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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공사가 남긴 두 번째 이야기최인기 빈민스토리(18)
  •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 승인 2019.10.1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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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의 ‘청계천 복원공사’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 후 시장이 두 번 바뀌었어도 이 지역 개발을 둘러싼 공간의 변화와 갈등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분열과 배제 그리고 통제로 일관하였다. 분열을 둘러싼 대표적인 사례는 삼일아파트 철거민의 이주 대책을 둘러싸고 대책위원장의 매수라는 방법을 쓴 것인데, 상인들의 대책기구인 ‘청계천 상권수호 대책위원회’ 는 강건파와 온건파로 갈리고, 서울시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할 수 있는 온건파를 협상 파트너로 삼아 대표성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분열을 획책한다. 이제껏 살펴본 것처럼 노점상도 마찬가지였다. 복원공사 과정에서 서울시 입장을 관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적극 매수하거나 내부의 다양한 입장차이를 분할 통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갈등과 분열 조장을 통해 일부는 배제하고 나머지는 흡수 관리하는 방식으로 개발 사업을 관철해나갔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일각에서 주장하는 ‘선진적인 갈등관리전략’이 제대로 추진되었다는 것은 사실상 허구다. 지난 기획글 이후 그 흐름을 계속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견제의 기능을 상실한 서울시 의회

서울시 의회는 의회 내 ‘청계천복원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전체 12명의 의원 중 한나라당 의원 11명이 참여하였고, 총 13차례 특별위원회 회의를 가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예산의 편성과 그에 대한 심의과정을 보면 2002년 10월 12일 청계천특위 2차 회의에서 청계천 추진본부장인 양윤재가 보고한 전체 사업예산은 3천6백억 원 수준이었다. 이것이 2003년 3월 29일 청계천 특위 보고에서는 4천2백억 원으로 수정되어 보고되었다가 상반기 추가 경정 때에는 전체 5천4백억에 달하는 액수로 불어났다. 추가 경정의 사유로는 ‘여건변동으로 인한 설계변경 소요 예산 증가분 반영’이라고 한다지만, 애초 예산보다 1000억 원 가까이 증가한 내용에 대해 별다른 비판 없이 승인한 것은 시의회의 직무유기라고밖에는 볼 수 없는 지점이다. 청계천 관련 예산 심의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감액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서울시의회가 얼마나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한 지원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1) 구성원 면모를 비춰볼 때 서울시 의회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사업이 착공되고 완료될 때까지의 최대 조력자 역할을 하였다. 서울시 의회는 정보에 있어서 실제로 시민위원회나 청계천복원추진단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유일하게 서울시의회가 추진단의 사업방향을 직접적으로 요구하고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다. 턴키사업 방식과 수시로 사업을 수정하고 집행하는 패스트 트랙킹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이 되면서 전체적인 상과 정보에 있어서 서울시의회 외는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청계천복원 사업을 감시하고, 사업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는 서울시의회의 특별위원회인 청계천 특위는 그 역할이 사업을 맹목적으로 추인하고 지원하는 하위 행정기관으로 전락한 셈이다.

2. 들러리가 된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표-1. 청계천복원사업과 관련한 위원회 및 성격2)

이명박 시장은 산하에 청계천 추진본부를 구성하고, 이와는 별도로 2002년 9월 18일 조례에 따라 각계 전문가와 시민단체 의견을 받아 복원공사를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 (이하 시민위원회)’를 세워 ‘삼각체제’를 구축했다.3)
시민위원회 분과는 역사문화, 자연환경, 건설안전, 교통분과, 도시계획, 시민 의견 등 각각의 분과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나간다는 것이었으나 상인과 주민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구는 부재하였다. 물론 서울시민의 여론을 시민단체가 일정 정도 대변해 준다는 것이지만,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 기구였다는 것은 시민위원회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었다.4)

애초부터 그 형식만 갖추어 복원사업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컸기 때문에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가 원만히 운영된 것은 아녔다. 2003년 9월 양윤재 당시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이 심재옥 민주노동당 시의원의 질문에 대한 공식답변에서 멀리 속초까지 기본설계를 심의하러 간 시민위원들을 가리켜 ‘온천에 목욕이나 하러 간 사람들’이라고 망언을 하는 사건에서도 그 실상이 잘 드러난다.5)
그러나 2003년 2월에 기본계획에 대한 심의가 끝나자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에 대해 서울시는 거의 ‘능멸’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내부 갈등을 겪으며 2003년 7월 21일 시민위 산하 역사문화분과에서 원형복원을 본격적으로 요구하면서 개발과 문화재 복원의 논쟁으로 돌입한다. ‘2004년 2월에 서울시는 실시설계의 심의를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는 심의를 거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서울시는 2004년 3월 11일 ‘청계천 문화재 보전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여 ‘광교는 발굴된 현 위치에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재의 교통량을 고려해 청계천 상류로 이전해 복원할 것을 그리고 수표교와 오간수문은 공사 진행을 위해 해체 이전해 보존하되 구체적인 복원 방침은 추후 결정’이라는 모호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6)
그리고 역사문화 분과장이었던 김영주 선생과 간사 위원이었던 홍성태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대표 강내희, 황평우씨는 이명박 시장과 양윤재 본부장을 문화재파괴 및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검에 형사고발 했다. 그러자 5월에는 권숙표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 위원장이 항의 사퇴했으며, 이와 함께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러나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의 실시설계에 대한 심의거부와 여러 지적을 무시하고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개발사업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결국 2004년 9월 16일에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에 참여한 시민단체의 대표들과 사명감을 지니고 참여한 일부 학계 전문가들은 9월 18일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이명박 시장의 잘못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모두 항의 사퇴했다. 2005년 11월 2일 개최된 ‘서울시 청계천 사업평가 토론회’ 에 따르면 초기 사명감으로 참여한 일부 학계 전문가들이 ‘올바른 청계천복원사업’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는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결국 서울시는 시민위원회를 비롯해 기타 기구들을 복원공사를 강행하기 위한 명분용으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3. 고층고밀개발로 인한 도시환경 문제

▲ 2003년 청계천 황학동 삼일 아파트

서울시는 2000년 ‘서울도심부관리기본계획’을 세우면서 사대문 안의 역사문화 공간을 보호하고 세계도시 중 유일하게 서울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자연경관인 내사산의 주요 조망권을 일반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서울 도심부 최고높이를 90m 이하로 제한하였다. 하지만 2002년 7월부터 청계천복원사업에 따른 도심부발전구상에 대한 수정작업이 착수되었다. 2003년 5월 도심부 발전방안 1차 대토론회에서 일률적인 도심부 최고높이 90m 규제를 푸는 방안이 등장한다. 을지로 2가구역과 세운상가가 전략개발지역으로 지정돼서 각각 110m+α 미터, 90m+α 미터로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나왔다. 이곳을 대상으로 청계천 주변 사업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2004년 2월 2차 대토론회에서 1차 방안이 구체화되었고, 2004년 3월 도심재개발 5곳에 주거기능을 높이면 높이 135m, 용적률 950%까지 인센티브를 주는 도심재개발계획변경안이 발표되었으며 곧바로 2004년 8월 ‘청계천복원에 따른 도심부발전계획’ 최종안이 확정됐다. 2004년 9월 서울시는 도심재개발 예정지인 세운상가 4구역에 대한 건축설계안을 선정하였다. 이 계획에 따르면 연면적 9만 평, 용적률 720%에 이르는 대단위 쇼핑몰이 들어서게 되며, 건축물 중 가장 대규모의 건물은 최고 25층에 이르러 그 높이가 90m에 달한다는 계획이었다. 나아가 서울시는 2005년 2월 ‘도시 및 주거환경 기본계획’을 통하여 도심 재개발 구역에 들어서는 주상복합건물에 대해 용적률 최대 1,000%에 높이 132m에 이르는 건축이 가능하도록 용적률과 높이 제한완화를 추진하였다. 이 최종안에는 삼각동·수하동 구역과 세운상가 구역 외에도 전체 도심재개발구역에서는 20m를 더 높여주며 공공용지·공개용지를 내놓으면 높이에 인센티브를 주고, 공공용지를 법적 기준보다 추가로 부담하면 정비구역 내 기존 건축물의 최고높이 이하 범위에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해 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시간 흐름에 따라 도심부를 관리하는 도심부발전계획 및 청계천 주변 지역 관리계획이 일관성 없는 상태로 변경· 수립되었다. 실제 청계천복원사업을 통한 도심의 노른자위 부지는 11만8000여 평에 달하며 대부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개발에 편입해 들어가는 것이었다.7) 청계천 주변부 개발을 둘러싼 고도제한과 용적률 완화는 박원순 서울시장에서도 비슷하게 재현되었다. 개발 앞에 속수무책 무너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4. 역사문화는 빚좋은 개살구였다

청계천은 600년 도시의 배수구였으며 오랜 시기 사람들이 온갖 모습으로 살아온 도시생활사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곳이다. 청계천복원공사의 과정에서 유적의 시굴조사는 2003년 12월 11일부터 2004년 7월 1일까지 180일간 발굴조사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발굴조사는 광통교지, 수표교지, 하랑교지, 효경교지, 오간수문지, 호안석축을 대상으로 하였다. 발굴결과 청계천 복원사업의 일환인 통수로 설계는 발굴된 유적을 완전히 무시한 설계이므로 유적을 보호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있어왔다. 한편 2004년 1월 12일 문화재 사적분과위원회는 광통교 및 교지와 수표교지, 오간수문지의 문화재 현상변경에 대해 상세한 설계도를 작성 심의를 받아 시행하게 하였다. 2004년 4월 16일 문화재사적분과위원회는 수표교와 오간수문은 원위치에 복원하고 광통교는 상류로 이전하여 복원하게 의결하였다. 한편 2004년 3월 5일 역사문화분과장이었던 김영주 선생과 간사 위원이었던 홍성태를 비롯해서 시민단체의 대표 강내희, 황평우씨는 이명박 시장과 양윤재 본부장을 문화재파괴 및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검에 형사고발했다. 3월 6일 문화재청은 발굴조사 지역 10m 이내는 통수로 공사를 중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4월 9일 문화재청은 광통교와 광통교지, 수표교지, 오간수문지를 중요문화재로 가지정하였다. 그리고 2005년 1월 21일 사적분과위원회는 광통교와 교지, 수표교지, 오간수문을 사적으로 지정키로 의결하였다. 그러나 청계천 개발 사업 초기 서울시는 지표조사에 대해 전혀 준비가 없었고, 시민사회의 요구에 마지못해 지표조사를 실시했으며, 지표조사 결과 문화재위원회에서 발굴의견이 나오자 이명박 시장과 양윤재씨는 ‘돌덩어리가 가지고 왠 난리냐’ 며 반문화성을 어김없이 표출하였으며, 수표교 남측 교대는 발굴 조사를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부지 매입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발굴조사를 하지 않았다.

표-2. 청계천 복원후 주변 문화제들의 현황8)

5. 사회약자에 대한 배제의 공간

▲ 청계천은 차별천 이라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서울시는 청계천 관람객수를 집계하면서 지방 관람객(80만명)과 외국인 관람객(15만명) 등은 파악하면서도 장애인 이용자는 별도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9) 공공의 공간일수록 일반시민들의 접근성뿐만 아니라 장애인 노약자 그리고 아동들의 접근이 용이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청계천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에게 청계천은 산책로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는 매우 부족하고 더군다나 바닥마감재로 사용된 대리석은 불편한 사람을 쉽게 피로하게 만든다.
결국 청계천은 장애인들에게 접근권과 이동권을 상당히 제약하는 “차별 천”이 되고 말았다. 마감재 간의 빈 간격에 휠체어 바퀴가 낄 수 있고, 울퉁불퉁한 바닥은 이동하는 장애인에게 불편함을 야기하게 한다. 서울시에서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청계천 경관이 장애인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청계천 공공공간을 이용하는 시민을 위한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못해 불편이 매우 크다. 5.8km의 긴 산책로에는 화장실과 휴지통, 그늘막이 없을뿐더러 물을 마실 수 있는 음료수대도 없거나 부족하다. 산책로를 벗어나 인근 빌딩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청계광장 등 초입부의 건물 화장실은 인산인해를 이뤄 사용하기 힘들다.10) 따라서 청계천 복원공사를 앞두고 장애인들은 이곳이 차별 천이라 외치며 항의하고 농성을 벌였다.

<본문주석>

1) 청계천복원 성과는 이명박이 독점, 문화연대 김상철

2) 청계천 복원사업의 갈등관리 전략, 성지은

3) 제1기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의 역할, 노수홍

4) 같은 책

5) 청계천시민위 활동 전면 중단, 2003년 11월 5일 한겨레 신문

6) 2004년 4월 6일, 조선일보

7) 청계천 및 주변부 관리계획적 측면에서 바라본 서울시 청계천복원사업 평가, 이제선

8) 역사와 문화를 정치 도구화하는 청계천 사업 (자료 재구성), 황평우

9) 청계천 ‘장애인 문턱’ 언제까지, 경향신문 2005-11-11

10) 청계천 및 주변부 관리계획적 측면에서 바라본 서울시 청계천복원사업 평가, 이제선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webmaster@minplu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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