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중심성을 돌아본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지난 세월의 활동에 대한 성찰을 우선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좋은 성과는 계승하고 오류와 한계는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해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15년의 진보정당 활동을 돌아보려고 한다. 오늘날 사분오열된 진보진영의 참혹한 현실에 대한 책임 있는 한 당사자로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여러 가지 입장의 차이와 노선적 갈등을 굳이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성찰은 스스로 하는 것이지 누가 시켜주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철저히 주체혁신의 관점에서 이 글을 진행하고자 한다.

성찰은 크게 노동중심성, 당내 민주주의와 패권주의, 의회주의와 합법주의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가야 할 길과 당면과제를 적극 개진해보고자 한다. 어느덧 나도 새롭게 시작하는 진보운동의 속도를 따라잡기에 낡은 요소가 많음을 발견한다. 급변하는 정세와 날로 성장하는 민중의 정서에 맞는 참신한 대중적인 당의 모습을 제출하는데 사고와 관점의 한계가 존재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많은 독자들의 날카로운 지적과 적극적인 의견 제시로 채워줄 것을 기대해 본다.[필자서문]

▲ 사진 출처 :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 결의를 통해 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적 진보정당이었다. 물론 한국전쟁 이후 조봉암 선생의 진보당을 필두로 여러 진보정당이 등장했으나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의 튼튼한 대중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지 않아 쉽게 허물어져버린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최초’라는 단어를 쓴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바탕으로 민주노동당은 누구나 인정하는 노동자정당으로 성장하였다. 수많은 노동자 당원과 의원을 배출하였고 당의 정책과 활동의 중심에 노동이 자리 잡았다. 심지어 ‘민주노총당’이란 비판이 형성되는 지경에 이르렀다.(지금도 이 민주노총당의 표현을 싫어하는 진보정치인이 의외로 많다. 그 이유를 보면 첫째, 당의 외연을 확대하는데 한계로 작용한다는 측면과 둘째, 노동중심성은 동의하지만 그 방식으로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이 아니라 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여야 한다는 입장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외형과 달리 노동자 당원들 속에서는 갈수록 “돈 대주고 몸 대주는” 역할 이상 하는 것이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노동자가 앞장서 만든 노동자정당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당의 주인으로 서지 못했을 뿐 아니라 노동계급에게 헌신 복무하는 당으로 자리 잡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달리 보면 그렇게 듣기 싫어했던 ‘민주노총당’조차 제대로 해 본적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혹자는 노동중심성이 분명한 진보정당이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계급정당’을 하겠다는 것인지 반문한다. 물론 아니다. 우리는 노동중심성이 분명한 대중적 진보정당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노동중심성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노동계급의 가치와 원칙을 진보정당의 가치와 원칙의 중심에 놓는 것, 진보정당에서 노동계급의 헤게모니를 보장하는 것, 노동계급을 진보운동의 지도계급으로 묶어세우는 것을 당 활동의 최우선적 목표로 삼는 것을 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동자 민중을 조직하지 않고 집권에 성공한 진보좌파세력은 없다.

나는 노동중심성을 분명히 세우는 것이야말로 진보정당의 첫 조직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크게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의 혈연적 결합, 현장위원회, 현장분회 등 노동자들의 당 정치조직생활과 현장정치활동, 당의 의사결정과 운영에서 노동계급의 주체성, 주도성보장, 당의 노동조합에 대한 정치적 지도의 보장 등이 총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선거에 많이 당선되었다고 성공이라 할 수 없다

울산은 자타가 공인하는 명실상부한 노동자 도시이다. 그 가운데 동구와 북구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지난 4.13총선에서 두 명의 노동자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바 있다.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노동자와 그 가족으로 이뤄져 있는 이곳에서 노동자 중심의 정당 건설에 실패했다는 고백은 정말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향후 건설해야 할 당의 미래를 본다면 이 성찰은 진지하고 깊이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는 동구와 북구의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에 노동자들을 진출시켰다. 당원의 60%이상이 노동자이고 연말 세액공제 시기가 되면 현장에서 수억 원씩 당에 몰아주는 전통이 생길 정도였다. 외형으로 본다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크게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왜 나는 실패했다고 단언하는가?

노동자들이 당의 주체,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동현장 안에 당 조직이 구축되고 그 안에서 노동자 당원이 활동하고 당의 지도자로 성장하며 당을 이끌어 가지 못했다. 수많은 노동자 의원들이 탄생하고 그들을 앞세워 당 사업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원들이 지금 당의 중심에 서 있지 않다. 모두 어디로 갔는가? 임기가 마치는 순간 그들은 그냥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노동자 출신이지만 노동현장을 기반으로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현장에서 당을 대변하고 현장 당원을 만들고 그들을 의식화하며 당의 주인으로 세우는 작업에 온 몸을 던지지 않았다. 노동자의 투쟁을 조직하고 노동자의 아픔을 대변하는 정치지도자로 성장하기보다 의원이 되면 작업복을 집어 던지고 관변단체와 친해지고 지역 행사장에 쫓아다니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였다. 우리는 노동자 출신만 많이 세우면 노동자 중심의 당이라고 스스로 위안했을 뿐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보다 심화시키기 위한 전략전술의 부재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현장에 당조직이 없었다

민주노동당 초기부터 현장분회가 존재하였으나 금세 유명무실해졌다. 현대자동차의 경우를 살펴보자. 민주노총의 방침에 따라 현장 안의 제 조직성원들이 대거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이 많은 노동운동가들의 정체성은 당이 아니라 자기 현장조직에 있었다. 당에는 이름을 걸쳐놓았을 뿐 당의 주인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고 또 현장에 이들을 묶어세울 당 조직도 없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노동현안 대응과 각종 선거를 둘러싼 경쟁은 현장 제 조직이 담당하였고 당은 아무런 개입력도 없었다. 정파간 분열로 분당된 이후도 그러했고 통합진보당이 된 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상시기 현장 내 당 중심으로 정치적 노동운동을 하는 든든한 정치부대가 없으면 앞으로 당을 건설해도 역시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찌감치 잘 안 되는 현장분회를 포기하고 지역을 중심으로 당원을 편재하였다. 당원들의 지역 선거구별 조직편재는 선거와 의회 진출에 편리한 체계이지 노동자를 중심으로 기층 민중을 진보운동의 주력으로 묶어세우는 데 유리한 틀이 아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동위원회를 두긴 하였으나 예산의 배정, 선거권과 피선거권, 당의 제반 활동 등이 지역중심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결코 당의 골간조직이 될 수 없었다. 지역을 주요 근거지로 설정하고 모든 역량을 지역 중심으로 배치하여 진행되는 지역 활동은 바로 표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당의 노동자대오를 성장시키는 역할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결국 노동자들은 늘 동원대상이 되었고 현장은 어느 순간부터 당의 거점이 아닌 세액공제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노동운동을 정치운동으로 안내하는 당이 아니었다

나는 지난 시기 진보정당운동을 돌아볼수록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노동계급이 눈물겹게 만든 당을 얼치기 진보정치인이 말아먹었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과연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이 노동자와 기층 민중에게 복무하는 노동계급의 정당이었을까? 노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요구와 생활에 밀착되지 않는 당의 전형이 아니었을까? 노동운동의 생명은 단결이다. 현장의 수많은 정파의 분열을 극복하고 단결시켜야 할 임무를 가진 진보정당이 도리어 분열의 한 축이 되어 대중운동을 피폐화시키는데 일조하지 않았는지 진지하게 돌아본다. 노동자의 파업을 비롯한 전체 진보운동에 복무하는 의회전술이 아니라 의회 진출과 그 활동에 어떻게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운동을 동원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나 않았는지 말이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존중하면서도 조합주의, 실리주의를 벗어나 정치투쟁을 바탕으로 한 변혁적 노동조합으로 이끌어가는 것이야말로 진보정당의 가장 큰 임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조합주의의 해악을 말로 떠들었지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에 안주하며 노조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표와 돈을 만들어내는 노조에 어찌 쓴 소리를 한단 말인가? 조금 심하게 말하면 당의 합법주의, 선거주의와 노조의 조합주의가 결탁하여 점차 노동대중을 소외시켜 간 것이다.

진보정당운동이 노동계급의 정치적 진출을 촉진하고 노동운동을 전체 진보운동의 선봉부대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전개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노동운동의 개량화, 우경화, 상층 출세주의화를 부추기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오늘날 노동운동이 조합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개량주의 우경화되는 현상을 진보정당운동의 의회주의 편향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이 조합운동을 넘어서 정치권력 쟁취운동으로 발전하려는 지향 아래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노동정치운동의 실패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정체와 위기의 근본원인임은 분명하다.

통합진보당의 해산이라는 현실 또한 진보정당이 노동계급 등 기층 민중을 진보운동의 주체로 묶어세우는 데에 주력하지 않고 상층 중심의 의회 진출을 조급하게 추구할 경우 지배세력의 탄압에 얼마나 취약한지 뼈아프게 보여준다. 그래서 계급적 토대를 튼튼히 하는 문제는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의 사활이 달린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당 건설의 주체는 민주노총이다

나는 새로운 노동중심의 당 건설은 주체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자신의 당을 그 누가 대신 만들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4.13울산의 승리는 여러 면에서 교훈점이 많다. 무엇보다 지난 진보정당 활동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힘을 모아내 이룬 쾌거이기 때문이다. 후보 선정과정부터 구호와 공약 과제제기, 그리고 선거운동 전 과정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노동 대단결 속에서 이루어진 그야말로 노동자의,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선거였다. 그리고 이 투쟁은 노동자의 무서운 응집력으로 계급투표를 불러왔다.

갈라진 진보진영을 하나로 불러 모으고 노동자의 계급투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오직 노동조합에 있었다. 처음부터 노동조합은 “돈 대주고 몸 대주는” 단순한 지원세력이 아니었다. 진보 후보단일화에 팔 걷어 부치고 나선 것도 민주노총이요, 정치실천단을 비롯한 다양한 선거지원, 그리고 각종 선전물을 통한 조합원 동원도 민주노총의 몫이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노동자 정치의 모범이 수립되었다. 선거를 마치고 후보와 선본에 오는 많은 노동자의 전화내용은 이 싸움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많은 노동자들은 “축하한다”는 인사보다 “고맙다”고 하였다. 이 선거를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이 선거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나는 우리의 새로운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 역시 이렇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노동현장의 노동자는 누구나 똑같은 말을 한다. 같은 편끼리 싸우지 말고 하나가 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 울산이 보여준 폭발적 계급투표의 근원은 노동자의 총단결에 있다. 경제파탄의 모든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이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을 타파하고 노동이 아름다운 나라로 가는 길에 우리가 해야 할 첫 공정은 공동투쟁을 통해 단결을 실현하는 것이며 그 중심에 민주노총이 서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결과 투쟁으로 진보진영 전체를 하나로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당 건설경로라고 확신한다.

함부로 가르치려 들지 말고, 만들어 놓고 주도하면서 동원하려 들지 말고 주인을 섬기는 자세, 이것이 21세기 첨단의 시대정신임이 분명하다. 민주노총의 결심이 당 건설의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끝이다. 모두 힘을 모아 노동현장 아래로부터 당을 건설해 들어가는 일에 헌신하는 것, 이것이 노동중심성을 상실하고 노동자를 소외시킨 아픈 과거를 딛고 노동자를 믿고 동지를 믿고 싸워 얻어낸 소중한 나의 결론이다. ‘1부. 노동중심성’편(끝)

 

* 김창현 진보대통합연대회의 부대표는 구 통합진보당 울산시당 위원장과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을 지낸 진보정치인이다. 김 부대표는 앞서 지난 1998년 초대 민선 울산시 동구청장에 최연소로 당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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