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회관 745호실 이야기(2)

김종훈 의원의 지역구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분이 많습니다. 최근 벌어지는 투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지역 민심은 어떤지,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지, 이번 투쟁 과정에서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공유하고자 합니다. 흥미 있는 지역 이야기, 고민할 거리도 많은데 잘 전달될지 모르겠습니다. 현대중공업 투쟁을 이해하고 힘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조선산업 위기와 민심의 변화

지난 6월 14일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중공업 정문에서 남목고개(동구에서 시내로 나가는 유일한 길)를 지나 울산시청까지 18km를 행진했다. 행진하는 내내 시민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도 노동자들은 이 길을 따라 시청까지 행진했다. 그 당시를 재현한 행사인데 다른 것이 있다면 지역주민들의 반응이 오히려 그때보다 더 뜨겁다는 것이다.
지역 언론에는 매일같이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 주주총회, 노동자들이 투쟁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김종훈 의원의 인터뷰, 대담, 뉴스 출연도 쉬지 않았다. 서명운동을 하러 나가면 주민들이 다투어 서명도 하고 모금도 해주신다. 그야말로 지역 민심은 폭발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로 오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언론은 냉랭하기만 하다. 본사를 서울로 옮기는데 지역민의 반발 정도(?)의 인식이다. 이 문제가 이렇게 극단적 투쟁을 해야 할 사안인지 되묻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지역민과 노동자들은 이렇게도 분노할까? 그리고 갑자기 이렇게 투쟁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 동향이나 노사관계, 뉴스만으로 파악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다. 동구 주민들의 의식 흐름을 따라가 보자.

▲ 울산 동구 방어진순환도로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본사 전경(2018.12.07)

울산 동구는 조선소의 도시다.

동구는 조선산업 호황 덕분에 IMF도 비껴간 곳이라고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국제 해운물동량은 지속해서 증가했고 덕분에 국내 조선산업은 호황기를 이어갔다.  조선소 주변에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20여 년간의 호황은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뿐 아니라 STX 등 중소형 조선소도 키웠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고, 세계 선박 수주는 급감했다. 좀 더 일찍 구조조정이 시작될 수도 있었지만, 조선산업은 위기의 출구를 해양플랜트사업(석유 시추선 건조사업)에서 찾았다. 2013년, 14년엔 해양플랜트 사업은 전체 조선사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기업규모는 오히려 커졌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해양플랜트 사업의 확장은 오히려 조선산업의 부실을 키우는 꼴이 되고 말았다.
2015년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부터 지금까지 조선산업은 수년간에 걸쳐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다. 현대중공업과 울산 동구도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피해갈 수 없었다.

주민들에게 현대중공업은 애증의 대상이다.

김종훈 의원이 국회의원이 되고 처음으로 낸 법안이 중대 산재 사고를 일으키는 기업에 가중처벌을 하는 법안이다. 상징적 이유가 있다. 현대중공업에선 평균적으로 한해 10여 명, 창사 이래 지금까지 400여 명이 산재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동구 주민 누구나 가족 친지 지인들 중 한 명쯤은 현대중공업에서 사고를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목숨 바쳐 키운 기업이다. 하지만 감수했다. 현대중공업의 성장이 곧 우리 가족과 지역의 성장이었다. 중공업이 성장하면서 우리 생활도 나아졌다.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90년대 골리앗 투쟁이 있었다. 노동자들이 일정 권리를 찾았지만, 이를 경험한 현대중공업은 촘촘한 노무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일상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정치인이 된 정몽준 회장은 지역 여론을 관리했다. 동네에는 현대중공업이 만든 각종 문화시설까지 들어섰으니,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현대중공업의 것이 되었다.

구조조정이 계급적 처지를 가르쳐주었다.

조선 경기 호황과 중공업의 철저한 노무관리로 중공업 노동조합마저 민주노총 울타리를 벗어났다(2004년).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이제는 정몽준이 정치에서 사라지고, 조선산업의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민주노조(2016년 민주노총 재가입)도 다시 시작되었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시작되자 먼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희망퇴직, 순환휴직이 강요되었다. 그렇게 3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다. 지역도 타격을 받았다. 원룸은 비었고, 문을 닫는 상가들이 많아졌다.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들에도 단가 이하의 일을 시키면서 희생을 강요했다. 당장엔 적자가 나더라도 그동안 벌었던 것도 있고, 다시 조선업이 살아나면 일거리를 받아야 하니 억지로 수주를 받아 몇 년간 일하긴 했다. 그런 하청업체들도 몇 년이 지나자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지난 몇 년 조선산업 위기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 들여졌다.

노동자들과 지역주민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현대중공업은 선박 건조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확장한 기업이다. 지난 수십 년 S-오일을 비롯한 수많은 회사를 사들였다. 노동자들은 중공업 잘나갈 때 사들인 기업이니 회사가 어려우니 팔아서라도 조선소 노동자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를 폈지만, 중국의 인건비와 유럽의 기술력 사이에 샌드위치가 된 조선산업의 도약을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기업 논리를 이기지 못했다. 사회적 여론은 노동조합에 불리했다. 이제 막 다시 시작한 민주노조는 힘을 쓰지 못하고 번번이 좌절했다.

그런데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에게 비친 현대중공업 일가의 모습은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지역경제가 무너질 때, 현대중공업은 3세 경영 승계를 위해 매진한다. 이해하기도 힘든 지주회사전환, 인적분할 등등을 하더니 정몽준 일가의 지분과 주식배당을 늘려갔다. 82년생 손자 정기선은 전무를 거쳐 부회장으로 취임, 3세 경영 승계를 본격화한다. 

노동자뿐 아니라 주민들 사이에서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이야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들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 아님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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