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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공사’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최인기 빈민스토리(19)
  •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 승인 2019.11.0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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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6월 청계천 복원공사에 항의하는 노점상

1.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사업 홍보에 주력하였다

▲ 표-4. 2003년 11월 28일~12월 16일까지 도시빈민 관련 보도현황 재구성 1)

청계천 복원사업의 시대적 명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서울시는 막강한 조직력을 이용해 복원공사 초기부터 ‘친환경 복원’ 그리고 ‘역사문화 복원’이라는 시대의 주요 의제를 접목해 복원공사의 필요성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나갔다. 서울시는 다양한 언론 대중매체를 통해 청계천 투어와 같은 시민참여 프로그램, 하이서울 페스티벌과 같은 대 서울시민을 상대로 한 축제와 이벤트를 진행하며 복원 이후의 장밋빛 청사진을 입체적이고 화려하게 홍보해 나갔다. 또, 이러한 흐름에 편승해 소설 박경리씨와 도올 김용옥 등 문화계, 학계 인사의 입을 통해 사업의 정당성을 알려 나가면서 일부 서울 환경단체까지 청계천 복원사업에 지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한편 정당한 문제제기를 한 시민사회단체에겐 ‘대책 없이 발목 잡는 집단’과 ‘청계천 복원을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대안 없는 세력’으로 몰아붙였으며 영세상인·노점상·철거민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숨바꼭질 영업, 과격, 격렬 저항, 아수라장……’ 과 같은 단어를 동원해 집단이기주의 또는 과격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등 서울시는 압도적인 방법으로 여론 홍보 사업에 주력하였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서울시민과 이해당사자를 둘러싼 여론이었다. 서울시 내부 자료에 따르면 1년간 4,000회 가까운 여론 수렴과정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실체는 누굴 만났고, 어떠한 논의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이 밖에도 공청회 1차례, 시장 면담 2차례, 부시장 2차례 만남 이 있었다고 하지만 내용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면담 역시 논의를 열어놓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 결정을 위한 하나의 절차나 압박용으로 마감 시한을 정해놓고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이었다. 2005년 10월 1일 서울시 ‘새물맞이 축제’ 홍보비만으로 12억의 비용을 집행하였으며, 2박 3일 동안의 축제기간동안 33억에 가까운 예산안을 투입한 것으로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사업을 위하여 여론홍보에 얼마나 많은 열을 올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2. 돈 잔치로 점철된 청계천은 친환경적인가?

청계천 복원은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처음 서울시는 3,600억 원을 집행하기로 했지만, 실제 비용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청계천이 유지되기 위해 많은 에너지와 돈이 들어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 자연의 이미지를 지속해서 연출해내기 위해선, 150마력짜리 전기모터와 대형 변압기를 이용해 12만 톤의 물을 한강에서 끌어다 24시간, 365일 내내 수도꼭지로 흘려보내야 한다. 10년 전 기준으로 전기료는 매일 238만 원(연 8억 7천만 원)과 물값은 469만 원(연 17억 1445만 원)에 이르러, 매일 707만 원의 시민 세금이 물과 함께 그냥 흘러가고 있다. 물값, 전기료를 포함한 전체 유지관리비를 계산하면 연 70억 원이 될 것으로 서울시는 밝히고 있다. 한강의 20개 다리를 유지·관리하는 데 연 24억 원이 드는 것과 견준다면, 현재 5.4km 구간을 유지·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청계천은 ‘돈의 힘으로 물이 흐르는’ 하천이 된 셈이다. 세월이 흘렀어도 재정적 투자가 과연 적절했고 효과적이었는지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

3. 정치적 희생물이 된 청계천

청계천 복원공사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정치적 일정에 맞춰 2003년 7월부터 2005년까지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다. 도시를 둘러싼 정책이 정치인의 선심성 공약으로 추진되어 임기 안에 서둘러 끝마치는 대표적인 선례가 되었다. 복원공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4시간 내내 작동해야 할 양수 시스템에서 사고가 발생하며 안전 문제가 대두되는 등 관리와 유지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름철 집중 폭우 뒤에 하도를 원상 복귀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으며 특히 악취 문제는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녹조가 생기거나 죽은 물고기가 떠오르는 등 생태적 기능도 심각해 ‘친환경 청계천’이 아니라 ‘뚜껑 없는 어항’이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청계천의 성공적 복개에 쏟아졌던 국민적 찬사가, 전기동력을 이용해 상류 지천의 물을 저류 해 흘려보내고 시멘트로 덧칠된 구조물은 진정한 생태 기능이 갖추어지지 못했다는 인식으로 전환 되었다. 지속 가능하지 못한 복원은 미래세대에게 엄청난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 된다. 진정한 청계천 복원을 통해, 즉 서울에 사라진 자연의 생명을 되돌려내고, 묻힌 역사를 되찾아 도시의 정체성을 회복함으로써 시민들이 쾌적하면서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도시 실험의 기회, 즉 ‘서울을 진정 서울답게 만들 기회’를 박탈당한 것에 따른 비용이 가장 큰 것일 것이다. 그 비용은 모두 서울시민들이 떠안아야 할 과제인지도 모른다. 정치적 희생물이 된 청계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4. 청계천 시민사회 연대기구에 대한 약평

청계천 복원공사를 둘러싸고 이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여러 당사자의 문제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함께 연대했던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이런 이해당사자들의 문제를 집단이기주의와 이익집단으로 보는 시각이 일정 정도 존재했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청계천 연대기구’를 구성하는 과정속에서 부딪혔던 미묘한 문제였다. 시민의 공적 문제와 생존권의 문제는 서로 공존해야 할 사안으로 청계천 복원 이후 이곳의 변화가 주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어떤 공간으로 재편되는가를 간과한 것이라 하겠다. 이에 노점상 철거민 조직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된 ‘청계천 연대’에서 탈퇴하게 된다.

청계천 복원 사업이 추진되던 시기는 노무현 정부가 집권하던 때로 합의 기구를 통해 이해 당사자와 협력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아래로부터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소외계층을 포함한 도시 빈민이 시민사회단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모색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여론기구가 뒷받침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저소득 도시빈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중단체와 정책적으로 협력 보완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 및 정치조직 간의 유기적인 사업이 일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해당사자 또는 주민들의 참여가 계획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보장되거나, 아래로부터 의견을 청취하고 공동으로 기획하며 논의와 합의를 통해 진행돼야 했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이를 가능케 하는 풍부한 경험과 토대가 미흡한 상태다.

5.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와 구둣방 할아버지의 죽음

2014년 3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의 오픈에 대해서도 언급이 필요한 대목이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끝나고 2006년 동대문운동장의 공원화 및 대체 야구장 건립 추진계획이 나온 지 8여 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랜드마크 건설은 주변 노점상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3년 5월 어버이날을 앞두고 평화시장 앞 노점상을 강제 철거하더니 같은 해 6월 신당동 노점상에 대한 단속이 있었다. 그리고 6월 25일에는 청계천 황학동 성동공업고등학교 옆 노점상을 철거했다. 수십년 노점에서 장사하던 노점상 20여 명의 물건이 트럭에 실려 가는 과정에서 중구청에서 고용한 용역에 의해 강탈당하고 훼손되었다. 이로 인해 노점상은 수천만 원대에 이르는 재산 피해를 입게 된다. 한두 명 노점상에 대한 정비가 아니라 황학동 노점상을 거의 싹쓸이하는 수준이었다. 강제 철거에 나선 원인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오픈 일정을 앞두고 있었고, 박정희 기념공원 건립을 위해 길목에 있는 성동공업고등학교 근처 노점상에 대한 단속을 위한 것이었다.

▲ 2014년 노점상 조병호 씨의 운명

한편 2014년은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고와 같은 사건이 연일 벌어지고 있던 시기다. 3월 7일 성동공업고등학교 옆 노점상이 사망하게 된다. 직접적인 사인은 폐렴이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80살인 조병호 씨는 한평생 구두를 꿰매고 수선해주는 대가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단둘이 사는 아내와 함께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왔다. 중구청에서 수차례 포크레인과 지게차 그리고 용역반을 동원해 장사 자리를 철거하고 싹 쓸어 갔다. 조병호 씨는 구둣방 노점을 운영하는 것 말고는 달리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빼앗긴 신발과 물건을 되찾아와 장사하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12월 12일 중구청은 조병호 씨를 비롯한 중구 중앙시장 앞 20여 명의 노점상 자리 위에 화단을 설치해 버렸다. 그 후 노점상은 자신이 비용을 들여 화단이 있는 곳에 박스 형태의 노점 마차를 설치해 장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중구청에서는 이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무려 2014년 2월 한 달 동안 조병호 씨를 비롯하여 노점상에게 두 차례에 걸쳐 40만 원씩 총 8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였다. 그 후 조병호 씨는 생활고와 스트레스, 그리고 지병인 폐렴으로 국립의료원에 입원하였다가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점상의 운명을 무시한 행정이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끝나고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파크’가 들어서면서도 마찰은 멈추지 않았다. 2015년 7월 30일 새벽 2시경 최창식 중구청장은 종종 디자인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각적으로 문제가 된다며 노점상을 단속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피력했다. 청계천 황학동 성동공업고등학교 주변 노점상에 대해 다시 대대적인 행정대집행이 전개되었다. 중구청 직원과 용역반 50명은 지게차 5대를 동원하여 마차 20여 대를 부수고 4대를 압수해 갔다. 당시 한국 사회를 강타한 메르스 여파에 따른 소비침체로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당해왔던 노점상들은 대부분 노동능력이 없는 고령의 상인이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사람들이었으나 ‘디자인화’ 사업은 이들에게 한 뼘의 공간도 허용하지 않았다.

6. 도시재생 속에 은폐된 개발

한국전쟁이 끝난 후 청계천 변에는 낡은 판잣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공구상가를 중심으로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지면서 한국 산업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같은 시기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새마을 운동으로 고물들이 늘어나자 구제 물품이 청계천으로 모여들었다. 골동품과 헌책방들이 들어서면서 커다란 규모의 벼룩시장이 만들어졌다. 청계천 일대를 땀으로 일구어내며 한평생 살아왔던 사람들은 복개와 복원이 반복되고 개발이 전개될 때마다 낡거나 추한 것으로 찍혔고 광풍 같은 여론에 밀려나야 했다. 그들은 지금도 어디론가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최대 치적으로 손꼽히는 청계천 복원사업의 과정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 차례 새로운 서울시장이 등장했지만, 청계천을 황금알을 낳는 금싸라기 땅으로 둔갑시키겠다는 계획은 누구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 청계천 복원공사는 서울시 주도의 사업이었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청계천과 을지로 개발사업은 다르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형성되어온 산업 시대의 도시경제가 금융,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도심 공간 역시 변화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내막은 부동산 투자를 목적으로 제도 개악을 통해 용적률을 높여 주거나 주민을 분열시켜 자본의 이윤을 챙겨주는 방식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점상 문제를 살펴보면서 청계천이란 공간까지 들여다봤다. 그리고 ‘도시재생사업’으로 은폐된 채 ‘세운 재정비촉진지구’라는 개발이 전개되고 있다. 세운상가 주변 한쪽은 요란한 굉음과 함께 굴착기가 고갯짓한다. 작은 공장 안에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지만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또 한쪽은 핫플레이스로 밤에는 불야성을 이루며 호프집에 사람이 넘쳐나고 축제공간으로 뒤바뀌고 있다. ‘고생하면 성공한다’는 말 대신 평생 일한 사람들에게 돌아온 대가는 삶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이 되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거짓이 되는 세상이다.

현재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계천 을지로 공구상가 지역의 개발 중단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더 늦지 않게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주민참여를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저항이 시쳇말로 ‘뼈를 때린다’는 말처럼 공간을 둘러싼 저항, 투쟁의 중요한 선례로 만들어지길 바란다.

<본문 주석>

1) 빈민생존권 문제에 관한 최근 언론보도의 문제점 토론자료 중
- 2003년 12월 17일 이송지혜(민언련 모니터 부장) -

2) 미디어다움 - 6월 이명박 시장 인터뷰 -

3) 도시빈민에 대한 언론의 태도 - 민언련 주최 토론자료 최인기 -

4) 청계천 복원사업의 갈등관리 전략 - 성지은 -

5) 서울시 공공갈등관리연구 - 시정개발연구원 -

6) 국감자료에 따르면 해외광고를 비롯해 대교 현판, 포스터, 방송 생중계, 광고제작 등에 모두 12억950여만원이 지출됐다. 항목별로는 해외광고에 3억9300만원, 중계 및 일간지·잡지 광고 4억2000여만원, 홍보탑(4개) 1489만원, 포스터 950만원 등이다. 여기에는 또 대교 현판(20개), 배너기(1500개), 리플렛(7만개), 가이드맵(14만개), 프로그램지(10만개) 등의 비용도 포함된다. - 2005년 10월 7일 한겨레 -

7) 자연을 거세한 청계천 복원 - 조명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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