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기’가 끝나고 있다2

터키, 나토(NATO)를 흔들다

2016-09-26     손정목 운영위원

올해는 미국이 세계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동맹질서가 밑뿌리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첫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터키의 러시아 우호관계 전환, EU 독자의 군대 창설안 발표는 기존 중·러 중심의 다극화 흐름과는 구별되는 미국 동맹체계 내부에서 발생한 사건들이다.

지금까지 다극화 흐름은 중·러 주도 아래 상하이협력기구(SCO)의 확대,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의 등장, 브릭스(BRICS) 부상,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창설 등 미국의 관할 밖 영역에서 전개됐다. 물론 세계 일극패권의 입장에서 보면 이 역시도 미국의 지배질서에 도전하는 흐름이긴 하지만 미국이 직접 주도한 동맹체계 내부의 문제는 아니었다. 특히 대서양 동맹으로 표현되는 미국과 유럽 간의 공고한 동맹체계는 세계를 서구 중심으로 이끌어온 기본 축이었다. 그런데 이번 브렉시트를 필두로 전개된 일련의 사건들은 영원할 것 같았던 미국이 만든 질서체계가 내부에서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미국의 세기’가 끝나고 있음을 알리는 ‘곡성(哭聲)’이다.

브렉시트와 터키의 대러 우호정책 전환, 그리고 EU의 독자 군대 창설안을 비슷한 시기에 터져 나온 별개의 사안들로 보는 것은 일면적이다. 세 가지 사건은 상호 연결되어 있고 미국의 위기를 반영한다. 브렉시트가 EU의 통합성에 결정적 파열구를 냈다면 터키의 정책 전환과 EU 독자 군대안의 발표는 NATO체제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음을 보여준다.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뉴스는 지난 7월1일 시진핑 총서기가 중국 공산당 95주년 기념 연설에서 중국과 러시아 주도의 ‘새로운 세계질서’가 10년 안에 올 것임을 선언하면서 “세계는 급격한 변화의 경계에 있다”, “우리는 어떻게 EU가 미국 경제처럼 서서히 붕괴해 나가고 있는지 보고 있다”고 한 발언을 보도(8.14)했다.

우리는 기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수명을 다하고 새로운 세계질서가 수립되는 변화의 도상에 서있다. 트럼프의 부상은 그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지점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에 주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낡은 미국 중심의 냉전질서에 사로잡혀 있으면 또 다시 역사의 변방에서 남의 눈치나 보며 굴욕적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과거 중국 명·청(明·靑) 교체기에 다 망해가는 명나라 바짓가랑이나 붙잡고 늘어지다가 결국 청나라에게 치욕스런 항복을 강요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세기’가 끝나고 있다>를 기획한 이유이다. 몇 차례 나눠 연재한다.[필자서문] 

* 국제문제나 지역문제에 관한 전문가 기고를 언제나 환영합니다.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민플러스 국제팀]

 

영국의 EU탈퇴가 EU의 통합성에 균열을 가져왔다면 터키의 대러시아 관계개선과 EU의 독자 군대 창설 공식화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이다. 주지하듯 NATO는 전후 소련의 서유럽 진출을 봉쇄하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세계최대의 군사동맹체이다. NATO는 소련이 해체돼 존립 근거가 사라졌음에도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군사동맹체로 유지되고 있으며 미군의 군홧발자국이 찍히는 곳곳마다 NATO 내지 NATO 회원국들의 깃발도 함께 휘날렸다. 현재는 러시아 국경부근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군사훈련을 벌이는 등 미국의 대러 포위정책의 최일선에 서있다. 이렇듯 영원할 것 같던 미국의 군사동맹 질서가 내부로부터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영국이 EU를 탈퇴한 직후인 지난 6월26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해 러시아의 SU-24 전투기 격추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사죄장을 보내 피해자 가족에게 배상할 것을 약속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사과를 받아들이고 터키와 관계개선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터키는 NATO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NATO의 핵심 성원국이다. 터키는 NATO에 가입하기 위해 한국전쟁에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견하였다. 그 결과 1952년 가입이 승인된 이래 일관되게 미국 중심의 대외 군사정책에 보조를 맞춰왔다. 터키는 아프가니스탄 보안군을 훈련시키고, 리비아에는 선박과 전투기를 보냈으며, 발칸 반도에도 병력을 파견하는 등 NATO가 참가한 모든 전쟁에 함께했다. 또 미국이 수행하는 시리아 작전에 자국 내 인지를릭 공군기지를 제공하고, 지난해에는 러시아 전투기 격추를 포함해 미국 추종의 대러 적대정책의 최일선에 서는 등 60년 이상 철저한 친미일변도 국가였다. 그러던 터키가 최근 국가의 운명을 건 결정적 방향전환을 시작한 것이다. 이 전환은 필연코 NATO의 대러 적대정책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터키의 대미 자립선언 : 실패한 쿠데타

지난 7월15일 터키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쿠데타엔 전차와 전투기까지 동원됐지만 6시간 만에 진압됐다. 아마도 쿠데타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실패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 쿠데타가 너무 어설프게 끝나 이에 대한 해석이 지금까지도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에르도안 정부의 자작극설과 미국에 망명 중인 에르도안의 정적 펫흘라후 귈렌이 미국의 지원 아래 주도한 쿠테타설로 대별된다. 전자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서방 주류 언론들 및 귈렌의 입장이라면 후자는 에르도안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터키 군대가 미국의 공습 지원에 의해 시리아에 진입하면서 쿠데타는 사실 세계를 속이기 위한 에르도안과 오바마 정부의 합작극이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쿠데타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쿠데타 전후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고 이를 통해 누가 이익을 보았는가를 살펴야 한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원인에 대한 심층 분석보다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대립이라는 중동 문제에 관한 상투적 접근법으로 설명한다. 군부 세속주의가 오스만투르크 시절의 이슬람 술탄을 꿈꾸는 에르도안 정권을 전복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문제의 원인을 외세가 배제된 국내 정치세력 간 대립이라는 시각에 한정된다. 그리고 세속주의라는 서구 자유주의적 세력의 진보성, 민주성이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이슬람에 대항한다는 식의 서구적 시각을 반영한다. 영미 주류언론은 쿠데타 실패 이후 에르도안 정부의 쿠데타 연루세력에 대한 처리 과정을 독재적이고 반인권적으로 묘사했다. 그들에게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대한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쿠데타에 대한 비난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터키 민중이 쿠데타를 저지하려고 맨몸으로 뛰어나와 전차 앞에 드러누운 강렬한 반쿠데타 의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외면했다.

그간 터키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과 더불어 시리아 전쟁에서 미국 전쟁정책의 최대 추종국이었다. 터키는 시리아 전쟁이 터지자 협력관계였던 시리아에 등을 돌리고 미국편에 섰다.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의 국경지역은 IS 테러리스트들의 시리아 진입경로이자 후방물자, 전쟁장비의 보급로였다. 또한 터키는 IS가 장악한 시리아, 이라크지역에서 불법적으로 채굴한 석유를 몰래 사줬다. IS는 이 대금으로 무기를 사들였고 용병의 급여를 지불했다. 미국은 이를 묵인했다.

▲ 터키 국방부장관과 북대서양조약기구 총장이 지난 6월 만남을 갖고 있다. (사진출처 : 나토 홈페이지)

쿠데타의 근본 배경은 이런 에르도안 정부의 친NATO, 친미 일변도 정책의 중단과 대러시아 관계개선 등 자주적 대외정책으로의 전환에 있다.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뉴스는 쿠데타 발생 직전인 지난 7월7일 터키의 야당인 인민민주당의 한 의원이 ‘터키 정부와 시리아 정부 간의 화해를 위한 비밀협상이 예정’돼있다고 폭로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 비밀협상에서는 ‘적’으로 규정했던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형제’로 수정하는 등 대시리아 정책 노선변경이 있을 예정”이고 “이미 터키 여당은 오래전부터 다마스쿠스에 사과의 뜻이 담긴 서신을 보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 역시 7월20일 터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의 “테러 대응을 위해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7월2일자 비밀 이메일을 공개했다. 이는 에르도안 정부가 상당 기간 비밀리에 방향전환을 준비해왔음을 보여준다. 에르도안 정부가 지난 5월 오랜 기간 터키의 EU가입을 총괄해온 친서구세력의 대표자인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총리를 전격 경질하고 6월말 푸틴 대통령과 전화 화해와 사과편지를 공개한 것은 이제 그 준비가 끝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쿠데타는 에르도안 정권이 국가적 운명을 건 정책전환을 공개한 직후에 발생했다. 만약 터키가 미국과 NATO의 대러 적대정책에 등을 돌리고 IS에 대한 지원을 철회한다면 그렇잖아도 러시아, 이란의 시리아 전쟁 참여로 수세에 몰려있는 IS에게는 치명적 상황이 조성되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도 이른바 ‘온건 반군에 대한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IS와 크게 다르지도 않는 반군을 지원해온 정책이 실패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시리아 전쟁의 패배이자 미국 중심 중동질서의 전면 재편을 의미한다. 스푸트니크뉴스는 지난 8월2일 ‘사우디와 UAE 왕자들이 쿠데타 주동자들과 음모를 꾸몄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사우디와 UAE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국가들이다. 또 위키리크스는 8월20일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터키가 쿠데타 책임자로 지목한)펫흘라우 귈렌을 지원했다’는 내용의 기밀문서를 폭로했다. 이렇듯 터키의 실패한 쿠데타는 그 발생의 전후 맥락으로 보나 관련국들의 이해관계로 보나 단지 세속주의 군부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외세의 개입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터키 일간지 예니 사파크(Yeni Safak)는 지난 7월25일 ‘국제안보지원군(ISAF. 나토주도의 아프가니스탄 안전보장을 위해 UN안보리가 승인한 다국적 연합군)의 전 사령관으로서 자주 터키에 왔던 미 육군의 존 캠벨 전 사령관(John Campbell)이 쿠데타의 자금과 관련된 배후다. 그는 터키인 CIA요원을 통해 쿠데타에 참가할 터키군에 자금을 전달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그의 트위터에 “13명의 CIA 고위간부들이 터키 쿠테타에 개입했고 자신은 그 증거를 확보했다”고 올렸다. (8.19) 

터키, 100년 역사 뒤집는 대담한 조치를 단행하다

터키는 쿠데타 실패 직후 미국에 대한 공세를 본격화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배후가 미국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미국에 망명 중인 펫흘라우 귈렌을 쿠데타 주동자로 지목, 송환을 강력히 요구했다. 미국은 자신들의 개입을 부인하면서 귈렌의 송환에는 응하지 않았다. 미국은 곤혹스런 상황에 처했다. 귈렌을 송환하자니 에르도안 정부의 주장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적극 반격하자니 터키가 더욱 멀어져 완전히 미국 품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상 대미 자립선언이다. 언제 터키가 이처럼 강력하게 미국을 구석에 몰고 비난한 적이 있었던가. 동시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는 이란, 러시아와 더불어 지역 평화를 회복할 준비가 되어있다”(타스. 7.19)고 발표했다.

쿠데타는 러시아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사전에 정보를 알려준 데 힘입어 초반에 진압됐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터키 민중이 보여준 강력한 반쿠데타 의지는 쿠데타가 실패로 막을 내리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에르도안 정부는 이런 강력한 민중의 지지에 의거하여 단시간 내에 정치, 군사, 사회 각 분야의 쿠데타 가담자, 배후 지지자 등 1만3500명을 구속하고 공공부분에서 5만9000여명을 직위해제했다. 또 사립대학 학장 전원인 1577명과 사립학교 교사 2만여 명에 대한 면허를 취소하고 공무원 2만5000명 해임, TV와 라디오방송국 24곳 폐쇄, 7만4600명의 출국을 정지했다(8월5일 기준). 한마디로 ‘귈렌주의’라는 친서구세력을 몰아낸 것이다. 터키는 쿠데타 실패를 매개로 가히 혁명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터키는 서구 자유주의(세속주의)를 지배적 사조로 한 근대 100년의 역사에서 사회 각 분야 상층부를 이룬 친서구세력을 몰아내고 이슬람을 축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체계를 세우고 있다. 

터키가 이렇게 근본적인 방향전환에 나선 배경을 추론하면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쿠르드족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IS와 싸우면서 그 대가로 독립국가를 건설하려 하기 때문이다. 터키는 자국 내 쿠르드노동자당(PKK)을 분리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들이 시리아의 쿠르드계 정치세력인 민주동맹당(PYD)과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와 손잡고 IS를 몰아낸 시리아, 이라크지역에 쿠르드 독립국가를 건설하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미국의 전략이기도 하다.

러시아, 이란의 참전으로 본래 목표였던 시리아 아사드 정권 전복이 어려워진 조건에서 미국은 차선책으로 시리아, 이라크 등을 분열시켜 친미 쿠르드족 국가를 세우려 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지원하는 이른바 온건반군세력까지도 참여시키려 한다. 쿠르드족은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 4개국에 분산되어 살고 있다. 쿠르드족은 이들 4개 국가에 자치구를 수립한 후, 이 자치구들을 합쳐 커다란 쿠르드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 이미 이라크에는 준(準)국가적 자치구가 존재하고 이란 역시 자치구가 존재한다. 이제 시리아 쿠르드족 지역에 가까운 알레포 전투에서 IS를 몰아내면 알레포 북쪽 터키 국경지역에 쿠르드족 자치구 수립이 진행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터키의 쿠르드족 역시 주변 형제들의 지원을 받아 분리 독립을 추진할 것이고 터키는 내전 등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터키 내 쿠르드족은 4개국에 분산된 쿠르드족 가운데 가장 많은 1,500만에 이른다(터키 인구의 20%). 터키가 쿠르드족 자치구 건설을 결사적으로 막으려는 이유이다. 미국이 쿠르드족을 지원하여 분리 독립을 용인하려는 조건에서 에르도안 정부는 더 이상 미국에 기댈 수 없게 되었다. 이미 전쟁 주도권이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로 넘어간 상황에서 쿠르드 자치구 건설을 막기 위해서는 러시아, 시리아 정부와 화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중동질서의 형성

다른 하나는 터키를 장기적으로 ‘제2의 오스만제국’으로 발전시키려는 국가전략의 실현 때문이다. 에르도안 정권은 터키가 중동의 대국이 되려면 기존 친미, 친NATO가 아닌 다극형의 세계질서 형성에 가담해야 한다고 전략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영국의 EU탈퇴 역시 다극화 추세를 반영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터키의 결정도 본질적으로 같다.

최근까지 터키는 이 전략을 미국의 중동 지배에 편승하여 실현하려 했다. NATO 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열심히 IS를 지원한 이유이다. 시리아 전쟁에서 터키는 아사드 정권 전복을 지원해 그 결과로 자기 영향력 아래 있는 시리아 무슬림형제단을 정권에 앉히려 했다. 이를 통해 시리아를 아우르는 중동의 맹주가 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오히려 미국의 전략 실패로 쿠르드 국가건설이라는 차선책이 부상하고 러시아, 이란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중동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터키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터키가 러시아에 전투기 격추 사죄장을 보낸 이유이다. 이런 변화를 느끼는 것은 비단 터키만이 아니다. 이집트는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 미국과 관계가 소원해져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이스라엘 역시 더 이상 미국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지난해 가을 이래 5차례나 푸틴 대통령을 만나 정세 전반을 상의했다. 그 결과 올해 11~12월 러시아 중재로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상을 갖기로 했다. 미국의 중재가 아니다. 중동의 균형추가 러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러시아가 중재하여 터키는 이스라엘과 화해했다. 터키는 다음으로 이집트와 화해를 진행하고 있다.

터키는 지리적으로 유라시아의 중심이다. 아시아, 유럽을 오가는 육로의 중심에 터키가 있다. 이것은 군사적 의미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동서 교류의 중심지임을 뜻한다. 유럽은 터키의 이 가치를 군사적으로만 이용하고 끝내 유럽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대 100여 년 동안 터키는 유럽의 일원이 되려고 그렇게 문을 두드렸건만 EU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터키는 이제 더 이상 EU에 가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러시아, 이란과 화해를 통해 중동의 한 기둥으로 서고 자연스레 중국과 연계해 ‘일대일로’ 사업의 한 축을 차지할 것이다. 터키의 경제적 번영은 무너져 가는 서구의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중국의 신실크로드 사업 참여에서 이뤄질 것이다. 터키가 급진적으로 국내의 친서구세력을 몰아낸 이유이다.

이제 중동에서 군사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국가는 사우디 등 걸프국(GCC)들뿐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러시아와 적대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이집트의 시시 정권이 나서서 ‘중동평화를 위한 아랍 중재안’을 내놓고(8월21일), 푸틴이 중재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을 직접 발표하는 등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중동질서가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섰다 (중동질서 재편의 상세한 내용은 다음에 다시 쓰겠다).

러시아-이란-터키, 중동의 새로운 축

지난 8월9일 역사적인 터키-러시아 정상간 회담이 열렸다. 가장 중요한 합의는 시리아 전쟁에서 양국이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연이어 이란 외무장관과도 회담하여 협력을 약속했다. 역사에 ‘반전(反轉)’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바빠진 미국은 조 바이든 부통령을 파견했다(8월24일). 바로 그날 터키군은 IS 퇴치를 명분으로 미국의 공습지원을 받으며 처음으로 시리아에 진입했다. 이른바 ‘유프라테스 방패’작전이다. 터키는 IS와 쿠르드족을 밀어내면서 시리아 북부 국경일대를 장악했다. 시리아 정부는 물론, 러시아, 이란까지 시리아 정부와 유엔의 승인을 받지 않은 터키군의 시리아 진입을 주권침해라 비판하고 우려를 표시했다. 

세계는 이를 두고 곳곳에서 논쟁이 일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초서도브스키 교수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터키가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것이다. 터키의 실패한 쿠데타는 치밀하게 계획된 미국과의 합작품이고, 이를 통한 러시아와 관계 복원도 ‘미국과 NATO의 승인 아래 진행된 것’이란 주장이다. 목적은 ‘시리아-러시아-이란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터키의 시리아 ‘침공’은 시리아 북부에 ‘안전지대’를 만들어 알레포에 포위되어 있는 IS 등 반군에 보급로를 만들고 나아가 시리아 남부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러시아 입장을 대변하는 스푸트니크뉴스는 완전히 다르게 본다(8월27일). 한마디로 미국이 쿠르드족을 희생양 삼아 터키가 러시아와 더 밀착되는 것을 막고 동맹을 유지하려는 ‘고육책’을 썼다는 것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이 아닌 부통령을 파견해 터키의 숙원인 쿠르드 약화를 ‘협상카드’로 사용해 터키의 강력한 귈렌 송환 요구를 누그러뜨리고, 터키가 완전히 반미로 돌아서는 것을 막았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이것은 시리아 전쟁에서 미국의 뜻을 충실히 따라준 “쿠르드 얼굴에 침을 뱉은 격”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토사구팽’이다.

이후 전개과정을 보면 스푸트니크뉴스의 분석이 더 정확하다. 터키는 이달 4일 IS와 쿠르드를 시리아·터키 접경지역에서 몰아내어 “91㎞에 걸친 우리 국경이 완전하게 보장됐다”, “모든 테러조직이 밀려났다”고 발표했다. 만약 이것이 알레포에 포위돼 있는 반군들의 안정적 보급로를 확보해 주는 것이었다면 지난 12일의 시리아 임시휴전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터키가 의심을 받으면서 미국과 동맹을 유지한 것은 아직 터키의 사회 경제체제가 유럽, 미국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이다. 터키가 바로 NATO 이탈, 미국과 동맹을 단절한다면 유럽, 미국은 경제보복 등을 단행할 것이고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친서구세력들의 반발 또한 클 것이다. 터키는 동맹을 유지하여 내부 전환의 시간을 벌고 동시에 쿠르드 세력을 몰아낼 기회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영국도 그러하듯이 지금은 한편으로는 기존 동맹유지,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계질서 참여가 중첩되는 과도기이다. 미국은 항상 그러했듯이 터키의 자립화를 그냥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다. 터키는 직선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터키는 지금도 한편으론 미국에 협력하여 테러리스트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러나 터키는 국경지역을 장악한 뒤에도 멈추지 않고 쿠르드에 대한 공세를 계속하여 급기야 미국이 나서 공세를 멈출 것을 종용할 정도가 됐다. 미국은 터키와 쿠르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터키는 쿠르드가 완전히 무력화되어 독립국가 건설이 어려워질 때까지 공세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스스로 친미 쿠루드 국가 건설이라는 차선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20일 UN총회 연설에서 “시리아는 시리아 인민(people)의 것이다. 시리아 영토는 그 누구도 어떤 계획에 의해서건 나눌 수 없다”고 선언했다. 자신들의 군사작전도 국경지역의 평화를 가져올 목적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지원의 시리아 내 쿠르드 자치구 건설을 명확히 반대한 것이다. 터키는 NATO에서 두 번째로 많은 지상 전력을 보유한 국가이다. 아마도 쿠르드는 터키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터키를 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쿠르드가 무력화되고 알레포에 이어 시리아 내 IS의 수도 락까와 이라크 모술이 무너진다면 미국은 물러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파랑색이 나토 회원국

미국은 17일 전격적으로 휴전합의를 깨고 알레포 포위을 담당하는 시리아 데이르 에조르(Deir Ezzor)기지에 대한 폭격을 가해 162명의 사상자를 냈다. 폭격이 멎은 직후 7분 후에 IS의 군사기지 점령작전이 전개됐다. IS와의 합동작전이었다. 이는 휴전합의의 명백한 파기이자 미국이 누구를 지원하는지 스스로 밝힌 중대한 사건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공식성명을 통해 “이전부터 의심하고 있었던 미국이 IS를 보호한다는 것이 전 세계에 확인” 됐다라고 발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이 쿠르드에 지원하는 무기의 절반이 IS에게 넘어간다”고 폭로했다. 미국은 IS를 친다는 명분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다. ‘알레포가 무너지면 사실상 패배’라는 미국의 초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러시아와 터키는 상대의 전투지역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체결했다.(15일) 이 역시 터키의 지원을 바라는 미국의 이해에 반하는 것이다. 이제 시리아전쟁은 미국이 전면적으로 나서서 확전할 것인가 여부를 가르는 분기점에 서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20일 UN총회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만났다. 양국 정상은 전방위적 협력을 다짐하고 “이란과 터키는 중동에서의 반테러전에 핵심 역할을 수행”하여 “시리아, 이라크 등 지역의 안정화를 이루는데 힘쓸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동은 이제 러시아-이란-터키라는 세 축에 의해 새로운 질서가 형성돼 갈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러시아-페르시아-오스만투르크가 중동의 세 축이었다면 21세기 들어 역사의 재현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터키는 향후 더욱 자립화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NATO와 러시아는 군사적 충돌 방지를 위한 협의를 금번 UN총회에서 갖기로 했다. 어쩌면 바람이겠지만 미국은 결단할지 모른다. 미국의 보수언론 ‘내셔널 인터리스트(National Interest)’는 지난 18일 <시리아를 러시아에 맡겨라>(Let Russia Own Syria)라는 기사에서 “워싱턴은 반군에 대한 지원을 공식적으로 끊고 공습을 중단하여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에게 그 나라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 미국의 국가적 이해(nationl interest)에 부합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세기가 끝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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