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삭감안·노동법개악 재시도, 자한당의 위헌적·반노동적 인식까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긴장’ 그리고 긴박한 ‘투쟁’의 시기가 찾아왔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의 내년 최저임금 결정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노동법 개악 법안이 국회에서 다뤄지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삭감안에, 노동법 개악 재시도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최임위 노동자위원들은 내년 최저임금 요구안으로 “대통령 공약대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제시한데 반해 사용자위원들은 올해보다 4.2% 삭감한 8,000원을 제시했다. 사용자위원들이 최저임금 삭감안을 제출한 것은 세계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10년 만이다.

이에 항의해 노동자위원들은 오늘 예정돼있던 10차 전원회의에 전원 불참을 선언했다. 노동자위원들은 “지금 경제가 국가부도상태에 놓인 것도 아닌데 물가인상과 경제성장조차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최저임금을)마이너스로 회귀하자는 것은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 행위”라고 비판하곤 “삭감안을 즉각 철회하고 상식적인 수준의 수정안을 우선 제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용자위원들은 노동자들에게 유급 주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최저임금의 월급여 환산액 병행 표기를 반대하고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요구하는 것도 모자라, 1986년 법제정 이후 단 한 번도 삭감된 적 없는 최저임금을 삭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항해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은 저임금노동자의 생명줄”이라며 “최저임금위원회는 법제도적 제약으로 노동조합에 가입되지 못한 채 열악한 일자리에 놓인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유일한 임금인상 실현 수단”이기에 최저임금 결정논의에 책임있게 임하고 있는 와중에, 최저임금 결정의 분수령은 15일로 점쳐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최임위가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늦어도 오는 15일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밝힌 상태다.

▲ 사진 : 뉴시스

노동자들이 또 하나 주시하고 있는 것은 국회의 노동법 개악안 처리다.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탄력근로제 등 노동개악 법안을 다루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고용노동소위 회의가 오는 15일과 18일로 예정돼있고, 18일 고용노동소위 직후엔 환노위 전체회의와 국회 본회의가 이어진다.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법 개악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3월 말~4월 초 국회에 상정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과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등을 담은 노동법은 “개악 저지” 투쟁을 벌인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과 사회적 비판에 부딪혀 입법에 실패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길을 여는 법안은 폐기되지 않은 채 다시 국회 논의를 앞두고 있다.

4월과 7월 사이, 달라진 것이라면 민주노총을 비롯해 국회 앞에서 항의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강해지고 있고, 여·야 할 것 없이 반노동적 행태는 오히려 더 노골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노동’을 보는 시각

홍남기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장관)는 수차례 “최저임금 인상이 최소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데 이어, 지난 3일 기획재정부는 “(최저임금이)경제·고용 영향, 부담능력, 시장 수용성 등을 고려”하고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되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의 올 하반기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사용자단체가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 요구해온 내용과 맥을 같이 한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속도조절’ 입장은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사안이다. 이에 더해 최저임금법의 근본 취지와 “노동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결정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현행 최저임금법을 벗어난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

자유한국당의 반노동적 인식은 더하다. 지난달 19일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기여해온 바가 없기 때문에 똑같은 임금수준을 유지하는건 공정하지 않다”는 황교안 대표의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은 근로기준법 제6조 “성, 국적, 신앙,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차별할 수 없다”는 ‘균등한 처우’조항을 거슬렀다.

당 대표에 이어 원내대표도 반노동 정당이라는 밑천을 드러냈다. 지난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등을 거스르는 연설을 뱉어냈다.

▲ 사진 : 뉴시스

나 원내대표는 “점차 근로기준법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며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해주는 ‘기준’의 시대에서 경제 주체가 자율적으로 맺는 ‘계약’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음껏 일할 자유”를 주자고 주장했다.

헌법 32조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고, 노동자가 사용자보다 사회적 약자라는 현실을 인정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시달리지 않도록 노동자 보호를 위해 국가가 나서 노동조건을 규정한 ‘노동관계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자고 한다.

이날 나 원내대표는 또 “노조의 각종 사업, 내부 지배구조, 활동 등의 투명성·공익성 제고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노조의 사회적 책임법을 만들겠다”고 했고, “파업 기간 다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노동조합 활동을 법으로 규제하고, 대체근로 허용으로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국회 동의를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대통령의 약속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87호인 “노동자단체 사용자단체는 공공기관의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완전히 자유롭게 대표자를 선출하며 관리 및 활동을 조직하고 계획을 수립할 권리를 가진다(결사의 자유)”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내용이다. ‘대체근로 허용’ 관련 발언은 사용자들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조건으로 내놓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등의 요구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노동자들, 다시 ‘투쟁’을 선포하다

사용자들의 부담이 가중되니 최저임금을 올리지 못한다고 한다. 장시간 노동을 강하게 규제하진 못할지언정 탄력근로를 확대하고 ‘자유계약제’와 ‘마음껏 일할 자유’를 운운한다. 그것도 모자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ILO 핵심협약 비준’은 커녕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이라는 사용자들의 요구를 대변하는데 발 벗고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다시 “투쟁”을 외친다.

노동법 개악이 논의될 국회 앞과 최임위 전체회의가 열리는 세종시 정부청사, 그리고 재벌대기업의 집합체인 경총, 전경련 앞엔 긴장감이 돈다. 민주노총이 오늘(9일)부터 나흘간의 ‘재벌규탄 순회투쟁’에 나섰다.

▲ 9일 오전 서울 마포 경총회관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재벌규탄 순회투쟁단’ 출정식 [사진 : 뉴시스]

민주노총은 이날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최저임금법을 역행하며 최저임금 삭감안, 차등적용안을 고집하는 사용자들의 집합체 경총과 전경련을 찾아 “재벌의 곳간에 950조 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저임금 노동자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한다”고 규탄했다. 또,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조장하고 실질임금을 삭감해 재벌대기업에게만 유리한 법인 노동법 개악을 강행하려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찾아 ‘재벌 중심 경제정책’에 대한 규탄행동을 벌였다. 10일과 11일엔 유통·통신·건설재벌들을 찾아 재벌기업들의 악행을 고발하고 규탄한다. 최임위의 최저임금 심의 일정에 따라 세종시 최임위 앞에서 ‘최저임금 1만원 쟁취’를 위한 1박2일 노숙농성도 계획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또 10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개악 분쇄, 온전한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선포하고, 18일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와 본회의 전까지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국회 앞 농성과 결의대회 등을 이어간다. 환노위 고용노동소위가 열리는 15일엔 확대간부 상경투쟁을, 18일엔 4시간 이상 총파업을 전개해 국회 앞으로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지역별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4월 초 이후 바뀐 것이 없다. 정치권에선 반노동적 언동을 반복하며 노동자들의 손발을 묶으려 하고, 다시 열린 임시국회에선 노동법 개악을 만지작거린다. 노동자들의 저항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7월, 노동자들의 투쟁 열기가 뜨거운 여름보다 먼저, 그리고 4월보다 더 뜨겁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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