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고는 김정호 박사의 조국사태를 둘러싼 정국진단과 변혁운동에 대한 제언이다. 조국사태의 바탕에는 한국자본축적체제의 위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는 필자의 견해가 돋보인다. 또한 이를 해결하는 근본은 재벌체제개혁이며, 변혁진영의 과제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인 제안을 던지고 있다. 이에 일독을 권한다. 분량이 많이 2회에 걸쳐 연속으로 연재한다[편집자]

‘조국사태’ 전후한 정세 동력과 변혁진영의 과제

1. 현 정세의 특징
2. 현 정국의 동력은 한국경제 축적체제의 위기로부터 온다
3. 관건은 재벌개혁
4. 재벌개혁에 대한 각 정치세력의 태도
5. 한국 변혁진영의 과제

 

4. 재벌개혁에 대한 각 정치세력의 태도

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반동 보수세력은 미국 등 국제 보수세력과 손잡고 신 냉전체제와 남북대결을 조장하는 가운데 어떻게든 현재의 재벌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이 경우 중국의 도전과 4차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 속에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는 한국경제는 ‘국제 하청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소위 ‘광주형 일자리’ 같은 값싼 일자리 창출모델이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다. 조선업이든 자동차산업이든 그리고 이후 반도체산업이든지 간에, 국제경쟁 속에서 점차 낙후되어가는 한국의 재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 길 밖에는 없다. 

여기서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잠깐 부연 설명을 하도록 하자. 그것은 물론 현 문재인정부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정권 재창출이 급한 문재인정부가 ‘일자리 창출’ 명목으로 서둘러서 추진한 것인데, 그러나 그 성격은 아직 확실히 결정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처음 이 사업이 제안될 무렵에는 ‘일자리 창출’ 외에도,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혁신기지’의 의미도 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벌체제’라는 한국적 현실을 무시한 정책은 애초부터 자신의 본뜻과는 달리 변질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큰 재앙을 안겨준다. 그 같은 실례는 많이 있는데, 예컨대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한 일이 그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주의 철학에 입각하여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그 보완책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자만 이루어진 채 후자는 불철저하게 수행되었다. 결국 이 때문에 한국사회는 이후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재앙이 발생하였다. 결국 재벌들에게 이용당하고 그들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이는 본질상 이들의 자유주의적 정치이념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번 ‘광주형 일자리’ 역시도 그렇게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이 같은 사업이 실현되면 기존의 노조체계와 정규직을 무력화시키는 선례가 남겨지게 되고, 이 정권 하에서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재벌들은 이후 이 같은 ‘제도혁신’을 충분히 활용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미 군산형, 대구형, 구미형 등 수많은 아류들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산업 전체가, 그리고 한국경제 전체가 이 같은 수많은 사실상의 비정규직들로 이루어진 ‘하청생산’ 체제로 변모되게 된다. ‘광주형 일자리’는 바로 현 재벌체제가 유지될 경우의 한국경제의 미래상을 미리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민주당과 문재인정부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세력의 재벌개혁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자. 이들 자유주의세력은 보수반동세력과는 달리 ‘재벌해체’를 바란다. 변혁진영 일각에선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별반 재벌개혁의 성과가 없었던 것을 놓고, 선거공약과는 달리 그 의지가 식었거나 이미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섣부른 예단을 한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2018. 8. 24.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내용을 한 번 보도록 하자. (1)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 요건의 강화 (2)공익재단의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 (3) 소기업이 직접 법위반 행위에 대한 ‘금지청구제도’를 도입 (4)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자료제출명령제’를 도입 (5)경성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 제도 폐지’ 등이다.(김남근 변호사,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10대 중요 개혁과제”) 이 같은 내용은 나름대로 현 상태에 비추어 보면 일정 수준 이상의 재벌개혁을 예상할 수 있다. 

예컨대, (1)의 지주회사제 개혁의 경우, 신설 지주회사의 경우 자회사까지만 인정하고 손회사는 금지하며, 기존 지주회사에 대해선 자회사 및 손회사 지분보유 비율을 현 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에서 각각 30%와 50%로 상향조정하는 법안이다. 그럴 경우 현재 이미 지주회사제 전환을 완료한 LG, SK, 현대중공업 등 많은 재벌들이 자회사 지분을 더 많이 사들여야 한다. 이 때문에 일정하게 주력 기업에 집중하게 되며 그렇지 않은 기업들을 처분하게 된다. (2)번 재벌 설립 공익재단에 대한 운영규칙 강화 역시도, 이들 공익재단과 동일한 재벌 계열사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박탈함으로써, 공익재단이 변칙적으로 재벌총수의 경영권유지나 후계상속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없도록 규제하기 때문에 재벌 소유권의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위 개정안이 나왔을 때 보수단체와 언론들은 ‘재벌 옥죄기’라는 비명을 질러댔던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정부는 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재벌개혁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다른 부대조건들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당장 위의 입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선 과반수 이상의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의석분포로 볼 때 그 통과를 자신할 수가 없다. 이 때문인지 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 위원장은 “연성법률로도 재벌개혁이 가능하다”는 말을 하였다. 이는 아마도 입법 관련한 현 국회 역관계와 다른 여건을 고려한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연성법률’ 방식이란 상법이나 공정거래법 개정과 같이 꼭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법제정 방식이 아니더라도, 현행 법률제도 하에서 행정기관의 시행령이나 자체 법규만 가지고서도 할 수 있는 개혁을 말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이 같은 ‘연성법률’ 만이라도 실제 제대로만 실행하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여 진다.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은 총수일가가 주력기업인 삼성전자를 지배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금감위가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 기준을 바꾸어 건전성 자산에서 계열사 보유주식에 대한 지분을 제외시키거나, 같은 계열사 기업에 대한 금융회사의 보유주식 지분 의결권을 인정치 않는 방식을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현재 삼성의 재벌구조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으며, 지금의 금감원 자체 운영규칙 개정만으로도 그 실시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연성적 방안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이런 방안조차도 현실의 장벽을 넘어서기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금번 조국사태를 통해 경험하였듯이, 검찰-언론으로 이어지는 친 재벌세력들의 여론공세를 사전에 무력화시키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선 ‘경제난’을 가중시킨다는 죄명만 뒤집어 쓸 수 있다. 그것은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재벌과두체제’의 벽이 두텁다는 것을 말해주는 동시에, 문재인정부 재벌개혁안의 약점을 보여준다. 
어쨌든 결국 이 같은 장애를 먼저 부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대중 밖에 없다. 현 재벌체제의 모순심화로 터져 나오게 되는 대중의 불만을 우선 검찰개혁으로 집중시키고, 그것을 다시 총선과 대선 승리의 밑거름으로 삼은 후 보수언론의 여론공세까지 무력화시키는 식으로 재벌개혁을 위한 전제조건들을 하나 둘씩 마련해 나가야 한다.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 방안은 이렇듯 많은 전제와 여러 절차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설령 이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된다손 치더라도,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 방안은 여전히 노동자계급이 보기에는 한계가 많다. 왜냐하면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시장 활성화’ 혹은 ‘독과점 폐해 극복’이라는 자유주의자적 시각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애초 재벌개혁을 위해 결정적 ‘동력’을 제공할 대중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 대중은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으며, 또한 그 같은 자유주의적 방식만으로는 현 시기 급박한 한국경제의 경쟁력 상실을 만회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예컨대,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여 점점 뒤처지는 기술경쟁력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시기임에도 이에 대한 검토가 미흡하다. 국가개입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도 한국의 입장에선 꼭 필요한 조치인데, 지금 현대차와 대우조선을 비롯한 많은 한국 대기업들이 경영위기의 늪에 빠져들며 영업이익률이 크게 저하된 상태이다. 이 같은 제약에 의해 시간이 갈수록 한국 기업들은 세계 경쟁사들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사회 전체의 기금이라 할 수 있는 ‘국가재정’을 체계적으로 투여할 수 있는 장치를 합법적으로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중국이 강점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국가의 국유기업에 대한 대폭 지원과 함께, 기업차원의 연구개발과 국가적 차원의 연구개발이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낙후된 기술력을 단시간 내에 높이는 데 성공하였다. 시장원리를 가장 중시한다던 미국 역시도 2009년 서브프라임 위기가 한창일 때는 GM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국가자금의 투여를 서슴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입장에선 또 재벌해체 이후 인공지능, 공장자동화와 같은 새로운 기술 환경 하에서 고용보장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해결책을 문재인정부의 개혁안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자본가들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그것을 상용화 할수록, 노동자들에게는 곧바로 ‘고용불안’이 엄습한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선뜻 ‘독과점 폐해 극복’(시장합리화) 만을 목표로 삼는 재벌개혁에 지지를 보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 방안은 이렇듯 절차와 과정상의 번거로움 뿐만 아니라, 설정한 ‘목표’와 그 동력인 대중의 ‘기대치’ 사이에 모순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그 같은 재벌개혁은 다가오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헤쳐 나갈 무기로 이용되기보다는, 그 위기 속에 휘말려 표류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서, 문재인정권은 경제위기를 재벌개혁의 ‘동력’으로 삼기보다는, 경제위기의 압력에 밀려 그것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자유주의적 방안은 느슨하고 불철저하며 오늘날의 긴박한 경제상황과도 걸맞지가 않다. 결국 이들의 재벌개혁이 좌초하게 되면 반동 보수세력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현 재벌체제 해체를 포기한 채 ‘국제 하청화’의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끝으로, 노동자계급과 변혁진영의 재벌개혁 방안을 소개하자면, 그것은 ‘재벌해체, 공기업화’로 요약될 수 있다. 필자는 이미 다른 글에서 한국의 재벌과두체제하에서 그 필연성을 지적하였다.(“재벌개혁의 세 방안”,[비정규직투쟁의 방향정립⑧-1] ,레디앙)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이다: (1) 재벌의 반항과 그것을 무력화시킬 대중의 기대 (2) ‘연기금’의 역할. 필자의 글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이들 각각에 대한 얼마간 설명을 덧붙여 보자.

“자신의 막강한 경제력과 정치권력에 대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기업 전문화와 책임경영 실현과 같은 자본주의의 정상적 개혁조차 거부하는 현 재벌체제에 대해선 이제 순수한 경제적 논리가 통할 여지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 같은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한 다른 대안은 무엇일까? 여기서 곧바로 '재벌국유화'라는 결론을 끌어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출자총액제한'과 같은 조치는 만약 그것이 엄격히 실행되기만 한다면 여전히 재벌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제도적' 방안으로 유효하기 때문이다. 대신 국가가 좀 더 과감하게 재벌에 대한 개혁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을 요구한다. 이 경우 문제는 다름 아닌 국가권력 자체에서 발생한다. (한국에서) '재벌과두체제'의 성립이 의미하는 바는 재벌이 이미 국가권력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자신의 방패 막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재벌개혁의 선행조건으로서 '국가권력의 민주적 개조'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즉 재벌개혁의 첫 수순은 현재 이들에 볼모로 잡혀있는 국가권력에 대한 민주적 개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재벌개혁의 세 방안”,레디앙)

지금 진행되고 있는 현실은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 듯하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검찰개혁은 바로 이러한 ‘국가권력 개조’의 중요한 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계속해서 그 과정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러 통로를 통해 이미 국가권력을 통제하고 있는 재벌들은 필연적으로 이 권력을 사용하여 대항하려 할 것이다. 反재벌세력은 이 같은 저항을 분쇄하여야만 재벌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 결국 국가권력의 통제를 둘러싼 재벌과 反재벌세력 간의 치열한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다. 여기서 反재벌세력의 최종 승리는 단순한 선거를 통한 집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국가권력에 대한 철저한 민주적 개조를 통해 그것을 사회 다수의지의 직접적 통제 하에 놓음으로써만 비로소 그 임무는 달성된다. 과거 노무현 정권이 행정부를 장악하고 나중에는 국회에서 다수의석까지 획득한 상황에서도, 집권기간 내내 개혁에 저항하는 관료들의 복지부동과 검찰의 항명파동에 시달려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선례가 있다. 이 같은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약 이들 ‘국가권력의 실체’들을 그대로 둔 채 선거를 통해 형식뿐인 정권을 얻는 것만으로는 재벌개혁은 완수될 수 없다. 이들 관료와 검찰 뒤에는 앞서 '삼성공화국'에서 보았듯이 재벌의 손길이 이미 거미줄처럼 뻗쳐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위글)

이리하여 개혁진영이 이러한 국가권력의 ‘민주적 개조’를 완수하였을 때는, 막상 재벌과의 타협이나 앞서 언급한 ‘연성법률’ 식 개혁은 별반 의미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간 자신들의 반항 때문에 재벌은 이미 스스로의 입지를 상당 부분 축소시켰으며, 대중들 또한 재벌개혁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기대치가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재벌개혁은 '공기업화'라는 사회 다수의지가 직접적으로 관철되는 방식이 유력해진다. 

다음으로 ‘연기금’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이는 매우 현실적이고 곤란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즉 만약 재벌개혁이 진척되어 앞서 언급한 지주회사제에 대한 개정안이나 좀 더 엄격해진 금감위 규정이 실행될 경우, 주식시장에 쏟아져 나올 물량을 누가 소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과거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포기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역대 정권들이 재벌개혁의 유효한 수단으로 줄곧 미련을 갖고 추진해왔던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9년 3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통해 정식 폐기되었다. 여기서 출총제를 포기한 표면적 이유는, 원칙대로 그것을 감행할 경우 주식시장과 경제 전반에 대한 커다란 충격과 함께,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가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이유는 간단하게 ‘매수주체 부재’ 문제로 규정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출총제 규정에 따라 초과 물량이 대량으로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경우, 그것을 소화해 줄 만한 국내 매수주체가 마땅치 않은 데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합당한 매수주체가 존재한다면 비록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일부 재벌들의 그룹 규모는 축소되겠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국내의 다른 주체에 의해 대체됨으로써 한국경제 전반에는 별반 큰 혼란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매수주체 부재’ 문제가 뜻하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다음을 보자.

“그것은 다름 아닌 ‘재벌과두통치’ 단계에 접어든 한국사회의 곤혹스러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 자본주의 기본모순인 생산사회화와 자본주의적 점유간의 모순이 너무 극대화되어 더 이상 정상적인 방식으로 치유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재벌 대기업들이 글로벌화를 통해 국제독점자본으로 발전할 만큼 생산사회화가 고도로 진행되었음에 반해, 다른 한편에선 이에 상응하는 ‘자본사회화’가 충분히 진행되지 못하고 오히려 ‘재벌적 점유’, 즉 극소수 총수일가에 의한 거대한 사회생산력에 대한 점유가 계속해서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양자 간의 격차가 너무 커서, 재벌 대기업으로 하여금 (출총제의) 규정대로 순자산 40%를 넘는 지분을 매각케 할 경우 현실에서는 이를 소화시켜 줄 다른 국내의 사적 매수주체를 발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의 한계”, [비정규직투쟁의 방향정립⑧-2],레디앙)

만약 지금처럼 소수 상위재벌로의 거대한 경제력 집중이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면 재벌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위의 두 가지 문제, 즉 시장혼란과 경영권방어의 어려움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 시장이 소화해야할 물량의 규모도 작을 뿐만 아니라, 또 정상적인 M&A 때처럼 다른 많은 경쟁 자본들에 의해 충분히 그것이 소화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부딪쳐, 우리는 삼성이나 현대 재벌 산하의 대기업과 같은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을 누구 의지의 지배하에 두는 것이 옳은가라는 문제를 마침내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문재인정부의 개혁방안도 여전히 ‘사적 주체’ 만을 염두에 두었기에 마땅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만약 상식대로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을 ‘사회의지’의 통제 하에 두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재벌문제의 해결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매번 재벌개혁의 관건적 순간 마다 등장했던 시장혼란과 경영권방어 문제 역시도 쉽사리 해결될 수 있다. 한국사회는 이 같은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수단이 이미 존재하며, 그 방안 중 하나가 바로  ‘연기금’이라는 ‘공적 주체’를 동원하는 방식이다.
 연기금은 현재도 사실상 많은 주요 재벌기업의 최대주주이다. 아래 표를 보면, 연기금은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3.38%)과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5.17%)보다 훨씬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문재인정부의 ‘손자회사 규제 등 지주회사의 경제력집중 억제’ 관련한 입법안이 통과되고, 보다 엄격한 금감원 자체 운영규칙 개정안이 실행되게 되면, 재벌기업들은 상당수의 계열사 주식들을 처분해야 한다. 이렇게 쏟아져 나올 주식들을 보태게 된다면, 연기금은 명실상부한 최대주주로서의 자격을 확고히 할 수 있다. 이 같은 연기금을 통한 방식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가 연방준비위원회의 돈을 풀어 부실 금융기관과 GM자동차 등을 국유화했던 방식에 비한다면 훨씬 부드럽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정부는 ‘사적소유의 신성불가침성’ 신화에 여전히 갇혀 있기에 이러한 과감한 연기금을 통한 재벌개혁 방안을 검토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총수일가에 의한 재벌식 점유는 이 같은 ‘사적소유의 신성불가침성’과도 걸맞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 총수일가는 채 1%에도 못 미치는 소유지분을 가지고서 나머지 그룹자산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야 말로 나머지 99% 자산 소유자와 사회 전체에 대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공정위가 2017년11월30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 등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전체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은 0.99%에 불과하다. SK(0.32%), 금호아시아나(0.33%), 현대중공업(0.89%) 등도 총수일가 지분율이 1%를 밑 돈다. 

5. 한국 변혁진영의 과제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한국사회에서 1990년대 이래 형성된 신식국독자 후기 축적양식이 가져온 상대적 ‘균형기’는 끝났다. 이제는 본격적인 ‘불균형기’에 접어들었으며, 그에 따른 혼란과 동요, 충돌의 시기에 돌입하였다. 이에 따라 다시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으며, 기존의 양식을 대체할 새로운 양식이 확정될 때까지 이 같은 동요와 혼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에 따라 사회 집단 간, 계급 간, 그리고 정치세력 간의 강한 충돌 역시 계속될 것이다.  

한국의 변혁진영은 이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사회대개혁의 임무를 민주당과 문재인정부와 같은 자유주의세력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이들 자유주의세력과 현 시기 정국 주도권을 다투는 임무를 정식으로 제출하고, 이미 적극적인 정치적 행동을 시작한 대중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본격 나서야 한다.

이러한 정국 주도권의 쟁취는 지금처럼 단지 ‘정규직화 요구’나 ‘노동악법 개악저지’와 같은 권리투쟁이나 자기 계급적 요구만이 아니라, 자신의 총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출하고 이를 위한 적극적 실천에 나설 때라야 가능하다. 그 개혁안의 핵심은 ‘재벌해체’를 통해 주요 대기업들을 ‘공기업화’ 하는 것이며, 구체적 방안으로는 ‘연기금’을 활용한 과감하고 신속한 재벌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 재벌개혁 없이는 비정규직 양산, 자영업자 몰락, 교육문제 등 우리사회의 중차대한 문제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 이 점을 대중에게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며, 앞으로 정국 쟁점을 이러한 재벌개혁과 계속 연계시켜 나가야 한다. 
한국 축적체제가 본격적인 위기를 맞이하며 해체기에 들어선 지금, 앞으로 현장에선 대규모 구조조정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조선업계뿐만 아니라, 아직은 본격화하진 않았지만 조만간 가시화 될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은 더욱 큰 충격파를 가져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보수언론들은 현대자동차 관련한 기사에서 일제히 40% 인원감축이 불가피하다는 군불 떼기를 시작했다(중앙일보 등,10월7일자 보도). 지난 9월 초 사측과 막 임단협을 끝내고 그들의 ‘정년보장’ 약속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있어, 이것은 충격적이고 믿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국제 자동차산업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결코 엄포나 선전용 차원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앞으로 4차 산업의 주 격전장은 다름 아닌 자동차산업이 될 것이며,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공유자동차로 상징되는 미래자동차는 그 발전 속도에 있어 우리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에 따라 향후 미래자동차산업의 패권을 둘러싸고, 기존 자동차회사들과 새롭게 속속 진입하고 있는 애플, 구글, 인텔, 바이두, 삼성 등 세계 IT업계 거두들 간의 경쟁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도 훨씬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후자 진영은 거대한 자본규모와 핵심기술인 인공지능 분야에 있어서의 우세를 앞세워 세계 자동차업계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국제 자동차시장은 (1)GM-오로라 (2)구글-웨이모 (3)인텔-BMW-모빌아이(IBM) (4)바이두-중국계 자동차회사 (5) 도요타-일본계 자동차회사로 대표되는 몇 개의 연합진영에 의해 분할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한전부지와 같은 엉뚱한 곳에 돈을 쏟아붓고, ‘수소차 우선’이라는 잘못된 전략을 선택한 현대자동차는 이미 선두그룹과의 격차가 많이 벌어져 있는 상태이다. 최근 현대차 경영진이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미국 앱티브사와의 ‘4.8조원 규모 합작사 설립’, ‘2025년 완전자율주행 실현’, ‘하늘을 나는 자동차’ 운운하는 것은 화려한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보여 진다. 그것은 현대차의 위기상황을 가리기 위한 위장수법이며, 또 다른 한편으론 현대차 조합원들을 방심케 하고 사회적으로는 더 많은 정부지원을 타내기 위한 속임수일 가능성이 크다. 자율주행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전기자동차 관련해서도 현대차는 지금 밧데리 등 핵심부품을 자체 개발하려던 애초 전략의 차질로 인해 점점 더 외부 조달에 많은 부품을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기업의 수익성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매년 1~2천 명의 정년퇴직자에 의한 자연감축으로 향후 2030년까지 무리한 구조조정 없이 인원감축을 하겠다는 사측의 발표는 지켜지기 어렵다. 지난해 이미 4% 이하로 떨어진 영업이익률은 이 같은 판단을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현대차에겐 자연감축을 기다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으리라 보여진다. 결국 지금 보수언론들이 하나 둘씩 군불떼기 식으로 내어놓고 있는 보도는 앞으로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 준비일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가 임단협이 끝난 9월 중순 이후에도 계속해서 현장에 대한 강도 높은 침탈을 강화하면서 소위 군기잡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전례 없던 일이다. 이러한 현장침탈은 지난 해 이래 계속되고 있는데, 요즘 들어 부쩍 두드러진 느낌이다. 따라서 이는 결코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향후 구조조정을 위한 ‘현장조직 와해’를 겨냥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변혁진영은 앞으로 한국 축적체제의 위기와 함께 필연적으로 발생할 이 같은 대공장 사업장의 구조조정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공기업화’ 강령을 대중적 요구로 전환시켜야 한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동안 그럭저럭 비정규직을 보호막으로 삼아 상대적으로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그들 역시도 비정규직화나 실업자가 될 운명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요행히 본인 세대는 피해갈 수 있을지라도, 그들의 자식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 같은 운명을 벗어나는 길은 지금으로서는 ‘공기업화’ 밖에는 없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 인공지능과 자동화 도입이 보편적 추세가 될 앞으로는 더욱 그러하다.

비정규직노동자 투쟁에 있어서도, 단순한 ‘정규직화’ 요구만을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설 수 있는 의식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비정규직문제는 성격상 단사차원의 사안이기 보다는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정리해고제의 도입, 기간제노동의 다양화, 파견근로 범위의 점진적 확대 등 한국의 각종 노동악법은 그간 여러 방식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노동자를 끊임없이 양산시켜 왔다. 이 같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과 제도의 밑바탕에는 재벌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이 근원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끝으로, 변혁운동진영은 앞서 제기한 과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통일적 대오’를 건설할 임무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재벌체제로 상징되는 후기 신식국독자 축적체제가 본격적인 해체기로 들어선 지금, 이 교체기의 역동적인 정세변화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현재와 향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다양한 대중투쟁을 근본적인 재벌개혁을 위한 투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도 통일적 대오의 형성이 시급하다. 특히 자유주의세력과 정국 주도권을 다투기 위해서는 그 임무를 잠시도 망각할 수 없다.

혹자는 변혁진영이 지금처럼 뿔뿔이 흩어진 상태에서 애초 ‘노동계급 주도성’ 운운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치정세에 대한 개입을 사실상 포기한 채 현장투쟁에 더욱 전념할 것을 촉구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변혁진영은 적극적으로 정치문제에 대한 관심과 개입을 통해 거꾸로 현재의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와 동력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과정(원인)과 결과의 변증법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정세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실천을 할수록, 서로 간의 차이가 무엇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구체화 할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정치정세에 대해 별반 태도표명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서로 간의 ‘차이’ 만을 강조하는 것 보다는 차이를 해소하기에 훨씬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준다. 예컨대 우리가 구체적 실천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반드시 현 정국의 성격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그것이 한국사회 축적체제의 위기와 관련된 것인지 아닌지를 밝혀내야 한다. 또 그 핵심 과제에 ‘재벌문제’가 놓여 있는지, 향후 정국의 초점은 무엇이 될 것이며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은 재벌개혁 방향으로 나아 갈 것인지를 미리 예측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실제로 재벌개혁에 대한 입장이 제출되어야 한다면, 변혁진영은 어떻게 그러한 입장을 정리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즉, 재벌해체와 공기업화(국유화)가 올바른 방향인지, 만약 공기업화 요구를 전면에 내건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들 공기업에 대한 관리체계는 어떠한 것인지 등등 대중들이 궁금해 할 문제들에 대해 미리 답변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우리가 이렇게 정세에 대한 개입을 적극화할수록, 그리고 자유주의세력과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명확한 임무로 내세울수록, 변혁진영 내부의 통일 기운은 높아지고 단일 대오의 형성은 눈앞의 실제 과제로 떠오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른 면에서는 또한 노동계급의 ‘정국 주도성’이 실현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재의 분열과 각자의 왜소함을 이유로 이 같은 임무를 스스로 포기한다면, 우리에겐 단일대오 형성의 기회도 주도권 장악의 기회도 좀처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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