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홍콩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시위대가 한 남자의 가방을 검색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이날 오후까지 평화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으나 밤이 되면서 시위대와 경찰이 다시 충돌했다. 2019.11.16 [사진 : 뉴시스]

[경희대 임채원교수는 최근 자신의 경향신문 기고문 “시진핑의 헛된 꿈 중국몽”에서 중국정부가 홍콩시민의 민주주의와 자치 요구를 무시한 채 강경대응을 지시함으로써 ‘일국양제’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임교수는 지금의 홍콩 정세를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완강한 폭력적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일부 홍콩시위대야말로 행정수반에 대한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홍콩독립’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6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홍콩사태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한국 언론들은 그것을 ‘제2의 광주항쟁’이라는 시각에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홍콩 사태와 80년 광주항쟁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광주항쟁은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에 맞선 ‘민주화 투쟁’이었는데 반해, 지금의 홍콩 사태는 이미 민주주의가 고도로 실현된 기반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오랜 기간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국제적 개방도시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반년 넘게 별 탈 없이 진행되어 온 집회와 시위, 그리고 그것들이 자유롭게 취재되고 시시각각 해외로 보도되고 있는 활발한 언론 활동은 지금 홍콩의 민주주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80년 당시의 광주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홍콩은 기본적으로 ‘일국양제(一國兩制)’ 하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자치’를 보장받고 있다. 예컨대 독자적인 홍콩화폐를 발행하고, 경제정책에 있어선 완전히 독자적인 정책결정이 이루어진다. 또 자체 경찰병력을 보유함으로써 일상의 치안유지를 책임지며,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교육체계와 그 내용 역시 스스로 결정한다. 일각에선 이 때문에 과거 영국 식민지하의 ‘서구 우월주의’ 교육 잔재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이다. 사실 이 점은 최근 학생들이 왜 반(反)중국 정서와 친 서구성향을 보여주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어떻든 입법, 경제, 행정, 치안, 교육 등 제 방면에서 이 정도의 높은 자치를 누리는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할 수 있다.

홍콩과 광주의 두 번째 차이점은, 광주항쟁은 순수하게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주된 것이었다고 한다면, 홍콩은 사실상 ‘독립’에 대한 요구를 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홍콩 시위대가 표면상 요구하고 있는 것은 행정장관에 대한 ‘직선제’이다. 하지만 이들 시위대가 이미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천명했듯이 이 같은 직선제는 사실상 ‘홍콩독립’에 대한 요구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 홍콩과 같이 고도로 개방된 국제도시에서, 또 거기에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자가 6만여 명이고, 영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만약 행정수반에 대한 ‘직선제’까지 이루어진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비근한 예로 요즘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들 수 있다. 그곳에서는 지난 2017년 완전한 주민 직선제로 선출된 행정수반과 각료들이 독립을 선언했다가 스페인 정부에 의해 거부당하고 체포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근 대법원에서 반역죄로 기소된 이들에 대해 중형이 선고되면서, 카탈루냐 주민들은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연일 과격한 항의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홍콩에서도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만약 독립 성향의 후보가 당선된다면 홍콩은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것이고, 중국정부는 결코 그것을 허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홍콩은 자칫 ‘내전’이라는 커다란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일찍이 이라크, 우크라이나 그리고 시리아 등지에서 무수히 보아 왔던 사태가 바로 한반도 가까운 인근에서 재현되게 되는 것이다. 중국궐기 저지를 제일의 국책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서구세력이 배후에 있는 한 이 같은 시나리오는 결코 공상 만은 아닐 것이다. 원래 문제의 발단이었던 ‘송환법’이 이미 공식 철회되었음에도 아직까지 홍콩 사태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홍콩 사태는 그 성격에 있어 단순한 민주주의 투쟁이라고는 볼 수 없다. 사실상 그것은 ‘일국양제’를 인정하는가 부정하는가의 문제라고 보여 진다. 이 점에서 80년 광주 민주화운동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광주시민들은 비록 신군부의 만행에는 분노하였지만, 광주와 전라도의 독립을 추호도 꿈꾸지는 않았다. 

셋째, 언론의 보도태도에 있어서의 차이점이다. 80년 당시 한국 언론들은 광주항쟁에 대해 ‘친정부’ 일색으로 보도하였다. 그것은 당시 언론통제 하에서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홍콩 사태에 대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보도가 그와는 정반대로 ‘친시위대’ 일색인 것은 의외라 할 수 있다. 이는 한편에선 앞서 지적한 홍콩에서의 취재와 언론보도가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른 한편 그것을 보도하는 언론 매체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광주항쟁 당시 한국 언론들은 봉쇄되지 않았다. 조중동과 KBS 등 신군부 편에 섰던 언론매체들은 시위대가 군인들한테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것과 같은 정부쪽에 유리한 장면만을 보여주었다. 지금 홍콩 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것은 시위대에 유리하고 우호적인 장면뿐이다. 그렇지만 직접 중국어 인터넷매체를 통해서 보게 되면 홍콩정부와 경찰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규모 역시 상당히 큰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홍콩 빅토리아만에서 경찰의 질서수호 노력을 격려하는 어선이 플랭카드를 내걸고 항해하는 모습, 일부러 경찰서를 방문해 격려와 위로를 보내는 시민집단의 행렬이 이어지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와 관련된 보도들은 한국 언론에선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시위대가 폭력화하는 것을 비판하는 홍콩 시의원이 백주대낮에 테러 당해 병원에 실려 가거나, 신화사 기자가 폭행당하는 사건은 국내에선 아예 무시되거나 심지어는 시민들의 ‘정당한’ 적개심의 표현으로 미화되기까지 한다. 이는 시위대 중 누군가가 경찰에 의해 부상당하는 장면에 대해선 일제히 대서특필하는 태도와 선명하게 비교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홍콩 사태의 보도와 관련한 이 같은 언론의 공정성 문제는 물론 한국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잠깐 언급한 카탈루냐 사태와 비교할 때 그 점은 더욱 선명하다. 사실상 양쪽 모두 주민자치에 기반 한 ‘분리 독립’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홍콩처럼 카탈루냐 사태를 줄기차게 보도하는 언론매체를 한국과 서구에선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 같은 편파보도는 자칫 한국 독자들의 공정한 판단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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