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대 행동으로>, <이행 대 이행으로>, <단계별 대 단계별로>

북미 두 정상의 DMZ판문점 회동으로 잘 굴러갈 것만 같았던 북미대화가 한미합동군사훈련 등으로 인해 꼼짝도 하지 않았으나, 최선희 제1부상의 9일 담화 “미국과 9월 하순 대화 용의”(<로동신문>, 2019.09.09.)로 급물살을 탈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하더라도 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여러 요인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본질적으로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 대북강경파들의 잇따른 대북강병발언 등이 그 주요한 한 요인이었음은 분명하다. 지난달 21일에는 폼페이오가 “북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강력한 대북제재를 유지할 것”, 그리고 지난달 27일에는 “북의 불량행동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것들이 그 예다. 다시 말하면 ‘북이 완전히 핵을 포기해야만 체제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인식에서 한 발짝도 못나간 미국이었다.  

이렇듯 미국의 시각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데 있다. <조선신보>가 북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2019년 7월 12일 밝힌 예의 그 ‘공정성’문제에 대해 아직까지 미국이 답을 내놓지 못해서 그렇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해서 북이 ‘9월 하순 대화 용의’발언을 했다 해서 대화가 곧바로 재개될 수 있다느니, 뭔가 긍정적인 합의가 나올 수 있겠다느니 하는 그런 기대는 말 그대로 ‘소망적’ 기대 그 이상 이하도 아니고, 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최선희 제1부상이 같은 날 발언한 이 발언을 미국이 제대로 외교적으로 이해했느냐, 못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봐야한다. 

“만일 미국 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북미) 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북(김정은)은 예의 그 ‘새로운 계산법’을 올 연말까지로 해서 그 시한을 못 박고 있는데, 그런데도 미국이 또다시 과거와 같은 그런 ‘낡은 계산법’으로 북을 압박하려 든다면 ‘연내 시한’은 지켜질 수가 없어서 그렇다. 그리고 그 결과도 비록 위태롭기는 했지만, 나름 지켜져 왔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아름다운 로맨스’가 한낱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해서 이번 최선희 제1부상의 발언에서 주목돼야 되는 것은 이미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9월 하순 대화 용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과연 ‘새로운 계산법’을 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고, 만약 미국이 그러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북은 예의 그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메시지가 이번 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공표된 핵심내용이다. 
  
그래놓고, 예의 그 ‘새로운 계산법’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복잡한 문제도 아니다.

미국 스스로가 너무나도 많은 정치적 셈법을 갖다 붙여 괜히 어렵게 만들어버린 그 오류가 더 문제라는 것이고, 문제의 심각성을 그렇게 해석해낸다면 한번 생각해봐야할 것은 70여년 이상이나 적대했던, 그것도 그냥 적대라기보다는 ‘철천지원수’처럼 대했던 두 국가가 그 적대를 종식하고 ‘새로운 신뢰관계’를 형성하려면 누가 보더라도 합당한 이치는 폼페이오가 “북, 몇 주 내에 협상 복귀 희망”(2019.09.08. 현지시간, <ABC> ‘디스 위크’에 출연해서 한 발언)과 같은 그런 입에 발린 립 서비스가 아니라, <행동 대 행동으로>, <이행 대 이행으로>, <단계별 대 단계별로>라는 퍼즐을 맞추는 것이다.

퍼즐을 그렇게 맞춰가다 보면 신뢰관계가 쌓이게 되고, 그렇게 신뢰관계가 쌓이다보면 비핵화는 그 결과로써 당연히 주어지게 된다. 해서 비핵화는 미국이 의도하고 있는 봐와 같이 ‘북이 핵을 포기하면 체제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된다기보다는 이 이행과정에서 생겨나는 신뢰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하겠다.  

그래야만 북도 기간 미국의 그 무엇을 믿고 핵을 폐기할 수 있겠다 했으며, 또 북은 너무나도 일관되게 지난 70년 간 적대해온 양국의 관계가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대화가 시작될 수 있었던 그 요인이 자신들 스스로가 오직 자체의 힘만으로 완성시켜 낸 ‘국가핵무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미국이 그 한마디, 말(립서비스)만 믿고 덜렁 핵을 폐기한다?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른바 서로가 원하는 그 최고 목표치에 대해서는 각자의 포지션에서 외교적 모호성으로 남겨놓고, 지금 현 단계에서 서로 합의하고 이행할 수 있는 것만 하나하나 협상해가는 그런 step-by-step전략만이 유일한 해법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들이 그렇게 원하던 비핵화를, 북은 자신들이 그렇게 원하던 대북제제 해제와 적대정책 철회를 얻게 된다. 

이는 출발 전부터 불가능한 합의를 통한 신뢰 쌓기가 아니라, 그 반대 즉,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는 서로의 요구주장 최대치를 충분히 뒤로 물리고, 합의 가능한 등가의 ‘단계적’이행을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고, 그 비례로 계속해서 step-by-step하다보면 비핵화문제가 서로가 원하는 방향 하에서 풀어질 수 있는 그런 전략 다름 아니다. 

출발선도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고, 일정한 국제사회의 합의도 있는 리비아식의 빅딜 안의 완전폐기와 대북적대 정책 철회, 단계적 동시적 이행을 통한 북의 비핵화 상응대가가 그 정답이다. 

오직 그렇게만 등가의 그 ‘공정성’개념에 가장 충실해야 한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