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연극프로젝트 오프닝격 ‘사랑하는~’과 ‘국가에게~’를 보고
바다의 풍경이 무대벽에 부딪치고 배우들이 그 벽을 바라보는 모습을 눈에 담으면서 관객들은 자리에 앉았다. ‘세월호’를 소재로 한 연극이니 무대만 봐도 단박에 영상 속 바다가 진도라는 걸 직감한다, 누구든.
공연장에 들어서기 전 받은 리플릿에는 ‘세월호 공연을 하게 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은 ‘고통을 외면하고 싶어 했던 자신의 나약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공연하고,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하고, 알고, 행동하자고 목청이 찢어져라 외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연은 연출의도대로 진행됐다. 대한민국 배우로 어렵게 살아가지만 국민배우로 자리 잡고 싶은 자신들이 ‘세월호’라는 엄청난 참사를 겪었을 때의 충격, 그리고 처음엔 기가 막히다가 자신들의 일이 아니기에 점점 잊었다가 가슴 속 양심이 수면으로 떠오를 때의 고통, 그리고 세월호가 단순히 세월호 유가족들만의 일이 아니라고 자각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액자연극처럼 배우들은 극 속에서 논의하고 세월호사건의 경위를 각종 자료로 쉽게 풀이해주고 그간 세월호사건의 경과보고는 물론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해양선박사건의 일지와 이유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고개를 끄덕일 때 관객들도 함께 세월호사건을 복습한다. 그리고 묻는다. “세월호가 단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문제인가, 세월호는 끝난 사고가 아니라 진행 중인 사건이다. 전 국민이 다 함께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아프다. 모두 후회한다.”
배우들은 목청이 찢어져라 외친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냐’고, ‘목숨을 다 바쳐 사랑하냐“고,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배우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세월호‘에 탄 자신들에게 묻는 것이다. 함께 가라앉을 것인가. 함께 구출되고, 구출할 것인가.
‘세월호’는 이제 바다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 아니다. 2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세월호’의 깨달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연극도 그중 하나다.
이미 ‘세월호’ 공연을 둘러싸고 검열의 덫에 걸렸던 연극계는 릴레이연극인 ‘검열각하 권리장전’을 10월 말까지(http://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26 민플러스 6월7일자 ‘검열의 시대, 연극으로 저항하라’ 참조) 펼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컬처버스가 주최하고 ‘혜화동1번지’ 6기 동인들이 주관하는 2016 기획초청공연 <세월호 이후의 연극, 그리고 극장>을 국민들의 분노만큼이나 달궈진 무더위 속에서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사랑하는 대한민국’(극단 신세계 공동창작, 연출 김수정)과 ‘국가에게 묻는다’(제작, 구성, 연출 임인자)는 이 ‘세월호 연극 프로젝트’의 오프닝인 셈이다.
마치 연극판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두 편의 연극은 ‘세월호’참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세월호’의 재구성 같은 형식으로 구성됐으며 관객들에게 문제의 본질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8월 한 달 동안(8월3일부터 28일까지) 8명의 연출가가 한 주에 두 편씩 모두 여덟 작품을 올리는 이번 기획공연은 선체인양, 진상규명 등 여전히 답보상태인 ‘세월호참사’를 다시 언급함으로서 사회적 관심을 되돌린다. 이는 적극적인 실천과 연대를 위한 시작점으로서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으며 국가적, 사회적 참사 이후 ‘연극은 무엇이며 극장은 어떠해야하는가’ 질문을 던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첫째 주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둘째 주인 10일부터 14일까지 공적인 정체성을 박탈당한 인간들과 비극이 불가능한 사사로운 사회에 대해 몸과 말과 리듬을 통해 이야기하는 ‘이토록, 사사로운(The most personal)’(제작 안정민, MARC 팩토리, 연출 안정민)과 과거의 상처를 보내주는 방법에 대해 담담한 필체로 써내려간 ‘오십팔키로’(제작 앤드씨어터, 연출 전윤환)가 무대에 오른다.
셋째 주인 17일부터 21일까지는 재난 앞에 작고 약한 인간 개개의 능력을 모아 연결하면 사회를 구출할 초능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전하는 연극 ‘세월호 오브 퓨처 패스트’(제작 극단 문, 연출 정진새)와, 뇌과학을 통해 세월호를 기억하고 거기에 대한 질문을 강연형식으로 펼쳐가는 ‘시간을 흐르는 배(제작 달과 아이극단, 연출 장나오)가 공연된다.
마지막 넷째 주인 24일부터 28일까지는 이미 침몰했는데도 침몰을 멈추지 않는, 잃어버린 시간들과 더 잃어버리고자 하는 시간들에 대한 오늘의 4월16일, 2016년 8월 법정이 된 극장에서 세월호의 책임을 묻는 ‘킬링 타임’(여기는 당연히 극장 공동창작, 연출 구자혜)을, 국가의 존재와 부재가 한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보여주는 ‘국가 없는 나라: 사라진 기억들’(제작 드림플레이 테제21, 연출 김재엽)이 공연된다.
상업적 연극에서 벗어나 개성 강한 실험극을 무대에 올리고자 1993년 젊은 연출가들이 모여 만든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동인들의 이번 공연이 특히 주목 받는 것은 공연 준비기간인 지난 5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노순택 작가 ‘참사 이후의 참사’, 6월 박주민 의원 ‘참사 이후의 법제화 – 특별법 개정안의 내용과 의미’, 이경미 평론가 ‘지금 여기 한국연극-정치에 정치적으로 맞서기’)창작 워크숍을 갖고 배우들 스스로 학습하고 토론을 하면서 ‘세월호’의 진실을 몸으로 익혀갔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난 6일 진행된 4.16연대와 1주차 간담회를 시작으로 4회에 걸쳐 세월호 유가족 및 단체 간담회를 공개적으로 마련함으로써 극장이 사회문제를 논의하는 광장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간담회는 김우, 정세경, 박래군, 안순호 등 416연대 상임운영위원들과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 학생의 부모님이 참석하며 매주 토요일 공연이 끝난 후인 오후 6시에 진행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시간을 지켜봤다. 관습에 의해 구조의 의무는 사라졌다. 대통령에게 멋진 그림을 뽑아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다했고 대통령은 자리를 비웠다. 경황이 없어서, 당연히 지시할 줄 알아서 구조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시간을 놓아버렸다. 일분일초의 시간들이 쌓여 101분에 이르렀고 배는 결국 침몰했다.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곳에 사람들이 있다.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 모든 것은 관용구가 되어간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연극 ‘킬링타임 중에서 인용)
그랬다.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이번 릴레이연극은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그래서 공개적인 진실규명이 이뤄져야 하는 ‘세월호참사의 재구성’이다. ‘단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시간을 죽이고 있는 자들’이 하루 빨리 진실을 말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라는 연극계의 공개서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