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회관 745호실 이야기(3)

2. 준비된 싸움

1년이 넘어가는 아침 출근 선전

아침 출근 선전이 있는 날, 김종훈 의원은 6시 30분이 되면 피켓을 펴고 중공업 문 앞에 선다. 국회의원과 지역일꾼들이 함께하는 출근 선전이다. 공장 문이 여러 개라서 돌아가면서 해도 1주일에 한번 만나기 힘들다. 사안이 생길 때마다 한 바퀴씩 돌다 보면 매일같이 출근 선전인 셈이다.

대공장 출근길은 장관이다. 오토바이가 줄을 서고,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들이 물밀 듯이 공장으로 들어간다. 통근버스, 자동차, 자전거까지 엉켜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조선업이 잘나갈 때는 지금보다 두 배나 많은 노동자가 출근을 했다고 하는데 상상이 안 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선전물을 배포하는 날이면 공장문 한 곳에 서너 사람을 배치한다. 적색 신호등에 오토바이가 서면 이때를 틈타 고무로 코팅된 막장갑을 낀 손으로 한 장씩 한 장씩 선전물을 접어서 오토바이를 탄 노동자의 손에 쥐여주며 도로를 누빈다. 신호가 바뀌면 다시 앞으로 이동. 이걸 두 사람이 1시간 반복하다 보면 할당된 유인물이 바닥이 난다. 문 양옆으로 버스나 도보로 이동하는 노동자들은 나머지 두 사람 몫이다. 

처음에는 8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했지만, 노동자들이 열심히 유인물을 받아 가고 정독하는 걸 보니 이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고 선전임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진보정당 뿐 아니라 노동조합에서도 정기적으로 선전물을 배포하니 노동자들에게도 일상이 되어 있었다.

지역 활동가들의 성실함이 없으면 불가능한 광경이다. 지난 1년간 매일같이 진행된 아침 출근선전전에서 들었던 피켓 구호를 보면 ‘구조조정 저지’, ‘희망퇴직 반대’, ‘단체협상 승리’, ‘재벌 특혜’, ‘하청 임금인상’, ‘본사 이전저지’, ‘날치기 주총 무효’로 이어진다. 이번 투쟁이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구호만 봐도 알 수 있다.

노동자들에게 힘이 된 지역 여론

아침 출근 선전을 하면 그날그날 노동자들의 반응이 읽힌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선전전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출근 선전을 하는 사람들에겐 노동자들이 가만히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지지와 응원이 된다. 그런데 평소에는 그렇게 반응이 없던 노동자들이 인사를 건네고, 응원의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 투쟁이 시작된 셈이다.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은 요소 중 하나는 지역 여론이었다. 김종훈 의원의 행보도 큰 역할을 했다. 적절한 때에 구청장과 울산시장을 만나서 ‘지역경제도 어려운데 현대중공업 본사 이전 문제는 여야를 떠나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막아야 한다’며 호소했다. 지역 국회의원들과 산업은행 부행장과의 간담회가 열렸고, 구의회·시의회도 움직였다. 지역에서는 대책위가 꾸려져 대대적인 주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대책위는 1주일 만에 동구 주민 1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구청 광장에서는 구청장과 구의회, 관변단체들이 모여서 본사 이전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울산시 차원에서도 2차례의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시장은 삭발까지 했다. 지역 여론이 움직이자 언론의 취재요청이 쇄도했고, 지역 언론에서는 연일 현대중공업의 법인 분할의 문제점을 다루어 주었다. 


30·40 세대와 비정규직

민주노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87년 세대는 이제 정년을 앞두고 있다. 이분들이 다시 세워진 현재 민주노조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한마음 회관 농성장을 가득 메운 노동자들은 대부분 30대 40대였다. 김종훈 의원은 한마음 회관 농성장에서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하던 3040 노동자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잊지 못하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이번 투쟁은 처음이었고, 누구나 예상하듯 큰 결심이 없었다면 시작하지 못할 투쟁이었을 것이다.

중공업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는 한마음회관 바로 옆 수변공원에서 저녁 촛불집회를 열고 있으면 젊은 부인들이 아들딸 손을 잡고 아빠를 응원하러 왔다. 농성장 옥상을 향해 손 흔들던 그들의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소문에는 어린이집, 유치원 카톡방에서 현대중공업 투쟁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고 한다. 현장도, 지역도 새로운 세대가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 반대 투쟁이 일어나기 며칠 전까지 지역은 하청업체 체불임금 문제로 시끄러웠다. 하청노동자들의 집회도 열렸는데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집단행동은 이례적이라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다. 물적분할 반대투쟁 이후 이들의 움직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규직노조는 원하청이 공동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회칙을 개정했다. 비정규직이 다수가 된 현장에서 정규직의 투쟁만으로 사측과 맞설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었다. 지금 현장에서는 정규직노조와 하청노조가 함께 하청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점심시간이면 노조가입을 독려하는 오토바이부대가 현장을 누빈다. 현장이 들썩거리고 있다. 

30·40세대와 비정규직이 주인으로 나선다면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99℃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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