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운명과 독일의 선택

2022-07-28     강호석 기자

유럽연합(EU) 에너지 담당 장관들이 26일(현지시각) 가스 소비를 15%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유럽연합이 가스 소비를 줄이기로 한 것은 미국의 러시아제재를 유럽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으로 해석된다. 현재 사용량을 줄여 난방용 가스가 많이 필요한 겨울철을 위한 비축분을 늘림으로써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를 대비하자는 취지이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소비량 가운데 약 40%를 독일을 통해 들여온 러시아 가스에 의존해 왔다.

이처럼 미국의 러시아제재에 따른 러시아의 보복조치는 유럽의 에너지 위기로 이어졌다.

제재와 보복 사이

미국은 러시아를 국제은행결제시스템(SWIFT)에서 퇴출했고,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준비금 6천3백억 달러를 동결했으며, 미국 은행에 예치된 러시아의 예금 6억 달러를 동결했고, 이 예금이 러시아의 외채를 갚는 데 사용되는 것을 막았다.

현재 러시아 항공기는 서방의 영공을 통과할 수 없고, 서방의 공항을 사용할 수 없으며 러시아 상선은 서방의 항구에(일본과 호주 포함) 기항할 수 없다. 첨단 기술을 비롯해 많은 품목들이 러시아에 수출되지 못한다. 서방의 모든 은행과 서방 기업 대부분이 러시아를 떠났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98개 기관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개인 1,258명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러시아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200개 이상 품목의 서방 수출을 금지했고, 석유 및 가스 수출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에 불응한 폴란드와 불가리아, 핀란드 등에 대해서는 에너지 수출을 중단했다.

미국의 제재와 러시아의 보복이 오가는 사이 러시아는 오히려 1994년 이후 최고치인 960억 달러 무역흑자를 기록했고, 지난 3월 7일 1달러 당 140루블이던 러시아 화폐는 7월 18일 현재 57루블로 3배 가까이 올랐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는 제재가 무력화되고 서방과 러시아의 균열은 더욱 깊어지는 결과만 낳았다.

우크라이나 사태 직격탄 맞은 독일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인한 에너지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나라는 독일이다.

대표적인 ‘탈(脫)원전 국가’ 독일은 올해 말까지 원자력발전소를 전면 폐쇄하겠다던 계획을 철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자 호주의 경제학자 조셉 할레비는 이 전쟁의 확실한 패자는 ‘독일권(German bloc. 스위스에서 헝가리에 이르는 독일 중심 경제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할레비의 분석에 따르면 독일경제권의 궁극적 목표는 동과 서 양쪽 끝의 독일과 중국이 러시아를 핵심 연결 통로로 삼아 하나의 경제권으로 뭉치는 유라시아 통합이었다. 워싱턴과 나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의 건설을 마지막까지 고집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자 미국은 10년에 걸친 공사 끝에 막 완공한 ‘노르트스트림2’의 가동을 승인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2005년부터 독일이 추진한 유라시아 공동의 경제공간 창출이라는 꿈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독일과 중국의 경제교류는 위축됐고 러시아와는 아예 소통 자체가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운명과 독일의 선택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를 배후지로 삼아 성장공간을 창출하려던 독일의 꿈은 풍전등화에 놓였다.

독일이 꺼져가는 유라시아 계획을 다시 살릴 방법은 러시아가 미국에 굴복하거나 독일이 미국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뿐이다.

우선 미국의 러시아제재 수단은 이미 동이 났고, 지금까지 러시아는 미국의 제재를 슬기롭게 헤쳐가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가 미국에 굴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면 독일이 미국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독일이 미국의 러시아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자신의 유라시아 계획을 다시 추진하면 미국으로선 우크라이나 전쟁을 현 상태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미국이 러시아를 포위하기 위해 최대 동맹국 독일과 유럽연합을 잃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