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기념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에서 펼친 넋풀이 퍼포먼스

벽안(碧眼)의 예술인이 놋쇠바루를 치며 구음을 한다. 길고 하얀 넋전을 단 막대기를 두 손에 들고 허공으로 휘휘 저으며 사형장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입구로 돌아온 춤꾼은 형장의 이슬이 되기 전, 한번쯤 몸을 떨었을 넋들에게 절을 하듯 고개를 숙인다.

이어서 푸른 하늘과 붉은 벽돌이 마주치는 작은 사형장 마당을 하얀 종이인형의 휘날림에 따라 춤인 듯 절규인 듯 뛰어다닌다. 양혜경씨의 서대문형무소 사형수를 위한 넋풀이다.

넋전춤 공연은 광복 71돌을 맞아 서대문구청 주최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서대문독립민주축제’와 함께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회장 김희선)가 마련한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한마당’의 한 프로그램이며 격벽장(수감자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퍼포먼스 ‘왜놈대장 보거라! 우리의 자유를!’과 맞물려진 공연이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에서 이루어진 예술가의 첫 넋풀이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 이날 넋전춤 퍼포먼스는 관객을 위한 공연만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원혼들을 위한 진혼굿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8월의 뙤약볕 아래에서 약 30분간 펼쳐진 ‘넋전춤 퍼포먼스’는 쿠바 출신 현대무용가 기에르모씨와 멜로디언 연주에 이대원씨, 첼로에 문지윤씨 등 4명의 예술인들이 함께 만들었다.

1인극 넋전춤 연희자인 양혜경씨는 이날 공연을 위해 아침 7시부터 이곳에 와서 흰종이로 넋전을 오렸다고 한다. 넋전을 오려가는 동안 묵직한 무거움이 종이로 묻어나오는 느낌이었고 그 기운으로 춤을 추고 끝나자마자 울음을 쏟아냈다.

26년간 넋전을 만지고 거기에 의식을 담고자 출가까지 했던 그에게 서대문형무소의 사형장은 조국 해방과 독립, 온전한 자유를 위해 당당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사람들이기에 그 어떤 원혼보다도 더 아팠으리라.

이날의 넋전춤은 그래서 행위자도 관객들도 눈물과 땀을 동시에 흘리는 공연이었다. 다만 기에르모씨의 지적처럼 공연 도중에 행위자 앞을 지나다니며 사형장의 아픔을 외면하고, 관광지 다니듯 한 일부 관람객들의 태도에 그 의미가 퇴색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기에르모씨는 이날 넋전춤을 “역사에 대한 가슴 깊이 울려나오는 울림이었고 사랑이었다”며 자신의 부모님도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으로 참전해 일본에 대항해서 싸웠기에 그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매달 한 번씩 서울시립공원묘지 용미리에 있는 무연고자 묘를 찾아 넋전춤으로 원혼들의 넋을 위로한다는 양혜경씨는 광복 71돌을 맞은 8.15에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을 하다 형장의 이슬이 된 분들을 위한 넋전춤이 본인으로서도 뜻 깊다고 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김희선 회장은 “억울하고 원통하게 가신 그분들의 통곡을 몸으로 나타낸 듯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날 사형장에서의 넋전춤 퍼포먼스와 함께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 한마당‘을 총감독한 마임이스트 유진규씨는 역사관 격벽장에서 50명의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대규모 퍼포먼스 예술감독을 하면서 “유관순 정도만 기억하는 여성독립군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는 그는 “많은 여성들이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던지고 죽음을 불살랐다”며 이번 퍼포먼스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조명하고, 지금도 존재하는 일본 군국주의와 친일파들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해보는 공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40명의 여성예술인이 포함된 50명의 예술가가 총 120분 동안 33개의 공연을 통해 일제로부터의 해방, 모든 권력과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수형자들의 체력단련 공간이었던 10개의 부채꼴모양 칸막이가 있는 격벽장에서 각자 개별적인 공연을 펼치는 퍼포먼스는 관객들과 예술인들이 어우러져 예술을 통한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는 난장으로 끝을 맺었다.

광복절을 맞아 마련된 이번 공연은 민족의 아픔이 담긴 서대문형무소를 공연무대로 활용, 식민지배로 인해 원통하게 떠난 원혼을 달래고 해방조국의 자유 아래 예술공간으로 거듭나고 치유예술의 힘을 보여준 또 하나의 예술적 문화였다.  

▲ 공연을 마친 뒤 한 관객을 잡고 오열하는 양혜경씨. 마치 원혼의 통곡처럼 느껴져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현대사를 조명해보는 전시회
▲ 서대문독립시민축제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군으로 분한 배우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