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시대연구원의 <북 바로알기 100문100답(1)> 맛보기②

4.27시대연구원이 한반도 정세 변화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성큼 다가온 북한(조선)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돕고자 <북 바로알기 100문100답> 1권을 출간했습니다. 민플러스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몇 차례 소개합니다.[편집자]

[문] 북에서 사용하는 합성섬유는 나일론이 아니라 비날론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비날론의 발명자인 리승기 박사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북이 리 박사와 비날론을 특히 호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남쪽에선 과학자를 모델로 우표를 발행한 적이 없지만 북에선 두 차례나 한 사람의 과학자를 기념한 우표를 발행했습니다. 폴리비닐알콜(PVA)계 합성섬유인 ‘비날론(Vinlylon)’의 발명자 리승기 박사(1905~1996)입니다. 이로써 리 박사는 1960년대 초까지 남북을 통틀어 해외에 가장 유명한 과학자였다고 합니다. 북에선 자서전은 물론 대중용 전기도 출판했다고 하네요.(KISTI ‘과학향기’ 칼럼) 

▲ 리승기 박사.[사진= 조선의오늘]

전남 담양 출신인 리 박사는 일본에 유학, 1931년 교토제국대학 공업화학과를 졸업하곤 아스팔트를 연구하는 회사에 취직했다가 교토제국대 부설 일본화학섬유연구소에 연구강사로 임용되면서 원하던 합성섬유를 연구하게 됐다는군요. 
1938년 미국 듀퐁사가 석유를 원료로 한 최초의 합성섬유인 나일론을 개발하자 합성섬유 연구 바람이 불었는데 리 박사가 이듬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합성섬유를 발명한 겁니다. 이게 비날론의 시작이었는데 당시엔 이름이 ‘합성 1호’였다네요. 
비날론의 발명은 나일론과 더불어 인공적으로 섬유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시대를 연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였으니 조선에선 리 박사의 발명 소식에 환호했는데요. 과학잡지 과학조선은 조선인 과학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그를 꼽았고, 잡지 조광(朝光)도 ‘세계의 학계에 파문을 던진 합성1호의 기염-리승기 박사의 고심 연구달성’(1939년 12월호)이란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나무위키) 
리 박사는 일본에서 비날론 공업화를 위한 연구를 계속했지만 일제의 군수생산에 협력하지 않아 구금됐다가 8.15해방을 오사카 감옥에서 맞았습니다. 또 해방 직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장이 됐지만 1946년 미군정청의 ‘국립대학안’에 반대해 학장직을 그만두고 귀향하는 등 민족의식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뒤 리 박사는 김일성 주석의 수차례 거듭된 요청과 설득으로 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여러 제자들과 함께 월북한 뒤 북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956년 비날론 시제품을 생산한 데 이어 1961년 함경남도 함흥에 연 2만톤 생산규모의 2.8비날론공장을 완공해 본격 양산에 착수했습니다. 리 박사는 1962년 평생직함인 과학원 함흥분원 원장이 됐습니다. 
비날론은 흰색을 띠고 윤기가 나며 면의 성질에 가장 가깝고 질기며 유일한 친수성 합성섬유로서 흡습성이 좋답니다. 또 비중이 레이온, 아세테이트. 모, 면 등과 큰 차이가 없고 산·알칼리에 견디는 성질이 좋고 대부분 유기용매에도 안정하며 바닷물 속에서도 썩지 않고 곰팡이에도 강한데다 열전도성이 낮아 보온성도 좋구요. 특히 양털 등 자연섬유와 혼직하면 고품질의 외투천, 양복천들을 만들 수 있고 돛천, 천막, 방수포, 고기그물, 벨트 등을 만드는 공업용섬유로도 널리 쓰인다네요.(조선신보 2010년 2월24일자) 다만 생산과정에 상대적으로 전력 소모가 많답니다. 

▲ 2.8비날론연합기업소에서 비날론띠를 생산하고 있다.[사진= 조선의 오늘]

북에선 비날론을 ‘주체섬유’라고도 부르는데 과학기술 주체화(국내산 자원과 원료 사용)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나일론처럼 석유를 원료로 하지 않고 북에 무진장한 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하니 북의 입장에선 더할 나위가 없었던 거지요. 
김일성 주석도 “비날론 발명자도, 생산공정 설계자도 조선 사람이고 우리의 풍부한 원료에 의거하고 있어 비날론 공업은 완전한 주체적 공업”이라고 높게 평가했다네요. 비날론이란 이름도 김 주석이 지었다는데요, 옛날 조상들이 무명낳이(무명을 짜는 일)를 할 때 날실, 들실이라 일렀던 데 착안해 비날론이라 했답니다.(조선신보 2010년 2월24일자)

그런데 비날론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북의 전력난 등으로 공장 가동이 멈추면서 한동안 생산이 중단됐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도로 2010년 2월 2.8비날론연합기업소의 개건현대화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다시 생산됐습니다. 
이때 통일뉴스는 ‘2.8 비날론연합기업소’는 무엇인가?‘란 제목의 기고에서 “북한 화학공업의 중추인 비날론연합기업소가 정상화되었다는 것은 석탄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 화학공업이 정상화의 궤도에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학공업은 합성섬유뿐만 아니라 비료와 농약 등 농업원료를 생산하고 합성수지(플라스틱), 페인트 등 주민생활에 직결되는 각종 경공업 제품원료를 생산한다”면서 “비날론연합기업소가 정상화되고 그 생산량을 계속 늘려나간다면 북한 주민생활은 경제경공업 제품을 공급받는 측면에서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2.8비날론연합기업소에선 비날론 솜과 무기 및 유기화학제품, 고분자화학제품, 정밀유기화학제품 등이 생산되고 있으며, 비날론 공정의 중간재로부턴 가성소다, 염화비닐, 초산비닐, 염산, 촉매제를 비롯한 400여 가지의 화학제품이 생산되고 있고 살초제, 살충제, 물감도 만든다고 합니다.
두 해 뒤인 2012년 1월15일 재일 조선신보는 평양 제1백화점에서 비날론 제품이 판매되기 시작했음을 알렸습니다. 조선신보는 “비날론을 이용해 만든 담요, 양복천, 외투천, 목도리 등 다양한 비날론 제품들을 평양 제1백화점에서 판매하고 있다”면서 “흡습성이 좋고 질기기 때문에 시민들의 호평 속에 수요가 높다”고 전했습니다. 이들 비날론 제품은 함흥모방직공장과 평북 구성방직공장에서 생산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맞아떨어진 예언

북쪽 도서 <주체의 과학기술중시사상과 생활력>에 실린 리승기 박사에 관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날 리 박사가 병을 얻어 누워있었는데 차도가 없자 의사들이 국제 의학계의 추세라며 달걀노른자와 새우젓 등을 먹지 말라고 당부했답니다.

하지만 리 박사는 “아직까지 사람의 감각기관만큼 예민한 분석기구는 없다”면서 “혀는 모든 것을 가려내는 훌륭한 보초소”라며 거부했답니다. 리 박사의 얘기는 입에서 당기는 건 육체가 요구하기 때문이어서 자기 구미에 맞으면 꼭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리 박사를 보고 가족들이 걱정하면 “앞으로 달걀노른자와 젓갈류, 돼지비계 등 먹지 말하고 한 음식들이 제일 좋은 식료품으로 밝혀질 때가 꼭 있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곤 “지금 사람들이 돼지비계가 나쁘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분명 아직 해명 못한 성분이 꼭 있을 것이다. 젓갈에도 콜레스테롤을 해소시키는 성분이 꼭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답니다.

실제 리 박사의 ‘예언’은 맞아떨어졌지요. 달걀노른자에는 좋은 콜레스테롤만 있으며 젓갈은 피 속의 기름질을 제거해 동맥경화를 막게 해준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돼지비계는 핏줄의 탄성을 좋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주체의 과학기술중시사상과 생활력>은 “리승기 박사는 한생의 모든 사고를 과학과 결부시키고 그 원리대로 살아온 말 그대로 과학자였다”고 일화를 마무리했습니다.

▲ 4.27시대연구원이 발행한 <북 바로알기 100문100답(1)>

* 인터넷서점 알라딘(https://c11.kr/8yo0), 교보문고(https://c11.kr/8ynv) 등지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링크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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