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아주 특별한 추석을 생각하며

추석이 막 지났다. 추석하면 2012년 9월말에 제8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를 참관했었던 때의 기억이 새롭다. 북의 매체들에서 2000년대 초에 완성한 세계적 최첨단 공작기계인 CNC에 대해서 자랑스런 글들을 여러 번 읽었었다. 고난의 행군시기 험난한 나날에도 이 초정밀기계의 연구개발에는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지원했고 자력자강의 기본 토대를 놓은 의미로서 또한 여러 과학기술분야의 응축된 협동의 산물로서 탄생한 제품이 CNC였던 것이다. 전람회장의 정면 중앙에 희천련하종합기계공장이라고 자랑스럽게 산뜻한 CNC기계를 여러 대 진열하고 있었다. 개발자들이 자랑스럽게 기계에 대해서 설명을 했었다.

전람회가 열리는 3대혁명전시관의 야외전시장에는 북에서 최초로 만든 국산 완성화물차와 초대형 탄광광석운반차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승리58”이라는 표지가 붙은 화물자동차가 그 주인공이었다. 1950년대 아시아에서 완성차를 만든 나라가 일본을 제외하고는 북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큰 충격과 동시에 의문도 있었다. 당시 남의 현대자동차가 수출전선에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는데 북은 전쟁이 끝난 지 5년밖에 안되는 1958년도에 완성차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엇갈려 들어왔다. 현대자동차보다도 수십년 전에 엔진까지를 포함한 완성차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었다. 그 후에 그 사실을 확인하고서 나의 무지에 대해서 큰 충격을 받았었다.

전람회가 끝난 뒤 9월 30일은 일요일이며 추석이었다. 남쪽에서나 마찬가지로 북에서도 성묘를 가는 것이었다. 그 날 능에 가는 길에 교통이 폭주해서 성묘가는 길의 교통체증 현상을 보았다. 북에는 차가 현저히 적은 것은 사실이고 다른 나라 큰 도시에 비교해서 커다란 차도가 한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추석날 성묘길은 사정이 전혀 달랐다.

열사능 앞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은 옷들을 정갈하게 입었고 특히 여성들과 어린이들은 색깔 고운 우리 전통옷을 입고 있었다. 꼬마들은 웃고 재잘거리며 마치 소풍 온 행렬 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담당하는 애국렬사능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숙연한 참배길을 계속했다.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여기에 계셔서 역사의 현장감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되었다. 많은 사진을 찍었다. 오늘 그 사진들을 꺼내보며 그 특별한 추석날을 되돌아본다.

▲ 신미리 애국렬사능 옆에서 곱게 차려입은 열사능 안내원과 함께

박팔량선생 묘지를 참배하는 리억세선생 가족. 그는 한글학자 리극로선생의 아들이다. 이름도 억세라고 지었으니 리극로선생 기풍이 아들 이름에도 묻어 있다.

박팔량선생은 “동지”라는 시로 유명하고 호를 딴 “여수시초”를 남기신 수원출생 시인이다. 해방 후에 월북해서 숙청당했다고 남쪽에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애국렬사능에 묻히신 것만 보아도 사실이 아니다. 비전향장기수 박문재선생이 아드님인데 2000년도 평양에 올라가서 고려호텔에 가까운 아파트에 살고 계시다. 외출할 때는 옷차림이 특히 경쾌하게 단장을 하고 다니셔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충청남도 논산군 은진면에 있는 고려시대 고찰 관촉사 주차장 수금원으로 일하다가 2000년 9월 북으로 올아가신 김명수선생님을 애국렬사능에서 재회했다. 글자도 깨우치지 못하고 대대로 머슴살이하던 비극적인 가족사의 맏이 김명수, 1946년도에 꿈에나 그리던 자기 땅을 무상으로 받고 꿈인지 생시인지 감격속에 살던 소년시절의 김명수, 학교에도 가서 글을 깨우치게 된 전설 같은 이야기를 전해주셨던 분. 항일빨치산 김일성장군에 대한 고마움에 사무치는 이야기를 대전시 유성에 있는 “사랑의 집”에서 들려주었던 비전향장기수 선생님. 손명수선생님과 함께 내 고향 논산에 계시던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이시었다.

나의 절친이 감옥에서 같이 있을 때에 김중종선생님의 인격에 감화 받았다고 여러 번 들려주었는데 여기에 누워 계서서 친구 대신 인사를 올렸다.

평양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 계신 분이 리종선생님께 꽃다발을 바쳐줄 것을 부탁 받은 일이 있었다. 비전향장기수 묘비에는 모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라는 글을 묘비에 새겨주었다. 그 약속을 이행했다.

세계 최장기수로서 기네스북에 기재되었다는 비전향장기수 김선명선생님 묘에 참배객들이 놓고 간 꽃다발들이 여러 개 놓여 있다.

비행훈련중 기체 이상이 발견되어 지상에서 탈출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기가 추락하는 아파트 밀집 지역을 피하기 위해 기수를 돌려서 안전지역으로 추락을 유도하며 자기는 기체와 함께 산화한 길영조 영웅. 1992년 12월 23일로 적혀있으니 그가 29살 때였다. 인생의 황금기에 많은 인명을 살리고 꽃같은 딸과 부인을 남겨 두고 자기는 먼저 가서 여기에 누어있다. 살신성인의 본보기인 것이다.

마침 성묘 나온 부인과 딸을 만나서 너무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기를 요청했었다. 딸내미는 현역군인이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돌아가신 영웅과 함께하는 귀중한 사진 한 장이 내 기록에 남게 되었다.

돌아가신 이를 기리는 습관은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였다. 국가에서 묘역을 잘 정리해 주고 있고 유족들이 수시로 찾아온다고 한다. 참관자들이 먼저 가신 이들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공원처럼 정결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일가족이 늘어서 있고 꽃을 정렬하는 사이에 꼬맹이가 기어가고 있다.

왜정시대 우리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한 완강한 저항 한글학자 리극로선생 묘비. 현대 우리글이 일제의 간악한 언어말살정책을 버텨내면서 그 아름다움을 발전시킨 공로자중의 가장 큰 공로자 한분으로서 존경받는 리극로선생이시다. 선생님의 따님을 만나는 큰 행운을 얻었다. 박팔량선생님 묘비 사진에 나온 리억세선생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2012년도 9월 애국렬사능에서 나의 안내원이 김책공대 학장이라고 소개해서 함께 사진을 찍는 행운을 가졌었다. 평양에 대학이 수도 없이 많은데 안내원도 알아볼 정도의 대학학장이라면 지명도가 큰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7년 세월이 지난 금년 6월에 북의 인터넷매체 “조선의 오늘”에서 5분짜리 짧은 동영상을 보았는데 얼굴이 낯익은 인물이 나왔다. 호기심에 평양방문 사진기록을 다시 찾아보았다. 이 사진 인물이 동영상의 인물과 같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당시 학장이었던 그가 이제 김책공업종합대학총장이 된 홍순원선생인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가.

추석날 애국렬사능 방문이 이렇게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나에게 남겨 주었다.

바로 그 유투브 동영상 주소를 밑에 붙였다.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새로 건설한 미래과학기술원 완공기념식장에서 축사를 하는 인물이 바로 사진의 내 우측에 서 있는 홍순원총장인 것이다.

김책공업종합대학은 김일성종합대학 리과대학 등과 함께 북의 과학기술발전을 선도하는 인재 양성의 최고기관으로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동영상 주소를 복사해서 동영상을 열어 보시기를 권한다. 현재 평양의 면모를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다.

김책공업종합대학 미래과학기술원 준공식
《조선의 오늘》 Published on Jun 25, 2019 길이4:59

 

애국렬사능을 참배해고 돌아온 오후 늦은 시간에 전화를 받았다. 김철주사범대학 사회학과교수 정기풍교수로부터 온 전화였다. 추석날 혼자 호텔에서 지내는 나를 생각하고 같이 동무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너무 고마웠지만 가정를 가진 정기풍교수에게는 미안스러워서 오늘은 가족과 함께 지내시라고 했다. 그는 자기 아내는 평양이 고향이어서 오늘은 여기저기 갈 데도 많은데 자기는 고향이 회령이어서 미국에서 온 나와 마찬가지로 타향살이 처지라고 농담하면서 걱정 없으니 추석 저녁시간을 같이 보내자는 것이었다. 평양에서 함께 할 친구가 생겼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평양호텔 1층 식당에서 추석의 밤이 깊어갔다. 공식적이 아니고 저녁 술자리이어서 지난 얘기, 가족얘기 그리고 공식석상에서는 조심하던 질문들도 털어놓고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의 해박하고 사방 통달한 화재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작별이 아쉬워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창전아파트까지 걸어간단다. 추석달이 이미 창공에 솟아있고 길 건너편 평양대극장의 야경이 요정처럼 아름답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우리는 하나다. 함께 살아야 한다.

추석을 맞으며 2012년의 애국렬사능에서의 감격적인 사건들을 회상하며 남과 북은 5천년 역사를 함께 하는 단군의 한자손으로서 오손도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다음에 가면 김책공업종합대학에도 가보고 정기풍선생과 다시 밤이 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 오랜 동안 못 만난 홍문거선생님은 건강이 어떠신지, 김용수선생님도 심장박동기가 잘 돌아가는지, 함세훤, 김동기 멋쟁이 박문재 선생님들 추석에 태평양 건너에서 늦은 인사를 드린다.

여러분에게도 행복한 한가위가 되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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