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펼쳐진 남북미 3자 정상 회동과 사실상의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분단 구조의 대 지각변동을 일으킬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전 세계 언론이 주요 기사로 다루는 등 지구촌이 주목한 큰 이벤트였다.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 북미 및 남북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여지가 충분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정상 간 판문점 회동에 대해 정치적 의미의 '종전선언'의 성격과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평가하면서 "특히 중대 국면 해결을 위해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란 실로 어려운 역사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끊임없는 상상력의 발동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2019년 7월 2일>.

문 대통령이 이번 판문점 행사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것에 대해서는 큰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앞으로 진정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키기 위해 상상력을 강조한 것을 주목하게 된다. 문 대통령이 극찬한 상상력은 한반도 당사자인 남측 5천만 주민 대부분에게는 불허된 특권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상상력이 제한받는 것은 국가보안법과 한미동맹 두 가지 차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국보법은 전체 국민이 북한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고 있고 한미동맹의 상징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이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배력 강화는 군사적 식민지배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다. 국보법은 ‘걸리면 패가망신을 하는 공포의 악법’으로 70년 넘게 남한 사회를 지배하면서 북한에 대한 일체의 상상을 불허하고 있고 한미동맹관계에 대해서는 국내 어느 곳에서도 그 정상화를 위한 일체의 문제제기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어 상상력을 발휘할 첫 단계조차 황무지 상태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상상력은 집권층 극소수의 상상력에 국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불행한 일이다. 5천만 국민이 모두 정상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청와대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달성을 위한 정책을 수립 추진할 때 대내외적으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변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국보법과 한미동맹의 논리가 허용하는 공간이 너무 좁고 척박해서 국민들의 상상력이 기여할 여지는 너무 협소하다. 왜 그런지를 살피면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현실이다. 

우선 국보법의 경우 그 2조는 반국가단체 정의, 3조는 반국가단체 구성, 4조는 목적수행, 6조는 잠입·탈출, 7조는 찬양·고무, 8조는 회합통신, 9조는 편의제공, 10조는 불고지죄에 대한 것으로 제 2조, 제 3조, 제 4조, 제 6조, 7조, 10조는 헌법에 위반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보법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남북이 서로 만나거나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 북에 대한 상상력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국민은 누구도 맘 놓고 북의 친척에 대해 안부편지를 하거나 전화 한 통을 할 수 없고 비핵화나 평화통일에 대해 막힘없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미동맹에 의문을 제기하면 친북, 반미라면서 이 법으로 처벌받기도 했다. 이 법은 국민의 머릿속까지 국가가 살피고 벌을 주는 희대의 악법이다. 
국가의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에 되어 있지만 이 법은 공권력이 국민위에 군림하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이 악법은 초등학교–고등교육 교과서 전반을 검열하고 일상적인 표현의 자유, 언론자유를 통제한 최대, 최악의 보도지침이다. 청소년들이 통일을 먼 나라 이야기처럼 인식하는 현실은 국보법이 허용하는 공간에서 어쩌면 당연한 논리적 결론이다. 언론은 국보법을 의식한 자기검열을 체질화한 나머지 비핵화, 남북교류 상황에서도 여전히 국보법과 한미동맹이 허용하는 공간 속에서 국민에게 알릴 의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언론이 제4부로써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런 태도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만을 바라보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보도경쟁을 벌이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여야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한미동맹, 한미공조는 정치, 경제, 군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국제적인 법치를 상정할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가장 핵심적인 장치라 하겠다. 특히 이 조약 4조는 미군의 한국 배치를 권리(right)로 표현하면서 한국은 그것을 허여(grant)하고 미국은 수용(accept)하게 되어 있다. grant, accept는 조건 없이 주고받는 의미의 외교용어다. 미국에게 군사적으로 슈퍼갑의 위치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조약 4조에서 SOFA(정식명칭 -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SMA[방위비분담 '특별협정 - SOFA 5조(주한미군에 대한 시설과 구역은 한국이 제공하고 주둔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내용)의 적용과 관련한 예외적, 특별 조치]가 파생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비를 한국이 100% 부담하라고 말하는 논리적 근거도 여기에 있다고 보여진다.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미국에 보장된 특권은 사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를 한국이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를 중국은 주시하면서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를 아직도 풀지 않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한미동맹관계를 빌미로 중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한미동맹의 약한 고리인 한국을 공략하고 있다. 오늘날 한중무역은 한미무역을 능가하는 수준이 되어 쾌적한 한중경제관계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한미군사동맹관계의 정상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필리핀과 미국의 방위협정처럼 주권국가간의 평등한 관계를 보장한 군사관계로 바꾸는 것과 같은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이어 전시작전지휘권까지 장악했기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북한 선제공격 카드를 대북 협상용으로 휘두르면서 상식적인 한반도 평화를 외면하는 과오를 반복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이 합리적인 대북 정책을 추진토록 하기 위해서도 한미군사동맹의 정상화는 필수적이다. 

미국은 오늘날 국제적 법치를 외면한 채 ‘미국이 법이다’라는 무법자와 같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면서도 조약과 협정 등을 무기로 삼아 외국의 주권을 훼손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제국주의적 속성이 강하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는 현재의 한미동맹과 대북 압박정책을 존속시키려는 갖가지 법제도를 물 샐 틈 없이 만들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정상화를 위한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20세기 초 일본과 만든 카쓰라·테프트 밀약을 빌미로 3.1독립운동에 대한 일본의 탄압에 침묵하고, 해방 후 점령군으로 남한에 진주했으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당시 독도 영유권 문제의 불씨를 남긴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국보법과 한미동맹이 현재의 상태로 온존되는 한 비핵화, 남북교류·협력이나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이 취해질 공간은 매우 협소하고 그것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국보법, 한미동맹이 만들어질 때와 오늘날 남측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북측의 그것에 비해 30-40배에 달하고 남한은 세계 최대 무기수입국의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도 냉전시대의 악법을 유지하면서 북한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묶어놓고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의 원초적 자유인 상상력까지 통제, 처벌하는 시대착오적인 법을 없애지 않는 것은 심각한 국민탄압이다. 촛불 정부가 이런 법을 방치할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상상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국보법은 남북한을 포함시킨 지구촌의 평화적인 미래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현재의 한미동맹에 의해 남한이 한반도 당사자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후손에게 불행한 조국을 물려주는 과오를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막힘없는 상상력이 보장되는 진정한 자유가 보장되고, 주권 국가로써 국제적 법치가 이뤄지도록 기여하기 위한 자주권의 회복 방안이 무엇인지 상상력을 발동해 고민해야 한다. 진즉 했어야 하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한반도 공동체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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