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 빈민스토리(12)

1. 사회적 합의와 갈등조정

한국 사회는 기나긴 군부독재의 시기를 거쳐 1990년대 정권교체와 함께 민주화 이행과정으로 이어져 왔다. 민중적 저항을 통해 이룩한 하나의 성과지만 그 후 소위 세계화라는 국제적 질서 아래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신보수주의 정책이 등장한다. 이는 외형적으로 문민정부와 참여정부의 주도 아래 이른바 기존의 억압적 통치 방식을 넘어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요구하는 수준으로까지 나가게 되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시기를 거쳐 등장한 중도정부는 일각의 시민단체와 동반관계를 형성하고 시민단체는 비판적 개입이라는 명분으로 정부와 상호 조응하며 국가관리 체제에 깊숙이 편입하게 된다. "현재와 같은 대립과 갈등구조는 이제는 변해야 한다. 혹은 이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모든 국민이 손해다."라고 역설하며 고통 분담 논리를 앞세워 생산성 향상을 통한 일자리 확대와 분배 등을 사회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통치 방식은 일차적으로 한때 거세게 타올랐던 노동운동을 대상으로 ‘노사정 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통해 노동 유연화 정책과 구조조정을 관철하기 위한 합의를 지속해서 시도하게 되었다. 이밖에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 문제에 대한 소통을 요구하며 참여 혹은 사회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에서는 민관 도시계획위원회 또는 갈등조정 등의 이름으로 생산현장을 넘어 지역과 공간영역에서 합의를 강제하게 된다.

한편 촛불혁명은 보수적 흐름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적 정치현실 속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관료적이고 권위적이며 비민주적인 통치방식으로는 더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물론 정보를 독점하고 집행을 관장하던 기존의 중앙집권화된 오랜 관행을 깨고 아래로부터 참여를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의 배경이 되었던 서구자본주의국가는 오랜 시기 분배차원에서는 사회복지 정책을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 체제라는 것을 통해 국가와 체제를 유지하고 통치를 해 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위와 같은 과정이 1990년대 이후부터 모색되기 시작할 즈음에 오히려 초국적 자본에 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화되고 그 후 불어닥친 자본축적의 위기와 모순이 중첩되어 나간다.

현재의 정치구조 역시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기존 통치 방식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물적 토대의 미흡한 조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2위다. 국민 생활 수준과 밀접한 지표인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600달러로 192개국 중 30위권이다. 


 또는 저성장체재라는 환경으로 인해 자본에 대한 규제와 사회적 환수 없이 시장을 통한 이윤확보로 나가고 있다. OECD 기준에 비춰 복지정책을 둘러싼 예산은 여전히 확대하거나 개선되지 못하고 있으며 턱없이 부족한 사화 안전망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역시 잘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대화를 통해 사회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저항세력에 대한 포섭전략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통제에 기반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한편 사회적 합의주의를 기초로 한 올바른 협치는 진보적인 정권과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새롭게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근본적인 변혁이 수반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거부해야 한다는 입장과 일종의 개량적인 영역을 넓히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나뉠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은 대중조직의 주체성과 조직력을 강화해 나갈 수 있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2. 노점상 관리대책인 상생위원회는 무엇인가요?

​위와 같은 담론이 과거 '서울시 노점상 가로가판대'사업에서 현재의 '노점관리대책'까지 거리와 공간에서 벌어지던 갈등 가운데 하나인 노점상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운영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서울시는 ‘노점관리대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자 서울시와 각 지자체 산하에 상생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상생위원회는 소위 ‘협치’라는 이름으로 힘을 합쳐 잘 다스려 나간다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협의와 공감대 조성을 선행하겠다는 뜻으로 공무원, 전문가, 주민대표, 노점상대표 등으로 상생위원회를 구성하여 노점관리정책 전반에 걸쳐 논의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상생위원회가 가동되기 이전 서울시 광진구‘노점상 관리위원회’, 인천 부평 ‘젊음의 거리’, 또는 강남 ‘노점 타워’, ‘동대문 풍물 벼룩시장 발전협의회’ 등이 ‘노점개선 자율위원회, 노점관리위원회, 노점상발전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다. 

2005년 재정자립도를 자랑하는 강남지역은 대로변 노점상을 모아 117억의 예산을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3층 대지 376평의 건물을 매입해 약 100여명의 노점상을 입주시킨다는 목적으로 노점 타워 건설 방안을 모색하며 추진위원회를 구성 약 4년에 걸쳐 논의를 진행하였다.
2007년 들어 강남구청의‘노점타워 추진위원회’ 는 실제 관리운영을 둘러싸고 지원예산이 과도하게 부담된다는 판단이었고, 운영규정상 임대기간문제, 또 임대가격을 노점상이 감당하기 어려운 월 66만 5천원 등 일반식당도 당시 비용으로는 과도한 비용을 책정하여 회의가 파행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자 곧이어 강남지역 노점상에게 무려 1억 5천 만원이 넘는 과태료를 물리고 단속은 단속대로 진행했다. 결국 강남의 노점타워는 담당 공무원이 바뀌고 유야무야 되었다. 애초부터 노점상을 위한 대책이 아니라 여론의 전시용이었던 것이며 이 기간 동안 노점상 생존권은 실질적으로 방치되다 시피 하였다. 문제는 당시 노점상 단체의 중앙 간부가 노점상을 위한 건물을 지어준다는 허무맹랑한 계획에 매료되어 강남지역 노점상 생존권을 방치하고 일방적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광진구의 경우 1999년 1월 26일 자 ‘광진구 노점상 관리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 '노점상 관리위원회'는 18명으로 구성하여 당연직으로 구청 3인 경찰 2인, 소방 1인 위촉직으로 구의원 1인 관련된 전문가 교수 2인, 직능대표 2인, 다중이용시설 대표 1인, 상가대표 3인, 노점상 3인으로 구성하였다. 당시 광진구의 노점상 관리위원회는 관련된 협의기구에 관심을 가졌으나 운영 초기부터 참여 인원과 구성인의 성격부터 내부 견해차를 보였고 노점상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노점상과 사전 협의 없이 슬그머니 폐기되었다.

다음은 2006년 서울시 주도로 결성된 ‘동대문 운동장 발전협의회’를 들 수 있다. 위의 세 가지 사례 중에 가장 저급하게 운영된 사례로 동대문 축구장 안 노점상의 일부 상인을 협의회 대표로 선임하고 자리 매매와 여러 개의 노점 좌판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을 발전협의회에 참가시켜 비리를 상당 기간 묵인 방조하거나 심지어 당시 서울경찰청 소속의 노점상 정보담당 경찰관 김*섭의 개입을 통해 협의회가 운영되었다. 이들의 목적은‘동대문 풍물 벼룩시장 철거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사업을 관철해 나가기 위한 것이었다.

이상 살펴봤듯이 2010년까지 전개된 1기 '협의기구’는 전체 논의 대상 가운데 노점상에게 배정된 위원이 소수로 공정한 논의가 전개되기 어렵고, 노점상 문제가 관철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또한 동대문 운동장 발전협의회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시 또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합의 기구는 기만과 노점상 배제로 얼룩진 기구였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이 운영한 협의 기구에서 논의된 의제는 ‘점용허가, 장소이동 금지와 영업시간, 물품, 규격 등에 대한 규제조치에 대한 논의가 핵심적인 안건으로 다뤄지게 된다. 실제 노점상에 대한 생존권 지원방안을 협의하고 상호 합의안을 도출하기보다는 ‘노점관리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규제안을 결정하는 절차적 기구였다. 정책에 편승하지 않은 노점상에 대해 집단이기주의로 공공연하게 공격하거나 참여하지 않으면 소외되고 큰 불이익을 당하는 양편 가르기를 하였다.

한편 서울시와 각 구청에서 진행되는 상생위원회는 노점상 단체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의제의 수위를 대폭 낮춰 제안하고 있다. 한마디로 협치를 강조하는 현 시장의 정책을 가시화하는 노력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노점상은 상생의 정책인지 또는 장기적으로 노점상 감축과 관리 그리고 포섭과 배제라는 목표로 운영될 것인지 반신반의하고 있다. 아직까지 거리의 노점상을 둘러싼 제대로 된 협치는 존재한 경우가 매우 드물고 노력 또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3. 노점상 실태조사 

상생위원회 구성 이후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노점상 실태조사’ 다. 구청마다 차이가 있으나 실태조사 항목을 살펴보면 ‘주민등록번호 확인을 통해 인적사항 조사와 주거 실태, 일일 수입 또는 월 소득 등을 비롯한 생활 정도’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판매장소, 형태와 크기, 취급품목, 점유면적, 영업시간 등을 중심으로 한 영업실태’조사와 ‘노점판매대 보관소, 노점상단체 가입여부’ 등을 조사한다.
이 밖에도 장사하는 곳의 상권과 입지적 조건과 주변 환경까지 파악하여 노점상 개개인의 관리카드를 만들어 컴퓨터로 전산화해 관리한다. 특히 실태조사 가운데 ‘금융정보공개 동의서’는 노점상의 금융거래 내력을 샅샅이 파헤쳐 자치단체에서 제시하는 기준  약 2~3억 재산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초과할 시 단속의 명분으로 삼기도 한다.

한편 비공식 부문의 특성상 노점상은 오랫동안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해 실체를 파악해야 할 대상이 되어왔다. 이러한 관례는 노점상 당사자조차 실태조사를 통해 자신의 인적사항을 쉽게 노출하게 되는 데다. 관할자치단체에서 실태 파악을 추진하면서 개별적인 접촉과 단속을 잠시 묵인하는 방식의 회유를 통해 파악에 주력하고 개개인을 둘러싼 불필요하고 세세한 실태조사까지 개인정보를 둘러싼 인권침해의 논란이 있었다.

4. 노점상 집단 이주 및 특화거리 조성사업

    종로 명동 구전체 시행, 기타 일부시행
[서울시 2008년 가로행정추진단 권역별 추진현황 자료]

 

노점관리대책은 거리조성사업과 맞물리면서 전개된다. 종로에서 수십 년 장사를 하며 가족을 부양한 김정순(가명·72)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심정을 이야기한다 “종로 관철동 ‘젊음의 거리’로 이주한 뒤 어렵게 " 이 장사를 한 지 18년째야. 그런데 지금처럼 힘든 적이 없었어. 종로통에 있을 땐 한 달에 방세 내고 저축까지 하였는데 어제는 겨우 5천 원짜리 몇 점 팔았다니까. 딸은 자궁수술해서 누워 있고 방세는 석 달이나 밀려서 주인이 자꾸 나가라고 하는데….” 김 할머니 근처에서 커피와 차를 파는 박 모(68) 씨가 거들었다. “서울시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장사가 잘 되게 이것저것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말을 믿은 우리가 바보지. 옆에서 액세서리를 팔던 친구는 며칠째 하나도 못 팔아서 이젠 아예 나오지도 않아.”힘없는 목소리로 깊은 시름을 내뱉었다. 서울시와 종로구에서 거리의 노점상을 정리하고 새롭게 이전 배치해 성공한 사례로 소개하고 있는 종로 노점상의 한탄 섞인 목소리였다.국민일보]노점특화거리’에 노점상이 없다…종로서 창경궁로로 이전한 노점상 ‘개점휴업’ 2010.05.02  


서울시는 '노점 시범가로'(노점 특화거리, 문화의 거리 등이 이에 해당됨)를 자치구별로 1곳씩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러한 정책은 1990년대 이후 '노점상 유도구역' 추진 사업으로 서울의 '신도림, 방배동에 노점상 풍물 단지 조성하거나 강원도 원주, 전라남도 광주 양동 복개천, 충청남도 대전, 충청북도 청주, 부산 해운대 와 부산역 근처로 노점상을 집단 이전하였다. 이 밖에도 2003년 노점상 집단 이주지역으로 청계천 복원공사 이후 동대문 축구장으로 약 천여 명이 집단 이주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7년 또다시 종로구로 이전한 '숭인동 풍물벼룩시장'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밖에도 2007년 종로 대로변 노점상을 관철동과 종로 5가 이면도로로 이전하였으며 그리고 경기도 일산, 광명, 부천지역의 노점상이 위와 같은 대책에 편승되어 이전 배치되었다. 

그 후 노점상 관리 정책으로 추진된 2016년 노량진 컵밥 거리 이전, 2018년 도봉구 창동 전철역 주변 노점상이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기존의 노점상을 대상으로 이전배치 후 일시적으로 단속을 유보하거나 강제이전시켜 소위 ‘노점 특화 거리’를 만들었지만 대부분 상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침체되거나 방치하여 장사를 포기하고 떠나게 했다. 인위적으로 추진된 노점상 이주 정책은 보행권을 확보하고 상인을 살린다는 목적보다도 도심 내 상권을 둘러싸고 대형마트와 쇼핑몰의 이해와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심지어 서울시 도봉구 창동역 근처에서는 주민의 집단 반발이 있을 정도로 지역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노점상 이전배치를 중심으로 전개된 특화거리사업은 기존 자연스러운 상권을 인위적으로 재편해 오히려 노점상과 소상인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전체 상권이 침체한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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