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회관 745호실 이야기(4)

양파값이 폭락하니 백종원까지 양파소비를 촉진하고 나섰다. 농민들은 정부의 책임을 묻는다. 내용을 보니 농민들이 정부에 책임을 묻는 이유가 있었다. 양파값은 거의 매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보관이 용이한 작물이라 저장량이 많은데 재고관리가 안 되고 있고, 파종이기부터 생산을 조절하지 않고 생산 후 수매 · 산지 폐기 등의 방식으로 물량을 조절하니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 몫이었다. 심지어 이런 때에도 한쪽에서는 양파 수입은 계속되고 있었다.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말해주는 사례다.

산업정책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개발시기에는 경제발전계획을 수립해 국가의 산업정책을 정부가 주도했지만, 신자유주의가 확대되면서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 조선산업은 90년대 중후반 이후 대형 조선소의 중복 과잉투자가 우려되었지만, 기업경영의 영역이라며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그 후과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되었다.

‘조선산업이 어렵고 기업이 버티기 어렵기 때문에 구조조정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논리는 무섭기만 하다. 노동자들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얻는 자료는 제한적이다. 진짜 위기인지, 기업이 진짜 여력이 없는지, 다른 방안은 없는지 함께 고민하고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은 생략된다. 현장에서는 오로지 힘과 힘의 대결이 있을 뿐이다. 일자리를 잃으면 곧 파산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조선산업 위기라는데 노동자들도 고통 분담을 해야 하지 않나요?’, ‘노동자들이 이야기하는 대안은 무엇인가요?’ 하는 식의 질문은 노동자에게 폭력일 뿐이다.

그런데도 의원실은 이런 질문에 대해 대답할 책임이 있었다. 그래서 노동자와 함께한다는 대원칙을 두고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늘 고민이다.

우리가 처음 대면한 질문은 조선산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2015년 이후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시기 산업계에서는 ‘조선산업은 이미 중국에 주도권이 넘어간 사양산업’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지금은 LNG선을 중심으로 선박 수주의 경쟁력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철 지난 질문이 되었지만, 당시 김종훈 의원은 산업부와 정부를 상대로 조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보는 정부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결과적으로 조선산업 사양산업 논리는 구조조정을 강요하기 위한 논리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두 번째 질문은 그래도 구조조정은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2016년 산업부는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2018년까지 조선 3사의 건조설비를 23% 축소하고, 인력을 32% 감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고용보험 통계를 보면 선박 및 보트 건조사업의 피보험자가 2014년 18.6만 명에서 2018년 10.7만 명으로 줄었으니 구조조정 목표는 2년 만에 초과 달성한 셈이다. 사실 구조조정은 할 만큼 했다.
현대중공업만 보면 2019년 이후에는 선박 발주량이 늘어나고 있어, 현장에서는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당장 인위적인 대규모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역경제, 제조업 일자리 문제에 대한 정확한 대안 없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야기할 대우조선해양의 현대중공업 매각을 서두를 일인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가지는 이유다.

세 번째 질문은 조선산업 발전의 방향에 대한 문제다. 2018년 정부가 발표한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보면 조선산업을 세계 고부가가치 선박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는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보고 현 위기를 일시 위기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혁신과 상생, 친환경 4차산업혁명, 고도화 등을 조선산업을 발전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조선산업 고도화나 생태계를 육성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
하지만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의 현대중공업으로의 인수, 8개 중형조선사의 통폐합 등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있어 노동자들의 반발만 사고 있다.
필리핀 수빅조선소의 실패는 숙련노동에 대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기술은 한국에서, 값싼 노동력은 필리핀에서 공급하겠다는 한진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일본 조선업의 전철을 밟을 수도 없다. 80년대 대규모 구조조정과 대량해고를 단행한 일본 조선업은 90년대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기술자와 숙련노동자의 보호는 혁신의 대척점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나 재계의 혁신안은 늘 노동자들의 희생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기술자와 숙련노동자에 대한 보호 없이 조선산업 발전은 있을 수 없다.

네 번째 질문은 조선산업 혁신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업의 자율성에 맡기겠다는 정부의 무책임한 산업정책의 결과를 확인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술개발에 대한 방향과 정부의 투자는 더욱 공론화되어야 한다. 울산, 거제, 창원을 잇는 지역의 먹거리인 조선산업에 대해서는 지역균형발전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국가적 산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중공업의 본사 이전과 수도권에 대규모 R&D 센터로의 통폐합도 문제가 있다. 
조선산업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불법 하도급 문제도 고쳐야 한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를 뿌리 뽑고 현장에 만연한 물량팀, 돌관팀 등의 관행도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서 정부의 의지와 함께 현장동력으로서 하청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기업만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원하청 노동자, 지역민, 지방정부가 함께해서 조선산업을 살리자는 우리의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촛불이 타오르고 노동자들의 사회 인식은 높아지는데 기업과 정부의 일방적 태도는 여전하다.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 지역주민에게 책임을 떠 넘기고 싶다면 먼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조선산업 전문가 한 명 없는 의원실의 지난 3년은 이런저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여전히 쏟아지는 질문과 구체적이지 못한 답변에 죄송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힘이 강해질수록 할 수 있는 대답도 더 많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나 지역주민들의 여론이 없다면 의원실이 할 수 있는 말은 더 적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