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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재판, 후쿠오카에 간 겨레하나조선학교 고교무상화 후쿠오카 재판 원정기
  • 황승연 울산겨레하나 강제징용사업단장
  • 승인 2019.10.1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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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겨레하나회원들이 지난 10월2일 후쿠오카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재판심의에 참석해 재일동포들과의 연대투쟁을 전개했다. 일행을 이끈 황승연 단장의 원정기를 싣는다.[편집자]

일본의 아베정부가 들어서고부터 조선학교 재일동포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거세어졌다고 한다. 아베정부는 2013년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정책에서 제외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에 맞서 도쿄, 오사카, 아이치, 히로시마, 그리고 우리가 연대투쟁을 간 후쿠오카의 조선학교와 학생들이 고교무상화 배재 취소 소송과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번 후쿠오카 재판심의에 앞서 동포들의 투쟁집회가 있다는 소식에 울산겨레하나 회원들은 연대투쟁을 결심해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태풍 ‘미탁’이 한반도를 관통한다는 소식에도 우리는 일정을 강행했다. 다행히 후쿠오카행 비행기의 이착륙에는 문제가 없었다. 10월2일 아침7시30분 김해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한 시간이 되기도 전에 후쿠오카공항에 착륙하였다. 가까운 제주도보다 더 짧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공항에는 익숙한 얼굴 재일동포 리대미가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2018년 겨레하나가 진행한 일제강제징용문제해결의 위한 재일동포교류사업에 초청된 조일우호청년단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리대미동포는 겨레하나와는 친숙한 관계이며 후쿠오카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재판 변호인단의 박헌호변호사의 아내이다.

이대미동포의 도움으로 우리는 후쿠오카 지방법원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나빠진 한일관계로 인해 혹시나 하는 약간의 걱정거리가 우리마음속에 자리했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은 정말 바보같은 걱정거리였다. 우리가 지하철에서 한국어도 아무리 대화를 나눠도 어느 누구하나 우리에겐 관심이 없어보였다. 한국 어느 지하철에서처럼 말이다.

30분가량 지하철로 이동하여 후쿠오카 지방법원 주변에 도착했다. 이대미동포의 추천해준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법원 앞 도심의 주변경관은 잘 정돈된 도시였다. 올림픽준비로 환경단속이 심해져 많이 깨끗해졌다고 한다.

집회가 예정된 오후 1시가 다가오니 재일동포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은 조선학교 아이들로 보이는 수십명의 학생들도 참석을 했다.

집회 장소엔 음향소리와 수많은 재일동포들이 집회준비에 한창일거라는 우리의 생각은 착오였다. 우리가 흔히 접해온 집회장소의 무대와 음향장치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집회장소를 잘못 온 것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집회장소의 분위기는 아주 차분하고 소박했다. 하지만 엄숙함과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 집회에는 재일동포(조선학교 졸업생들과 학부형), 재일동포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일본인들과 이번 재판의 원고인 조선학교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울산겨레하나회원 20여명을 포함해 200여명이 참가했다.

메가폰을 든 조선학교 교감선생님은 “집회에 참석해주어 감사하다. 오늘은 재판 판결이 나는 것이 아니고 2심판결을 위한 재판 심의를 하는 날이다.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는 불법이며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의 언어, 문화와 역사를 지켜나가는 민족교육의 산실인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은 우리민족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려내야 한다.”는 투쟁사를 비롯해 집회진행을 함께 하셨다.

그리고 “한국에서 겨레하나회원들이 함께 해주셨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큰 박수로 환영해주자”며 울산겨레하나를 소개해주셨다.

우리는 울산에서 준비해 간 ‘조선학교 차별반대.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평등하게 배울 권리를!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가 함께 할께요.’ 라는 내용의 현수막과 피켓을 나눠들고 우리의 입장을 표현했다. 집회는 한마디로 간단명료했다.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법원 앞 인도를 돌며 퍼포먼스를 하듯 짧게 행진을 했다.

행진을 끝낸 집회대오는 지방법원내로 들어가 번호추첨 과정을 거쳐 추첨된 100명만이 재판심의장소에 들어 갈수 있었다. 집회에 참석한 겨레하나회원들에게도 심의장소에 들어가는 기회는 주어줬지만 동포들과 학생들에게 기회를 양보했다. 양보라기보다는 재판심의를 일본어로 하기 때문에 겨레하나 참가자들의 참가는 어려울듯해 함께 불참결정을 내렸다.

재판심의가 시작되고 2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동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었다.

“울산이 남한 어디에 있나? 겨레하나는 어떤 단체인가? 평일인데 휴가내서 왔는가? 점심밥은 먹었는가? 울산은 유명한 것이 무엇인가? 조선학교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나? 남한사람들이 조선학교에 관심을 가져주니 놀랍고 고맙다. 태풍도 오는데 이렇게 와줘서 감사하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삶이 어려워지진 않았나? 아베는 정말 나쁘다. 일본국민들도 아베를 싫어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는 일본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베정부는 부끄러운 역사를 부정하고 지우려한다. 악화된 한일관계 때문에 재일동포, 조선학교 아이들이 가장 피해를 보고 있다.”라며 동포들의 답답한 심정과 겨레하나의 방문에 대해 감사하다는 인사도 아끼지 않았다. 동포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 짧은 2시간 동안에 우리는 하나라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동포들과 형이 되고 누나가 되었다.

집회에 참가한 한 일본인은 “후쿠오카시와 부산시가 자매결연을 맺어 교류를 하고 있다. 재일동포가무단과 일본예술단이 함께 부산에서 2년에 한번 공연한다. 울산겨레하나회원들도 공연을 보러 꼭 왔으면 좋겠다.”며 우리들에게 공연소식도 전해주었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재일동포들과 사이좋게 지낸다. 일부 극우단체들의 행동을 이해 못하는 일본인들이 더 많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하루빨리 한일관계가 좋아졌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며 재일동포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자랑했다.

사실 후쿠오카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조선인노동자들이 15만 명 이상 끌어간 곳이다. 재일동포들은 일본사회에서 조선인후손으로 살아가면서 일본인들과 7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 온 것이다.

이날 만난 후쿠오카 조선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 1월에 강제징용 역사기행을 갔을 때 운 좋게 후쿠오카 조선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그때 학생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그 학생들을 이번 재판에서 만났다.

우리는 학교관계자분들에게 양해를 구해 학생들에게 울산겨레하나 소개와 준비해간 선물도 전달하고 함께 단체사진도 찍었다.

우리는 혹시나 아이들을 만나면 전해줄 마음으로 조선학교 아이들과 찍은 단체사진 그리고 종이접기로 만드는 평화의 소녀상을 준비해 갔는데, 사진 속 아이들을 만나 직접 전해 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한국에도 조선학교를 위해 함께하는 동포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며 ‘우리는 하나다’를 함께 외치고 학생들과 조선학교를 꼭 지켜내자는 약속을 했다.

조선학교학생들, 수줍은 많은 사춘기의 천진난만한 우리민족의 아이들이였다. 그 아이들의 눈동자를 난 잊을 수가 없다.

2시간 남짓 진행된 재판심의가 끝나고 재판심의 보고대회에 동포들의 배려로 겨레하나도 참가하였다. 변호인단들의 재판심의 결과내용을 들어보니 한마디로 참담했다. “재판심의 자체가 무의미하였다. 그리고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교육에서 배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눈물로 하소연하는 재일동포의 발언을 끊어 버리고, 재일동포 변호인단은 물론이고 원고인단들을 무시하는 발언도 일삼았다.”고 했다. 재판심의에 참석했던 재일동포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우리를 무시하니 분노가 치민다는 심정을 토했다. 일본정부가 일본법원이 이렇게까지 재일동포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이들을 아직까지도 식민지백성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한일관계의 희생양으로 재일동포 조선학교를 차별하고 탄압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공식적인 재판심의 보고대회를 마무리하고, 재일동포들과 일본인 몇 명을 포함해 ‘자기소개, 조선학교와 나,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주제로 특별한 토론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재일동포 한 대학생의 자기소개가 참 기억에 남는다.

그 학생은 “나의 부모님의 고향은 경상도이다. 나는 특별영주권이라는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일동포들은 대부분 이 특별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이 특별영주권은 5년마다 갱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국적은 남한이다. 여권도 여러분들과 같은 대한민국 여권이다. 어머니도 남한국적을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아버지는 국적이 조선이다.” 며 가족들의 국적 그리고 신분증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우리들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일본인 대학생도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다고 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은 대부분 일본인 국적, 아니면 북한국적이 아닐까하는 재일동포에 대한 나의 무지함에 고개를 숙였다.

재일동포는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60만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40만명 정도로 그 숫자가 줄었다고 한다. 일본정부의 탄압으로 조선인으로 살아가기엔 생계의 어려움으로 일본으로 귀화하는 동포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40만 명중 북한국적을 가진 재일동포의 숫자는 10%인 4만 명도 안된다고 한다. 30만명이 넘는 재일동포들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더욱 놀랐다.

사업을 한다는 한 동포분이 “조선학교를 정말 우리들에게 소중한 곳이다. 조선학교가 없었다면 재일동포들에겐 우리민족의 말과 글 그리고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조선학교를 지켜 낼 것이다. 하지만 점점 지쳐가는 동포들이 많아지고 있어 정말 걱정이다. 아베정부의 재일동포들에 대한 탄압과 차별은 식민지시대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이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우리민족이 아직도 분단되어 있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민족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하루빨리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조선학교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반도 우리민족의 분단된 체제로 인해 재일동포들이 받아야 할 수모를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며, 일본정부의 만행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남북관계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겠다.

재일동포와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일본인대학생은 “조선학교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용기와 그들의 조선학교에 대한 자부심에 감동을 받았고, 늦게나마 조선학교를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일본인으로써 정말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앞으로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의 부당함을 알리는데 함께 힘을 보태겠다. 여러분들의 민족애에 감동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식당을 운영하는 한 동포는 우리들에게 편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이 동포는 3명의 자녀 모두 조선학교를 보낸다고 했다. 집회 장소에서 우리와 인사를 나눈 학생 중 한 명이 큰딸이었다. 그는 “죄송합니다. 집회에 나도 참석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식당일 때문에 참석을 못했습니다. 내가 하루라도 열심히 돈을 벌어야 우리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낼 수 있습니다. 아베정부가 조선학교를 무상화교육에서 배제를 함으로 인해 더욱 더 열심히 일을 해야합니다. 조선학교는 재정이 열악합니다. 그래서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며 조선학교의 어려운 재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었다.

조선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정년퇴직을 하신 한 동포는 “조선학교는 재일동포 모두가 하나되어 만들었고 지켜가고 있다. 조선학교 교사들은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내가 예전에 교사생활을 할 시기엔 1년 넘게 월급을 받지 못 할 때도 많았다. 지금도 6개월 이상 못 받는 교사들이 많다. 조선학교는 학부형들과 교사들의 힘으로 운영을 해왔기 때문에 모두가 희생정신으로 학교와 아이들을 지킨다. 이번 재판은 이길 수 있는 재판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부당함을 알리고 싸워나갈 것이다. 12월20일 2차 재판이 열린다. 여러분들이 와주면 좋겠지만,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며 조선학교의 역사와 현재의 어려움, 그리고 재판일정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조선학교의 어려운 재정, 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겠는가? 라는 우리의 질문에 “금전적으로 물질적으로의 도움도 지금 당장엔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여러분들이 조선학교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큰 선물이고 힘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조선학교와 재일동포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제일 큰 선물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분단된 우리민족의 통일 아니겠는가? 우리민족이 하나가 된다면 우리아이들에게 더 이상 큰 선물이 어디있겠는가? 지금 일본땅에서 조선인으로서 받는 차별과 탄압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선물은 한반도 통일이다.”고 말했다.

겨레하나 참가자들은 재일동포와 조선학교아이들이 받고 있는 차별과 탄압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 남과 북의 관계, 한일관계가 하루빨리 좋아지도록 함께 투쟁해나가자. 더 나아가 한반도 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동포들과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조선학교 차별반대 고교무상화 재판 원정연대투쟁을 마무리하면서 울산겨레하나 참가자들은 동포들과의 약속을 지켜나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해방70년 분단70년이 지난 현재에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 일제식민지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동포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말이야 할 것이다.

그들의 해방을 위한 길, 그것은 바로 우리민족 한반도의 통일인 것을 명심하고 겨레하나가 앞장서서 통일의 그날을 위해 달려가자.

황승연 울산겨레하나 강제징용사업단장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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