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민족주의인가(3)

▲왼쪽: 엥겔스, 오른쪽: 마르크스

민족주의라도 용어를 사용해도 내용이 다 같은 민족주의는 아닙니다. 대별하면 유럽의 침략 민족주의가 있고 유럽 제국주의 나라들의 식민지였던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나라들의 저항민족주의가 있겠습니다. 유럽민족주의를 침략민족주의, 비유럽의 식민지 민족주의를 저항민족주의라 부르면 반드시 틀린 규정은 아니겠습니다. 일본이나 유럽은 민족주의가 전쟁 파시즘으로, 미국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둔갑하여 전쟁기계 나라들의 이데올로기로 동원되었습니다. 전쟁기계 나라란 자본축적이 진행된 자본주의가 국가독점자본주의 국가가 되어 식민지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전쟁을 해야만 작동하는 나라를 말하며 오늘날 미,영,프,독,일,벨기에 등 등의 침략제국주의 열강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저항민족주의란 영미유럽 침략제국주의 국가의 침탈로 수탈 착취를 당했던 제3세계나라들의 민족주의가 사회주의 이념과 결합하여 민족해방으로 성장전화 발전하였고, 이런 민족주의를 저항민족주의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민족주의라는 것은 제국주의나라들에게는 침략전쟁이념으로 동원되었고 제3세계 식민지나라들에게는 해방이념으로 동원되었으니, 민족주의문제를 단순하게 평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민족주의 논의는 민족주의가 좌파나 우파이념의 하위 파트너 이념으로, 즉 2차 이데올로기로 평가받았으며 역사적으로 순수한 형태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즉 민족주의라는 것은 제국주의를 움직이는 자본가 세력의 동원이데올로기가 되든가, 제3세계 인민들의 민족해방운동 이념이 되든가, 혹은 중국- 베트남 국경분쟁에서 보듯 사회주의나라 간에도 갈등거리가 되기도 하였으니, 민족주의란 이런 것이다, 라고 예단하기가 쉽지 않은 듯합니다.

마르크스는 민족주의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도 보았기 때문에, 민족보다는 계급문제, 즉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민족주의를 계급관점과 유물사관 관점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 폄하하면서 민족주의를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 장애물로 보았습니다.

현재나 지닌 시기 한국정부가 노동자 사용자(자본가) 공생을 주장하며 노동자 요구를 탄압하듯, 프랑스 혁명이나 독일혁명에서도 중세 봉건을 타도하고 자본체제를 구축한 부르주아 계급은 민족주의를 정치적으로 동원하여 노동계급의 혁명적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민족 이익이라는 간판, 즉 부르주아 이익을 위해 노동계급을 유럽의 침략 제국주의 사상인 부르주아 민족주의 사상 안으로 포섭시킨 것입니다. 그러니 유럽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민족, 민족주의란 것은 당연히 배척되어야 할, 즉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적 연대를 방해하는 청산이념이었던 것입니다. 유럽 마크스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는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전체 인민의 이익인양 선전하는 이데올로기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도 민족주의에 대한 이런 접근태도는 시대상황이 변하면서, 즉 제국주의가 등장하면서 민족주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민족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입장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영국제국주의로부터의 아일랜드 민족해방문제입니다. 마르크스에게 아일랜드 민족해방운동은 영국 노동계급의 혁명을 위한 중요한 고리였고, 레닌이 등장한 시기, 즉 전면적 제국주의 시대에는 제3세계의 민족주의는 민족해방운동의 주된 동력으로 평가받았던 것입니다.

특히 유럽제국주의 전쟁기계 국가들의 침략을 받았던 제3세계 나라들의 사회주의 혁명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서술했듯이 사회주의나라 성립 후에도 중-소분쟁, 중국-베트남 분쟁, 베트남- 캄보디아 분쟁에서 보듯, 사회주의 나라들도 민족문제로 분쟁하였으니 민족주의를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즉 사회주의나라들 역시 민족, 민족주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주의는 어떻게 보았을까?

마르크스주의는 계급주의로 표현됩니다. 당연히 역사의 주인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추구지향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입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자들까지 가지고 있는 관점입니다.

2차 제국주의 전쟁 후, 피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들을 대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배합된 발전의 길을 걸었습니다. 제3세계 식민지 해방운동이 사회주의만으로는 자기나라 진로를 개척하는 문제에 있어서 이론적 해명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에는 체계적인 민족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단편 에세이 식으로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즉 마르크스 엥겔스에게 민족 문제에 대한 소재, 주제는 빈곤하다는 것입니다.

참고삼아 정리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여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에서 나오는 민족, 민족주의 서술 문건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민족문제에 대한 마르크스, 엥겔스 견해는 <칼맑스- 프리드리히엘겡스 저작선집1-6>(박종철출판사)과 <마르크스 레닌주의민족이론>(나라사랑, 1989,서울) 을 참고하였습니다.

민족문제는 <독일 이데올로기>에 부분적으로 나오며, <공산당선언>에 부분적으로, 그리고 <중국에서의 혁명과 유럽에서의 혁명>(마르크스), <인도에서 영국 지배가 초래할 결과들>(마르크스).........이런 문건이 민족문제에 대한 마르크스, 엥겔스 초기의 견해입니다.

그리고 민족문제에 대한 발전적 전개로는 식민지와 종주국과의 관계에서 아일랜드를 다룬 문제인데요, 문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1권, 제25장 제5절 ‘자본제적 축적의 일반법칙에 관한 실례’, <식민지 아일랜드의 비참한 현실>(엥겔스가 마르크스에게 보낸 서한), <아일랜드의 요구>(마르크스가 엥겔스에게 보낸 서한), <아일랜드는 영국 지주제의 보루>(인터내셔널의 ‘비밀통신’Confidential Communication에서 발췌, 마르크스), <아일랜드 해방은 영국 해방의 전제(마르크스가 엥겔스에게 보낸 서한), <아일랜드는 영국의 가장 취약한 고리>(마르크스가 뽈과 라우라 라파르그 부처에서 보낸 서한), <아일랜드의 해방은 영국 해방의 첫 번째 조건>(마르크스가 지그프리트 마이어와 아우구스트 포그트에게 보낸 서한),<아일랜드 분파와 영국 연합평의회 사이의 관계>(1872. 5.14. 총평의회에서의 토론에 대한 엥겔스의 기사체 기록), <민족운동과 계급운동의 관계-폴란드론>, <프랑크푸르트에서의 폴란드에 관한 논쟁>(엥겔스)
,<노동자계급은 폴란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엥겔스), <폴란드의 유럽에 대한 임무>

(마르크스), <폴란드 선언>(엥겔스), <민족주의, 국제주의, 그리고 폴란드문제>(엥겔스가 카우츠키에게 보낸 서한의 발췌)........등입니다.

이런 비체계적 정세분석 에세이 문건이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에 나오는 민족, 민족주의 서술들입니다.

먼저 『독일 이데올로기』에는 민족문제 서술에 있어서 “.....시민사회가 대외적으로는 자신들을 민족으로 표방하고, 대내적으로는 스스로를 국가로 조직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부분이 있고,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는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적 민족국가, 사회적으로는 부르주아 계급, 경제적으로는 국민적 시장권의 형성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것은 노동계급에게는 조국이 없다거나 노동계급이 조국을 갖지 말아야 한다거나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노동계급이 조국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조국과 민족이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적 국가나 조국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변화된 조국과 민족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혁명은 국가나 민족이란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우선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하여 민족적 계급으로 올라서야 하며 스스로 민족으로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록 부르주아지가 생각하는 의미에서는 아닐지라도 스스로 또한 민족적이다.......” 라고 『공산당 선언』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라는 뒷 문장에 나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이란 상황을 보지못했으므로, 제국주의가 지구촌을 전면적으로 덮는, 즉 레닌 이전의 사람이므로, 당대 유럽적 시대상황이라는 역사주의적 제한 속에서 마르크스 관심은 계급이었고 국제주의였습니다. 그러니 마르크스에게 민족과 민족주의는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가로막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며 허위의식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엥겔스에게 있어 민족은 유물론적 세계관을 통한 반영입니다. 엥겔스는 『가족, 국가, 사유 재산의 기원』에서 경제적 사회 구성체의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공동체로서 민족의 존재를 서술합니다. 그는 인류 발전 단계마다 부족 연합체, 이로부터 발전한 준 민족체의 고대 사회, 봉건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에 부응하는 민족체로서 민족을 서술합니다.

엥겔스는 유럽을 기본 모델로 하여 일정한 크기와 규모를 갖춘 ‘역사적 민족’과 ‘나머지 민족’으로 민족을 분류를 했으며 작은 민족들은 큰 민족들에 통합되는 것이 역사의 진보라고 서술합니다.

이는『공산당 선언』 에 나오는 마르크스의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 도구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지는 교통수단으로 모든 민족, 심지어는 가장 미개한 민족까지도 문명화’ 시킨다는 주장과 일치하는 민족에 대한 입장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확장이 미개한 민족을 자본주의로 통합시키고, 자본주의가 미개인을 문명화시키게 되며 그런 자본주의는 태내에서 노동계급을 탄생시켜 자본체제를 전복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평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의 인도 지배가 오히려 인도를 문명화하였다는 유럽 중심적 사고를 표출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만든 용어인 ‘아시아적 생산양식’ 에 대해서 약간 검토해보겠습니다. 아시아적 생산양식은 흔히 AMP라고 하는데, Asiatic mode of production(Asiatische Produktionsweise)의 약자입니다. 마르크스는 “동양 사회는 전제자를 제외한 사람은 노예와 같다. 동양의 촌락공동체들은 차이가 없어 전횡적이며 자급자족적 폐쇄경제를 구축한다. 전제자는 도성에 거하면서 촌락공동체가 생산한 잉여를 조세로 착취한다.”는 것입니다. (Lewis, Martin; Wigen, Kären (1997), The Myth of Continents: A Critique of Metageograph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94쪽)

마르크스는 노동이 조직되는 방식을 생산수단과 생산 관계로 구분하는데, 생산수단이란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토지, 천연자원, 도구, 인간의 기술과 지식이며, 생산관계는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형성하는 사회적 관계를 말합니다.

생산수단과 생산 관계의 조합을 생산양식이라 하는데, 그는 생산양식 변화에 따라 역사의 진보를 규정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동양은 국가가 토지를 독점하고 정치력과 군사력을 가지며 관개사업을 통해 토지에 대한 통제를 유지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동양 국가 강력함의 원인을 그들은 촌락이 토지를 공동, 자급자족하고 촌락들끼리는 고립되어 있는 데서 찾습니다.

이런 관점이 마르크스의 AMP(아시아적 생산양식,Asiatic mode of production) 개념으로, 동양 사회는 정체적이며 역동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AMP 관점은 결과적 식민주의 정당화 논거를 제공하며,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타당성을 인정할 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서구의 역사가 동양에 비해 우월하다는 자기기만- 유럽중심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서구는 동적이고 동양은 정적이라는 터무니없는 이론입니다. 아시아 사회는 전횡적이고, 전체적이며 정체적이라는 입장은 유럽의 식민지 침탈이 고통스러우나 미개국의 계몽에 필요하다는 식민주의를 정당화합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에서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53년 영국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글에서 아시아 사회 분석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요, 《뉴욕 데일리 트리뷴》지에 실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논문은 제임스 밀(《대영제국 지배 하의 인도 역사》, 1821), 프랑소와 베르니에(《대몽고제국 기행문》, 1670)와 리차드 존스(《부의 분배와 조세 부과 자료에 관한 소론》)의 저작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유럽중심적 자료를 근거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토지의 사적 소유권 결여가 아시아에서 사회 정체를 낳은 근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아시아 나라의 정치조직은 왕조 간의 투쟁사, 전쟁으로만 보였고 아시아 나라들에서 일어난 전쟁은 경제조직의 변동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 주장에 의하면 아시아 전제국가들에게는 토지 소유권이 국가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아시아적 사회의 정태적 본질은 유럽의 도시국가처럼 소통이 자유롭지 못하고 자급자족하는 고대 촌락 공동체으로 폐쇄적 공존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아시아 공동체는 대규모 공사를 위한 중앙집권적인 통치기구를 필요로 하는 관개사업에 기반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제군주제와 정체성은 공공사업에서 지배적 역할을 하는 국가의 자급자족적이고 고립적인 촌락공동체의 존재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 엥겔스에게 민족, 민족주의 입장이나 이론에 있어서 유럽중심적인, 계몽주의적인 한계가 있다면 아마 그것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역사적 한계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마르크스, 엥겔스에게 민족, 민족주의는 유럽 자본주의, 즉 자본주의 전개발전에 대한 시장 분석이지 역사 문화, 인종 등을 고려한 다층적 분석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유럽 자본 국가들끼리의 식민지 시장 쟁탈전쟁으로 본격 제국주의 시대가 되면서 마르크스, 엥겔스는 민족 문제를 달리 접근하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한적 유럽 상황에 한정된 문제의식이지만 제국주의 식민지화가 진척되는 시기에 민족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아일랜드 민족 해방운동이 영국 혁명 성패를 좌우한다는, 즉 민족해방 운동을 인정한 것은 초기 엥겔스의 서유럽 중심 민족관념에서의 진보입니다. 또한 그 시기에 제국주의로부터의 민족해방의 진보적 역할을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결합시켜 사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국주의 식민지 침략이 드러난 19세기 후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민족,민족주의 입장이 민족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변합니다. 식민지 민족이 세계적 차원의 혁명에서 능동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였던 것입니다.

엥겔스는 <민족주의,국제주의 그리고 폴란드 문제>란 서한에서 폴란드와 아일랜드의 경우 ‘국제주의자가 되기 전에 먼저 민족주의적인 권리 의무를 동시에 가진 유럽의 두 민족을 들라면 아랜린드와 폴란드 민족이라는 것, 이라며서 민족주의를 평가했습니다. (《 마르크스-레닌주의민족이론》 , 편집부 나라사랑, 129-131쪽,162쪽,1989,서울,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민족주의>정영철, 108-114재인용, <21세기민족주의>,통일뉴스,2010 )

즉 마르크스 엥겔스는 후기로 갈수록 민족, 민족주의문제를 국제주의와 대립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민족주의 언급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러니 마르크스 엥겔스의 민족주의 입장을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민족해방 운동에서의 민족주의와 같은 내용으로는 평가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민족은 어디까지나 계급에 입각한 민족 개념이었고, 자본주의 발전, 시장 입장에서 근대 민족 형성과 민족주의를 바라보았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는 국제적 계급연대와 사회주의혁명을 주장했으며 민족운동은 계급혁명의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유럽전체를 하나의 인민계급으로 접근하였으니 민족운동은 계급운동의 부차적인 것이었습니다. 반면 레닌 시기에 오면 민족과 민족주의는 역사적 시기 변화로 말미암아 혁명에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됩니다. 이미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고 있었고, 제3세계 민족해방 운동이 곳곳에서 분출되던 시기의 민족운동은 계급운동을 내포하는 민족해방운동으로 전화되었던 것입니다. 레닌과 스탈린의 민족, 민족주의 문제는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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