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신념의 불꽃으로 동토를 녹인 한인들의 발자취를 찾아

여름휴가철이다. 기자도 휴가를 간다. 그러나 휴가 중에도 써야 한다. ㅠ 허수영 민플러스 기자가 여름휴가를 맞아 9박10일 일정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 인문기행’에 참가했다. 그는 지금 동북 러시아 대륙을 기차로 횡단 중이다. 허 기자가 보내온 여행기를 몇 차례 싣는다. 일과 무더위에 지친 심신을 잠시나마 달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편집자]

▲ 블라디보스톡 공항

대륙을 향한 동경, 10여년 만에 이룬 꿈

러시아는 수도 모스크바부터 동쪽 끝의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톡까지 총연장 9288km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TSR)가 거대한 공화국의 등뼈처럼 연결돼 있다. 1891년 기공식 이후 1916년 모든 노선이 개통 완료된다. 동서 모든 구간을 완주하려면 60여개 역을 지나 6박7일 동안 달려야 한다.

필자는 항상 동북아시아 북방대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었다. 전문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고구려, 발해의 역사는 물론 원, 금, 청 등 유목민족 왕조들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기병들의 놀라운 기동력과 폭발력으로 수십 배의 인구와 몇 배의 군사력을 가진 대국들을 꺾고 중국대륙은 물론, 중앙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젊은이의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유목왕조들의 본거지인 중국 동북3성(만주), 몽골, 극동 러시아는 조국해방에 몸을 던진 애국지사들과 독립군 부대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지역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음에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이 지역을 언젠가 한번은 가보자는 바람은 학창시절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비용이나 생업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늘 꿈으로만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인에게서 ‘희망래일’이 주최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인문기행’ 프로그램을 소개받았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바이칼 호수가 있는 이르쿠츠크까지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정말 나를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9박10일이라는 긴 일정이 문제였다. 평일이 7일이나 끼어있어 5일의 여름휴가를 다 쓰고도 월차를 2일이나 붙여 써야 했다. 내심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여행기를 조건으로 한 회사의 ‘통 큰’ 배려로 10여 년에 걸친 꿈은 이뤄지게 됐다.

극동 러시아는 어떤 곳?

러시아 극동관구는 러시아 7개 관구 가운데 하나로 프리모르스키(연해주), 아무르, 사할린, 하바로프스크, 마가단, 추코트카, 캄차카, 사하 공화국 등을 포함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광활한 영토에 비해 인구가 600만에 불과해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 당 1명 안팎이다. 덕분에 많은 땅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유럽과 가까운 서쪽 러시아에 비해 극동은 많이 낙후돼 있어 경제수준이 낮아 물가는 한국보다 싸다. 다만 많은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아 서쪽으로 가고 싶어 한다.

음식은 동서 러시아가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추운 지역이다 보니 지방이 많이 필요해 음식은 단 것이 많다. 빵이나 과자에도 꿀이나 크림이 많이 들어가 먹다 보면 금세 물린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음식이라면 흑빵이라고 불리는 흘렙과 보리탄산음료 크바스 등이 있고 유제품도 많이 먹는다. 1~3일차 여행 중에 러시아 식당에서는 돼지고기를 꼬챙이에 구운 샤슬릭이나 구운 연어 등이 나왔는데 특별한 향신료를 쓰지는 않아 도저히 먹지 못할 정도의 음식은 없었다. 다만 추운 지역이라 그런지 채소는 항상 부족하고 가격도 비싸다고 한다.

7~8월의 극동 러시아는 한낮 최고기온 섭씨30도를 넘어갈 때도 있다고 하지만 다행히 우리 여행 일정 중에는 26도 이상 오를 것으로 예보된 날은 없었다. 게다가 습도도 낮아 그늘에만 가면 크게 더위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해가 지고 나면 서늘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한국의 폭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것도 나름 더위라고 웃통을 벗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러시아 남성들을 종종 볼 수 있다.

▲ 고려인 문화센터

한인들의 애환이 곳곳에 남겨진 3개 도시

7월31일 새벽 인천공항에서 30여 명의 일행과 함께 출발한 비행기는 현지 시각으로 오후 1시30분쯤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극동 러시아는 한국보다 한 시간 늦다). 직선으로 가면 좀 더 빠르겠지만 북한 상공을 피해 서해로 돌아가야 한다.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내린 일행은 첫날과 둘째 날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과 우수리스크 두 도시를 둘러봤다. 둘째 날 밤과 셋째 날 아침에 걸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11시간을 이동해 러시아 극동관구의 수도인 하바로프스크 시내를 둘러봤다.

여행 첫날 방문한 우수리스크에선 고려인 문화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러시아 고려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4년부터 준비해 2009년 개관한 곳이다. 이곳에서 일부 러시아인이 섞인 고려인 청소년들의 문화예술 공연을 관람했다. 감탄을 자아낼만한 공연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공연을 했던 고려인 소년소녀들은 우리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고 했다.

▲ 최재형 선생

이 세 도시는 온갖 학대와 수모를 딛고 옥토를 일군 한인 정착촌은 물론 많은 애국지사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우수리스크에는 안중근 의사의 숨은 조력자 최재형 선생의 마지막 거처가 남아 있다. 최재형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수 있도록 자금 지원은 물론 하얼빈까지 통역 겸 안내를 맡을 사람을 붙여줬으며, 자신이 운영하던 신문 대동공보의 기자증을 줘서 신분위장까지 도왔다. 최재형은 안중근 의사 사후에도 그의 유가족을 돌봤다.

우수리스크에는 또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3인 가운데 한명이었던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遺墟碑.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길이 후세에 알리거나, 이를 계기로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비)가 있다. 이상설은 특사를 사칭했다는 죄명으로 일제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하고 연해주에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여러 활동을 벌이다 1917년 니콜리스크에서 사망한다. 이상설은 자신을 화장한 가루를 우수리스크 외곽을 흐르는 수이픈강에 뿌려달라고 유언한다. 아무르강(흑룡강)과 만나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수이픈강에 뿌려져 죽어서라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 최재형 선생 집터

블라디보스톡 시내에는 신한촌 기념비가 서 있다. 신한촌은 신개척리라고도 하며 19세기 중반부터 블라디보스톡에 조선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해 숫자가 불어나자 1911년 제정 러시아 정부가 페스트 방역을 이유로 시 외곽으로 내쫓은 데서 유래한다. 이들은 애써 일군 농토를 뺏기고 자갈에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를 다시 개척해야 했지만 이곳은 다시 옥토로 변모한다.

그러나 이 신한촌도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폐쇄되고 만다. 이들은 우수리스크 라즈돌노예 역에서 화물칸에 실려 40일간의 여정 끝에 중앙아시아에 도착한다. 이 역은 아직까지도 화물역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에는 소설 <낙동강>의 저자인 문학가 조명희 선생의 생가터(지금은 헐리고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와 볼셰비키 정부 하라로프스크 당비서이자 극동인민위원회 외무위원장을 역임한 김 알렉산드라의 기념비 등이 있다.

러시아 전체에서 고려인은 약 20만 명이 살고 있고 그 가운데 8만 정도가 극동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시내 가이드를 해준 사할린 동포 한복순씨는 “젊은층으로 갈수록 한국어를 공부하는 비중이 낮고 러시아인들과 결혼을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신한촌 기념비
▲ 이상설 선생 유허비
▲ 라즈돌노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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