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영상 갈무리

KBS의 밀정 폭로와 극일, 그리고 그 이후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은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친일세력 척결과 같은 적폐청산과 함께 통일 미래를 향한 준비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이 모호한 가운데 최근 국내에서 극일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부각된다. 박근혜 정권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게 만든 촛불이 극일에 앞장서고 각계각층의 시민사회가 불매운동 등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것은 특기할만하다.

2차 대전 당시의 전쟁범죄를 부인하거나 외면하는 일본 아베 정권에 대한 분노의 강도와 참여 폭이 나날이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이는 해방 74년 이후 최초의 본격적인 극일 및 친일청산운동으로 보여 진다. 이런 상황에서 KBS 1TV가 지난 13일 ‘시사기획 창-밀정’에서 일제하의 밀정에 대한 특집을 방영한 것은 매우 뜻깊다.

김좌진 장군과 안중근의사의 측근이 밀정이었지만 해방 후 독립유공자가 된 사실과 함께 자료를 통해 확인된 밀정 8백 여 명의 이름을 폭로한 KBS 보도는 충격적이었다. 정부는 이런 역사적 과오가 방치된 것에 대해 즉각 국민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보훈처를 중심으로 유지되는 현행 상훈 제도가 얼마나 지독하게 왜곡되어 있고 그에 따라 ‘이게 나라냐’라는 원성이 왜 높았는지 이번에 KBS 보도를 통해 다시 확인되었다. 현 정권은 시민사회 일각에서 군 출신인 새 보훈처장관 후보를 교체해달라고 왜 요구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현명한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민족반역자들이 국가유공자로 둔갑한 것은 미군이 점령군으로 남한에 진주한 뒤 친일세력을 지배세력으로 편입시키고 이승만이 반민특위 강제 해산 등을 통해 일제 잔재들을 옹호하면서 자행된 공공연한 범죄행위였다. 오늘날 국내 일부 지배층이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한반도 근대화에 기여했다거나 아베가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폭거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보다도 친일파가 더 문제’라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절규가 가슴 아프게 들리는 이유다.

KBS의 밀정에 대한 탐사보도는 국내 토착왜구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드러내면서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이 지난 수십 년 간 이 사회에서 왜 고통을 받아야 했던가 하는 점을 구조적으로 파헤치는 계기가 될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아베가 촉발한 이번 사태는 해방이후 미뤄져온 친일잔재 청산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개연성이 충분했는데 KBS의 밀정 폭로가 거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극일 운동이 뜨겁게 벌어지면서 주목되는 것이 미국이다. 미국은 한국의 친일세력과 일본의 전쟁범죄를 청산치 못하게 한 중차대한 역사적 과오가 있다. 미국의 부정적 행태는 오늘날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 친일세력 청산 막은 역사적 과오 커

미국은 중국이 G2로 부상하자 이를 노골적으로 견제하면서 동북아가 냉전시대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이 대외정책 수정을 고민해야 하는 국면이다. 지난 수십 년 간 굳어진 한미동맹에만 매달릴 경우 중국의 경제보복과 함께 중국, 러시아의 군사적 압박 등에 적절히 대응키 어려워진다. 현상 유지가 가장 손쉬운 정책이라는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구태의연해서는 변화된 국제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미국은 오늘날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세이다. 미국이 한반도 관련 주요사안인데도 한국을 제치고 주인공 역할을 하는 것은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판을 받는 한미상호방위조약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군의 한국 배치를 ‘권리’로 규정하면서 미국은 슈퍼갑의 위치가 되고 한국은 그 뒤치다꺼리를 하는 심각한 불평등 관계가 고착되어 있다. 이 조약 때문에 한국은 주한미군의 시설과 기지를 제공하면서도 주둔비 상당분을 부담하고 미국은 큰 소리를 치는 기이한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한미간 군사동맹의 문제점은 필리핀과 미국의 방위협정만을 비교해도 훤히 드러난다.

미국이 한반도의 군사주권국가인 것 같은 행태를 보이는데 정작 한국에서 이를 적극 수용하는 목소리만 나오면서 미국의 일방통행식 행태가 일상화되고 있다. 트럼프는 트윗 등을 통해 주한미군 주둔비 등을 놓고 한국 정부나 국가수반을 조롱 또는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남발하고 있다. 트럼프가 문대통령 목소리까지 흉내내면서 국제사회에서 공개적인 우스개로 만든 것은 일반 상식과는 거리가 먼 삼류 정치 행각이라 하겠다. 21세기에 걸맞지 않는 한미관계는 일본과 국내 토착 왜구와 함께 한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어 그 정상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극일에 대한 사회적 호응이 높은 것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국격 회복 열망의 성격을 지닌다 하겠다.

문재인 정권은 남북, 북미관계 등을 고려한 탓인지 미국의 대북 정책이나 한반도 정책에 순응하는 태도를 이어오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도 점차 커지고 있다. 문 정권이 최근 일본에 보여준 단호한 태도의 연장선상에서 미국에 대해서도 줏대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한다. 이런 수치스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국정능력의 부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촛불의 극일 운동은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는 요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거대 여야 구태 청산 못하면 제3의 정치 세력 부상 가능

북한이 남한에 대해 막말 비슷한 소리를 내놓는 것에 대해 현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 자체 군비확충 외의 근본적 대책을 강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현행 한미동맹의 틀을 유지하면서 국보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증진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현실적 한계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지 살펴야 한다. 특히 건전하고 생산적인 남북관계와 그 미래를 공개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이 시급히 없어져야 한다. 국보법은 북한에 대해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주고받지도 못하게 하면서 상상도 하지 말라고 하는 악법중의 악법이다. 국보법이 존재하고 미국의 북한에 선제공격이 가능한 한미동맹관계가 존속되는 상황에서 남북한 경제공동체 모색과 같은 발상은 신기루를 쫓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권이 처한 상황은, 여러 변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충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향후 국내정세 전망이 어려운 상태다. 그러나 그 변수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면 지향해야 할 방향 정도는 드러나고 거기에 적절히 대처할 경우 크게 위태롭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극일 문제는 토착왜구에 대한 비판, 일부 지도층의 심각한 역사의식 결여 등으로 볼 때 앞으로 상당기간 주요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극일 운동의 동력이 소진된 이후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다. 친일세력 청산과 극일이 일단락 된 뒤를 정치권은 의식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역량이 극일의 성과를 거두는데 기여할 경우 그 이후 정치권에 대한 개혁 요구는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대비가 있느냐 하는 점인데 지난 2년간의 정치 실적을 보면 낙관적이지 않다. 개혁의 의욕과 능력이 매우 미흡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역사발전이나 사회변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사회의 파워가 가장 강력한 변동 촉발요인으로 보인다. 이는 독재정치를 시민혁명으로 청산한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의 대중화로 전국적 조직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퇴진을 성공시킨 촛불이 극일에 앞장선 것은 촛불이 문 정권 2년 동안 긴장을 늦추지 않았음은 물론 그들의 요구가 실천되지 못한 불만이 극일이라는 분출구로 폭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시민사회는 박근혜 퇴진과 같은 큰일을 해낼 동력을 상시적으로 비축하고 있어 앞으로 상당기간 국내 정치 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의 거대 여야당은 자력에 의한 참신한 정치가 아닌 상대의 실수와 헛발질에 기대는 정치를 하는 비생산적인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역량이 증대된 상황을 정치권이 당리당략적 시각으로만 보면서 ‘내로남불’을 지속할 경우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면서 최근의 우크라이나의 경우처럼 부정부패 척결과 유권자를 위한 정치를 내세운 무명의 정치인이 혜성처럼 등장하는 정치적 이변이 생길지고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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