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 빈민스토리(20)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과 고통받는 상인들1)

이번 글은 공식적으로 장사를 하던 일반 상인이 노점상이 된 사례다. 노량진 1호선 전철에서 내리면 길게 이어진 육교 위에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수산시장 안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로 그들은 거리의 노점상이 되어버렸다. 오래전 사람들은 멀리 6.3빌딩과 수산시장을 알리는 굴뚝을 바라보며 노량진수산시장으로 향했다. 아래로는 간혹 전철과 기차가 다니는 좀 묘하고 스릴 있는 공간이었다. 긴 육교와 옥상을 거쳐 건물 안으로 천천히 내려오면 울긋불긋 등불이 켜져 있고, 그 아래 상인들이 온갖 수산물을 펼쳐 든 채 장사 하는 거대한 전경이 펼쳐졌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이곳을 방문했던 아이들에게 그 광경은 잊지 못할 추억과 볼거리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2019년 9월 말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수협)은 이곳을 완전히 폐쇄했다. 수년간 상인과 시민사회단체는 노량진구수산시장을 살리려는 노력을 전개하였지만, 지금은 폐허와 텅 빈 공간이 되어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약 80여 명의 상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도시 난민처럼, 길고 긴 육교위에 텐트를 치고 한겨울 농성을 시작하고 있다. 그동안 노량진 수산시장 뿐만 아니라 옛 시장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현대화 사업이 추진되었다. 명분은 낡고 지저분한 것을 정리한다는 것이었지만 정작 부산의 자갈치 시장현대화 사업처럼 많은 상인이 삶에 공간에서 밀려났다. 그나마 서울의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은 민주노점상전국연합으로 조직된 노점상이 시민사회단체와 연대기구를 구성하여 현재까지 대응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기존의 노점상뿐만 아니라 공식 상인들조차 밀려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 게 되었다. 
 

▲ 불박힌 노량진수산시장[사진 : 필자 제공]

1.노량진수산시장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수산시장이라고 불릴만한 최초의 것은 조선의 시전과 난전에서 운영되던 어물전(魚物廛)이다. 이때의 시장은 커다란 시장 안에 수산물을 파는 곳으로 유통과 보존 상태가 어려워 싱싱한 수산물을 판매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소비시장이 급격히 확대되자 수산물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시장이 점차 생겨나게 된다. 1905년~1909년 교통시설과 상권이 밀집한 서울역 앞, 회현동, 용산에 수산시장이 등장하게 되었다. 1928년 위생과 관리감독을 위해 세 개의 시장을 통합해 서울역 염천교 근처에 경성부수산시장이 생겨나고 경성수산주식회사가 운영된다. 해방 후에는 운영주체가 서울수산시장주식회사로 재편되었고, 1975년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자회사인 한국냉장(주)이 시장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노량진으로 옮기게 된다.

사실상 노량진구수산시장의 갈등은 2002년 공기업민영화 추진계획으로 한국냉장이 민간에 매각되었는데, 바로 수협중앙회로 이전되면서 부터다. 노량진수산시장을 둘러싸고 의혹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시장개설자인 서울시는 '재정 여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인수를 거절한다. 결국 노량진수산시장 부지와 건물은 수협이 단 50억 원으로 1450억 원의 정책금융을 받아 노량진수산시장을 인수한다. 재정 여력이 없어 인수할 수 없다는 서울시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당시 노량진수산시장은 저절로 가치가 오르는 괜찮은 부동산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2) 

그리고 2008년 수산물유통체계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수산물도매시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협은 국비 1540억원 등 총 2241억원 지원을 받았으며, 국비 70% 수협 30%를 투자해 2층 지상 6층 면적의 신시장이 완공된다. 2015년 신시장이 건축완료 했고 2016년 부터는 신시장에서 경매가 시작됐다. 오랫동안 구시장에서 진행됐던 경매 공간이 옮겨지며 구시장 상인들은 큰 타격을 받았으나 당시 구 시장 전체 상인의 40% 가량이 신시장 입주를 거부하였다. 한 상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노량진 수산시장은 지난 50년간 나에겐 집보다 더 집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지. 지금은 잊혀졌는데 노량진에 수산시장이 생기기 전에는 서울역 근처 염천교에 수산시장이 있었다네. 20대 중반부터 그곳에서 장사를 시작했고, 지금은 내 나이 75세를 넘겼지. 그 당시 염천교에서 이곳으로 이전할 때 많은 상인이 별 불만이 없었어. 튼튼한 지붕도 있겠다, 물도 전기도 잘 들어왔으니, 우리가 뭘 더 바라겠어? 염천교에서 내지도 않았던 월 임대료를 내야 했어도 우리 상인들은 그저 행복했다네. 그래서 수협이 현대화 시장을 만든다고 했을 때 우리더러 아무 걱정 하지 말라 해서 우리는 그저 더 좋은 환경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기대했지. 하지만 그 기대는 산산이 무너지고 말았어” 

50년째 장사하고 있는 ‘김끝순’ 상인의 이야기다. 

2.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과 상인들과의 합의
 
수협은 수산물도매시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2009년부터는 중도매인 및 판매상인, 출하주 등 466명을 대상으로 9회에 걸쳐 사업 추진현황 및 기본계획 설명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해 7월 9일 사업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수협에서는 당시 상우회 761명 중 80.3%인 518명, 중도매인조합 176명 중 73.8%인 130명이 사업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수협이 노량진수산시장의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 합의를 통해 현대화 사업을 추진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상인들 주장은 다르다. 윤헌주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노량진 수산시장 지역장은 사업추진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공개적인 의견수렴 절차가 미비했다고 전한다. 특히 ‘양해각서’ 2항에 따르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경우 수협과 시장유통종사자 간 상호협의하여 문제해결에 공동노력 하기로 한다.’라는 조항과 관련하여 수협은 이와 같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현대화 사업의 효과와 기존 시장 유지의 효과가 비교되지 않았으며, 수산시장 상인들이 장사하는 공간이라면 설계도면뿐 아니라 공간 시뮬레이션이라도 해야 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건물이 다 지어질 때까지 공개를 하지 않았고, 상인들이 요구한 공청회 등 다양한 대화의 요구를 묵살했다고 전한다. 양해각서에 따른 ‘상호협의를 통한 공동의 노력이 없었다’는 뜻이다.3)

대신 2007년 8월 해양수산부는 ‘노량진수산시장 제2아셈몰로 거듭난다’는 보도자료를 통해 수산테마파크 건립을 추진해왔다. 2015년 수협중앙회는 기존 시장부지를 대상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복합리조트 사업에 신청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도 지상 52층 규모의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가 서울 균형발전을 위한 교두보라며 지원하고 나섰다. 수협이 복합리조트 사업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이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TF위원이었고, 차은택을 자문위원으로 추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동산 개발 의혹이 더욱 커졌다.4) 박원순 서울시장도 “수산시장 사태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건물을 짓기 전에 먼저 상인들의 고충과 이해를 들어주고 나서 지어도 늦지 않을 겁니다.” 라고 인정했듯이 상인들과의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화 시장은 엉망진창이었어. 지금보다 더 좁아진 자리에 두 배나 높은 월 임대료, 통풍도 잘 안 되고 미끄러운 바닥까지....... 수협은 현대화 시장을 이렇게 만들 거라고 그 어떤 예고도 하지 않았다고. 수협 직원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설득했지만 그게 안 먹히니까 전기랑 물을 끊는다고 협박까지 했지. 우리 수산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내 장담하지. 남은 상인 모두가 강제로 현대화 시장에 들어가야 한다면 50년 넘게 일해 온 이 가게 문을 닫을 걸세. 그게 내 마지막 선택이야.”

김끝순 상인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3,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은 성공했는가? 

상인들은 신시장의 설계부터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도매시장은 경매장까지 차가 들어와 상품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수산물경매를 진행한다. 도매와 소매가 함께 있는 시장은 경매장과 판매대가 인접해 있어야 하는데, 건물을 높게만 짓다 보니 신시장은 1층에 경매장이 있고, 2층에 좌판대가 있는 판매장으로 공간이 구획됐다. 윤헌주 노량진구수산시장 지역장에 따르면 “과거 구 시장은 수산물을 다 펼쳐놓고 직접 골랐는데, 신시장은 경매 공간이 좁아서 샘플만 확인하고 산다. 물건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신시장은 처음 설계 과정서부터 상인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설계를 하다 보니 전형적인 성과주의식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신시장은 생선을 놓고 파는 좌판대의 면적이 구 시장의 2평인 6.61m²에서 1.5평인 4.96m²로 줄었다. 새로 지은 건물은 사방이 갇혀 있는 ‘밀폐형 복층’구조로, 심지어 환기가 안 되고 장소가 협소하거나 상품을 다 펼치고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신 임대료는 구 시장의 경우 20만 원 후반대지만, 신시장에 목 좋은 점포 평균 임대료는 70만 원 이상으로 1.5~2.5배 비싸졌다. 그리고 현대화사업이 완료된 2015년부터 매년 임대보증금이 급격하게 늘어나는데, 2016년에는 전년 대비 26억 원, 2017년에는 37억 원, 2018년에는 29억 원이 늘어났다. 이는 고스란히 노량진수산시장의 상인들이 부담하는 규모로, 현대화사업 전인 2014년과 비교해도 현재 노량진수산시장 임대료 규모는 100억 원 가까이 증가하였다. 즉, 수산물유통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현대화사업은 거래량이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40%(2002년 대비)나 줄고 있는데도, 임대료 보증금은 58%(2014년 대비)나 증가하고 있다.5) 이에 대해 수협 측은 매장 면적은 구시장 상인들이 기존 통로 공간 1.65m²를 무단 사용해 차이가 나는 것이며, 임대료는 새로 지은 건물에다 관리비 등을 고려하면 비싼 편이 아니라고 해명한다. 

사실상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은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경매에 올라온 수산물의 총 거래금액은 2014년 3584억6900만 원에서 2017년 3163억2800만 원으로 11.75% 줄었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노량진 수산시장의 운영은 더 나빠졌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김종회 의원에 따르면 노량진수산시장은 2015년 3억3500만원 적자를 시작으로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손실액은 82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부채는 300억원을 돌파했다. 수협유통은 2015년 13억2300만원, 2016년 28억5100만원, 2017년 34억6000만원 등 3년 연속 적자를 냈다.6)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지도경제대표 이사 기본보수는 1억6800만 원에 성과급 100%, 상임이사는 연봉 1억2000만 원에 80%까지 성과급을 받았으며, 수협의 억대 연봉자는 2013년 93명에서 지난해 379명으로 4배나 늘었다.7) 

IMF 지원된 1조 원에 가까운 공적자금도 제대로 갚지 못한 상황에서 억대 연봉은 꼬박꼬박 챙긴 셈이다. 이렇게 국내 최대 수산물시장이라는 노량진수산시장의 명성은 점점 퇴색하고 있다.

▲ 노량진 수산시장은 서울시민의 집단적 기억이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사진 : 필자제공]

4.노량진구수산시장은 과연 허물어야 하는가? 

수산시장은 C등급으로 보수 및 리모델링이 가능한 저층 건물이다. 그러나 수협은 구 시장 부지가 낡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홍보했다. 심지어 2019년 9월 수협 측에서는 구 시장과 용산역을 잇는 케이블카를 건설하여 노량진관광특구를 만들겠다고 하였으며, 서울시 및 동작구와 협의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케이블카 건립계획을 접하는 순간 수협의 목적은 자본을 뒤에 업은 이익집단들이 공공재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적 이득을 취하려는 목적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만일 수협의 의도대로 용산과 수산시장을 잇는 케이블카가 추진된다면 수많은 환경문제와 교통체증은 물론 개인의 사생활침해까지도 문제가 될 것이다.8)
노량진 수산시장의 근본문제는 우리나라의 현대화사업의 방식에 있다. 수협은 누적된 적자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량진구수산시장 부지를 허물고 주변부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개발사업은 주민공동체를 파괴하고 원주민을 내쫓는 뉴타운 사업방식으로 추진되었다. 시장 현대화사업도 유통구조에 맞지 않는 건물을 무리하게 지어 곳곳에서 상인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과거처럼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낡은 것은 없애고 새것을 만드는 방식의 개발보다는 ‘역사를 복원하고 상생을 통해 지속 가능수산물유통 선진화’를 모색하겠다는 정책을 피력했다. 노량진수산시장 구 시장은 서울시 미래유산위원회에 의해 '미래유산'으로 선정될 정도로 서울시민의 집단적 기억이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오래된 이발소와 식당 등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것을 보존하자는 목소리가 높은 지금,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땀과 함께 상권을 만들어온 공동의 노력을 짓밟아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보면 폐쇄를 알리는 낙서가 보이는 커다란 건물, 그곳에서 시장 보존과 상인 생존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2018년 6월 민주 노점상전국연합에 문을 두들겼다. 이렇게 몇 년 전부터 공식 상인들이 노점상 단체에 가입되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생존권을 둘러싸고 상인과 노점 상간의 경계가 흐려진 것이다.

<본문각주>

1) 2016 04 08 노량진수산시장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공청회자료 <89년 역사의 전통 노량진수산시장은 꼭 지켜야 합니다.> 참조 
 
2) 오마이뉴스 2019 0629 노량진수산시장 사태, 서울시 예전부터 이상했다.

3) 한국지방행정학보 제 13권 3호 2016. 12. 전통시장 현대화 과정의 정책 네트워크분석

4) 한국일보 2016.12.08.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의 촛불

5) 오마이뉴스 2019. 07. 01. 수산물유통선진화 대신 깡통이 된 노량진수산시장

6) 국민일보 2019. 10. 27 수협 경제사업 부실… 누가 책임지나
 
7) updownnews 2019.1106 수협, 공적자금 1조원 상환 않고 임원들은 억대 연봉에 성과급 잔치
 
8) 2019. 9. 25 노량진수산시장시민대책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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