김종선씨가 보내온 기고문을 싣는다. (편집자)  

예술가 블랙 리스트는 최악의 검열이다

▲ 연극계의 검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세월호참사 연극으로부터 촉발된 연극계의 검열각하 권리장전. 그중 연극 '이반검열' 포스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가 블랙리스트가 실체로 확인됐다. 예술계에선 지난해부터 ‘블랙리스트’의 존재에 대한 소문들이 돌았었다. 지난해 연극연출가 박근형씨가 극립국악원 공연에서 하차하게 된 이유가 2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한 연극 ‘개구리’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예진흥기금 희곡 분야 심사에서 1위를 한 이윤택의 희곡 '꽃을 바치는 시간'이 선정작에서 제외됐고, 박근형 작가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역시 지원금을 포기해야 했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사업 심사에서 선정 제외 리스트가 있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거론됐다. 또한 이는 단지 문화예술위원회만의 문제가 아닌,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기관 중 기금 등의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기관 전체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영화진흥위원회, 한국관광공사, 국민체육진흥공단 등도 블랙리스트의 존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음악, 만화, 애니메이션, 방송 프로그램 등의 지원 사업에도 역시 이러한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배제가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이다. 이번에 공개된 리스트에 영화, 대중음악 등의 예술가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는 블랙리스트는 최악의 검열이다. 과거 검열은 공연윤리위원회나 간행물윤리위원회 등을 통해 내용을 삭제하거나 예술작품의 공개 자체를 막았었다. 블랙리스트는 이보다 더 악랄한 검열제도의 불법적 시행이다.

아예 예술가의 작품 전체에 대해 지원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자본을 이용한 정치검열’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적인 절차에 따른 지원 사업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정당성의 외피를 쓰고 예술가들의 ‘정부에 반하는 사회적 활동’자체를 못하게 막는 ‘자본을 이용한 예술가 길들이기’이다. 참으로 나쁜 정부다. 박정희나 전두환의 군사독재시대를 넘어 일제 식민지로 되돌아 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헌법을 어겼다

▲ 유명배우 김혜수씨와 송강호씨는 세월호참사에 대한 진실규명 피켓을 들었다가 이번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

아름다움만을 예술가에게 강요하는 야만의 시대가 되살아 왔다. 지배 권력에 대한 복종과 거짓된 희망의 창작을 강요하고 있다. 예술은 삶과 사회의 반영이다. 예술은 창의를 통한 사회적 가치의 창출인 것이다. 끊임없는 의문을 던지고 사회를 치열하게 사는 것이 예술가의 본분이다. 이것이 아름다움의 극단적 추구의 형태로 나타나든, 사회적 참여의 반영 형태로 나타나든, 예술은 인간의 삶과 사회를 고민하고 치열하게 창작되는 것이다. 헌법에 규정된 사상의 자유 보장은 예술의 근원적 존재이유에서 온 것이다. 정부는 헌법을 어겼다.

세월호는 기억되고 안전은 지켜져야 했다. 예술가들은 세월호의 기억에 동참하고 아픔에 함께 해야 했다. 정부의 잘못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예술가에 대한 낙인이 되어버린 사회는 이미 침몰하고 있는 것이다. 치졸한 정부다. ‘문재인 지지자’, ‘박원순 지지자’를 리스트에 포함하는 것은 치졸한 복수다. 비단 예술가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문제는 더욱 크다. 정부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고 야당에 투표한 국민을 국민으로 보고 있지 않는 것이다. 결국 국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편 가르고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을 이용한 예술과 문화의 지배

과거, 검열은 정부기관을 이용해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고, 예술 작품에 ‘칼’과 ‘가위’를 댔다. 지금은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에 따라 제도적 검열이 사라졌다. 정부는 새로운 검열 방법을 창출했다. ‘왜곡된 창조경제’가 예술 정책에 도입된 것이다. 예술은 사회의 공공성에 기여하기에 당연히 정부 지원을 근본 재원으로 한다. 제대로 국가의 형태를 갖춘 나라라면 당연한 예술정책인 것이다. 그런데 치졸한 정부는 이를 이용해서 ‘예술가 길들이기’를 하는 추악한 검열의 부활을 이뤄낸 것이다. 이는 비단 예술의 영역만이 아니다.

문화콘텐츠산업 즉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문화산업의 경우는 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가 블랙리스트처럼 기피대상리스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의심을 꾸준히 받아왔다. 특정 감독과 배우의 영화가 사라진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음악은 사랑노래만을 되풀이하고 있고, 인디음악은 설 공간조차 잃었다.

방송에서 출연이 금지된 리스트는 다양하게 알려져 있다. 문화산업 분야는 정부의 눈치를 봐야하는 재벌과 방송사,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통해 ‘자본에 의한 검열’이 시행되고 있다. 자본에 의한 검열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사회의 왜곡을 만들어 낸다. 정부가 국가를 부패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술가의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 세월호참사 연극으로부터 촉발된 연극계의 검열각하 권리장전. 그중 연극 '검열언어학의 정치 두 개의 국민' 포스터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매체와 언론을 통해 예술가들의 정부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국정감사 현장에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블랙리스트는 없다’라고 밝혔다. 국회를 상대로 사진까지 공개된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부인한 것이다. 블랙리스트가 없는 게 아니라 국민조차 ‘안중에 없는’ 것이다. 잘못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부정하는 오만한 정부는 예술가의 분노를 더 키우고 있다. 검열의 역사는 예술가들의 가슴에 아직도 대못처럼 남아 있다는 것을 정부는 모른다.

가위질 당한 영화의 기억이 지워진 것이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노래 가사의 사전검열이 없어진 것 역시 20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만화 역시 가위질의 아픈 기억을 생생하게 가지고 있다. 문학에 대한 검열의 기억은 독재정권과 함께 연상된다. 예술가 블랙리스트는 독재의 상징과 같다. 21세기에 되살아난 20세기 독재의 망령에 예술가들은 저항할 것이다. 지금 예술가들은 사회적 책무가 더욱 강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술가들의 저항이 시작되고 있다.

 

김종선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위원 보좌관(1996~2004)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문화정책담당 행정관(2003)

문화관광부 문화행정 혁신위원회 간사(이창동장관 정책보좌역) 

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