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진 저, 2010. 파란하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요즘. 국제정세를 요동치게 만드는 구조적, 지리적 중심인 한반도의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반도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분단된 상태로 남은 지역이다. DMZ는 동서 냉전시대의 유물로 지금까지 존재하는 ‘전쟁이 잠시 중단된’ 상징이기도 하다.

2018~2019년 한반도 DMZ의 직접 당사자인 문재인과 김정은 그리고 트럼프가 DMZ에서 '역사상 최초'로 만났다. 하지만 지난 70년간 굳게 닫혀있던 DMZ는 쉽사리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남북 4km, 동서 248km의 광활한 대지인 DMZ는 한반도에서 농업이 시작된 이래 농업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동으로 남강, 서로 북한강, 한탄강, 임진강이 맞닿아 흘러 교통의 중심지가 되어 왔던 곳이다. 한민족의 젖줄인 한강과 함께 한반도를 반으로 나누고 점령자를 한반도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분단의 상징이 되어 버린 곳이 바로 DMZ이다. 

이 책 <한국사의 중심, DMZ>는 DMZ와 이곳을 무대로 활약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생동감 있는 보고서다. 

시민단체에서 통일문제를 연구해 온 최현진 씨다. 월간 <민족21>에서 기획팀장, 인터넷신문 <코리아포커스>에서 통일부 출입기자,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 통일교육전문위원으로 ‘DMZ 지역 평화통일 길라잡이’로 활동한 바 있는 저자는 “DMZ 곳곳에 남겨진 역사의 현장을 찾아 과거 이 지역을 중심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시대에 누가 있었는지를 알아보고, 이를 통해 시대를 관통해 미래를 고민해 보고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DMZ 지역을 지배한 사람은 한반도의 실질적 지배자로 군림했고, DMZ에서 죽은 이들은 정신적으로 무속신앙의 주인이 되었다. 심지어 역사 이전에도 한반도의 주인들은 DMZ를 중심으로 탄생했고 생활했다. 한반도에 유입된 최초의 인류인 구석기인들의 중심지 경기도 연천, 농업이 시작된 경기도 김포가 그 증거다. 

역사시대에 들어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DMZ를 차지해 백제를 압박하고 신라를 구원함으로써 자신의 한반도 지배력을 높이고 대륙진출에 성공했다. 특히 강화도를 접수해 백제가 중국으로 가는 교역로를 차단하고 신라가 중국으로 가는 길을 감시할 수 있었다. 

신라 역시 진흥왕 시기 DMZ 지역을 차지하여 고구려를 압박하고 백제를 견제함으로써 대국으로 발전하는 기틀을 만들었다. 반면 신라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여 DMZ 일대의 일부를 탈환했던 백제는 신라에게 다시 이 지역을 빼앗기면서 국가가 쇠퇴하고 급기야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처럼 저자의 책을 통하여, 삼국시대의 격전의 현장을 찾아보고 당시의 역사를 머리 속에 그려보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삼국시대를 지나 후대의 태봉국의 궁예,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 고려의 최영 장군, 조선 명종 때의 의적 임꺽정.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 모두도 DMZ 지역에서 기반을 닦거나 활동했다. 

조선 철학의 기반을 제공한 성리학, 실학 등을 발전시킨 역사의 지성들도 이 지역에서 나거나 자란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고 해서 모두 그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 중 역사의 패배자도 상당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어서 역사에서 패배한 사람들은 대부분 예외 없이 그 기록이 삭제되고, 비겁자 배신자 폭군 등 갖가지 혹평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의 패배자가 계속 패배자로 남는 것은 아니다”라며 “역사를 쓰는 살아있는 권력은 매정할지라도 민중들은 패배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추모의 정을 보낸다”고 말한다. “오히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민중은 혹독한 비판을 한다. 그리고 죽은 권력을 그들의 마음 속에서 다시 부활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책에 ‘미륵’으로 다시 태어난 궁예, DMZ에 잠들어 ‘대왕신’이 된 경순왕, 한반도 최고의 ‘장군신’으로 받들어진 최영, 사후에 철원 민초들에 의해 ‘영웅’으로 부활한 임꺽정 등, 역사의 패배자들인 이들이 어떻게 민중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게 되는지 소상하게 설명해 두었다. 

이렇게 DMZ 지역이 한반도 역사의 중심지가 되어 왔음은 분명하다. ‘활동한 인물이 역사의 승자였나 패배자였나’하는 문제를 떠나서 말이다. 그렇다면 분단의 시대인 현재의 DMZ는 한민족에게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통일을 준비하는 이때,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선조들의 중심지 DMZ를 너무 소홀히 다른 나라(미국)에 맡겨 놓은 죄는 아닐까”라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그리고 “이제 통일과 함께 세계의 중심으로 나가기 위해서 다시 한번 조상들의 DMZ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역사시대 이래, DMZ 지역이 한반도와 한민족의 중심이었다는 저자의 논리에 수긍이 가면서도 한반도와 한민족의 중심을 DMZ 지역에 한정하게 될 경우 역사인식이 좁아질 우려도 있다. 저 멀리 한민족의 조상인 고조선과 고구려의 관점에서는 역사의 중심이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이고 대륙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조선시대 명나라 중심의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일부 사대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역사학계의 주류가 된 친일사학자들이야 한민족이 ‘한반도’ 안에 머무르기를 원하겠지만, 5천년 넘는 한민족의 시야와 포부는 만주를 넘어 대륙으로 향해 펼쳐졌음을 후손들이 제대로 알게되기를 바란다.

[2019년 10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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