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국가 천명... 비핵화 협상 없다

며칠 전 북미대화를 둘러싼 토크 콘서트에 패널로 참여했다가 뜻밖의 상황을 맞았다.

내노라하는 북한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내년 1~2월경, 극적 타결이 있을 것”으로 예견했다. 그 이유는 북의 경제가 제재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대화에 나올 수 밖에 없고 트럼프는 재선을 이기려면 북과 일정 타협하여 성과를 내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북미 간 설전은 늘 그래 왔듯 대타협의 전주곡이라는 해설까지 덧붙이면서. 결국 상황인식을 달리한 나는 비관론자라는 닉네임을 받아야 했다.

나는 물론 사회자의 말처럼 비관론자도 아니고 누구보다 그들의 전망이 맞아 대타협이 실현되길 소망한다. 하지만 세상사를 제대로 읽고 제대로 대응해야 그 꿈도 현실이 되기 마련이다. 안 그러면 정말 아무 말 잔치나 하고 책임지지 않는 족속이 되기 십상이다.

“오독”

북의 움직임과 언어에 대해 미국의 핵심 정책결정자들은 실제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오독한다. 덩달아 한국의 학자들도 여러 정보를 조합하여 자주 오독한다. 나는 이것이 정세를 자꾸 꼬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북은 “새로운 길”로 접어 들었다고 확신한다. 오랜 기간 그들의 언어와 행동을 살펴보면 언제나 일관성이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자주성을 훼손하면서 타협하는 법은 없다는 점이다.

올 2월의 하노이 회담은 트럼프에게 최고의 기회였고 더불어 마지막 기회가 되었다. 영변의 핵시설을 모두 없앤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북의 핵시설 80%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상응대가로 요구한 것은 기껏 민수용 제재를 해제하란 것이었다. 정말 미국과 적대정책을 마치고 새롭게 관계를 개선해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선제적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것을 발로 차버리고 밥도 안 먹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코언 청문회로 시끄러운 아메리카로 말이다. 그 비행기 안에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댄 건 그의 뒷골 당기는 불안감의 발로였다.

이후 북은 일관되게 미국에게 요구하고 있다. 셈법을 바꾸라고. 즉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지 않는 한 더 이상 비핵화 협상은 없다는 것이다. 그 제재 때문에 대화에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제재해제를 적대정책 폐기와 새로운 관계로 나가는 징표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하노이회담에서 더욱 크게 오해를 시작한 것 같다. 그 엄청난 영변을 다 없앨 만큼 제재가 아팠구나. 조금만 더 고삐를 조이면 항복하겠구나. 이러니 미국은 이제 영영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동창리에서 중대한 실험을 하고 “전략적 핵 억제력”이 비상하게 강화되었다고 하니 미국의 조야가 들끓고 있다. 덩달아 우리나라 보수언론들도 난리다. 트럼프는 영변과 동창리 발사대까지 모두 없애 버리겠다고 한 그 제안을 받지 않은 것을 지금쯤이면 매일 이불속에서 눈물 흘리며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깨어진 접시는 풀로 붙일 수 없고 쏟아 버린 물은 다시 컵 속에 담기지 않는 법이다. 고체연료를 실은 ICBM이 다시 나르든, 인공위성발사가 이뤄지든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이미 대화의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고 스톡홀름에서 실무회담을 통해 미국의 셈법은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확인한 북으로서 선택할 길은 다시 백방으로 군 자위력을 높이는 것 일 테니 말이다.

지금부터 정말 중요하다. 잘 읽어야 한다.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백마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그 북의 결기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늘 언론에서 떠들 듯 대미압박용이라고 사고하는가? 아니다. 실제 결심이 분명하게 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이런 입장이 실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진 : 9월평양 남북정상회담 특별취재단]

“우리는 핵무장국가임을 만 천하에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이제 더 이상 조선반도 비핵화 협상은 하지 않겠다. 여러 차례 기회를 주었으나 미국은 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철회하지 않았고 이에 우리는 자위력을 더욱 굳건히 키워가기로 결심했다. 전 세계 비핵화를 위한 핵보유국가들 간 군축협상은 가능하고 그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경제제재를 한 평생 받아 왔다. 그 어떤 제재도 우리의 자주권과 맞바꿀 수 없고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싸워나갈 것이다. 우리의 머리로 우리의 힘으로 자강력 제일주의로 싸워 갈 것이다. 전통적인 우방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며 전 세계 평화애호세력과 손잡고 갈 것이다. 남조선 당국은 더 이상 미국의 눈치나 살피며 다니지 말고 하루빨리 민족자주의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미국과 한국 정부는 고심해야 할 것이다. 북의 말과 행동을 자꾸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그들의 진의를 알아야 한다. 답은 하나다. 선제적으로 미국이 나서 제재를 해제하고 북과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적대정책의 폐기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정부는 빠르게 개성공단을 열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하여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을 되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이럴 징조는 보이지 않고 있으니 아마 2년은 훌쩍 더 지나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이 바뀐 후 에야 다시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길은 있으나 아무도 그 길을 가려고 하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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