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시인의 사모곡, ‘죽여주옵소서’ 출간

고 김규동시인 5주기 기념문집 발간 맞춰 추모모임 가져

2016-09-30     권미강 기자

꿈에 네가 왔더라.

스물 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

마흔일곱살 나그네 되어

네가 왔더라

살아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

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 네가 왔더라

너는 울기만 하더라

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

한마디 말도 없이

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

목놓아 물기만 하더라

네가 어쩌면 그처럼 여위었느냐

멀고먼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서

네가 날 찾아 정말 왔더라

너는 내게 말하더라

다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눈물어린 두 눈이

그렇게 말하더라 말하더라.

- 김규동시인 '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 전문 

 

시인이 되고 싶었던 한 청년이 문학스승을 만나기 위해 38선을 넘는다. 3년 정도 공부하다 가겠다고 어머니와 한 약조는 그러나 지키지 못한다. 남북이 갈라지고 38선이 단단한 장벽이 되어 고향길을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남에 눌러앉은 시인은 평생을 북에 계신 어머니를 떠나고 고향을 등진 죄의식에 아파했다. 

 1948년 <예술조선>에 시 ‘강’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다가 지난 2011년 타계한 고 김규동시인은 생이별의 아픔을 안고, 분단현실과 통일에의 열망을 담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담백하고 순정한 언어로 부단한 시적 성취를 이루어왔다는 평가를 받은 시인은 70년대 이후 문단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의 고문을 역임했다.

지난 9월 29일 프레스센터에서는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최원식) 시분과위원회와 김규동 시인 추모 모임(유족 대표 김현) 공동 주관으로 시인의 5주기에 맞춰 발간된 기념문집 ‘죽여주옵소서’ 출간기념을 겸한 추모모임이 열렸다.

유가족과 한국작가회의 회원을 비롯해 100여명이 참석한 이날 추모모임에서는 구중서시인과 백낙청 문학평론가, 이근배시인이 김규동시인의 생애와 문학적 업적, 개인적인 인연과 일화를 회고형식으로 전했다.

구중서시인은 “김규동시인은 고향과 어머니를 떠난 죄책감에 시달리며 통일에 대한 간절한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라며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된 문인들을 위한 석방운동에도 앞장서 활동하고 ‘통일시대는 반드시 온다’는 믿음과 민주화와 민족통일 열망을 담아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등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회고했다.

백낙청선생은 “후배들이 책을 보내주면 정성스럽게 손수 답장을 써서 보내는 등 후배들을 많은 사랑해준 시인이었다”며 “교양도 풍부하고 세계문학에 대한 지식도 많았으며 무엇보다도 문학인으로서, 시인으로서 자긍심이 컸던 시인은 책임감도 대단한 분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고 전했다.

‘형벌의 한 시대를 시의 몸으로 불사른 문곡선생’이라는 표현으로 시인에 대한 그리움을 전한 이근배시인은 “정도와 정신을 지키는 이 시대의 선비 같은 분인 시인은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살아온 분”이라며 시인에 대한 더 많은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도서출판 창비>에서 출간된 기념문집 ‘죽여주옵소서’는 김정환, 김사인 두 시인이 김규동시인의 시 중 50편을 골라 시인 생전에 남다른 인연이 있던 30여 명에게 추모와 감상의 글을 붙여서 엮어낸 특별한 시집으로, 시인이 직접 작성한 자술연보와 시인의 서각작품 등이 실려 있다.

기념문집은 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 김해자위원장이 유족에게 전달했으며 차남인 김현씨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으며 가수 김현성씨는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아침의 편지’와 ‘두만강에 두고 온 작은 배’를 들려줬다.

 

놀다보니 다 가버렸어

산천도 사람도 다 가버렸어

 

제 가족 먹여살린답시고

바쁜 체 돌아다니다보니

빈 하늘 쳐다보며 쫓아다니다보니

꽃 지고 해 지고 남은 건 그림자뿐

 

가버렸어

그 많은 시간 다 가버렸어

이래서 한잔 저래서 한잔

먹을 것 입을 것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살다보니

아, 다 가버렸어 알맹이는 다 가버렸어

통일은 언제 되느냐

조국통일은 과연 언제쯤 오느냐

 

북녘 내 어머니시여

놀다 놀다

세월 다 보낸 이 아들을

백두산 물푸레나무 매질로

반쯤 죽여주소서 죽여주옵소서.

- 김규동시인의 '죽여주옵소서' 전문 

 

* 문곡 김규동시인

호는 문곡(文谷). 1925년 2월 13일 함북 경성 출생. 경성고보를 거쳐 1946년 연변의대를 수료했고 평양종합대학을 중퇴했다. 경성고보시절 스승 김기림(金起林)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박인환(朴寅煥)‧김경린(金璟麟)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19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했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시작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등을 발간했던 1960년 초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포대가 있는 풍경」, 「어느 병상의 연대」 등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쟁 관련 소재,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의식, 현실의 비판적 추구 등의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많이 발표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한 것은 그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 시기의 시적 경향은 시집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시는 통일문제, 노사문제, 학생시위 등 현실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거니와, 이는 현실의 문제에 능동적인 참여와 실천을 강조한 사회파 모더니즘으로의 적극적인 변모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느릅나무에게』(2005) 등이 있고, 시선집 『생명의 노래』(1991), 『길은 멀어도』(1991), 『흰각시 붓꽃』(1993) 등이 있다. 2011년 시인의 시 432편을 모은 『김규동 시전집』이 창비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작 이외에 평론활동도 꾸준히 계속하여 『새로운 시론』(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 등의 평론집을 내기도 했으며 자전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2011)이 있다.

1960년에 자유문인회협상, 2006년 만해문학상, 2011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199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1년 9월 28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 한국현대문학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