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계단 오르기]첫 번째 계단 - 시인 조연희, 詩의 사생활 9

예술가들에게 삶은 그 자체로 원천이다. 어머니의 품 안에 담겨져 있던 몸의 기억들이 순명의 두레박을 타고 한 가득 예술의 영감으로 길어 올려 진다.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한 단계씩 오르고 올라 예술의 열매를 맺는다. ‘예술로 계단 오르기’는 길어 올리는 과정에서 두레박 밖으로 떨어지는 순명의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은 예술가의 퍼즐 맞추기다. 그 첫 번째 계단을 조연희 작가가 오른다. <시의 사생활>로…,

태초에 점이 있었네. 그 점은 그저 외로움일 뿐이었네. 외로움 옆에 점이 하나 생겼네. 그 점의 이름은 갈등이라네. 그리고 다시 또 하나의 점이 생겼네. 그 점의 이름은 상처라네.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낳고 3은 만물을 낳는다는 노자의 말은 정녕 옳았네. 나는 너를 낳고, 너는, 이후 모든 것은 상처였네.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유클리드의 원론)

토요일 4교시 수업은 미술이었다. 선생님은 추상미술의 창시자인 칸딘스키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림도 색채와 점·선·면의 형태와 구도만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세상이 온통 ‘점, 선, 면’으로 이루어져 있는 듯했다. 교실 정면의 칠판도 4개의 선이 만나 사각형을 이루었고, 그 사각형 또한 입자처럼 작은 무수한 점으로 채워져 있었다. 면을 들여다보면 선이 보였고 선을 들여다보면 점이 보였다. 단순화시켜 보면 세상은 크고 작은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추상이었다.

 

아이들이 선분을 그리고 있었다.

내 유년의 도형시간

A와 B 사이에 무수한 점들이 생겨났다.

그 점들이 자라 서 있거나 누워 있는 선이 되었고

충돌하고 이어지며 벽을 만들어 갔다.

우리의 교실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세상은 휘어지거나 꺾어진 선분과 선분의 만남이었다.

나를 중점으로 수많은 사랑과 눈물이 복제되었고

○거나 □, △인 관계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난 외로운 꼭짓점이었다.

 

햇살이 눈부신 날이면

내가 긋다 만 미완의 이등변 삼각형이나 사각형들이

창밖으로 달아나 나무가 되고 잎사귀가 되고 바위가 되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몇 가지 대칭을 갖고 있다지만

나, 때때로 나무 그늘 아래 하나의 선분으로 누워있고 싶었다.

상하좌우 수많은 대칭을 이루며 도형의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람들

 

점은 선을, 선은 면을

세모는 네모를, 네모는 동그라미를 꿈꾸는

내 유년의 작도시간

세상은 내 중점에 뾰족한 컴퍼스의 다리 한 짝 꽂아놓고

여기저기 대칭 이동을 시도하고 있었다.

 

모눈종이 같은 책상 칸칸에 내가 갇혀

 

              - 졸시 ‘도형의 시간’ 전문

 

교실 창문이 직사각형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상하좌우 저 대칭 때문이 아닌가. 아름다운 형상일수록 몇 개의 대칭을 갖고 있으며 어쩌면 산다는 것은 무수한 대칭을 만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나. 아버지와 나. 어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 나와 몇 개의 대칭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난 아름다운 대칭이고 싶었다.

‘선’은 폭이 없는 길이다 (유클리드의 원론)

수업을 마치자마자 나는 제일 먼저 교문을 나섰다. 신촌역까지 가려면 조금은 서둘러야 했다. 대장간에서 만난 그 녀석이 머리를 밀기 전 한번 보자고 했던 것이다. 당시 교복 자율화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조금은 생소하겠지만 잠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두 해 정도 자유복을 입던 시절, 그리고 아마도 내가 졸업한 이듬해부터 다시 교복을 입기 시작했을 것이다.

기타를 메고 삼삼오오 집결해있는 대학생들. 봇짐을 들고 있는 할머니. 광주리를 이고 있는 아줌마. 벌써 얼굴이 인디언 추장처럼 갈색으로 그을린 할아버지가 하얀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대합실은 의외로 소박했다. 마치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 나오는 간이역처럼 겨울이면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난로 위에서 손을 녹이며 고구마를 구워 먹을 것 같은 정겨운 느낌마저 주었다.

우리는 백마행 열차표를 끊었다. 종점이 문산인 그 열차는 역이란 역은 모두 멈추는 비둘기호 완행열차였다. 통일호나 새마을호가 지나가면 착한 시골청년처럼 잠시 열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때마다 장난기가 발동한 학생들이 열차에서 뛰어내리거나 올라타는 묘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만큼 하염없이 느리고 하염없이 허름한 열차였다.

선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열차가 심하게 덜컹거리는 바람에 가슴이 눈에 보일 정도로 출렁였다. 그때 왜 그 생각이 떠올랐을까. 처음 엄마가 브래지어를 사다 주었을 때. 중학교 2학년 때 쯤이었다. 엄마가 사 준 하얀색 브래지어를 처음 가슴에 두른 그날 나는 까닭 없이 눈물을 흘렸다. 가슴을 꽉 죄여오는 느낌과 함께 이제부터 나는 어린애가 아니라는, 모르긴 해도 앞으로 내 생활이 이렇게 조여 올 것만 같았다. 공기놀이도 고무줄도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앞으로 브래지어가 비치는 옷을 입어도 안되고 다리를 벌리고 앉아도 안될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갑갑함과 함께 발갛게 상기된 유두가 면도날에 스친 것처럼 아렸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달렸을까. 우리는 백마에서 내렸다. 군데군데 물푸레나무가 무성하고 온통 논밭이 펼쳐진, 조금은 황량한 전형적인 농가가 펼쳐졌다. 그런데 이곳에서 아는 선배가 주점을 한다는 것이었다. 축사가 가까이 있는지 소똥 냄새가 더운 바람을 타고 훅 끼쳐왔다. 

선배가 한다는 주점은 외줄기 철길 옆에 있었다. 대학생들에겐 많이 알려진 곳이었는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빈 좌석이 없을 정도였다. 은은한 통나무 내음과 커다란 접시에 푸짐하게 담겨 나온 파전 한 접시. 창틀에는 온갖 낙서가 빽빽했다. 그 중에 ‘군부독재 타도 민주주의 만세’ 라는 단어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막걸리 몇 잔에 벌써 취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대칭

“오늘 좀 늦게 들어가도 되지?”

우리는 외줄기 철길로 나왔다. 워낙 기차가 뜸하게 다녀서인지 어떤 연인들은 선로 자갈길을 자박자박 밟으며 걷고 있었고 어떤 연인들은 평행봉 위의 선수처럼 두 팔을 벌린 채 선로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걷고 있었다.

“ 저 평행 선로를 너무 오래 걸으면 헤어진대.”

막걸리 트림이 올라오면서 술이 조금 깨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선로가 두 개의 곧은 직선처럼 보였다. 그 끝에는 ‘점’이 있겠지. 저 선로는 두 개의 ‘점’ 일 뿐이고 교차점이 없는 저 선로는 그저 평행일 뿐이겠지. 나는 하염없이 평행인 선로 위에 평행의 어둠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그제야 집에 갈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시절 흔하디흔한 일처럼 막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손만 잡을게.”

녀석은 수줍은 듯 말했다. 대합실에서 녀석은 내 손을 잡았다. 수평 같은 손이었다. 녀석과 나는 몇 시간을 손만 잡은 채 그렇게 대합실에 앉아 있었다. 손바닥에서 출발한 수많은 ‘점’이 수많은 뜨거운 ‘선’이 혈관을 타고 꿈틀거렸다.

밤이 이슥해질수록 풀벌레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보리밭 사이사이 꽥꽥거리며 토하는 소리, 부르짖듯 ‘타는 목마름으로’를 외치는 소리 등이 창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오늘 우리는 연인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었다. 그저 오늘 우리는 녹슨 기차였고 녹슨 철로였으며 막차가 떠난 대합실 같은 젊음이었다. 하지만 처음 브래지어를 둘렀을 때처럼 가슴 가장 예민한 부분이 날카로운 풀잎에 베인 듯 다시 한 번 아려왔다.

창 너머 검은 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점점점 반짝이는 별을 따라 선을 이어갔다. 그러자 오늘 낮에 들었던 점, 선, 면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점’을 이으니 ‘선’이 되었다. ‘선’을 이으니 이윽고 북두칠성의 곰 자리가 완성되었다. 그랬다. 나는 어쩌면 대칭이동을 해야 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외로운 꼭짓점이다. 어쩌면 나는 오늘 슬픈 선분 하나를 그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운 대칭이 되고 싶었다. 하늘에선 외로운 꼭짓점 같은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고 있었으며 오늘따라 북두칠성 자리의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조연희 시인은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산맥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영상기획 및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빅시스템즈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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