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30톤 사들인 정용진 신세계이마트 부회장… 이마트 노동자 기본급은 81만 원

“감자 제값 챙기기 전에 노동의 정당한 댓가부터 챙겨라”

정용진 신세계이마트 부회장이 때아닌 ‘키다리아저씨’라는 소릴 듣고 있다.

지난 12일 SBS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정용진 부회장은 따뜻한 이웃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지역 특산품을 이용해 신메뉴를 개발, 유동인구가 많은 만남의 장소에서 여행객들에게 선보이는 프로그램에서 정 부회장은 강원도에서 팔지 못한 감자 30톤을 처분해 달라는 한 유명 방송인의 제안을 통 크게 수락했다. “이마트에서 제값 받고 팔 수 있게 하겠다”, “만약 다 팔지 못하면 내가 감자를 좋아하니 다 먹겠다”라는 말로 키다리아저씨와 같은 미담을 남긴 것.

다음날 정 부회장은 하루종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연일 화제가 되고 있고, 신세계이마트에 대한 간접광고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러나 이 훈훈한 통 큰 키다리아저씨 미담을 보며 함께 미소짓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 키다리아저씨가 경영하는 대형마트 업계 1위, 브랜드평판 1위의 ‘이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 사진 : 마트산업노동조합 이마트지부

이마트엔 약 1만 6천여 명의 무기계약직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노란 유니폼(조끼)을 입고 계산과 진열, 판매를 담당하는 4~50대 이상의 여성노동자가 대다수다. 이들은 이마트와 트레이더스, 노브랜드 매장에서 일하는 주요 인력이다.

마트산업노동조합 이마트지부는, 창고에서 썩어가는 못난이감자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는 유명 방송인의 전화 한 통에 통 크게 제안을 수락한 회사의 오너를 향해 “감자 제값 챙기기 전에 자신들의 직원, 기본급 81만 원 받는 1만 6천여 직원들의 정당한 노동의 댓가부터 챙겨야 할 때”라고 분노했다.

훈훈한 미담, 통 큰 재벌,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재벌이 소유한 매장 이마트에서 십 수년간 일해온 이들의 2019년 기본급은 81만 2천 원이다. 각종 수당을 합쳐 최저임금 언저리의 임금을 받으며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기본급은 병가·휴직과 명절 상여금의 기준급이다. 이마트가 각종 수당을 두고 꼼수 임금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상여금 등의 급여를 조금이라도 더 적게 주기 위한 것 외에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는게 이마트지부의 주장이다.

이마트 노동자들은 병가를 사용하면 한 달 월급으로 81만 원 기본급을 받게 된다. 그 돈으로 한 달을 버틸 수 없어 다수의 이마트 노동자들은 아파도 그냥 참고 일하는 것이 예삿일이다.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실태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슈에 떠올랐다. 이마트 노동자들 대부분도 크고 작은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살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게 아닌 이상 병가를 사용하는 직원은 거의 없다.

이마트지부는 “이마트는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 수준의 복지를 제공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마저도 회사가 일방적으로 지정한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진단을 받아야 병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까운 1차 진료기관이 아닌 초진 2만원 정도의 종합병원을 찾아야만 병가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기본급 81만 원을 받으면서 대형병원 진료라니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마트지부에 따르면 이마트는 2016년 ‘직원들이 병가를 악용해 사용한다’며 일방적으로 지정병원을 정하고 그곳의 진단서로만 병가를 인정하는 제도로 변경했다. “아파서 병가를 사용하는 자기 회사 직원에게 ‘꾀병을 부려 악용했다’는 것이다. 십 수년간 인상된 기본급이 81만 원 이라는 것도 기막힌데, 일하다 골병든 것도 서러운데, 꾀병을 부리고 병가를 악용하는 직원으로 찍힐까 걱정하면서 결국 아파도 참고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노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마트지부는 ‘인력충원’ 문제도 지적했다.

이마트는 최근 5년간 332개의 신규점포를 출점했다. 그러나 인력은 되레 줄었다. 2014년 대비 2018년엔 212명이나 줄었다. 이마트지부는 “이마트는 최근 몇 년간 신규출점 점포 외엔 상시인력인 무기계약직을 거의 충원하지 않아 현장에서 체감하는 노동강도는 상당하다”고 밝혔다. 일거리는 늘었지만 인력감소가 지속되면서 노동강도는 더 높아졌다. 그런데 아파도 쉴 수 없는 노동조건의 악순환이 이마트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마트지부가 올해 9월 이마트 노동자 153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업무 관련 질환으로 병원진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71%가 ‘그렇다’라고 응답했지만, ‘최근 1년간 병가를 사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엔 ‘사용한 적 없다’는 답변이 82%였다.

“이마트는 2019년 2분기 첫 영업이익 적자를 봤다면서 대표이사를 바꿔가며 인력 및 점포 구조조정을 하고 ‘위기’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올해 3분기까지 2천억이 넘는 흑자를 유지해 오고 있다.”

최근 8년간 이마트는 5조가 넘는 이익을 낸 흑자기업이다. 수조 원의 흑자를 내는 대한민국 유통재벌, 키다리아저씨가 경영하는 회사에서 십수 년을 일하며 그 노동의 가치로 기본급 81만 원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에 키다리아저씨는 통 크게도 “2020년 임금 동결”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할 말이 많다.
“지난 5년간 신세계이마트 오너 일가 4인이 챙겨간 주식배당금은 962억 원에 달하고, 오너 일가의 1년 보수만 해도 149억여 원이다.”
“벌이는 신규사업마다 수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도, 이마트 현재의 위기를 만든 장본인인 정용진 부회장은 여전히 경영실패에 대해선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 비등기 임원이다.”

정용진 부회장의 1년 보수 36억 원은 월 기본급 81만원으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마트 노동자가 163년을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다.

▲ 이마트 무기계약직 임금/최저임금대비 이마트 월 급여/영업이익/이익배당금(년도별). [자료 : 마트산업노동조합 이마트지부]

이마트지부는 “우리의 소박한 바람은 그저 각종 수당으로 점철된 꼼수 임금을 중단하고 정상적인 기본급을 지급해달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마트지부는 기본급 정상화를 위해 17일부터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이마트 본사 앞에서 항의행동에 돌입했다.

일명 ‘못난이감자’가 제값 받기를 바라는 재벌대기업 이마트 오너의 따뜻한 마음이 국민에게 전해졌듯이, 이마트 노동자들은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기본급 정상화’ 조치가 정 부회장의 진심으로 전해지길 기대하고 있다.

▲ 이마트 노동자들은 17일부터 이마트 본사 앞 ‘기본급 정상화 촉구’ 피케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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