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평론(7)

▲ 평택미군기지

1. 주한미군 철군논의 개시 

한국 정치권에서 ‘주한미군 철군 논란’이 재개되었다.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전쟁을 경험한 한국의 정치권에서 금기어였다. 그 문제가 한국에서 거론된 것은 1969년 닉슨 대통령과 1977년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군 공약’ 등이 계기였다. 1979년 6월30일 청와대에서 박정희-카터 한미정상 단독회담이 열렸다. 최근 공개된 회담 기록을 보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나는 미군이 한국에 영원히 주둔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미군이 언젠가는 철수해야 하겠지만 북한이 현재 우리보다 우월하며 그들의 (대남)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병력 규모를 동결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카터의 철군 정책은 이후 미국 군산복합세력의 방해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40년이 지나 한국 정치권에서 주한미군 철군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그동안 남한의 경제력이 북보다 수십 배 커져, 북의 군사력을 압도할 태세를 갖추어서일까? 이제는 한국 스스로 자주국방을 할 능력을 갖춰서 외국 군대를 나가라고 할 때가 된 것인가? 아니면 핵을 보유한 북의 일관된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 요청에 결국 미국이 밀려서일까?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실제 한국 정치권 논의로 본격 번지는 결정적 계기는 주로 한국진보의 투쟁보다 미국 발(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주한미군 철수론과, 그와 연계된 방위비 분담 협상문제로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다시 대중적으로 공론화되고있다. 한국 정치권의 금기어가 또 하나 없어지는 순간이다.

수구보수를 대표하는 조선일보 11월13일자 사설을 보자. “트럼프 대통령이 장사꾼 논리로 동맹에 돈을 뜯으려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치인도 아닌 미군 최고수뇌부 인사가 비용 문제를 들어 주한미군 주둔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지난달 취임한 합참의장(마크 밀리)이 ‘미국이 왜 동맹을 위해 인명과 재산을 희생해야 하느냐’는 의구심을 공개 천명한 것은 이런 ‘최후의 버팀목’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그 경우 한국민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로부터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핵무장을 포함한 모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 주한미군은 필요 없다.” 수구보수세력의 불안과 반발 심리가 투영된다. 

조선일보에 이어 자유한국당도 주한미군 철수 논란에 큰 우려와 위기감을 드러냈다. 11월13일 나경원 원내대표의 중진의원회의 발언을 보자.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될 이야기가 나왔다. 상상하기 싫은 일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바로 ‘주한미군 철수’이다. 정치권도 아닌 군 수뇌부인 미국 합참의장이 주한미군에 대한 의구심을 보였다. 한미동맹이 절벽 끝에 놓였다. 단순히 방위비 분담 압박카드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저는 오히려 반대가 아닌가 이런 걱정이 많이 든다.… 이참에 한국을 떼어버리기 위해 방위비 분담으로 균열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마저 든다.” 

2. 사대의존 국방정책의 최후 

40년 전 박정희-카터 청와대 회담 이후 한국의 자주국방 상황은 얼마나 개선되었을까? 북한(조선)보다 경제력이 수십 배라고 주장하는 남한이 왜 아직도 자주국방을 못하는 것인지 국민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남한은 북의 군사력에 여전히 밀리고 있는 것인가? 왜 요란한 경제수치는 북 군사력과 ‘실전’ 앞에만 서면 이렇게 힘없이 쪼그라드는 것일까? 한국은 과연 언제까지 주한미군 주둔을 애걸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왜 부자 나라들의 방위와 방위비를 미국 혼자 부담해야 하느냐’는 주장을 논박할 근거는 무엇인가? 만약 미국에서, 한국이 추가 방위비분담금을 못 낸다면 미군을 철수하고 한국은 한국 스스로 지키라는 여론이 상당하다면 이를 논박할 근거는 무엇인가?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적인 무기수입국이었다. 무기체계가 약하거나 현대적 무기가 결코 적은 국가가 아니다. 한국은 최근 세계 최대 무기수입 3~5위권 안에 드는 나라가 되었다. 미국 군사력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 인구·육해공전력·자원·국방예산 등 50개 항목을 종합해 군사력 지수를 산출)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7위였다. 이는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북과 실전을 치를 경우 미국의 지원이 없다면 북을 이길 수 없는 기이한 존재로 여전히 남아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이 수십 년간 ‘돈 먹는 하마’로 국방비에 국민 혈세를 쏟아부었는데도 자주국방에 실패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한국의 미국 의존적 자세와 방위구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미국의 의도를 뛰어넘는 북한(조선)의 비상한 국방·군사지략에 대처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한국 군부에 ‘자주국방파’와 ‘(한미)연합방위파’가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언제나 주류를 유지하며 득세한 세력은 미국추종의 연합방위파이다. 현실에서는 초보적 민주정부가 일시적으로 집권할 경우 자주국방파 인물들이 잠시 등용되다가 다시 수구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제거되면서 원위치로 돌아간다. 
김종대 <디펜스21> 전편집장의 칼럼(노무현 정부 '자주국방' 정책은 왜 물거품 됐나) 일부를 인용한다. “노무현 정부 때 한국군주도-미군지원으로 역할이 바뀌자 한국군 장교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2009년(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에 이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다시 연합훈련과 계획 수립을 미군이 맡는 것으로 군사정책의 퇴행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주적 군사정책을 주도했던 당시 합참 작전처장 신원식 준장(육사 36기), 장경석 대령은 진급에서 탈락하여 야전이나 비작전보직으로 좌천되었다.…  이전에 자주적 군사정책을 주도했던 뛰어난 장교들은 ‘좌파장교’로 낙인찍혔는데, 이들에 대한 음해자료를 작성하고 살생부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은 바로 육사 출신 법무장교 K모(육사 39기) 준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국정원, 기무사와 결탁하여 막후 실세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군의 무수한 장교들이 좌천되거나 제거되었다.… 지난 60년간 그랬던 것처럼 한국군 발전의 싹을 제거하고 주권을 질식시키는데는 미국보다 미국의 앞잡이들인 검은 머리 한국인들이 더 심했다.” 한국에서 자주국방파가 설 자리가 없어 주변으로 밀려나는 현상은 독자적인 군 작전지휘권이 없이 미국에 종속된 한미동맹에 의해 벌어지는 필연적 결과이다. 

한국은 지난 3년간 7조6000억여 원을 들여 미국 무기를 사들인 이른바 ‘톱3’ 국가로도 기록되었다. 또 향후 3년간 10~15조 원어치를 구매하기로 한 상태이다. 미국은 한국군을 미국식 무기체계로 채우며 미국 무기를 수십 년간 팔아먹었다. 한국의 경제와 국방산업이 성장하자 미국 무기를 팔기 위하여 한국의 독자적 자주국방 능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방해 제한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정작 필요한 첨단전략정보수집 장비는 팔지 않았다. 한마디로 한국군을 자기 머리로 스스로 작전을 세우고 사고할 수 없는 군대로 만들었다.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덩치 큰 머저리 종속군대로 ‘사육’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경제와 국방산업이 아무리 잠재력이 있고 현대화되어도 독자적 자주국방체계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이다. 

나라의 중추인 국방사업은 미국추종 연합방위파의 요구대로 미국의 2류 무기체계나 검증되지 않은 신형 실험무기를 비싼 값으로 도입하는 관행으로 기형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무기구매 로비와 수조, 수천억에 이르는 무기판매의 거대한 떡고물로 먹고사는 ‘군피아’ 집단과 정치커넥션이 계속되었다. 1980년대 F-20 전투기 도입 비리, 율곡비리, 백두금강 정찰기 도입(로비스트 린다 김 사건), 록히드마틴 군사기밀 유출비리, F-X 선정 비리의혹(F35-A 전투기) 등 군피아 비리는 끝이 없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노무현 정부 때 방위사업청이 부랴부랴 설치된 주된 이유의 하나는 때마다 터지는 군피아의 거대 자금 무기뒷거래와 독점적 군수품 조달 복마전을 일단 투명케 하기 위한 긴급조처였다. 

3. 기술혁명시대의 군수산업; 기는 한국, 뛰는 미국, 나는 북한(조선)

21세기는 핵무기만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군수분야 기술혁명도 본격화되는 시기이다. 4차 산업혁명은 군수산업에도 바로 적용된다. 인공지능 무인전투기, 인공지능 함정, 군사로봇, 드론, 레이저 무기, 초소형 핵에너지 무기, 우주무기, 기능성 웨어러블 전자기계 전투복 등 다양하다. 핵무기, 로켓기술은 군 기술혁명의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값비싼 20세기 재래식 무기 수천 개도 21세기 현대화된 첨단전술 신무기 1개에 대항할 수 없는 군사기술 혁명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예를 들어 선진 각국이 현재 공들여 경쟁적으로 개발하는 레이저 무기가 가까운 미래 본격 개발되면 재래식 총·포는 21세기 중에는 박물관에서나 볼 가능성이 높다. 

지난 40년 사이 한국 보수가 망한다고 조롱하던 북한(조선)이 와신상담 자력으로 군사정치적 전략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남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사적 차원의 자주적 전략국가라 함은 핵무력의 소형화, 경량화, 정밀화, 다종화를 이루고 전략무기 운반체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전략미사일(SLBM) 등을 자립적으로 완성하였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다 최근 사드(THAAD)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무력화하는 북한(조선)판 이스칸데르라 하는 극초음속 전술(핵)유도무기 시험에 성공해 추가 배치하려 한다. 북은 경제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에도 21세기 과학기술혁명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과학인재를 육성하고 국방정책화해 4차 산업혁명을 국방과학과 군수공업에서 먼저 성공시킨 것이다. 이 기술을 이제 인민경제(민수)로 전환하고 있다. 이것이 장차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북이 21세기 새로운 산업혁명시대에 러시아, 미국과 어깨를 겨루며 초현대적 군사무기를 자력으로 생산하고 경쟁하는 세계의 군사기술패권국 대열에 들어서게 된다는 뜻이다. 북한(조선)은 우리가 인정하든 안하든 이미 우리가 생각하던 과거의 북이 아니다. 이렇게 전변된 정황이 미국과 새로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의 북미관계를 모색하는 직접적 계기로 되었음은 자명하다. 

급변하는 지구촌 기술혁명시대에 의존국방·의존철학이 낳은 결과와 자주국방·자주철학이 낳은 결과는 천양지차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의도대로 앞으로 10조 원 이상의 최첨단 미국 전략장비를 더 도입하면 과연 자주국방이 실현되는가? 아마 100년이 가도 2,3등급 무기 수입국가 신세를 면치 못할지 모른다. 한국의 자주국방 문제는 무기 도입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기술자 부재의 문제도, 군인의 문제도 아니다. 자주권 회복과 자주정치의 문제다. 방향 전환과 결단의 문제다. 

4. 국방 파산의 3중 위기; 한국방위 불능, 볼모 주한미군, 미국 본토방위 위기 

북은 지난 5월 ‘북한판 이스칸데르’라 부르는 전술유도무기 훈련을 실시하였다. 이어 8,9,10월 연속으로 신형 초대형 장거리 유도방사포 시험을 하였다. 국민들은 이것이 얼마나 심각하게 동북아시아 군사력 균형을 깨는 충격적 변화인지 감지하지 못한다. 러시아가 개발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유럽의 안보지형을 바꾸는 이른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미사일방어(MD)시스템으로 막을 수 없는 전술미사일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과거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탈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한이 미국산 ‘에이테 킴스’미사일을 따라 ‘현무’미사일을 개발하고 미국이 러시아와 INF에 머문 사이 북은 저 멀리 날았다. 북한판 이스칸데르의 등장에 미국, 일본, 한국이 충격을 받고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그 전개 속도에 놀랐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커다란 위협이 아니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북의 전술유도무기에 관해서는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데 이 무기의 성능을 다시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① 고체연료 사용 유도무기이다. 순항미사일 유도기능과 극초음속(마하6~10) 탄도미사일의 장점을 함께 보유한 신형 스텔스전술미사일이다. 
② 사거리 약 700km 범위에 비행고도는 40~60km로 궤도 높낮이 조절과 불규칙비행이 가능한 초정밀 유도무기이다. 
③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전술핵무기이다. 특히 전자기파핵탄(EMP탄) 탑재가 가능하다. 
⓸ 새로개발된 400mm, 600mm초대형 방사포(사거리 400km)의 성능은 방사포라기보다, 회피 기동능력을 보유한 정밀 연발 전술미사일에 가깝다.

이로 인한 정치군사적 파장은 다음과 같다. 
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MD)로는 방어가 불가능하다. 미국산 패트리어트(PAC-2, PAC-3) 미사일과 사드로도 요격이 불가능하다. 국방부가 새로 도입하려는 신형 패트리어트(PAC-3 MSE)의 요격 범위에 들지만 이렇게 불규칙 고속 비행하는 미사일은 거의 요격하지 못한다. 더욱이 이 무기가 신형 400mm, 600mm 방사포와 함께 연속 발사된다면 요격미사일이 이를 분리 식별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의 전략 핵무기 말고도 현재 한반도 전역과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가 이 전술(핵)무기에 대해 방어 불능상태에 놓여있다고 봐야한다.
나) 현재 패트리어트(PAC-3 MSE)를 운영하고 있는 평택 주한미군기지도 무방비 상태이다. 현재 주한미군은 북의 신형 방사포와 북한판 이스칸데르를 막을 방어수단이 없다. 군사적으로 때리면 맞는 무방비 신세로 전락했다. 해외주둔 미군 사상 초유의 위기사태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진실을 말할 수 없다.
다) 유사시 미 항공모함의 동해 근접은 물론, 대형 함선과 전략물자의 항구 근접도 어렵다. 방어망 부재로 항공기 이륙 전 공격당할 가능성이 높다. 유사시 항공모함은 오히려 취약한 타격대상으로 전락한다. 

국방부의 궁색한 해명과는 다르게 현재 이 무기를 막을 미사일방어망은 한국도, 미국도 없다. 이는 한미가 지역군사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차원을 넘어 당분간 (공격전은 제외하고)대북 방어전략을 수립하는 게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북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성능과 현재 국방부 무기체계를 아는 군사전문가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 특히 국방부는 미국산 군사정보수집 자산과 신형 패트리어트미사일을 추가 구입하겠다는 식으로 미국만 찾고 있다. 

5. 교착된 북미관계의 출구? 문재인 정부 뒤통수 맞다 

최근 진행된 11차 방위비부담금 협상과 관련해 한국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미국의 진의가 무엇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18년도 10차 협상 막바지에 갑자기 태도를 바꿔, 애초 3~5년이던 합의안 유효기간을 1년으로 줄이자고 요구해 관철했다. 돌아보면 그것은 기획된 복선과도 같다. 당시 “1년 단위로 매년 증액을 압박하기 위한 술수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올해 미국이 방위비 분담액을 5배 이상 증액 요구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 정부는 당황했다. 문 대통령이 북과 합의한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깨는 것을 감수하면서 지난 9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향후 3년간 10조원 이상 미국무기 구매를 약속했다. 한미방위비 협상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뒤통수를 쳤다. 그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실제 의지임을 확인하며 더욱 당황하고 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더 급박한 계산은 북미관계로 보인다. 언제나 예스맨 문재인 대통령의 처지는 고려대상도 못 되는 것 같다. 

조선일보는 11월21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의 5배 인상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 주한미군 1개 여단을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19일(현지 시각)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이 기사를 사실이 아니라며 즉각 반박하며 기사를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어쨌든 뜻하지 않게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국내외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협상에서 의중과 방점은 다른 곳을 향하는 것 같다. 미국 대통령선거와 우호적 여론을 위한 방위비 인상은 사실 부차적이고, 향후 북미관계에서 불가피한 출구 정비작업(평화협정, 주한미군 철수)을 단계적으로 대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6. 방위비 분담금 줄 것인가, 받을 것인가? 

한미관계는 시종일관 불평등하고 종속적이다. 일본과 독일은 패전국이니 미국 방위비를 분담할 수 있다고 치자. 한국은 피해국이다. 그런데도 한미관계는 마치 승전국과 패전국의 입장과 유사하며 독일이나 일본의 분담금 처리보다 더 불투명하고 예속적이다. 그 뿌리는 굴욕적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국의 군 작전지휘권을 미국이 갖고 있는데 있다. 
유명한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부속협정을 보자.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허락한다.” 이것은 패전국이나 식민지에서나 있을 수 있는 규정이다. 이런 한미관계를 반영해 만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도 종속적이다. 이 조약이나 문서들은 미국이 한국의 자주권을 마음대로 유린하도록 합법화한 문서들에 다름 아니다. 이를 기반으로 만든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도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종속적이다.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이란 것도 원래 소파 규정을 벗어난 것을 억지로 합법화한 것이다. 이 나라의 한미관계 법령들이란 언제나 미국의 의사와 의도를 충실히 반영해 거의 일방적으로 협상하고 굴욕적으로 용인하게 만들어졌다. 미국이 5배의 분담금 인상을 요구한다고 해도 사실 놀랄 일도 아닌 상황이다. 그것이 미국이 한국을 보는 기본태도이기 때문이다. 아니 트럼프의 말대로 50배를 인상한다고 해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방법은 처음부터 SMA 준수나 그 무슨 합리적 협상이 아니다. 시대가 바뀐 만큼 국민의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인식 대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남북 협력시대에 맞는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미군이 나갈 테면 나가라고 말해야 할 때가 왔다. 아니 미국은 작전지휘권 이양하고 이제는 나가라고 말할 때이다. 그 돈으로 자주국방하고 서민복지에 돌리자고 해야 한다. 그래야 필리핀처럼 당당하게 미군에게 주둔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 무기수입을 중단하고 군축과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자고 해야 정상국가이다. 
 
7. 한국 정당의 대응과 트럼프의 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범여권 의원 47명은 11월15일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블러핑(엄포)과 협박이 도를 넘었다”고 비판하며 인상 근거 제시를 촉구했다. 이어 우리 정부를 향해 “미국이 협박하면 ‘갈 테면 가라’는 자세로 자주국방 태세를 확립해야 트럼프 행정부의 협박을 이겨낼 수 있다”고 주문했다. 잘한 일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를 실제 미국 대선을 위해 방위비 인상 성과를 내려는 것으로 보고 있고 따라서 이를 엄포(블러핑)로 보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1월18일 “이번 방위비분담금의 합리적인 수준은 물가상승률 정도를 고려한 인상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당의 자주정책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발언이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의 발언보다도 시대의 추세에 뒤떨어져있다. 민중당은 “동맹이냐, 날강도냐” “돈 없으면 집에 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민중당은 방위비 분담이 아니라 삭감과 분담금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가장 혁신적 입장이다. 진보진영 한편(평화통일연구소)에서는 “미국의 파괴적 행동으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소파)와 이를 근거로 하는 SMA 체제는 사실상 와해됐다”고 규정하며 “협상 중단과 협정 폐기만이 불법부당한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를 중단시킬 유일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전 같았으면 북미간에 은밀히 나누어야 할 수준의 대화들이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실시간 노출되고 있다. 북의 협상원칙은 더 간명해진 것 같다. 북은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제안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처지를 배려한 제안을 모두 거둬들였다. 지금은 미국이 먼저 적대정책을 철회해야 대화에 임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베트남 하노이 제안이 너무 아쉬울 만하다. 북한(조선)은 한국, 주한미군, 미국본토의 3중 방위가 무너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 없는 운명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진보는 도널드 트럼프를 몰락하는 미국 정치권 분열, 분파의 상징으로 본다. ‘평화상생의 새로운 길’을 갈 것인가? ‘대결의 새로운 길’을 갈 것인가? 북은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최후 선택을 유도하면서도 그 선택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새로운 승리의 길’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북아와 세계사를 바꾼 인물로 남을지, 아니면 역사의 패자로 남을지 모를 긴박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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