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책임·손배가압류 금지”… 시민사회 힘 합쳤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2022-09-14     조혜정 기자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결정하는 원청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이라 내몰며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를 무기 삼아 이들을 시시각각 옥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에게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그랬고, 화물노동자들이 소속된 위탁물류회사 수양물류의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하이트진로가 그랬다.

지난 7년간 30%나 삭감된 임금을 원상회복해 달라며 51일간 파업을 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에게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5년째 제자리걸음인 운송료 현실화를 요구한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은 120일간 파업하며 28억 원의 손해배상을 맞았다.

원청은 이들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 등 노동조건의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교섭에 대한 사용자 책임은 회피한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을 억제하고, 나아가 손배가압류로 위협하며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는 행태가 이와 같은 사례다.

이들은 지난 7일과 9일 각각 노사합의에 이르렀지만 이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14일, 90여 개의 노동·법률·시민·종교단체가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을 보장받기 위해선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고, 손배가압류를 금지해야 한다”면서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를 발족했다.

▲ 14일, 90여 개의 노동·법률·시민·종교단체가 모여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를 출범했다.

이들을 대표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운동본부 출범 취지를 밝혔다.

양 위원장은 “현행 노조법은 노동3권을 보호하지 못할망정 오히려 침해하고 파괴한다. 수십년간 자신이 노동자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노동자가 있다. 하청노동자들은 모든 권한을 가진 진짜 사장과 대화조차 할 수 없다. 노조법 2조 ‘노동자’ 정의를 개정해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이어 “손배가압류는 노동조합 파괴가 목적임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투쟁을 통해서 확인했다. 또한 국가가 나서서 노조를 탄압하는 도구로 쓰여질 수도 있음을 쌍용자동차 노동자 투쟁을 통해서도 확인했다."라며 노조법 3조 개정을 촉구했다.

이들이 원청 책임을 요구하는 이유는 운동본부 출범선언문에도 드러나 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빼앗긴 임금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원청이 교섭을 거부한 것처럼 이들 하청·용역·파견·도급·자회사·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진짜 사장과 교섭할 수 없다. 2021년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CJ대한통운이 택배 노동자들의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판정했다. 그런데도 CJ대한통운은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회피하고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대다수 원청이 그렇다.

이날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CJ대한통운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처우개선에 사용하라고 국민이 동의해준 택배요금 인상분 중 3500억 원을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 쓰더니 교섭에는 나오지 않았다. 전면파업을 했지만 돌아온 건 20억의 손해배상, 형사고소·고발이었다.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노동자들이 노란봉투에서 요구사항이 적힌 손피켓을 꺼내 들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손해배상 청구는 노동기본권을 파괴한다. 어렵사리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사측은 정부와 손잡고 작은 꼬투리를 잡아 파업 전체를 불법으로 내몰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손해배상 청구는 손해를 배상받을 목적에서가 아닌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괴롭혀 노동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과정에 노동자들의 삶은 파괴되고 노동조합은 무력화된다.

얼마 전 하이트진로 본사 고공농성을 마친 박수동 지회장은 “화물노동자로서는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수십억 원의 손배는 절망 그 자체다. 파업기간 중 모든 소득이 끊기고, 집으로 송달된 손배가압류 청구는 가족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와 압박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화주사인 하이트진로는 ‘운송사와 화물노동자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면서도 화물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엔 하이트진로가 직접 나섰다.”면서 “손배·가압류가 노동조합을 깨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조법 2조, 3조는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는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노조법 2조, 3조 개정을 목표로 활동하게 된다. 이를 위해 국민동의청원을 비롯한 대중 캠페인과 온·오프라인 대중행동, 국정감사 대응과 국회 대응 사업, 손배가압류와 원청 책임의 실태를 알리는 증언대회와 토론회, 국제 심포지엄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공동대표를 맡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남재영 목사는 “노동3권은 노동자들의 권리 이전에 국민의 권리”라고 말했다. 운동본부는 “노동조합 및 당사자 만의 싸움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시민들의 기본권 쟁취를 위해 시민들의 참여 속에 입법이라는 결실을 맺고 시민들과 함께 노동권 후퇴에 맞서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