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시아 중거리 미사일 배치 시도와 사드의 악몽

▲ 한국을 찾은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장관이 8월 9일 오전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안보현안 논의를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오고 있다.[사진 : 뉴시스]

미국이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탈퇴를 선언한 후 아시아에 재래식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원한다고 밝힌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강력 반발하면서 동북아의 냉전구도가 더욱 악화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환구시보 등은 최근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은 공격용이고 핵 탑재가 가능해 고고도비사일방어체계, 사드가 방어용인 것과 차원이 다르다고 면서 한국과 일본에 중거리미사일 배치가 현실화되면 해당 국가는 군사. 경제적 보복 조치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사드의 한국 배치에 이어 중국 전역과 러시아 일부를 겨냥한 사정거리 500~5.500km의 중거리미사일을 일본이나 한국에 배치할 경우 공수 양면에서 월등한 전략적 우위를 점할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려되는 것은 미국이 아시아 어느 나라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미국 언론이 한국을 이미 거론한 것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한국이 미국과 맺은 군사동맹은 미국에게 슈퍼 갑의 위상을 보장하고 있어 미국 입장에서는 가장 간편한 배치 후보지역이 될 수 있다. 이는 사드의 한국 배치 과정을 복기하면 그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한미동맹의 상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 군사력의 한국배치에서 ‘갑’의 위치이고 한국이 ‘을’이라서 대등한 주권국가간의 협상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드의 한국 배치와 관련해 2016년 7월 국회 대정부 질의에 대한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의 발언에서 드러났다.

사드 배치가 기정사실화되면서 국회 등에서 큰 논란이 벌어졌던 2016년 7월 12일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제기된 ‘사드 배치에 대해 왜 국회 동의를 받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사드배치는 주한미군이 우리에게 통보하면 협의하는 것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소파(주둔군지위협정), 주한미군전력 운용통보 및 협의절차 법규 등에 의해 국회 동의 등의 절차는 전혀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라고 답변했다< 한겨레신문 2016년 7월 12일 >.

또한 2016년 7월 13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관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사드 배치가 국회동의 사항인지에 대해 "한국에 사드 배치를 요청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판단은 미국이 한다. 미국이 (판단)하고 우리는 받아들였다. 사드 한국 배치는 미국이 자체적으로 검토해서 한국에 요청했고, 한미동맹체제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뉴시스 2016년 7월 13일>.

박근혜 정권 시절 정부 고위층의 사드 배치 근거에 대한 발언은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운데 4조를 주로 언급한 것이다. 이 조항에 따라 미군은 자국 군사력을 한국 배치하는 ‘권리(right)’가 보장되어 있다. 이 ‘권리’를 한국은 허여(grant)하며 미국은 수용(accept)하게 되어 있다. grant, accept는 조건 없이 주고받는 의미의 외교용어다. 미국에게 슈퍼갑의 위치를 보장한 4조에서 주한미군의 시설과 구역을 한국이 제공하는 SOFA와 주한미군방위비 분담협정인 SMA가 파생되었다. 미군의 한국 배치를 ‘권리’로 규정하면서 한국이 주한미군의 거의 모든 경비를 부담하는 법적 근거가 된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상호방위조약의 경우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와 같은 미국의 ‘권리’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이 중거리미사일을 아시아에 배치하려 할 경우 일본보다는 한국이 더 쉬운 교섭 대상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볼턴 보좌관이 중거리미사일의 아시아 배치는 동맹국을 위한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그 의미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미국은 한미군사관계에서 지난 수십 년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앞세워 군사적 이익을 챙기거나 주장하면서 동북아 정책을 추진해 왔다. 예를 들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을 한국이 100% 부담해야 한다고 말한 데 이어 최근 그것을 기존의 1조 원보다 5배를 늘린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그 근거가 이 조약 4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나아가 미국이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한국에 요구할 경우 사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에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향후 중재의 조건으로 주한미군 주둔 비 증액과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요구하려는 속셈이 아닌지 우려된다.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아시아 배치가 현실화된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한다고 경고하고 있어 동북아의 신냉전 구도가 대단히 심각한 상황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보장된 특권에 이어 전시작전지휘권까기 장악한 미국이 지난 수십년간 북한 선제공격 카드를 대북 협상 또는 위협용으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한미동맹 4조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평택 미군기지가 미군 해외 기지 가운데 최대인 것은 부끄러운 한미관계의 상징으로 한국이 미국의 군사적 식민지를 방불케 하는 대미종속성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된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경우에도 주한미군은 1978년 창설된 한미연합사령부에 의해 계속 주둔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는 미국식 합리주의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만들어놓은 장치가 다수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검토 등이 군사적 주권 확립 과정에서 취해져야 한다.

미국이 한미동맹과 관련해 취하는 입장은 한국 사회의 뜻과 배치되는 것으로 최근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희망하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한반도 전면전쟁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미 지상군, 해군, 공군 병력 69만 명, 선박 160척, 비행기 2천 대 등 지원군의 한반도 증강 배치를 위해 일본의 비행장과 항구가 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는 지소미아에 의해 보장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자유아시아방송2019년 8월 6일>. 한편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소미아에 대해 조사한 결과 47.7%가 폐기에 찬성, 반대는 39.3%로 찬성 응답이 8.4%포인트 높았다<쿠키뉴스 2019.08.07.일>.

미 정부는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무비자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는 비자 면제국 시민들의 방북을 위축시키면서 특히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교류를 적극 추진 중인 한국 정부에 북한 비핵화 집중을 위해 속도조절을 압박하는 목적이 있을 것이란 진단도 제기됐다<미국의소리방송 2019년 8월 7일>.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기 위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하는 방안에 한국민 10명 중 6명꼴로 찬성하는 것<서울신문 2019년 7월 18일>으로 나타났으며 더불어민주당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사업이 반드시 재개되어야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머니투데이 2019년 7월 31일>.

한미군사동맹은 사드의 배치 강행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중국의 강력 반발과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 등이 이어지면서 그 그늘이 짙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군사전략이 한국의 국가적 이해관계나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강화에 역행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미군사동맹의 정상화를 통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미국이 자국 이익에만 집착하는 일방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유도할 수 있다.

21세기 동북아 정세는 한미군사동맹의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미군사동맹의 정상화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하는 것에서부터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협정과 같이 군사적인 호혜평등관계를 설정하는 것 등 그 선택지가 다양할 것이다. 이는 21세기 국제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한국이 군사적 자주권을 확보할 경우 한국이 한반도의 비핵화나 평화통일, 나아가 동북아의 진정한 조정자나 평화증진자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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