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75년 '총선', 토착왜구 생존기

총선은 한일전이다(1)

2020-02-24     강호석 기자

“총선은 한일전이다, 국회의원 국산화, 친일파 없는 국회 만들기”등 총선을 앞두고 친일청산 바람이 거세다.

반면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아직도 친일 타령인가”라고 했고, 이영훈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은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에서 “일제 강제 징용은 ‘허구’이고, 일본군 위안부는 ‘거짓’”이라며 “이웃을 적으로 모는 근거 없는 ‘반일 종족주의’ 때문에 한국이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광복 75돌이 되는 오늘날까지 친일파 토착왜구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몰골을 하고 있을까?

토착왜구, 얼굴은 조선 사람 창자는 왜놈

1910년 대한매일신보는 ‘얼굴은 조선 사람이지만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를 토착왜구라고 정의했다.

▲ 1910년 6월 22일 대한매일신보 '토왜천지'

1) 뜬구름같은 영화를 얻고자 일본과 이런저런 조약을 체결하고 그 틈에서 몰래 사익을 얻는자. 일본의 앞잡이 노릇하는 고위 관료층.

2) 암암리에 흉계를 숨기고 터무니없는 말로 일본의 위해 선동하는 자. 일본의 침략행위와 내정 간섭을 지지한 정치인, 언론인.

3) 일본군에 의지하여 각 지방에 출몰하며 남의 재산을 빼앗고 부녀자를 갑탈하는자. 친일단체 일진회 회원들.

4) 저들의 왜구 짓에 대해 원망하는 기색을 드러내면 온갖 거짓말을 날조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독을 퍼뜨리는 자. 토왜들을 지지하고 애국자들을 모함하는 가짜 소식을 퍼뜨리는 시정잡배.

지난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당시 원내대표의 ‘반민특위’ 발언으로 토착왜구는 다시 유행을 탔고, 친일파의 대체어로 자리 잡았다.

토착왜구의 유명세는 말이 재밌어서일까? 아니다. 토착왜구가 많기 때문이다.

친일, 신념인가? 돈인가?

일제 강점기 때는 그렇다 쳐도 해방된 후에도 계속 친일하는 이유는 신념일까, 아니면 돈에 팔린 걸까?

이영훈 교수 같은 사람이 친일로 돈을 벌려는 것은 아닐 터, 분명 친일은 신념이다. 물론 친일로 적잖은 경제적 이익도 챙겼겠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입에 불과하다.

토착왜구의 생존 논리는 무엇인가?

친일파는 과연 어떤 논리체계를 가졌길래 이렇게 많은 토착왜구를 양산했을까?

친일파 논리의 기본은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다. 즉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강조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와 국제관계에 적용한 것.

사회진화론에 입각하면 힘 센 나라가 힘 없는 나라를 먹는 것은 당연하다. 억울하면 힘을 기르던가, 아니면 순순히 식민지배를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는 까닭은 국민이 무식하고 게으르고 나라가 약하기 때문이다”라며, 항일 독립운동 대신 국채보상운동과 계몽운동에 집중한 유길준과 윤치호. “조선인은 열등하니 계몽을 통해 민족성 개조가 필요하다”며 민족개조론과 실력양성론을 주창한 춘원 이광수, 도산 안창호 등이 모두 사회진화론에 영향을 받았다.

경쟁을 통해 열성은 도태하고 우성만 살아 남는 것을 진보라고 정의한 사회진화론은 경쟁의 결과 발생한 차별을 인정하고, 제국주의에 의한 지배는 사회 진보를 위해 참고 받아들이자고 설파한다.

사회진화론 신봉자들의 눈에는 일제가 조선인을 강제징병, 강제징용, 그리고 성노예로 끌고 간 것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지금 와서 배상 운운하는 것은 미개한 짓으로 본다.

사회진화론자들이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본과의 경쟁에서 큰 차이로 지자 열패감이 생겼고, 점차 일본은 따라잡을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바짝 엎드리게 됐다.

이 즈음 러시아까지 꺾은 일본은 “동양은 이제 일본과 한 몸이 되어 서양에 맞서자”며 ‘내선일체’를 주장하자, 너도 나도 현혹되어 말도 글도 영혼도 모조리 일본에 내주기에 이른다.

사회진화론에 따른 이런 패배주의적 현실 인식은 당시 신지식층의 상당수를 친일파로 만들었다.

일본에 빌붙어 개화를 꿈꾸던 자들은 기본적인 사회 윤리조차 저버리고 친일에 대한 죄책감마저 사라진 단계에 이르렀다.

토착왜구에게 일본은 우리를 강점한 제국주의가 아니라 따라 배워야 할 근대화의 모델이었다.

이처럼 사회진화론으로 무장한 토착왜구들은 광복 후에도 우리 사회 전반에 똬리를 틀었다.

문제는 친일파를 양산한 사회진화론이 지금도 맹위를 떨친다는 데 있다.

‘경쟁에서 일단 이기고 봐야한다’, ‘경쟁의 결과로 발생한 차별은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화됐고,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다’, ‘미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라는 궤변이 통용되고 있다.

그래서 친일 잔재 청산은 단순한 반일 투쟁에 그치지 않고 사회진화론이라는 가면을 쓴 친일 담론과의 치열한 논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