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수 저, 2019, 여문책

"더불어민주당 김 모 의원실에서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현재 가액 기준으로 개인 토지소유자 중 상위 10%가 전체 개인 소유지의 65%를, 법인 토지소유자 중 상위 1%가 전체 법인 소유지의 75.2%를 소유하고 있다.

또한 경실련의 발표에 따르면, 2007~2017년 10년 사이에 다주택 보유자 상위 1%가 보유한 주택 수는 평균 3.2채에서 평균 6.7채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1.4채가 증가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2.1채가 증가한 결과다. 이는 지난 10년간 다주택자의 주택 사재기가 기승을 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다."(172쪽)

<부동산 공화국 경제사>는 대한민국이 불로소득 주도로 성장하는 국가이자 ‘부동산 공화국’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시점이 언제인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저자 전강수는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은 농지개혁으로 ‘평등지권’(모든 사회 구성원이 토지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짐)을 이뤄 토지분배가 어느 정도는 평등했던 나라에 속했는데, 어쩌다 부동산 공화국으로 전락했는지 역사적으로 살핀다.

저자는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이자 <진보와 빈곤>으로 유명한 헨리 조지(1839~1897)의 영향을 받은 경제학자로, 오랫동안 부동산 문제를 연구하며 ‘토지 정의’를 외쳐왔다. 전 교수는 이 책이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그릇 형성되었거나 형성되고 있는 신화에 진실의 빛을 비추는 구실을 하기 바란다”고 말한다.

저자가 부동산 문제의 역사를 중요하게 따지는 이유는, “한국에서 평등지권 사회가 성립하고 후퇴한 과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례없는 고도성장, 부동산 투기, 기득권 세력의 형성, 불평등과 양극화, 경제위기 등이 모두 그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에서다.

제1부 “해방과 함께 평등지권 사회가 도래하다”에서 해방 후 농지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반도를 무력으로 불법강점한 일본 제국주의는 1910~1918년 실시한 토지조사사업을 거쳐 조선 국왕의 토지 소유권을 지주들의 소유권으로 바꾸어 배타적 권리로 만들었다. 그 이후 식민지 지주제에서 소작농은 수확량의 50~60%를 지대로 바쳐야 했다. 
일제가 패망하여 물러간 직후 소작농민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넘쳤고 때마침 휴전선 이북에서 먼저 실시한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개혁의 소식이 전해졌다. 농지개혁은 어떤 정치세력도 외면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과제였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전쟁 이후 실시된 한국의 농지개혁은 유상몰수·유상분배 방식으로 진행됐어도 ‘지주의 나라’를 ‘소농의 나라’로 바꿔놓았다.

“대한민국의 농지개혁은 토지 자체를 균등하게 분배해서 일시적으로나마 평등지권 사회를 구현한 대표적 사례다.”

저자는 농지개혁이 가능했던 요인을 분석하며, 농지개혁은 이승만의 작품이 아니라 조봉암과 농림부 농지개혁팀, 개혁 성향의 소장 국회의원들이 주인공이었다고 밝힌다. 농업생산성은 상승했고, 농민들은 농업잉여를 자녀들의 교육 투자로 돌렸다.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성장과 한국 사회가 가진 놀라운 역동성의 역사적 기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농지개혁의 한계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도시 토지와 임야 등이 개혁대상에서 빠졌고, 토지 소유의 불평등이 다시 발생할 것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공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돼 토지문제의 중심은 농지에서 도시 토지로 옮아갔고, 1960년대 후반부터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이 이루어졌다.

필자는 저자가 조봉암과 농링부 그리고 개혁파 국회의원들이 농지개혁을 주도했고 한국사회에 ‘평등지권’을 가져왔다고 평가하는데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해방 이후 현재까지 전개된 ‘부동산 공화국’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그닥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식 ‘부동산 공화국’의 핵심은 도시의 토지문제에서 발행했고 무분별한 도시화였으며, ‘불로소득 환수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토지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제 말기 대주주의 절반을 넘던 일본인들의 토지, 즉 적산 토지를 미군정이 친일파들이 나누어준 것에 대한 분석이 반영되지 않았다.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를 거치는 과정에서 존재했던 국회의 여당과 야당은 토지가의 급속한 상승을 억제하기는 커녕, 그 과정에 편승하면서 ‘부동산 공화국’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너나 없이 뛰어들었다.

제2부 “대한민국, ‘부동산 공화국’으로 추락하다’”에서 저자는 유신독재자 박정희가 강남 개발을 착수하면서 ‘부동산 공화국’이 시작되었다고 폭로한다. 박정희의 강남개발 이후 한국 사회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불로소득을 좇아 민첩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주범은 박정희였다. 강남 개발이 출발점이었는데, 사실 국토 개발의 청사진을 구현한다는 식의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경부고속도로 용지 확보와 정치자금 마련이라는, 엉뚱한 목적을 위해 추진한 것이었다.”

박정희가 ‘부동산 공화국’의 지옥문을 연 것이다.

강남 개발은 1966년 착공한 제3한강교(한남대교)와 1968년 착공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계기로 시작됐다. 고속도로 건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나온 게 ‘영동지구 구획정리 사업’이었다. 영동(永東)은 오늘날 강남을 가리킨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한강변의 공유수면 매립과 함께 대형 아파트 단지 건설이 본격화한다. 1963~1977년 사이 주거지역 지가는 서울 전역에서 87배 상승했는데, 강남은 176배 뛰었다. 강남 개발은 ‘아파트공화국’ ‘부동산공화국’의 원형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한국 사회는 1970년대부터 대략 10년을 주기로 부동산 투기 열풍을 겪으며 ‘지대 추구 사회’(rent-seeking society)로 변질되고 말았다. 박정희는 처음으로 지대 추구의 짜릿함을 맛보게 했다는 점에서 과오가 크다.”

저자는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검토하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는 중구난방으로 투기억제 대책을 쏟아내다가도 거시경제와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는 기미가 보이면 바로 이전 대책들을 후퇴시키고 적극적인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펼쳤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기념비적인 것들이었다”고 평가한다. “보유세 강화를 중심축으로 하고, 다주택자와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양도세 중과, 그리고 다양한 개발이익 환수제 시행을 보조 축으로 하는 전방위적 정책이었다.” 노무현 정부만이 “부동산 불패 신화와 정면 대결을 펼쳤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실패로 보는 견해도 반박한다. “오로지 집값을 못 잡았다는 것 하나인데, 당시 유례없는 유동성 확대로 전 세계 국가들에서 부동산값이 폭등했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가격 상승 폭이 낮았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비판이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기념비적’이라는 저자의 평가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 갔다”라는 대통령의 선언이 지금까지 회자되듯이 철저하게 재벌과 부동산개발업자 그리고 부동산소유자가 유리한 정책을 유지했을 뿐이다. 그리고 임기를 마치면서 경실련 김헌동씨가 공공연하게 주장하듯이 “부동산 거품 4천 조원”을 남겼을 뿐이다. 부동산 거품의 원인은, 노무현 정부가 분양원가 공개라는 대선 공약도 폐기했고, 담보대출 규제와 다주택자 중과세 그리고 분양가상한제도 포기했기 때문이다. 온갖 공공 토건사업을 벌이고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 개발정책을 남발하였으며, 결정적으로 임대주택 중심으로 공급하겠다는 판교신도시를 개발업자들의 아파트 분양 잔치로 만들면서 ‘시장’과 ‘소비자’에게 “노무현 정부에서도 부동산 공화국은 불패 신화”라고 선언했다.

물론, 노무현 정부가 주택실거래가 신고제를 도입하고 임기 후반에 종부세라는 토지보유세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과세정책을 도입한 것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공’은 그것 뿐이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공’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과’가 크다.

이 책에서 특이한 점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기념비적인 정책”이었다고 평가하면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낙제점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는 날을 세운다.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지금까지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해 부동산공화국을 해체하려는 의지를 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까지 발표하고 시행한 부동산 정책도 “시장조절 정책과 주거복지 정책밖에 없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의 갈등과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현 정부는 대통령부터 청와대 참모진, 여당 국회의원과 주변의 전문가들이 대다수 노무현 정부에서 몸담았던 이들이 주축이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집권 이후 수많은 대선 공약이 유야무야 사라지고 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노무현 대통령처럼 “순수하고 열정적인 초심”에 의한 강력한 “발언”을 자제하고 있을 뿐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부동산 공화국을 바꾸기 위한 저자의 대안은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을 연계시키는 정책이다.

“부동산공화국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환수하는 일이 급선무다.”

“국토보유세 순증분을 모든 국민에게 분배하는 토지배당을 하면 실질적 세부담이 늘어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저자는 국토보유세 도입을 제안한다. 국토보유세는 토지에만, 그리고 모든 토지 보유자에게 부과된다. 부동산을 소유권이 아닌 주거권·사용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헌법의 모호한 토지공개념 조항을 명료화하고 ‘특권이 있는 곳에 우선 과세한다’는 원칙을 세우자고 제안한다.

한국처럼 관료와 정치권 그리고 재벌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에 사활을 거는 부동산 부자와 토건족이 형성되었고, 보수 언론, 경제관료, 부동산 시장만능주의 학자가 이들과 결탁해 강력한 부동산공화국 지배 동맹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 종부세 반대운동이 대표적이다. “달랑 집 한 채 가지고 자식들 공부시키고 빠듯하게 살아가는 중산층과 서민층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배 동맹과 동류의식을 느끼고 지원군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 결과, 정치인, 건설업자, 유력자, 재벌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 중산층,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이 부동산으로 ‘대박’을 노리는 사회, 그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저자가 “한국식 부동산 공화국 해체”를 위해 제안하는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은 현 정부(정권)에서 채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이유는 먼저, 현 정부와 여당이 부동산 공화국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여러 차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드러났듯이 현 정부와 여당의 구성원들이 ‘부동산 공화국’의 참여자이자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셋째, 주요 야당의 구성원들은 부동산 투기에 대한 열망과 신념이 현 정부 여당의 구성원들보다 더 하면 더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분간 한국 정부와 국회가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을 도입하기는 커녕 분양가 상한제나 후분양제, 분양원가 공개, 공공임대주택 확대, 다주택자 규제, 임대주택 의무등록 및 과세, 부동산 불로소득 과세, 토건개발 축소 정책 등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정부가 10월부터 투기과열지구에 한해 주거정책심의위를 거쳐 분양가상한제의 시기와 지역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꼼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해야 할까. 몇 가지가 동시에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먼저, ‘부동산 공화국’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당사자들이 스스로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즉, 박근혜를 탄핵시키기 위해 광장에 모였듯이, 조직적으로 광장에 뛰쳐나와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부동산 공화국 해체와 각종 법과 제도를 도입하라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것은 시민사회단체의 선도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둘째, 부동산 공화국 해체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이 중심이 되는 정당, 부동산 공화국 해체에 뜻을 같이 하는 정당이 정부와 국회에 참여할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진보정당이 커져야 한다.

[ 2019년 8월 16일]

(다른 책에 대한 리뷰가 궁금하신 분은 블로그 http://book.interpark.com/blog/connan를 찾아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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