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철도·병원, 파업해도 되나?

‘성과 연봉·퇴출제’ 저지 총파업, 밥그릇 챙기기 인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지키기 인가?

2016-09-28     강호석 기자

27일 철도와 지하철이 파업을 했다. 기다렸다는 듯 “불법파업이다. 국민의 이동권을 볼모로 기득권을 지키려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28일 병원이 파업에 들어간다. 아마도 비슷한 반응이 나올 듯. 그런데 철도, 병원, 전기 등등 공공기관 일하는 사람들이 파업이란 걸 해도 될까?

▲ 27일 서울역에서 공공운수노조 총파업 투쟁 1일차 출정식이 진행되고 있다.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먼저 짚어 볼 게 있다. ‘철도는 왜 파업을 할까?’다. 언론에서 ‘불법’이라고만 하지 무엇이 불법인지, 왜 파업을 하는지는 보도하지 않으니 알 도리가 없기도 하다.

‘파업이 불법이냐 아니냐’는 단순히 파업이라는 쟁의행위를 위한 소정의 법절차를 지켰냐 아니냐의 다툼은 아니라고 본다. 만약 이런 문제라면 파업은 당연히 합법이다. 중노위의 재가를 받았고, 조합원들의 찬반투표를 거쳤으니 절차적 정당성은 이미 확보된 것이다. 또한 임금체계의 문제이니 단체교섭에 해당됨으로 정치파업이라는 오해가 발생할 리도 만무하다. 이는 정부도 인정하는 바다. 그렇다면 불법여부를 가리는 기준은 뭔가? 바로 국민정서다. “저런 일이라면 파업을 해서라도 해결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합법이고, “뭔 저런 일로 파업을 하나”라고 한다면 불법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공공기관이 파업을 해도 될까?’로 돌아가 보자. 우선, 왜 파업을 할까? 공공기관의 파업이유는 한가지. ‘성과 연봉·퇴출제’ 때문이다. 이게 뭘까? 정부는 ‘일 잘하는 사람에겐 돈을 더 주고, 일 못하는 사람은 쫓아 내겠다’는 제도로, 도입되면 능률이 오른다고 설명한다. 반면, 노조는 ‘상급자에게 줄을 서라. 쫓겨나기 싫으면 무조건 무릎을 꿇어라’는 제도로, 도입되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성과 연봉·퇴출제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자. 성과에 따라 돈을 더 주던, 퇴출을 시키던, 먼저 성과를 매겨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성과를 수치로 계산해야 하기에 예산을 줄이거나 수익을 많이 내면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 철도의 경우 누가 ‘새마을호’에서 근무하겠나? KTX가 수십배 더 많은 수익을 내는데.

- 오지 마을에는 기차가 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승차비로는 기차가 오지 마을을 돌아오는 연료비를 충당할 수 없는데.

- 기차 터널공사 입찰에 예산 10억을 써 낸 업체와 15억을 써 낸 업체 중 어느 쪽이 선택될까? 부실 자재 사용으로 터널이 무너지는 일 따위는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십여 가구가 사는 섬마을에 전기를 공급해준 한전 직원과 이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직원 중 누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나?

- 효능이 비슷한 2만원짜리 주사와 3만원하는 주사 중 무엇을 권해야 하나? 비싸지만 3만원짜리가 효능이 높다고 하면 환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 C등급 2회면 퇴출이 되는데 자신의 인사 등급을 매기는 사용자의 부당한 지시를 따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 집에 10살된 딸아이가 혼자 있다고 부장님이 계신 회식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을까?

- 산불이 관할 구역을 넘어갔다고 화재 진화에 협조하지 않은 공무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

철도, 전기, 병원, 가스 등 공공기관은 이윤이 목적이 아니고 공공의 안녕이 목적이다. 여기에 수치화된 성과로 점수가 매겨지기 시작하면, 공공의 안녕은 깨진다. 공공기관은 돈을 벌면 안된다. 아니 설사 손해를 보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라면 해야 한다. 이러라고 국민들이 세금 낸 것 아닌가.

‘공공안녕’의 원칙이 비단 공공기관에만 적용될 문제는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치약, GMO, 각종 부실공사 등 우리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위험의 대부분은 바로 ‘이윤창출’을 절대화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아니던가. 한편 정부는 공공기관에 성과 연봉·퇴출제 적용이 마무리 되면 일반 기업에도 적용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우려를 더하고 있다.

‘성과 연봉·퇴출제’를 반대하고 나선 공공기관·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파업을 하고 있다. 요즘 세상이 워낙 거꾸로 돌아가니 정부와 공공기관노동자들도 입장이 반대로 돼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공공의 안녕을 위해선 정부야말로 비용이 더 드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노동자에게 안전업무를 강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무튼 이쯤 되면 국민들이 '불법을 해서라도 파업해달라'고 노조에 읍소라도 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