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공적자금 투입된 쌍용차·한국지엠… 정부 책임은 나 몰라라?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발표한 신년사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경제’였다.
경제 분야 정책 방향으로 ‘공정’, ‘혁신’, ‘포용’을 제시하며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한걸음 더 다가가겠다”고 말했던 대통령. 국민 앞에 선 대통령과 같은 날 11년 만에 회사로 출근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들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소속된 해고노동자들이다.

이들 46명은 10년 7개월이라는 지난한 시간동안 복직만을 기다렸다. 2009년 쌍용차 대량 구조조정 이후 9년 사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노동자와 그 가족만 30명에 달하는 아픔을 딛고 2018년 9월, 쌍용자동차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자동차노조(기업노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참여한 ‘노·노·사·정 합의’에 따라 단계적인 복직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 2018년 9월 14일.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회의실에서 김득중(왼쪽부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최종식 쌍용자동차 사장, 홍봉석 쌍용자동차노조위원장,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쌍용차 해고자 복직 잠정 합의안 발표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당시 노노사정은 “▲해고자 60% 2018년까지 채용, 40%는 2019년 상반기까지 단계적 채용 ▲2019년 상반기까지 부서배치 못 받는 복직자는 6개월간 무급휴직 전환 후 2019년 말까지 부서배치 완료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관계부처와 협의해 해고자 복직으로 생기는 회사 부담 지원과 경영정상화 지원 방안 마련 ▲경사노위는 해고자 복직과 지속성장을 위한 정부 추가지원 방안 마련, 그리고 노사정 대표가 참석하는 ‘쌍용차 상생 발전위원회’에서 합의안의 실행계획 점검 논의”를 합의했다.

노노사정 합의에 따라 71명이 먼저 복직했다. 그러나 회사는 지난해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복직을 앞둔 마지막 남은 해고자들에게 무기한 강제휴직을 통보했다.

▲ 지난 2009년 정리해고된지 10년 만인 2018년 12월 31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71명이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로 출근하기 전 기자회견에 선 모습. [사진 : 뉴시스]

2018년 쌍용차 합의를 이끌기 위해 중재에 나선 것은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다. 합의문에 서명하고, 지원 방안을 마련한 것도 경사노위이며, 합의문을 발표한 곳도 경사노위 회의실이었다.

합의 이후 쌍용차는 산업은행에서 1천억 원 규모의 대출 지원을 받았다. 이 공적자금엔 백여 명을 복직시켜야 하는 회사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뜻이 담겨 있었다. 회사(쌍용차)가 해고자 복직에 노력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당시 이 합의는, 쌍용차 해고자 문제 해결을 간절히 바랐던 시민사회와 국민들의 열망이 담긴 ‘사회적 합의’, ‘대타협’으로까지 평가받았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도 당시 “해고자의 복직이 단순 복직에 그치는 게 아닌, 노사가 똘똘 뭉쳐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대전환의 계기로 삼겠다는 공통 인식이 있었다”고 표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도 함께 축하했다.

그러나 이런 합의를 복직 당사자들은 물론 합의 주체들과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깨고 해고노동자들에게 강제휴직을 통보했다. 회사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없이 쌍용자동차노조(기업노조)와 해고노동자들의 휴직연장을 내용으로 하는 노사합의서를 체결했다.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재정자금인 공적자금. 국민의 세금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쌍용차 합의에 책임있게 나선 대통령 직속 기구의 행위로 봤을 때 정부의 책임은 두말할 것이 없지만, 합의에 참여했던 경사노위 조차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며 뒷짐만 지고 있다.

쌍용차 예병태 대표이사는 해고노동자와 만난 자리에서 “차 판매량이 늘고 생산량이 늘어났을 때 최우선으로 여러분들을 공장에 돌아오게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경영난을 말할 뿐이다.

그러나 해고자들은 이를 반박했다. 쌍용자동차 대주주는 인도 마힌드라그룹이다. 쌍용차 이사회 의장 파완 고엔카는 인도 현지 인터뷰에서 쌍용차 인수 이후의 과정에 대해 “이제야 안정적인 판매량 수준”이라며 “올해 1분기나 2분기쯤에 몇 가지 긍정적인 결과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

마힌드라그룹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쌍용차에 추가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러나 “마힌드라의 지원(투자)에는 산업은행이 쌍용차를 지원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민세금 투입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에게 또한번 공적자금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 복직을 기다리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복직 날인 지난 7일 공장문을 들어서 출근했다. 오늘(9일)까지도 매일매일 현장에 출근해 다시 일할 수 있도록 업무배치를 요구하며 대기 중이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휴직 구제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 지난 7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46명이 쌍용차 정문 앞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11년 만의 출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2018년 2월, 지엠(GM)이 군산공장 폐쇄를 선언하고 ‘한국정부의 자금 지원이 없다면 나머지 공장도 철수할 수 있다’며 협박했다. 결국, 한국지엠이 전북 군산공장을 폐쇄하자 정부는 협상 끝에 산업은행이 한국GM에 8천억 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출자하는 것을 결정했다. 한국지엠을 10년 동안 유지하는 ‘경영정상화’, 그리고 ‘고용안정’이 조건이었다. 고육지책으로 내린 결론의 끝은 결국 ‘공적자금 투입’일 때가 많았다.

대량해고와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의 대명사인 대우자동차를 잇는 한국지엠. 여전히 고용보장을 조건으로 수천억 원을 챙겼지만, 공적자금을 받고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 정부(고용노동부)의 ‘직접고용 명령’의 이행은 거부한 채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585명이 지난해 마지막 날 해고됐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공장 정문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지엠 문제에서도 이를 중재해야 할 정부, 공적자금을 투입한 정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지엠 사태의 대안 마련이 연일 계속되고 있을 때. “정부의 감시,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공적자금 투입은 의미없다”고 했던 한 노동자의 말이 떠오른다.

국민의 세금으로 어마어마한 나랏돈을 투입한 정부의 책임과 역할은 오간 데 없고, ‘경영난’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들만 해고자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진 경영난. 해고노동자들이 다시 공장문을 들어서기가 이처럼 어려울 일인가. 내 일터로 복귀하기가 왜 이리 어려운가.

지난 2017년 9월,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금속노조 등 6개 산별노조와 함께 발의한 법안이 있다. 한편으론 이 ‘제조발전특별법’도 절실해진다. 이 법안엔 외국인 투자에 대한 지원을 제한하거나 지원한 내용에 대해 전부 또는 일부를 환수하도록 규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단기투자이익을 위한 무리한 구조조정과 고율 배당, 유상감자 등으로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둔화시키고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기업의 경영안정성 저해 위험이 있는 경우 ▲기술유출, 생산물량 축소, 연구개발기능 해외 이전, 공장폐쇄 또는 대규모 정리해고 등으로 외국인투자가 노동자의 고용안정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등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 제조산업협의체의 심의에 따라 5년 이내의 범위에서 이 법에 따른 지원을 제한할 수 있고, 이미 지원한 내용에 대해 전부 또는 일부를 환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먹튀’ 사태로 불리는 2004년 상하이자동차의 쌍용차 인수와 국부유출,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고용이 불안한 쌍용자동차, 그리고 한국지엠, 하이디스, 한국산연 등의 사례와 같은 먹튀자본을 규제하는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노동정책에서 소득주도성장은 후퇴하고, 구조조정은 여전하며, 재벌개혁 역시 후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지는 이미 오래다. 문 대통령의 새해 신년사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한걸음 더 다가가겠다”는 약속에 대한 일말의 기대에 정부가 뿌려놓은 공적자금에 대한 책임과 개입, 그리고 규제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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