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파일, 김성한-이문희 대화에 드러난 무기 제공 실체

김성한-이문희 대화 재구성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기 제공’ 3인방의 분투

2023-04-13     장창준 객원기자

유출된 문서는 문서 파일이 아닌 문서를 찍은 사진 파일이다. 문서를 접었다 편 흔적도 역력하다. 해킹이 정보기관에 잠입하여 파일을 빼낸 것이 아니라 내부자가 사진을 찍어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

▲ 유출된 파일에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황이 포함되어 있다.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유출된 문서가 2월 28일과 3월 1일 작성된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것으로 ‘위조와 변조’ 가능성을 거론했던 윤석열 정부의 해명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공교롭게도 유출된 문서에 등장하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대화한 시점도 3월 1일이다. 한국과 미국의 시차를 감안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도청 보고서가 작성되어 미 국방부에 전달되었음을 시사한다.

김성한-이문희 대화 재구성

유출된 대화는 미국의 포탄 제공 요청에 대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나눈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대화 형태로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다(파일 원문은 기사 하단에 수록했다).

이문희

실장님, 우리가 미국에 포탄을 제공하면 미국이 이것을 우크라이나에 보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미국이 최종 사용자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원칙에 위배가 됩니다. 이미 NSC에서도 이런 우려가 제기된 바 있습니다. NSC에서도 우려가 나왔듯이, 만약 미국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한테 전화를 직접 걸어 포탄 제공을 요청하면 더 난감해집니다.

실장님,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확하게 정하지 않은 채 한미 정상 통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김성한

나도 그게 걱정입니다.

이문희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는 원칙을 우리 정부는 공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칙을 유지한 상태에서 미국에 포탄을 제공하면 우리는 이 원칙을 위반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입장을 변경하는 것입니다.

김성한

그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문희

임기훈 국방비서관이 포탄 제공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3월 2일까지 확정하기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실장님께서 임 비서관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필요하다면 NSC를 열어서 논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성한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이게 국내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을 발표할 때 우리의 원칙을 변경하는 내용이 함께 거론된다면 우리 국민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국빈 방문과 무기 제공을 맞바꾸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이문희

그러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겁니까?

김성한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빨리 공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에 판매하지 않고 33만 발의 155mm 포탄을 폴란드에 파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문희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폴란드를 최종 사용자로 지정하여 폴란드에 무기를 판매하면 폴란드가 그것을 우크라이나에 보낸다? 폴란드도 동의할 것 같습니다.

▲ 유출 파일에 우리 국가안보실 관계자의 대화 내용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보이지 않는 실권자 임기훈, 상관 다그치는 이문희, '묘수' 찾는 김성한

위 대화에 3명이 등장한다. 대화를 나눈 당사자인 김성한 실장과 이문희 비서관,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에 등장하는 임기훈 국방비서관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기 제공’ 3인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성한보다는 이문희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문희는 다그치듯이 김성한을 몰아붙였다.

김성한은 국내 정치적 파장을 우려했다. 국가안보실에서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발표할 때 무기 제공 원칙을 변경하는 내용을 함께 발표하는 방안이 거론되었던 것 같다. 김성한은 그 방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 국빈 방문과 무기 제공이 한미 사이에 거래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문희은 김성한의 우유부단한 모습이 답답하다. 이문희는 3월 2일까지 포탄 제공 문제를 결정하기로 확약했다는 임기훈의 말을 김성한에게 상기시킨다(세 명 중 임기훈이 무기 제공에 가장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시점이 3월 1일이니, 임기훈이 확약한 날짜는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이문희는 김성한에게 빨리 임기훈을 만나서 3월 2일까지 결정을 반드시 해야 하는 상황인지를 확인한 후, 필요하다면 NSC를 빨리 열어야 한다면서 상관을 다그친다.

코너에 몰린 김성한이 '묘수'를 낸다. 한국의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빨리 보내는 것이 미국의 궁극적 목적이니까, 우리가 굳이 국내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까지 미국에 포탄을 보낼 필요가 있느냐, 폴란드에 직접 보내는 것이 더 좋지 않으냐고 제안한다.

이문희는 반색하며 동의를 표한다. 폴란드를 최종 사용자로 해서 포탄을 폴란드에 보내면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로 무기를 보낼 것이라고 좋아한다.

밝혀야 할 진실들

위 대화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사안이 등장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도청했다는 사실 못지않게 밝혀내야 할 진실이다.

첫째, 이문희는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의 원칙을 변경해서라도 미국의 포탄 제공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안보실은 이 사안을 엄정히 조사하고 이문희 역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외교정책을 다루는 사람이 정부 원칙보다 미국의 요구를 우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 두 사람의 대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일정 발표 시 무기 제공 원칙 변경을 동시에 발표하는 방안이 NSC에서 논의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미국의 요구를 우리 정부의 외교 원칙에 우선하여 접근하는 NSC 멤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서관인 이문희는 NSC 멤버가 아니다. 대통령, 국무총리,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국정원장, 비서실장, 안보실장, 안보실 1, 2차장이 NSC 정식 멤버이다. 이 중 누가 그런 주장을 했는지 밝혀져야 한다.

셋째, 임기훈이 3월 2일까지 최종 입장(final stance)을 확정하겠다고 확약한 대상이 누구인지 밝혀져야 한다. 이문희가 상관인 김성한을 다그치는 배경엔 임기훈의 3월 2일 확약 사실이 존재한다. 미국의 3월 1일 두 사람의 대화를 도청하고 즉시 본국에 보고한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임기훈이 확약한 대상은, 혹은 임기훈에게 3.2일까지 확정하라고 요청한 사람은 도청 문제의 진실을 밝히는 데서 ‘키맨’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임기훈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김성한과 이문희는 이미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임기훈은 여전히 국방비서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임기훈은 가장 적극적인 무기 제공론자이며, 윗선의 지시를 받아 무기 제공에 관한 집행 책임을 맡고 있는 인물로 보인다. 만약 대화 내용처럼 임기훈이 3월 2일 확약설을 유포시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기 제공’을 독촉한 인물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그 역시 공직에서 물러나야 마땅하다.

윤석열 정부, 대여 방식으로 미국에 포탄 제공 결정

4월 12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와 방위산업 업체는 대여 형식을 빌려 미국에 155mm 포탄 50만 발을 제공하기로 계약했다. 유출된 대화의 33만 발보다 더 많아졌다. 미국은 자신의 포탄 비축분으로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고, 한국에서 임대한 포탄으로 비축분의 부족을 메운다는 것이다.

계약 시점이 3월이라고 하니, 김성한-이문희 대화가 유출된 이후 계약이 체결되었다. 위 대화 내용에 따르면 계약은 3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발표 전후해서 체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의 무기 거래 원칙을 변경하는 것도 여의찮고, 폴란드에 제공하는 것도 여의찮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기 제공’은 관철되었다.

국가안보실, NSC 구성원 상당수는 우리가 제공하는 포탄이 결국 우크라이나에 제공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대여’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지난해 폴란드에 포탄을 수출할 때, 포탄 표면에 찍혀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보내더라는 이야기도 오래전에 들은 것도 같다.

 

South Korea Mired in End User Concerns Related to U.S. Push to Obtain Ammunition for Ukraine

Yi Mun-hui, Secretary to the President for Foreign Affairs at South Korea's National Security Office(NSO), on 1 March informed NSO Director Kim Sung-han that the South Korean National Security Council(NSC) was mired in concerns that the U.S. would not be the end user if South Korea were to comply with a U.S. request for ammunition.

The NSC reportedly was also worried that the U.S. President would call South Korean President Yoon Suk-yeol directly.

Yi stressed that South Korea was not prepared to have a call between the heads of state without having a clear position on the issue, adding that South Korea could not violate its policy against supplying lethal aid, so officially changing the policy would be the only option.

Yi urged Kim to solicit the thoughts of Im Ki-hun, Secretary to the President for National Defense at the NSO, since Im pledged to determine a final stance by 2 March. Yi advised that Kim should then discuss the matter further with the NSC if it were still necessary.

Kim expressed his concern over how the issue would be perceived domestically: if the announcement of Yoon's state visit to the U.S. were to coincide with an announcement that South Korea changed its stance on providing lethal aid to Ukraine, the public would think the two had been done as a trade.

Kim then suggested the possibility of selling the 330,000 rounds of 155-mm ammunition to Poland since getting the ammunition to Ukraine quickly was the ultimate goal of the United States.

Yi agreed that it may be possible for Poland to agree to being called the end user and send the ammunition on to Ukraine.

Yi noted that the draft legislation on allowing advanced countries to be named as end users for arms exports was in the process of becoming law, but South Korea would need to verify what Poland would 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