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2020년 미국 대선에 개입하도록 요청했다는 내부 고발에 이어 미 민주당의 대통령 탄핵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트럼프가 미 대통령 가운데 네 번째로 탄핵 대상이 된 이번 사태는 내부 고발자가 백악관에 파견된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알려지고, 그가 작성한 고발문이 대통령의 위법 사실을 정확하게 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2016년 대선과 관련해 촉발된 ‘러시아 스캔들’의 경우, 이 사건을 수사한 특검이 ‘재직 중인 대통령은 수사할 수 없다’는 법규에 따라 트럼프는 직격탄을 피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내부 고발자가 수개월 동안 백악관 내부 심층 직에서 다루던 관련 정보를 입수해 퍼즐을 맞추는 식으로 치밀하게 작성했고, 백악관 직원 일부가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까지 폭로했다. 이에 따라 탄핵 조사를 선언한 미 민주당 하원 소속 의원 대부분과 함께 공화당 의원 일부도 사실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트럼프는 특유의 직설적 어법으로 반격을 취하고 있지만 ‘내부 고발 행위를 스파이’라고 매도한 사실까지 미 언론에 보도되면서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뉴욕에서의 UN 총회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자신의 탄핵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최대의 사기’라고 맹비난했다.

2020년 11월 미 대선전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발생한 이번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속단키는 어렵다. 미 민주당 하원 지도부 등은 ‘러시아 스캔들’ 때부터 최근까지 트럼프에 대한 탄핵 조치 발동에 대해 역풍 등을 우려해 극력 회피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미 상원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 등을 고려한 태도였지만 이번의 경우는 확연히 달랐다. 미 민주당은 ‘우크라 의혹’이 트럼프 탄핵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내년 대선은 물 건너간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우려되는데도 탄핵 강행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정치 정의 확립보다 선거 승리와 같은 당리당략을 최우선시하던 미 민주당 지도부의 종래의 태도에 비춰볼 때 대단히 이례적이다.

‘우크라 의혹’은 트럼프가 한반도 비핵화를 외교적 성공 사례로 자신의 재선에 이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는 한반도 비핵화를 성공시켜 재선 승리는 물론 노벨 평화상까지 노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탄핵 가능성이라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한 트럼프가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모든 협상은 상대가 있기 마련이라 북한의 입장도 중요하다. 북한은 클린턴 정부 때인 2000년 북미 수교 직전까지 갔지만, 그 해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진전 가능성이 컸던 북미 관계는 원위치 되고 말았다. 미국 대통령은 헌법상 보장된 권한이 대단히 막강해서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트럼프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국내외 정책을 뒤집거나 백지화하는 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해왔다. 유사한 사태는 2020년 대선 이후에도 벌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만약 트럼프가 ‘우크라 의혹’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대통령 권한의 범위 안에서 타결 짓는다해도 내년 미국 대선에 만약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그 이후가 보장되지 않는다. 북한이 ‘우크라 의혹’ 발생에 따른 트럼프 탄핵 움직임의 추이를 바라보면서 회담 일정을 저울질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미 민주당이 실보다 득이 많을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을 한 결과 트럼프 탄핵 조치 발동을 선언한 만큼 ‘우크라 의혹’은 단기간 내에 결말이 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내부 고발자가 정보에 정통한 전문가로 그의 폭로 내용은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특검 조사 결과보다 훨씬 더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것으로 워싱턴 포스트 등 미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는 것은 그가 지난 수일 동안 보인 격렬한 반응에서도 그 심각성이 읽히고 있다.

‘우크라 의혹’은 그 불똥이 한국에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뉴욕으로 달려가 북미정상회담 지지와 지원을 강조하면서 가까운 시일 안에 북미 협상 재개를 희망했었다. 그러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6일 “9월 안에 북미 실무협상이 시작되지 못한다”고 밝혔고, 김계관 북 외무성 고문도 27일 북미 실무협상의 난항을 거론하며 ‘트럼프의 용단’을 언급했다. 향후 북미관계가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공을 들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는 내년 총선까지 진전이 없을 가능성이 커졌다.

문 대통령은 조국 장관 문제로 외견상 정권 내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이 발생한 것과 같은 국면에 처해 있다. 여권은 검찰과 언론의 책임을 묻고 있으나, 대통령 지지도 감소가 정권 내부의 힘겨루기 또는 소모전과 같은 현상이 주원인이라는 특성이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 의혹’의 발생과 한반도 비핵화 추진 동력의 약화 가능성이 발생한 것이다. 청와대가 동시다발적으로 닥친 악재들을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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