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 빈민스토리(21)

“수산시장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요. 택시를 타거나 자가용이 있는 사람은 자기 차를 이용하지요. 왠지 아세요? 아무리 씻어도 몸에서 나는 생선 비린내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죠….”

우리가 처음 만난 노량진 구 수산시장 상인들은 이랬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지 않을까?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 방식대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불어 산다는 것은 타인을 배려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거다. 시장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로 누군가 이맛살을 찌푸릴까 봐 평생 전전긍긍한 것이다. 이렇게 순진하고 소박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이 이들과의 연대를 위해 노량진 구 수산시장에 도착했을 때 시장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철거를 알리는 붉은 스프레이 낙서가 건물을 도배하고 있었다. 대낮부터 물건을 구매하지 말라는 수협 측 방송이 대형스피커를 통해 시장 안팎을 위협했다. ‘무질서, 더러움’은 구 시장을 낙인찍어 상권을 위협하고 고사시켜 존폐를 어렵게 만들려는 ‘표상’ 이었다.

2018년 7월12일, 2차 명도집행이 전개되었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에 가입한 후 벌어진 강제집행이었다. 다수의 노점상 대중들이 이 싸움에 합류하게 되고, 연대의 폭도 넓어졌다. 민주노총과 농민단체 그리고 시민사회, 진보정당들이 망라한 ‘민중공동행동’도 노량진 구 수산시장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했다. 1만8천 평 부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량진 구 수산시장, 시장 안에 차량으로 빼곡히 차 벽을 세우고 명도집행에 대응했다. 충돌을 앞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수협 측의 분열 공작은 멈추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얼굴 맞대고 장사하던 상인을 돈으로 매수하고 이간질을 했다. 이미 수협과 물밑에서 대화를 진행 중이던 상인들은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며 집회 대오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걸 놓칠 언론이 아니었다. 수협의 보도 자료를 받아든 일부 기자들은 본질적인 문제보다 상인들 간의 분열과 반목을 들춰내 실었다.

9월6일에는 3차 명도집행이 실시된다. 그동안 상인들은 여름내 철거와 폭염에 시달려 장사를 못 했다가 한가위를 앞두고 모처럼 분주히 장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집행관 100여 명이 동원되어 6차례 시장 내 진입을 시도했다. 이날도 상인들은 집행관들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해 오전부터 시장 전체를 차량으로 막고 시위를 벌였다. 고령의 상인들은 장화를 신고 앞치마를 두른 채 팔짱을 끼며 ‘인간 띠’를 만들어 격렬하게 저항했다. 상인들은 진입로마다 시장으로 들어가려는 집행관과 몸싸움을 벌였다. “수산시장은 내 인생의 모든 것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 수십 년 동안 장사했다”며 울부짖었다. 상인들의 저항에 부딪혀 집행은 1시간 만에 중단되었다.

10월23일, 4차 명도집행도 수협 측의 대대적인 반격이었다. 집행관 등 400여 명을 동원해 강제 명도집행에 나섰다. 이날 집행관으로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전문 용역회사에서 채용된 사람들이었다. 옥상 주차장 부지를 이용해 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거세게 몰아닥쳤다. 노점상과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사회단체 회원, 민중당 당원 등 상인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날도 상인들이 집행을 저지하는데 성공한다. 결국 수협은 중앙회 선거를 앞두고 노량진 구 수산시장의 숨통을 끊은 카드가 필요했다. 

11월5일, 48년 만에 노량진 수산시장의 불이 꺼지고 물이 끊긴다. 수협 측에서 ‘단전, 단수’ 조치를 단행했다. 수산물을 파는 상인에게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야간에 집단적인 린치가 가해졌다. 윤헌주 지역장을 비롯해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중앙의 간부들도 병원에 실려 갔다. 폭력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게토’마냥 어둠에 휩싸였던 구 수산시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기자들도 먹이를 쫓는 들짐승처럼 폭력을 흥미 위주로 실어 날랐다. 날이 밝아오자 상인들은 수족관의 생선을 더 죽일 수 없다며, 스스로 주머니를 털어 ‘전기선’을 잇고, 해수차로 물을 공급했다. 가까스로 시장의 숨통을 유지하게 된다.

해가 바뀌어 2019년 2월8일 설 연휴. 체감온도 영하 15도가 넘어가는 날씨로 온 세상이 느슨해진 상황을 틈타 수협은 시장 안에 높이 3m가 넘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설치해 출입을 봉쇄한다. 바닷가에나 설치하는 콘크리트 벽이다. 오후 7시경 최대 4백여 명 이상의 상인과 연대 단위들이 모여 집회를 한다.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이 모여 있는 집회 장소에 잘 훈련된 용역반들이 들이닥쳐 집회를 방해했다. 집회 사회자는 집회를 불법으로 저지하는 수협 직원과 용역을 처벌해 달라 요청해도 반영되지 않는다. 수십 톤짜리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치울 지게차를 두 대 섭외한다. 가까스로 입구까지 왔다가 수협과 경찰에 회유당한 지게차 한 대는 돌아간다. 마지막 남은 지게차를 시장 안으로 들여보내고 콘크리트 벽과 차량을 지게차로 옮기는 데 성공한다.

2019년 3월 김임권 수협중앙회장이 이임하고 임준택 수협중앙회장이 취임했다. 4월25일, 봄이 오늘 길목, 새로운 회장체계 아래 법원 집행인력 200여 명과 수협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5차 명도집행이 전개된다. 상인들은 시장 진입로에서 집행인력의 시장 진입을 몸으로 막으며 저지한다. 공권력의 역할을 대신하는 집행관은 신분을 확인할 수 없도록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등장한다. 이번에는 행색을 보니 남루한 차림의 노숙인처럼 보이는 이들이 몇 섞여 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희롱 섞인 농담을 하거나 여성 상인의 몸을 함부로 만진다. 여성 상인들은 치를 떨며 분노한다. 한켠에선 활어 보관장에 진입하려는 수협 직원과 이를 저지하려는 상인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전개된다. 

법원 인력이 아닌 일반 수협 직원과 용역이 집행에 참여하면 명백히 불법이다. 경찰 9개 중대 350여 명이 현장에 배치되어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같은 날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함께 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가 주최하는 시장 내 갈등 해소와 대안 마련 ‘공청회’가 있던 날이었다. 서울시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불참했다.

2019년 5월20일, 약 한 달 만에 6차 명도집행이 전개된다. 이날 저항하던 상인이 수협 직원에게 끓는 해장국을 뿌렸다. 다음날인 5월21일에 수협 직원 황*우는 야간에 음주 상태에서 1m 크기 쇠망치로 상인의 차와 가게 셔터를 부수는 행패를 부렸다. 이를 말리던 여성상인 한 명은 엉덩이뼈를 다치는 상처를 입는다. 이 장면은 JTBC 뉴스에 생생하게 방영되기도 했다. 법원은 해장국을 뿌린 상인만 구속 영장을 발부하고, 수협 직원 황*우에 대해서는 영장을 기각한다. 해머를 휘두른 자는 풀려나고 해장국을 뿌린 상인은 구속되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는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을 둘러싸고 발생한 구 시장 상인들과 수협노량진수산주식회사 직원들 간의 충돌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수산업협동조합 중앙회장에게 향후 폭력에 의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예방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과녁을 향해 떠난 화살처럼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2019년 6월27일 오전, 집행인력 50여 명과 수협 측 직원 70여 명이 명도집행에 나섰다. 7차 명도집행이었다. 인원은 줄었지만, 법원 집행관은 소위 ‘선수’로 일컫는 용역 전문 인력들로 구성되었다. 철저한 보안 속에서 소수의 인원이 기습적으로 투입되었다. 남성의 평균 키와 체격을 훨씬 뛰어넘는 건장한 청년들이 검은 유니폼과 군화로 무장하고 얼굴은 마스크로 가린 채 시장 안을 휩쓸고 다녔다. 이미 ‘공실 관리’라는 이름으로 상인의 물건을 발로 걷어차거나, 노인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낯익은 얼굴로 전국의 철거 재개발 지역이나, 노점상 단속 현장에서 악명을 날리던 사람들이다. 폭력이 일상이 되자 언론도 면역이 생긴 듯 “그래서 진단이 몇 주 나왔죠?” 더 자극적인 그림을 찾듯 시큰둥 물으면 그만이었다. 수많은 시민의 기억 속에서 노량진 구 수산시장 상인들은 서서히 잊혀가는 듯했다. 하지만 같은 시간 어두운 시장 한쪽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수협 직원 70여 명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비어있는 점포 관리’라는 명분으로 온갖 쓰레기를 시장 안으로 끄집어내어서 뿌려대고 장사를 방해하고 휩쓸며 지나간다. 시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조차 신기한 눈으로 핸드폰에 담는다. 2019년 7월23일 8차 명도집행도 소수의 정예 요원으로 구성된 용역이 본격적으로 동원된다. 악에 받친 여성 상인들이 윗옷을 벗어 던진 채 저항했다. 사내들 앞에서 몸을 드러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폭력을 막겠다는 몸부림이었다.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김정흔 씨는 수협 현대화사업 TF 팀장 이*우의 폭행에 의해 전치 6주의 진단을 받고 병원에 실려 간다. 동영상과 사진 채증이 있지만 아직 처벌받았다는 소식은 없다. 상인과 시민대책위는 수협 측을 상대로 재물손괴와 특수폭행·강도 등의 혐의로 고소하고 기자회견을 개최하며 경찰을 상대로 항의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노량진 구 수산시장이었다.

2019년 7월30일, 9차 명도집행. 이 시기부터 훈련된 용역으로 구성된 집행관과 수협 직원이 본격적으로 경찰의 엄호와 호위를 받으며 집행을 강행한다. 상인들은 몇 개 남은 점포를 지키고자 차량으로 에워싸고 저항한다. 경찰이 상인들을 방패로 밀어내자 용역들은 그사이를 비집고 절단기와 칼로 줄을 끊고 들어온다. 건물 안쪽 어두침침한 곳을 지키는 상인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폭행을 당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방안을 헤매는 경우가 있어요. 포기할까 생각을 했지만, 너무 억울해 그만둘 수 없습니다. 강남이나 명동 대로변에서 멱살을 잡고 싸움이 붙었다 치자고요. 그러면 당장 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처벌을 안 해요. 저희는 이곳에서 장사하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더욱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폭력’입니다.” ‘바람 속 촛불’처럼 폭력을 온몸으로 막으며 위태롭게 시장을 지키려는 상인들은 치를 떨었다.

2019년 8월9일 10차 명도집행을 끝으로 2017년부터 실시된 명도집행이 완료된다. 이제 수협은 집회조차 진행하지 못하도록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놓고 있다. 동작구청은 철거허가를 내주고 현재 석면 사전 조사를 하고 있다. 

상처는 겉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견디다 못해 상인들이 떠난 자리는 웅덩이처럼 군데군데 패여 시장 분위기를 을씨년스럽게 덧칠하고 있다. 한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가장 크고 번성했던 노량진 수산시장은 이제 아무도 접근하지 않은 남루한 뒷골목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노량진 구 수산시장의 풍경은 높다란 펜스 안에 갇힌 채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은 인근 전철역 주변에 새롭게 장터를 펼쳤다. 도시 속 난민처럼 육교 위에 천막을 치고 겨울을 보내고 있다. 몇 년째 겪은 지긋지긋한 폭력이 없어서 홀가분하다는 웃음 속에 고단한 삶의 그림자가 스쳤다. 전쟁 같은 먹구름이 걷히고,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사치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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