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노동자 근골격계질환 개선 위한 토론회… “56.3% 근골격계질환 겪어”

“우리는 앉아서 계산업무를 볼 수 없는 구조예요. 양쪽으로 카트가 두 대씩 지나다닙니다. 우리 매장은 창고형 매장이라 대용량 세제, 주류 등이 엄청나게 실려 옵니다.” 창고형 매장 롯데마트 킨텍스점에서 일하는 마트노동자 최송자(54) 씨의 말이다. 현재 피자코트에서 일하는 최 씨는 “피자를 끊임없이 커팅하느라 손목이 아프다. 그런데 우린 쉴 수 있는 의자도 없다”며 울먹였다. 최 씨는 현재 목디스크 초기증상과 테니스엘보(팔꿈치 과사용 증후군)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이마트 성수점에서 일하는 마트노동자 홍현애(54) 씨. “물티슈 박스에 중량물 표시가 없어요. 주말엔 20kg가량 되는 물티슈 7~8박스를 3회씩 옮겨 진열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 저리고 부어요. 내의 코너에선 4명이 해야 할 일을 2명이 쉬지도 못하고 합니다. 하지정맥류가 생겨 자다가도 쥐가 나서 깰 때가 많아요.”

▲ 마트현장 상황을 증언하는 마트노동자 홍현애(왼쪽), 최송자 씨. [사진 : 마트노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이 2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마트노동자들의 근골격계질환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마트노조는 “그동안 마트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은 부각 돼왔지만, 육체노동과 그로 인한 근골격계질환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면서 “마트노동자의 육체노동 및 근골격계질환 개선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현실적인 개선 방향을 도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토론회 취지를 설명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이 마트노동자 근골격계질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마트노조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함께 지난 5월1일부터~17일까지 현장노동자 5177명을 대상으로 ‘근골격계질환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매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조사도 실시했다. 설문에 참여한 응답자 중 4999명(97%)가 여성노동자였으며, 50대 이상 노동자가 65.7%(3339명)로 가장 많았다.

이 소장은 “추정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마트노동자들의 현황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 마트 노동자 근골격계질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사진 : 마트노조]

“근골격계질환 의심 56.3%, 6시간 이상 서서 일한다 79%”

이 소장은 마트 매장과 후방(창고)에서 일하는 마트노동자들의 ‘작업자세 특성’에 대한 분석 결과 “어깨 들기, 목 숙이기, 허리 숙이기, 쪼그리기, 손목과 팔꿈치 반복사용 등 비정형 반복작업에 50~55% 가량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 소장은 이어 “주류 음료 및 세제 코너의 입고물량을 기준으로 ‘중량물 작업지수’를 평가한 결과, 권장기준치의 최대 2.5배까지 초과”했으며, “하루평균 6시간 이상 서서 일한다고 답한 노동자들은 79%에 달했고, 연속으로 3시간 이상 서 있는 노동자들도 59.7%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전체 의자 보급률은 44.7%로 높아졌지만 매장은 20%에도 채 미치지 못했으며, 마트노동자들은 “의자가 있어도 바빠서 거의 앉지 못하거나 관리자들의 눈치가 보여 잘 앉지 않는 편”이라고 응답했다.

마트노동자들의 근골격계질환 상황은 심각했다. ‘증상호소’ 수준을 넘어 실제 ‘질환 의심자’들은 56.3%나 됐다. “근골격계질환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노동자도 69.3%에 달했다. 근골격계질환으로 ‘1일 이상 근무를 하지 못했다’는 답변도 23.2%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마트노동자 77%가 “산업재해를 신청하지 않고 개인 비용을 들여 치료하고 있다”고 답했다. 산재를 신청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증상이 미약하다고 판단하거나, 자신의 업무를 대신 맡을 동료에게 미안해서”라는 답변이 많았다.

박스에 손잡이 구멍만 뚫어도…

이윤근 소장은 마트노동자들의 근골격계질환을 개선하기 위한 단기개선책으로 “▲박스에 손잡이 설치 ▲중량물 수직높이 제한”을 제시했다. 박스에 제대로 된 손잡이만 설치돼 있어도 ‘들기 지수’를 10~39.7% 경감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미국의 경우 “중량물을 들 때, 물건의 중심높이를 기준으로 최대 수직높이 175cm, 최대 수평거리 63cm 이하로 제한하면 근골격계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밝히며 “현재 한국 대형마트의 진열대 높이는 여성노동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겨우 진열할 수 있는 높이로 설계돼 있다”고 지적했다.

▲ 미국 국립 직업안전건강연구소(NIOSH)는 중량물을 들 때 물건의 중심높이를 기준으로 최대 수직높이는 175cm, 최대 수평거리(몸의 중심에서 물건 중심까지의 거리)는 63cm 이하로 제한하면 근골격계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 마트노동자의 현실은 오른쪽과 같다. [사진 : 마트노조]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과도한 무게로 인하여 근골격계에 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663조), 5kg 이상의 중량물을 들어올리는 작업을 하는 경우, 해당 물품의 중량과 무게중심에 대하여 안내표시를 하며, 취급하기 곤란한 물품은 손잡이를 붙이거나 갈고리, 진공빨판 등 적절한 보조도구를 활용해야 한다(665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 소장은 “마트노동자들이 근골격계질환을 앓고 있는 현황에 비해 그들의 요구는 대단히 소박하다. 박스에 손잡이 구멍을 뚫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에 나선 조혜진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도 “개선조치가 없다면 이런 질환들이 지속적이고 심각하게 발생할 것”이라며 “마트노동자들이 과도한 무게로 인해 근골격계에 무리한 부담을 받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박스에 손잡이 설치’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사업주들은 규정을 지켜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준모 마트노조 교선국장은 토론회를 마치며 “노동존중은 다른 것이 아니다. 창고형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의자가 없거나 앉지도 못한다. 사업주는 마트에 셀프계산대는 확대해도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는 투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마트노조는 서비스연맹 소속 유통관련 노동조합과 연대해 공동사업단을 꾸리고 집단산재신청, 근골격계질환 개선 캠페인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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