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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1월11일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방과학원에서 진행한 초대형방사포시험사격을 참관했다"고 보도했다.[사진 : 뉴시스]

1. 더 이상 비핵화회담은 열리지 않는다

한반도 정세가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이 높아질 것인가를 가르는 결정적 분기점에 들어섰다. 북미가 이달 중에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한반도와 미 본토는 내년 초부터 북의 ‘새로운 길’ 실행을 보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 북의 최고지도기관인 국무위원회는 지난달 13일 “우리가 어쩔 수없이 선택하게 될 수도 있는 《새로운 길》이 《미국의 앞날》에 장차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정세흐름을 바꾸지 않는다면 미국은 멀지 않아 더 큰 위협에 직면하고 고달프게 시달리며 자기들의 실책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 

여기서 ‘정세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은 미국이 싱가포르공동성명 이후 시간 끌기를 반복하고 대북적대정책을 계속 고수해온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북은 선비핵화 조치와 미군 유해 송환 등 신뢰구축조치를 취했지만, 미국은 1년이 넘도록 무엇 하나 그에 맞는 상응조치를 취한 것이 없다. 오히려 북에 추가적인 선비핵화조치를 요구하고 경제발전, 연락사무소 같은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시간을 끌면서, 실제로는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하고, 추가 제재조치와 한국에 F-35A 같은 전략무기를 대량 배치하는 등 적대적인 조치만을 취했을 뿐이다. 바로 이점이 북미 정상 간의 우호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던 원인이요, 북이 “미국측으로부터 받은 것이란 배신감 하나뿐”이라고 강한 분노를 터트린 배경이다.

현재 북은 지난 10월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 이후 사실상 대화를 중단한 상태에서 미국에게 적대정책 폐기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 폐기조치가 없는 한 더 이상의 핵회담은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이다. 북은 지난 10월부터 2달간 11차례의 고위 대미외교 당국자들의 릴레이 담화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언론 발표를 통해 미국이 마감시한을 앞두고 취해야 할 전략적 결단을 압박하였다. 그리고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13차례에 걸친 일련의 첨단무기 시험과 동서 최남단 지역에서의 군사 조치 등을 통해 미국의 결단이 끝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미국이)더 큰 위험에 직면하고 고달프게 시달릴”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지속적으로 예고한 ‘새로운 길’의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 

릴레이 담화에서 밝힌 북의 대미협상원칙은 지난 10월 스톡홀름 실무회담 때 공식화한 ‘북의 안전권과 발전권 저해요인 제거’와 비핵화 회담과의 관계를 정식화하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18일 밝힌 “비핵화협상의 틀거리 내에서 조미관계개선과 평화체제수립을 위한 문제들을 함께 토의하는 것이 아니라 조미사이에 신뢰구축이 먼저 선행되고 우리의 안전과 발전을 저해하는 온갖 위협들이 깨끗이 제거된 다음에야 비핵화문제를 론의할 수 있다.”는 원칙은 미국의 신뢰회복 조치와 적대정책 철회 조치가 없으면 더 이상의 비핵화회담은 없다는 점에서 결정적 전환이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지난달 20일 언론 발표 역시 본질적으로 같다. 최부상은 ‘(개인적으로) 핵문제는 협상탁에서 내려졌다’고 하고, "미국과 앞으로 협상하자면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을 다 철회해야 핵 문제를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비핵화 회담을 거론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할 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노이북미정상회담에서 제기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해제’ 같은 북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라는 기존 협상 틀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이로써 기존 방식의 북미 실무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북의 핵보유가 결과라면 미국의 적대정책은 원인이기에 원인을 먼저 제거해야 근본 문제가 풀린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적대정책 철회에 대해 북은 김명길 순회대사의 지난달 14일 담화에서 밝혔듯이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같이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부차적 조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적대관계 청산을 구속력 있게 법적으로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평화협정 외에는 없다. 북은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의 구체적 형태로 먼저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2. 윤곽을 드러내는 ‘새로운 길’

북의 이 같은 단호한 요구에 현재까지 미국의 태도는 대단히 모순적이다. 한편으로 미국은 지난 달 한미연합공중훈련을 연기하여 대화 여건을 조성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알렉스 웡 미 국무부 북 담당 부차관보는 지난달 5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지난 70년간 한반도에서 지속해온 북미 적대관계 종식이 필요하고, 평화체제 구축이 북의 밝은 미래 비전의 핵심’이라고 전향적 입장을 밝혔다. 또 트럼프대통령도 지난달 17일 직접 나서 “신속하게 행동해 합의를 이뤄야 한다”며 “곧 만나자(See you soon!)”고 북미정상회담을 제안하는 등 협상타결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 방위비 부담을 50억 달러로 대폭 증액하여 주한미군 철수(감축)문제를 공론화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미국은 유례없을 정도로 한국정부를 압박해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시키고, 한미일 국방장관회담을 통해 3국간 안보협력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한미 군사위원회(MCM), 한미 안보협의회(SCM) 등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 한미일 3자 안보협력 지속’ 등을 합의하였다. 이것은 트럼프행정부가 여전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관련 통일된 입장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대북적대세력들이 외교, 안보분야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북미적대관계 청산, 한반도 항구적 평화는 대북적대를 핵심 고리로 하는 한미군사동맹, 한미일 안보협력체계와 양립할 수 없다. 미국이 지소미아 유지를 강박하고, 한국 정부가 이에 굴복해 한미동맹과 일본과의 군사적 협력을 유지하는 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는 요원하다. 한반도 평화체제란 무엇보다 이러한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적대정책이 마감시한인 12월에도 계속된다면 지금까지의 한반도 평화흐름은 바로 파국을 맞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이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13차례에 걸쳐 연속적으로 시험 발사한 첨단 무기체계와 최근 특수전 병력의 저공낙하훈련, 서해 최남단 창린도에서의 기습적인 포격훈련, 동해 최남단 장전항의 군항으로의 변화 양상 등은 북의 ‘새로운 길’과 관련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의 ‘이스칸테르’라 불리우는 신형유도미사일과 신형 대구경 방사포, 세계 유일의 초대구경 방사포는 한미의 미사일 방어(MD)망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주한미군기지를 비롯한 주요 군사시설만을 족집게 식으로 정밀 타격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주목할 점은 북의 지난달 25일 창린도 해안포 사격훈련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다. “임의의 시각에 전투임무수행에 동원될 수 있게 철저히 준비”돼야 한다는 발언은 ‘필요시 더 이상 남북, 북미간 공동선언 합의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미가 지금처럼 시간벌기와 적대정책을 고수할 경우 북도 사실상 공동선언 합의를 깰 수 있다는 것으로, 예고된 ‘새로운 길’의 함의를 보여준다. 

그리고 신형 핵추진 잠수함 건조 공개와 다탄두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의 성공적인 시험발사는 이 잠수함의 주 활동무대가 태평양이라는 점에서 미 본토 역시 안전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도 지난달 30일 "아베는 진짜 탄도미사일이 무엇인가를 오래 지나지 않아 아주 가까이에서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새로운 길’에 일본이 결코 비껴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북의 ‘새로운 길’은 뉴욕타임즈(NYT)가 예상한대로 단지 ICBM 고각발사 같은 과거방식의 무력시위나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자력갱생, 위성발사 정도가 아닐 것이다. 이런 예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정말로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면 핵무력을 완성한 북이 한반도는 물론 일본과 미 본토를 포괄하는 전 영역에서 이른바 ‘역대급’의 군력을 과시하는 역사상 최고 수위의 새로운 긴장고조로 나아갈 것이다.

3. 기로에 선 북미정상회담

이렇듯 예상되는 긴장고조에 대해 미 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는 북에 ‘도발중단’이라는 강경표현까지 쓰며 협상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이어진다면 ‘새로운 길’은 불가피하다. 상당수의 많은 전문가들이 현재의 교착상태로 해를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대북적대세력들은 그 같은 상황전개를 더 원하는지도 모른다. 긴장고조를 통해 트럼프대통령에게 타격을 줄 수 있고, 한반도에서의 기존 질서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소리(VOA)는 지난달 29일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북이 미사일을 쏘게 되면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협상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비핵화회담이라기 보다 정상회담을 열기 위한 회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제 지난 10월 스톡홀름 실무협상 같은 비핵화 의제가 포함된 회담은 열리지 않는다. 현재 미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적대관계 청산을 담보하는 북미정상회담을 열든가 아니면 긴장고조로 나아갈 ‘새로운 길’에 대한 정치, 군사적 대응을 준비하든가, 단 2가지다. 현재 미 정계에서 적대정책 철회를 책임질 유일한 주체는 트럼프 대통령 뿐이다. 그가 이미 북에게 조속한 정상회담을 제안한 상태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면 정상회담은 멀어지고, 그의 철학과 재선전략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 시간상 연내에 정상회담을 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판문점 북미정상회담처럼 갑자기 성사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공식 정상회담을 한다고 보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대통령이 진정 정상회담 성사를 바란다면 북의 리태성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 담화(3일)에서 밝힌 것처럼 ‘크리스마스 선물’을 통해 ‘새로운 길’ 시행이 유보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적대정책 철회에 대한 가시적 입장(조치)을 밝히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를 담보하고 정상회담을 열기 위한 실무회담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중‧러는 새로운 한반도 평화계획안을  만들어 1차 남북미 등 6자 당사국들에게 회람하여 “모두 이 아이디어를 지지하며 문건에 관한 실질적 의견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의견들을 반영한 최신안을 북에게 제공했고,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이 문제에 관한 토의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어 러시아는 북과 협의된 사항을 미국에 전달하였다. 이것은 중러의 계획안이 북미관계 진전에 일정하게 반영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 계획안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 일부에 대해 러시아 이고르 모르굴로프 외교차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플랫폼을 포함 제재를 점진적으로 철회하는 문제”(지난달 21일)를 거론했다는 점에서 조만간 대북제재 해제가 일정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최근 트럼프대통령은 의회의 탄핵조사 와중에도 3개의 지역에서 평소 자신의 소신대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시리아 전투지역에서의 미군철수, 아프카니스탄에서의 5,000명 미군철수와 평화협정 협상 재개 그리고 한국, 일본에 대한 방위비 급증요구 등이다. 이러한 조치는 모두 대선공약사항이자 트럼프대통령의 “나는 미국의 대통령이지 전 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다”(지난 달 26일)라는 선언처럼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 지위 포기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주목할 점은 그간 트럼프대통령의 지시에 반발하고, 심지어 사표까지 던지던 미 군부가 국가안보보좌관, 국방장관, 합참의장을 새로 교체한 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다는 점이다. 시리아 미군철수는 이미 지난해 4월과 12월에도 지시가 있었지만 군부의 반발로 실행되지 않다가 지난 10월 마크 밀리 합참의장 취임 후 바로 실행되었다. 아프카니스탄 평화협정과 미군철수 역시 2017년부터 추진하였지만 군부와 의회 반대로 우여곡절을 겪다 지난달 본격적으로 실행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제 적어도 미 군부 상층이 트럼프대통령 의중에 충실히 부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평화협정,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변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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